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때는 8월 17일 월요일. 낮에만 해도 해가 쨍하니 밝던 날 홍대 모 카페에서 콜린(김이환) 님과 자하 님을 만났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방송사 SBS, 영화사 쇼박스가 주최한 제1회 멀티문학상을 수상한 콜린 님께 [절망의 구]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로 한 것.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하기도 전에 자하 님과 함께 [절망의 구]를 내밀었다.


자하, 진아 (동시에) 사인해주세요. ^^


 ▲  사인해주시는 콜린 님. ^^


 둘 다 사인을 받고 신나서 히히덕거리다가 주문을 하고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한동안 자하 님께서 진행하는 인터뷰에 묻어갔던 터라 오랜만에 진행을 하려니 머리가 텅 비었다. 질문도 준비해서 출력해왔건만 왜 이렇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애꿎은 음료만 괴롭혔다.

진아  아, 제가 인터뷰 진행을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간 자하 님이 했었잖아요. 간만에 하려니 영 쑥스럽네요. ^^;;

콜린  프로페셔널하게 안 해도 돼요. 편하게 하세요.

보, 보통은 사회자가 출연자에게 하는 대사인데, 저거;;;

진아  아하하하하하;; 그렇죠? 제가 뭐 프로 기자도 아니고… 아하하;;;

자하  나도 뭐… 딱히 뭘 준비해가진 않았지. 그냥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면 기사거리가 나오려니 하고…

다들 웃음

진아  멀티문학상 수상 축하드려요. ^^ 책 나온 소감은 어떠세요?

콜린  시상식 때까지 책이 나와야 해서, 굉장히 정신없이 만든 책인데, 아주 잘 나온 것 같아서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진아  바깥 커버에 구멍을 뚫어서 입체처럼 만든 거라거나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요.


 ▲  자하 님과 내 [절망의 구]를 놓고 한 컷


 ▲  속표지

정말로 상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진아  거울 68호에서 콜린 님 특집을 한 번 진행했었잖아요. 그 때 인터뷰 때 공모전에 꼭 한 번 당선되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었어요. (68호 인터뷰 바로가기) 그런데 올해 정말로 당선이 되셨고요. 기분이 어떠세요?

콜린  정말 상이 필요한 상황이었거든요. 상도 필요했고… 제 경력을 보면 책은 정말 많이 냈는데,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고, 돈도 필요했고… 그런 게 다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막 되게 잘 나가는 작가, 출판사에서 대우해주는, 그런 대우도 받아보고 싶었고, 그게 (멀티문학상 수상으로) 한 번에 된 거죠.
그런데 막상 되니까 너무 어리둥절하더라고요. 너무 어리둥절해서 잘 모르겠고… 안 믿어지기도 하고… 밤에 잠 들 때 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 꿈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하면서 자고 그랬어요. 정말로. 밤이 되면 생각이 모호해지잖아요. 현실감이 없어지고. 그럼 더 안 믿어지는 거예요. 정말 이런 게 나한테 다 일어났단 말이야? 싶고. 어리둥절했어요.
막상 책이 나오니까 실감이 나면서 막 부담이 됐어요. 안 팔리면 어떡하지? 이렇게까지 했는데 정말 안 팔리면 난 어떡해야 하지? 예스24 메인에 걸렸는데도 안 팔리면 어떡해야 하지? 내가 뭐라고 변명을 하겠어요.

진아  알라딘 메인에도 걸렸던데요.

콜린  아, 그랬어요? 그럼 정말 그래도 안 팔리면,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라고 할 수밖에 없잖아요.


응모에서 당선까지


진아  <멀티문학상>이 상금(정확히는 선인세)이 1억이라는 것 때문에 유명세를 타고 그랬잖아요. 보통 1억원 공모전이라고들 부르고… (웃음) 그래서 눈길을 많이 끌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할 거 같아요. 응모에서부터 당선까지 과정 같은 게 있다면요? 겪어본 입장에서… ^^

콜린  어… 공모전마다 어떻게 하는지 다를 거 같은데… 예심 붙었을 때 연락이 왔고… 표절작이 아니라거나 다른 곳과 계약한 적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써야 했어요. 예심 끝나고 본심 붙었을 때 연락이 왔고… 최종 결과가 언제 어떻게 난다, 이런 걸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최종 당선 발표를 받았고… 받아서 다음 날 출판사에 가서 앞으로 일정 이야기를 들었어요. 심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듣고. 본심은 누가 하셨고, 본심 때 어떤 이야기가 나왔고, 장점은 이런 이야기가 나왔고, 단점은 이런 이야기 나왔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당선이 되었고, 언제까지 책을 내려고 하는데 교정을 봐야 하는데 일정 맞춰줄 수 있느냐. 시상식은 언제 하고, 책은 언제 나오고, 홍보는 어떻게 하고… 정신없이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끝나고 나서… 교정 끝나고… 바로 계약을 해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출판 계약, 매니지먼트 계약… 사인을 하고…

진아  매니지먼트 계약을 따로 했나요?

