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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잔상에 올라온 보라 님의 글을 토대로 한 리뷰입니다.

1. 이야기와 플롯

 거울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공통적인 특징을 하나 뽑아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야기꾼’이라는 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면 모두 이야기꾼이지, 뭣하러 이런 말을 하느냐는 반문을 받을 법도 하지만, 사실 문학적으로 보자면 이야기와 플롯은 분명히 다르다. 플롯은 소설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핵심 ‘장치’이며, 이야기는 있었던 사건의 연속이다. 문학이론가였던 포스터는 소설의 양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인과율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배치된 이야기가 플롯이며, 시간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을 이야기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플롯은 ‘왜?’라는 질문이 반드시 수반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질문을 독자가 인식하게끔 만드는 것이 요컨대 소설의 플롯이 가지는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소설이 될 수 없는가? 이것은 매우 예민한 문제다. 다소 고리타분하지만 루카치의 말을 빌려오자면, 서사시의 파괴에서 시작된 근대 전유물인 ‘근대 소설’은 소설을 소설이게 만드는 무엇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으며, 엥겔스는 그것을 요술거울과 같이 왜곡되어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티가 가진 힘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리얼리티를 가능케하는 - 돌려 말하자면, 반영의 범주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게끔 만드는 - ‘플롯’이라는 장치적 성격은 ‘근대’와 유착되어 있는 일군의 리얼리즘 소설과 동의어에 다름이 아니다.
 서두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근대적 플롯과 리얼리티가 소설에 있어서 중추적 역할을 한 사실을 인정하지만서도, 소설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리얼리티의 반대쪽에 있는 일군의 소설, 일부 평론가들이 조악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대중소설’이나 ‘펄프픽션’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리얼리즘의 창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리얼리즘이 소설의 중요한 형식인 것은 수긍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얼리즘만이 소설의 전부 역시 아니다. 닐 게이먼의 입을 빌려, 샌드맨이 말하지 않았던가? 꿈과 환상이란 ‘그림자 진실’이라고…… 필자는 이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샌드맨이 설파하는 ‘꿈의 땅’에 거울의 작가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 가장 극단이자, 경계에 놓여있는 작가가 바로 보라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즘 소설의 플롯으로는 가장 접근장벽이 높은 장르, 호러와 미스테리라는 하위 장르에 밀착해 있는 작가이기에 가장 극단이라고 표현하였으며, 그녀가 작품을 직조하면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일군의 기예(Art)들은 소위 말하는 문학작가의 그것을 뛰어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2. 장르소설과 문학소설의 경계 사이에서

 쿤스트(Kunst), 그것도 소설 쿤스트로서 보라는 이미 일군의 세계관 형성이 완료된 것 처럼 보인다. 거울에서 창작된 보라의 작품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죽은 팔}이나 {차가운 손가락}처럼 호러적 정경을 가지고 있는 판타지와, 전형적인 민담식 형식에 장르판타지적 레토릭을 기워넣은 {은둔자의 영혼}, {메밀꽃 필 무렵}같은 작품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몇 가지 실험적 성향을 띤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을 훑어보면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부분은, 장르적 성향이 강하게 감지된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작품을 ‘대중소설’ 등으로 쉽게 포장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의 가장 큰 무기로 꼽을 수 있는 문체와 어법이다. 그녀는 작품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형상에 어떤 색채를 부여해야하는지, 그리고 그 색채를 어떻게 입혀야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매우 영리한 작가다. 그녀는 소위 장르소설이 빈번히 취한다는 구어적 문체도, 혹은 문학잡지에서나 찾을 수 있을 법한 상징으로 빼곡한 시적인 문체도 고집하지 않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문장과 캐릭터를 선별하여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녀의 최근작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동화3부작}(본글에서는 편의상 {높은 탑에 공주와}, {달빛 아래 기사와}, {사랑하는 그대와}를 묶어서 '동화3부작'으로 칭할까 한다.)의 수다스런 구어체는 이 작품이 모델로 삼은 전형적인 ‘옛날옛날에’식 이야기의 전달자로서의 화자가 가지는 위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청소년문학의 전형적인 문체를 가져온 {스위치오프}에서는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미성년의 시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종의 고딕과 호러의 중간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차가운 손가락}에서는 극도로 절제된 하드보일드적인 문체로 정경의 건조함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런 다채로운 문체의 변화와 적절한 어휘 선별은 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글쓰기와 독서를 하여 필요한 것들을 소화했는지 알 수 있는 간접적 척도가 된다.
 게다가, 그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소외된 자’, 다소 급진적으로 말하자면, 페미니즘적 뉘앙스의 밑그림재료들은 작품의 호소력을 떠나서 단편들을 ‘보라’라는 정체성으로 통합시키는 데에 일련의 기여를 하고 있다.
 적지 않은 그녀의 작품들에서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인물들은 ‘여성’들이다. 특히 {죽은 팔}, {내 이름을 불러줘}와 {몸하다}, {차가운 손가락}에서는 여성이 사회 안에서 직면하는 폭압적 상황들과, 여성이 안고 있는 특유의 부조리들을 짚어내고 있으며, {메밀꽃 필 무렵}이나 {아이를 안고 있었다}, {한번 사는 인생} 같은 작품들은 남성의 입장에 그와 같은 질문들을 투과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성역할을 역전시킨 {동화3부작}의 공주 역시 기존의 신데렐라콤플렉스에서 상당히 벗어난 인물을 제시한다. 여성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는 이들 작품들은 어찌보면 보라의 작품세계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일반적인 장르작가들에 비