콜린  그러니까… 위즈덤하우스는 출판권만 담당을 하고… 위즈덤미디어라고 있어요. 거기서 매니지먼트 통괄을 하는 거예요.

자하  2차 저작권을 어디다 팔고, 뭐, 그런 거.

콜린  네, 그러니까 출판사는 출판일만 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다른 회사 일을 하듯이… 그렇게… 그리고 돈이 들어왔고… 들어와서 잘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당선작 발표가 나는 거고, 그 때부터 홍보 시작인 거죠. 당선작 발표는 어떻게 낼 것이냐, 되도록이면 크게 터트려야 하니까, 이번 <멀티문학상>은 신문사랑 같이 하진 않아서, 신문에 기사 형식으로는 못 내고. 그게 아쉬웠다고 하시더라고요. 신문사를 끼고 하면 그게 좋은데… 그건 안 되니까… 대신 조선일보에 미리 사뒀던 광고 면에 광고를 내고… 그렇게 하고… 보도자료가 나가고… 그 때부터 이제 인터뷰가 시작이 되는 거죠. 인터뷰도 홍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거고… 신문사는 주로 전화를 했어요. 경향, 서울신문, 경제 신문 어디에서도 했고요. 주로 전화로 했고, 메일로 서면 인터뷰를 한 곳이 몇 곳 있고… 연합뉴스는 가서 했고, 몇 군데 잡혀있는 게 있고.
그리고… 표지디자인이나 편집 같은 거 준비하고. 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연락하고… 좀 정신이 없었어요. 시상식도 하고…

진아  시상식 동영상 봤어요. SBS에서 한 거. 까만 양복 입으신 거.

콜린  네. SBS 뉴스 맞추느라 그 때 했고, 그 때까지 책이 나와야했어요. 뉴스 보고 사람들이 다음 날 서점에 가서 찾으니까… 시상식에는 이외수 선생님 오시고 심사위원분들과 쇼박스 SBS 위즈덤 하우스 출판사 관계자 분들도 오시고… 큰 이벤트는 시상식까지 끝난 거죠. 저는 이제 계속 인터뷰하고… 그렇게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거 같아요.

자하  시상식 때 들은 이야기는 어떤 게 있었나요?

콜린  이외수 선생님은 장르에 관심이 많고 (장르) 책도 많이 읽어보셨어요. 그리고… 장르 작가들이 다 좋은데 기본적으로 문장을 좀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판타지가 오히려 미래에 장래성이 있다고 하시고…

자하  왜요?

콜린  어…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요. 자기 소설도 판타지적인 게 많다고 생각하신다고…

진아  [벽오금학도]나… 그런 작품 확실히 그렇죠.

콜린  그리고 저에게 멋있게 살아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는 멋있게 살아야 한다고. 시상식 때도 그런 말씀 하셨어요. 예술하는 사람하면, 맨날 배고프다, 초라하다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인식 바꿔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예술을 하는 데에서 희망을 얻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금을 좀 더 올려라. (웃음) 상금을 올리라는 말에 완전 뒤집어졌어요. 시상식장이 어려운 자리라서 많이 긴장을 했었는데 이외수 선생님께서 오시니까 너무 즐거운 거야. 너무 재밌어서. 친구들이 나중에 이야기해줬는데 내가 혼자 입이 귀에 걸려있더래요. 너무 재밌었어. 정말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시더라고요. 멋있게 살아라, 라는 그 말을 실제로 실천하시는 분인 것 같아요. 옷도 흰색 정장 빼입고 오시고. 정이현 선생님은 굉장히 상냥하고 친절하셨어요. 되게 재밌고. 이외수 선생님은 제가 대하기 어렵잖아요. 나이부터 시작해서… 그런데 (정이현 선생님은) 계속 말 걸어주시고, 그래서 재밌게 하시더라고요.
이외수 선생님은 작가라고 해서 오면 집은 그냥 공짜로 머물러도 된다고. 작가한테는 그런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언제 작가들이 멀티문학상 엠티 한 번 가자고. (웃음)
판타지 작가들이 가끔 이메일도 보내고 그러신다고…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다.


진아  이외수 선생님을 만나셨을 때, 선생님께서 그러셨다면서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실감을 하세요?

이번 [멀티문학상] 심사위원장은 이외수 님, 심사 위원은 소설가 정이현님, 드라마PD 고흥식님, 영화감독 김대우 님이었다.

콜린  네.

진아  어떤 면이 달라진 거 같아요?

콜린  아직은 좀 사소한 거예요. 친구들이 출판했다고 기념으로 파티를 열어줬어요. 친구 집에서 이거저거 시켜먹는… ([절망의 구]가) 잘 될까 등의 이야기 하다가 끝나고 헤어졌어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앞좌석에 앉은 사람이 [절망의 구]를 읽고 있는 거예요. 너무 정신없이 읽는 거야. 클라이막스 부분 같았어요. 너무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더라고요. 그런 때 실감하는 거 같아요.
아직은 크게는 모르겠는데… 작은 징조 같은 건 많이 느껴요. 사소한 거. 광고도 이제 크게 나오고. 메트로에 전면 광고가 나갔어요. 그런데 내 얼굴을 너무 크게 실은 거야. 그런데 어머니께서 길가다가 그걸 보신 거예요. 어떤 아저씨가 메트로를 읽고 있는데 내 얼굴이 진짜 이만하게 실린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이거 우리 아들인데 이 페이지만 찢어달라고 해서 갖고 오셨더라고요. 그런 자그마한 거에서… 느껴요.
사진 자체는 (주위 사람들) 누구도 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진인데…

진아  어떤 사진이었어요?

콜린  책(절망의 구) 앞에 실린 사진이요.

진아  아, 그거요…

콜린  아무튼 되게… 저 사진이 진짜 조인성 같이 나와서… 그런 사진은 아니잖아요, 솔직히.

진아  (조금 망설이다) 실물보다 좀 나이 들어 보이는 사진이긴 해요.

콜린  나이 들어 보이는 건 사실 마음에 들어요.

자하  본 나이를 생각하면… (웃음)

진아  아, (사진은) 딱 원래 나이로 보이네요. 실물이 동안이셔서…

콜린  그렇죠! 딱 서른둘로 보이지 않아요? 그 점이 마음에 들어요. 살도 좀 쪄 보이고.
오늘도 실렸다고 연락이 왔어요. (광고가) 나가면 문자를 보내주거든요. 그런 사소한 징조? 그런 것에서…

진아  광고를 크게 낼 만큼 출판사에서도 밀어주고, 그런 면에서 (달라진 걸) 느끼신다는 거죠?

콜린  앞뒷면 전면은 아닌데… 그래도…. 출판사가 통으로 내가지고 실은 거 같아요.

진아  멀티문학상 당선 이후에 주변의 과도한 관심을 갑자기 느낀다거나, 그런 게 있나요?

콜린  저는 처음엔 돈이 굉장히 클 줄 알았어요. 사람들에게 오는 관심 중에서요. 저에게는 돈이 실제로 컸고요. 오히려 부모님에겐 명예라는 게 크더라고요. 이외수가 정말 네 걸 뽑았단 말이야? 친구들은 그게 정말 영화로 나와? 이런 걸 묻고. 그렇게 대단할 걸 네가 썼단 말이야? 그런… 진짜 SBS가 판권을 샀단 말이야? 그런 명예? 그런 게 돈보다 훨씬 크더라고요. 부모님도 돈보다는 그런 거에 놀라시고, 친구들도 그렇고. 문학상 이름보다 1억이라는 게 앞에 있어서 돈이 클 줄 알았는데, 1억원 멀티문학상, 이렇게 1억원이 앞에 붙으니까. 그런데 막상은… (그 외 것들이 더 큰 거 같아요.)


교정에는 초능력이 필요해요.


진아  책이 나온지 얼마 되었죠?

콜린  10일에 나왔으니까… 이제 일주일 쯤 된 거 같아요…

인터뷰 날짜는 17일입니다. ^^

진아  리뷰 등을 좀 검색해봤는데, 단숨에 읽었다는 게 많더라고요. 해리 포터보다 잘 읽힌다는 것도 있었고…

콜린  영광이죠… 책이 나올 때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는데… 이게 공모전 수상작이고… 그런데 다행히 평이 나쁘지 않아서…

진아  교정에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고 들었는데…

콜린  네.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내가 초능력으로 했다고… (웃음) 열두 시간 자는 거 여덟 시간 자고, 다섯 끼 먹는 거 세 끼만 먹어 가며 작업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정말 힘들었다고. (웃음)
장편을 쓰는 건 집중력이 전부인 거 같아요. 집중을 계속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그걸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고, 체력도 다른 데 쓰면 안 되고…

자하  콜린 님 블로그에서 [절망의 구]를 쓰는 동안 책상 위에 ‘trust me'라는 쪽지를 붙여놨다는 글을 보니까 짠하더라고요.

콜린  네, 누가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인 거죠.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면 ‘believe in myself’인가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trust me'는 누가 나에게 해주는 말인 거죠. 내가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아무래도 못 믿겠는 거야. 글 쓰는 게 너무 힘드니까 못 믿겠어서 누가 나한테 (나 자신을 믿으라는) 말을 해준다고 생각하고… (써놨던 거죠.)
글 쓰는 데는… 쉬운 게 없는 거 같아요.


작가로서 자아란…


콜린  아직 작가로서 자아랄까 그런 게 없는 거 같아요. 너무 막연하긴 한데… 잘 모르겠고…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글을 열심히 써야지 생각만했지, 실제 막 그렇게 노력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문장도 잘 써야지 하는 마음만 갖고 있지, 실제 내가 뭘 했나, 하다 못해 필사를 열심히 해봤나, 뭐…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거 같아요.
모르겠어요. 기분이 그 때 그 때 변하고… 또 하나 완결시키고 나면 어떻게 될지… 기질 자체가 자주 변하는 사람이라서… 이런 게 좋아 보이고, 저런 게 좋아 보이는 그런 사람이라서…

콜린  전에 썼던 작품들을 확실히 많이 생각해요. 새로운 걸 쓸 때. 뭐가 약점이었나, 뭐를 내가 했고, 뭐를 내가 아직 안 했나. 정말 확실히 결정이 나 있지 않으면. 정말 이거는 새롭게 내가 응축시켜서 내놔야겠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안 하는 게 있어요. 그게… 절망의 구도 이전 글들이 너무 동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썼고… 그 다음 글은 또 달라질 거고… 지금 쓰는 [피의 기사와 뱀파이어 여왕]은 완전히 장르죠. 거의 매니아적 장르적인 요소만 넣었어요. [절망의 구]는 장르적이지 않은 요소들을 많이 넣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 걸 다 빼버리고 장르적인 재미만 한 번 살리는 걸… 잘 될진 모르겠는데… 그런 계산이 끝나지 않으면 글 자체를 안 들어가는 것 같아요.

콜린  한 편으론 내가 너무 내 글에 빠져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좀… 여유를 갖고, 뭐랄까, 넓게 좀 봐서, 다른 사람들은 뭐 하는지… 관심도 좀 갖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나는 너무 내 글… 이번엔 이런 걸 했으니 다음엔 한 번 뒤집어야지. 너무 이런 생각만… (다른 데에 관심 갖는) 그런 건 앞으로 일인 것 같고… 지금 당장은… (내 글에 집중하려고요.)

하면 할 수록 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계산해서 할수록 세상에는 (할 게) 너무 많은 거야. 내가… 알아야 할 게, 많고. 안한 것도 많고. 아직 정말 멀었구나. 아무 것도 아니구나. 절망의 구 썼을 때는 내가 이렇게 속을 다 뒤집은 것까지 썼는데 더 할 게 있을까, 생각했는데 뭐, 아니에요. 택도 없어. 아직 멀었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할 게 많이 남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못 했는지, 다음 글에서는 무엇을 해볼 것인지 계산을 하고 생각을 하며 쓰니까 매번 작품이 한 단계씩 나아지고, 저번과 다른 무언가가 나오는 게 아닐까


[절망의 구] 모델은 좀비


진아  다른 인터뷰들에서 답을 보기는 했는데, [절망의 구]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요?

콜린  사실… 다른 인터뷰들은 그냥 형식적인 대답을 많이 했어요. 길게 대답하기도 그렇고. 배명훈 님 말대로 거울 인터뷰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 쑤, 쑥스럽습니다.;;;;

콜린  명훈님이 정말 없는 소리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맞는 말 같아요. [절망의 구]도 꿈에서 착상을 얻은 건 맞아요. 정확히 말하면 한 4년, 5년 전에 꿈을 꿨는데, 원뿔이었어요, 원뿔이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도망을 쳐도 따라오는 거예요. 아주 천천히. 근데 내가 아무리 도망을 가도 나를 쫓아오는 거예요. 그러다 깼어요. 잡히려는 순간, 깼는데. 꿈이 그렇듯이.
그게 너무 인상에 강하게 남아서… 그렇게 썼으면 [절망의 뿔]이었겠죠.

다들 웃음

콜린  그런데 뿔이라는 모양보다는 부조리를 상징하려면 구가 나을 것 같아요. 원뿔은 어느 순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외계인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원뿔도 장점이 있는데, 부조리를 상징하려니까 구가 나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얼개를 어디서 가져올 것인가 하다가, 재난 소설이랑 좀비 소설을 많이 참고했어요. 원래 재난 소설이나 좀비 소설을 좋아하기도 했고. 이런 이야기는 다른 인터뷰에서 안 했죠. 왜냐면 재미가 없으니까. 해봤자 이해도 못할 것 같고.

진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느리지만 꾸준히 쫓아오는 게, 딱 좀비네요.

콜린  그러니까 좀비의 성격을 그대로 가져왔어요. 사람을 잡아먹고, 숫자가 늘어나고, 없앨 수가 없고. 물론 좀비는 머리를 쏘면 되긴 하는데. 그런 좀비의 특징을 가져왔죠. 정확히 말하면 좀비 소설에서 좀비를 지운 거예요. 좀비를 지우고, 부조리를 위한 존재를 넣은 거예요. 그러면 좀비 소설은… 장르라면… 좀비가, 좀비가 된 이유가 있잖아요. 바이러스라거나, 다른 좀비에게 물렸다거나. 이유가 있으니까 해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건 좀비를 지우면서 이유가 없어져서, 결말도 지워진 거예요. 그럼 중간만 남는 건데 그걸 뭘로 채울 것인가. 그런데 장르적인 거를 하지 말고, 장르를 좀 넘어가지고 내 개인적인 걸 넣어보자. 개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걸 넣어보자.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내가 그걸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을 몇 년 동안 한 거죠. 한 2년 동안은 그 고민만 한 것 같아. 내가 정말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사회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나?
작년 말에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거울 모임 나와서도 쓴만큼 출력본 돌려도 보고, 이메일로 도입부 보내도 보고. 그렇게 하면서 확신을 가진 다음에 있는 힘을 다 해서 쓴 거죠. 근데 그 대신,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시나리오 작법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승전결 이렇게 딱 잡히는 글, 나머지 하나는 그냥 직진해서 두서없이 직진하다가 끝나는 글. 오히려 그런 직진하는 방법이 더 어려운데 잘 되면 이게 더 대박이다. 절망의 구는 그런 방법으로 해보자. 구조를 짜지 말고 그냥 직진하는데, 끝없이 추락하는 이야기로 정말 계속 바닥을 파고 들어가 보자. 그런 계산이 이렇게 막… 잘 맞더라고요. 그런 계산들이… 잘 될 것 같은 거예요. 그 대신 정말 좋은 걸 생각해냈으니까, 이건 정말 포기하지 말고, 아무리 힘들어도 징징대지 말고, 그래, 포기만 하지 말고 힘들어도 해보자. 그러다가 이타카도 그렇고 노블레스 클럽도 그렇고, 소설 가지고만 와봐라, 계약 해주겠다, 이러는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써봐야지, 언제 쓰겠냐 싶었고, 그렇게 모든 외부 상황이 절 도와준 거예요. 그래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완성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웠어요. 빈말로 하는 게 아니라.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이 정말 고마웠어요.
특히 마지막 결말이 정말 임팩트있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있을 수 있게… 그런 결말을 내면 거기서 끝나더라도 거기서 사람들이 납득을 할 것이다. 그래서 공모전에서 됐다는 연락이 왔을 때 아 내 확신이 옳았구나.

진아  굉장히 오래 묵힌 끝에 나온 글이네요. 4년이면…

콜린  그런데 제 글이 다 그렇게 나와요. 대부분… 오후 다섯 시의 외계인 같은 경우는 6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진아  구상이요?

콜린  네. 아이디어를 내서 글을 구상하기까지 한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양말 줍는 소년]도 굉장히 오래 걸린 건데… 그것도 한 1, 2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 어디 가서 하기가 좀 어렵더라고요. 해도 잘 실어줄 지 모르겠고… 구가 상징하는 게 뭔가 막 이렇게 물어보는데. 부조리를 상징하는 거라고 대답했어요. 그렇다고 인터뷰를 지금까지 대충했다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 인터뷰한 데서 들으면 화내겠다. (웃음)

자하  오피셜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속 터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거죠.

콜린  맞아요. 오피셜하게 했다고 해서 대충했다는 건 아니죠.

진아  거울 인터뷰는 기본적인 이해가 깔린 상태에서 시작하니까, 그걸 전제하고 하는 질문이잖아요. 그래서 좀 더 깊은 질문이 가능한 거고… 사실 거울에서 맨 처음 거울 필진들을 알리고자 시작했던 인터뷰에서, 처음 콜린 님이랑 메신저에서 인터뷰할 땐 정말 힘들었어요. 뭘 물어보지? 되게 어색했거든요, 기분이. 인터뷰를 해 본 경험도 없고, 콜린 님을 오프라인에서 뵙기도 전이고. 그 전에는 원고 관련 메일만 주고 받았지 따로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없었고.

콜린  어색하니까 오피셜하게 물어보고, 어색하니까 오피셜하게 대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절망의 구] 구상에서 완성까지


진아  처음 구상을 한 건 4, 5년 전이고… 실제 집필 기간은 얼마나 되신 거죠?

콜린  5개월 반? 작년 11월부터 써서 4월 말까지… 5개월 반? 6개월? 그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진아  어떻게 쓰는 편이세요? 매일 꾸준히? 아니면 ‘삘’ 받았을 때 파바박? (웃음)

콜린  근데 그거는… 마감일 4월 30일을 맞추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내가 거기 꼭 내겠다고 너무 많은 데다 말하고 다녀가지고. (웃음) 진짜 나중에는 자존심 싸움이었어요. 내가 정말 못 냈어, 못 해냈어. 그럼 너무 쪽팔린 거 같은 거야.
그래서… 정말 필사적으로… 썼어요…

진아  다섯 끼 드시던 거 세 끼만 드시면서 하셨군요. (웃음)

콜린  초고 상태로 원고를 내게 된 게 아쉬웠어요. 퇴고를 제대로 못하고. 그래서 예심에서 떨어지겠구나, 했어요. 근데 다행히…
사실 퇴고는 아쉬워요. 내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퇴고를 했으면, 책이 나오기 전에, 그런 게 아쉬워요. 그런데… 최선은 다 했어요. 그 점은 확실해요…
이렇게 책이 빨리 나온 적이 없어서… 주변에서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이렇게 빨리 나왔어? 하고. 보통 원고 넘기고 1년은 있다 나오고 그랬는데. 원고 넘기고가 아니더라도. 내가 늦게 넘긴 적도 있고. 보통은 계약하고 1년은 있다 나왔으니까. [에비터젠의 유령]도 8개월 있다 나왔고. 두 권 분량을 한 권으로 줄이느라 걸린 시간도 있지만. 그런데 이건 보름 만에 바로 나오니까. 주변에서도 내가 속이 다 시원하다고 그러고. (웃음)

진아  [절망의 구]를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있다면요? 마감의 압박?

콜린  마감 보다… 마감도 힘들었는데… 어…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게 힘들었어요. 사실… 마트 장면 같은 건 자신이 없었어요. 내가 정말 이걸 쓸 수 있을까? 마트 챕터하고 고독 챕터. 내가 이걸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어요. 쓰긴 썼는데, 쓰고 나서 나오는 게 되게 어렵더라고요. 되게 우울 하더라고요.

진아  초고에서는 챕터 제목이 없었잖아요.

콜린  네, 친구 의견이었어요. 갑자기 넘어가는 게 좀 어렵다. 사실 이게 챕터 사이의 간극이 넓어요. 그게 너무 확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차라리 제목을 정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아, 그래 제목이 있어야겠다, 그래서 원고 보내기 전 마지막 순간에 제목을 넣어서 보냈어요. 정말 겉봉투 입구에 테이프까지 붙였다가 다시 뜯어서 제목을 붙여서 넣었어요.

진아  [절망의 구]는 많이 팔린대요? (웃음)

콜린  안물어봤어요. (웃음)

우문현답 ^^;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진아  차기작 질문을 하려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쯤 연재가 끝나고 언제쯤 책으로 볼 수 있을까요?

콜린  언제쯤 끝나냐면… 9월이나 끝날 거고, 출간 예정은 (출판사에) 물어봐야 알 것 같고. 아직 안 물어봤어요. [절망의 구]가 8월에 나왔으니까 11월 즈음 나오면 좋겠는데… 아니면 차라리 미뤄서 내년에 나와도 좋을 것 같아요.

진아  네, 한 작품이 팔릴 만큼 팔리고 후속작이 나오는 게 작가 입장에서는 좋긴 하죠.

콜린  네…

진아   [피의 기사와 뱀파이어 여왕]은 언제쯤 출간되나요?

콜린   지금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 확실히 모르겠어요. 사실 지금쯤 마무리를 지었어야 하는데 턱도 없고. 9월 말까지 마무리를 지어서 넘기면, 노블레스 클럽에서 일정 잡지 않을까…

진아   블로그에 앞부분을 올리셨잖아요. 재밌었어요. 또 다른 스타일의 주인공이고, 다른 글이고요. 앞부분에서 천연덕스럽게 괴기스러운 분위기도 잘 잡으셨고…

콜린  모르겠어요. 잘 해서… 단편을 되게 쓰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단편 연작처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1/3 정도 썼어요.

진아  아… [피의 기사…]가 연작인가요?

콜린  네, 근데 어렵더라고요. 단편을 한 동안 못 써서 재밌긴 한데… 어렵더라고요.

진아  1/3이면 단편으로 치자면 몇 편 쓰신 거죠?

콜린  지금 네 편 정도 썼는데… 열 개를 채울지, 아니면 열 개를 넘을지 모르겠어요. 노블레스 클럽은 1,500매 이상을 원해서. 열 편이 될 지 열두 편이 될 지 더 많이 쓰게 될 지…

진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 [피의 기사와 뱀파이어 여왕] 외에도 계획 중인 작품이 있나요?

콜린  이타카 차기작 계약이 있어요. 두서없이 막 뻗어나가는 걸 써보고 싶어요. 좀 난해할 수도 있는데, 재미있게 (써보려고요.) 지금 목표가 제5도살장처럼… 외계인이 나타나고 장난 아니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재밌잖아요. 아무튼 그런 건데… 형식은 그런 글인데 내용은 어둡지 않고, 아기자기한 걸로 다시 돌아가고 싶고요. 사방팔방으로 막 두서없이 뻗어나가는데 그게 너무 귀엽고… 그런 거. 몇 사람 의견을 물어봤는데 재밌겠다고 해보라고. 그거랑… [절망의 구]보다 더 내려가는 걸 하나 더 쓰고 싶어요. [절망의 구] 정도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정도도 안 되는 것 같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좀 책임감을 느껴요. 사회적인 이야기를 정치적인 이야기를 발언하지 않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요. 지금까지 그런 걸 안 했는데 글에 안 넣었는데 책임감을 느껴요. [절망의 구]도 그렇게 많진 않은 것 같아요. 작가로서 책임을 느껴요. 대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앞으로 계획은 그런 거… [피의 기사…] 끝나면 그렇게 두 개… 계획하고 있는데 모르겠어요. 끝나면 또 어떨지.


앞으로 집필 계획은…



진아  음…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절망의 구]를 읽으면서 [타워] 생각을 좀 했어요. [타워]가 털면 먼지 나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절망의 구]도 인물이 선량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아무런 죄책감이 없고 그렇잖아요. 우리나라 수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애인이 있지만 일 때문에 접대하는 자리에 가고 그런 게 뭐가 잘못이야, 라고 생각하고… 살기 위해서지만, 그래도 한 때 같이 동고동락했던 청년을 몰아붙이는 것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이 나오지 않잖아요. 학교에서도 도망칠 때도 그랬고… 얘가 도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런데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용기를 내기 힘들고… 그러니까 그냥 하나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버벅버벅)

콜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이렇게 횡설수설한 질문을 이해해주시다니… (__)

콜린  그건 [타워]가 가지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다 조금씩 잘못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종합해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냐. [타워]는 그거에 집중했다고 생각하고, 저 같은 경우에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별로 살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요. [절망의 구] 같은 경우에는… 모두 다 죽어도 싸, 다 죽어도 싸, 가 중심인 것 같아요. 그 대상이 착한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다 공격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게 이 글의 가장 큰 핵심인데, 너는 네가 좀 착하니까 너는 괜찮을 것 같았지? 하고 공격하는 것 같아요. 너는 나랑 좀 친하니까 내가 안 공격할 것 같았지? 그런 거예요. 부모도 없잖아요. 부모도 자식도 없잖아요. 너는 네가 좀 진보적이니까 괜찮을 줄 알았지? 아니 너도 나쁜 놈이거든. 하고 모든 사람을 다 공격하는 게. 그러니까 같은 핵심을 보더라도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한 것 같아요. [타워]는 조금 더 사회적으로 많이 나갔고, [절망의 구]는 그렇다기 보다는 좀, 인간 내면적인 걸 조금 들어갔달까, 안좋은 바닥을 드러낸달까, 사회적인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는… 그런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사회적인 걸 넣어서 더 나가고 싶어요. 좀 보면서 속이 뒤집어졌으면 좋겠어. 이 정도도 안 되는 것 같아. 이 정도도 안 되는 것 같고, 읽는 사람이 정말 속이 뒤집어져서,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았나, 생각할 만큼, 그런 걸 한 번 쓰고 싶어요. 당장은 아니고… 내년이나 내후년이나…

진아  내년은 얼마 안 남았는데…

콜린  내년은 얼마 안남았구나. 끔찍하다. 벌써 9월이야?

자하  끔찍해요…

진아  기대돼요. 콜린 님이 이보다 더한… (글을 쓰게 되는 것이…)

콜린  주변에서 많이 말리더라고요. 얘기를 듣더니… 어지간하면 나중에 좀 많이 미뤄라. 왜냐하면 이거 하나 쓰면서 양줍소 이미지를 많이 깼는데, 또 쓰면 다시는 그런([양말 줍는 소년] 같은) 글 못 쓴다. 그런 거 하나 쓰면 다시 [오후 다섯 시의 외계인] 같은 글 못 쓴다. 그러니까 미루려면 좀 많이 미뤄라, 그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많이 미뤘어요.

진아  중요한 건 작가가 내가 지금 이걸 쓸 때야, 라는 판단이겠죠.

콜린  네,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일단 [피의 기사…]를 출판사에게 누가 안 되도록 빨리 마감을 하고, 자성의 시간을 가지고, 뭘 하든지… 원래 시나리오를 쓸 계획이었는데, 그건 안 될 것 같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니까 사람이. 난 정말 확고할 줄 알았어. 상을 탈 줄 내가 알았나. 그것 때문에 8월에 바빠질 줄도 몰랐고. 어떻게 내가 대처를 못하겠더라고요. 앞일을 모르겠어. (웃음)
거울에서 특집으로 작가 문답한 적 있잖아요. 그걸 읽으면서 너무 이상한 거야.내가 쓴 것 같지가 않은 거야. 그 사이에 상황이 너무 많이 변한 거예요. 아, 정말 한치 앞을 내가 못 내다 보는구나. 나는 그런 거 잘 내다보는 사람이 아니구나. 유연하게 막 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지금 하는 일에 일단 최선을 다 해야죠.
그냥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판사에) 솔직하게 말하면…. ^^;

진아  (출판사에서) 제일 난감한게 연락두절이니까요. ^^;

콜린  네. 연락두절할 일은 없을 테니까…


[절망의 구]가 <멀티문학상>을 수상한 의미


진아  인터뷰가 거의 끝나가네요. ^^ 예비작가에게 격려 말씀을 한 마디 하신다면요?

콜린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멀티문학상]을 타면서 장르 작가도 잘 쓰면 상을 탈 수 있다, 그런 길이 열렸다고 하는데 그건 난 아닌 것 같아요. 장르작가들은 지금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회만 잘 맞추고 운만 좋으면 상을 타는 거 같아요. 지금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진아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안다고 생각하는 거랑, 실제 그게 이루어지는 걸 보는 거. 그건 분명히 달라서…

콜린  내가 그걸 보여줬다면 나는 정말로 그냥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자하  공모전이라고 상금 크게 걸고 열어서, 막상 당선작은 안 내고, 괜찮은 작품들 봐뒀다가 따로 연락해서 책 내려는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도 없진 않았잖아요.

콜린  제가 작가로 좋은 선례를 보여줬다면, 저야 영광이죠. 그런 식으로 해서 장르 쪽에 내 이름이 계속 남는다면 나야 정말 영광이죠.

진아  많은 분들이 (콜린 님의 당선 이후) 속에 칼을 품기 시작한다는 걸 느껴요. 나도 될 거야, 라는 생각들 하면서.

콜린  작가들은 누구나 속에 칼을 품고 있죠. 제가 존경하는 영화인이 그러시더라고요. 다른 감독들 이야기하다가… 그 감독이 영화를 하나 만들었는데 영화 되게 잘 됐거든요. 칼이 있는 건데, 그 칼을 뽑아서 누굴 찌른 거라고. 만약에 누굴 못 찔렀으면 그냥 자기를 계속 찌르고 있었을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내 안에도 칼이 있었구나. 그걸 꺼내서 누군가를 찌르겠구나. 그러지 못하면 내 안만 찌르고 있는 거구나. 빨리 꺼내서 뽑아야하는 구나. 다른 분들도 칼의 존재를 깨달으셨다면… 빨리 꺼내서… 제가 그렇게 해서 이름이 남는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죠. 판타지 소설이 역사를 쭉 쓰는데 김이환 작가가 멀티문학상을 타면서 많은 작가들이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오면 나는 진짜 영광이죠. 더 할 나위 없죠. 그런 생각하면 믿어지지가 않아요. 이게 다 꿈인가…  

 이 또래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김이환 콜린 님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한 작가의 작품을 보고 반해서, 그 작가 글을 계속 보다 보면 작가의 패턴이 보이게 되고, 그러다보면 전과 다른 애정으로 좋아하게 될 지언정 초기의 열광은 사라지는데 콜린 님은 신작을 접할 때마다 초기의 열정으로 읽게 되는 드문 작가다. 작가의 색이 있으면서 매번 새로운 걸 시도하고, 동시에 세계관이 확장되어 가는 걸 실시간으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 계속 지켜볼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게 독자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요, 동료 입장에서는 좋은 자극이 되어준다.

 [절망의 구]가 선전하길, 그리고 신작이 어서 나오길!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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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09.08.29 11:33 댓글 수정 삭제
    인터뷰 정말 재미있네요. 역시 어지간한 공식 루트(?)보다 거울 인터뷰가 자세하고 깊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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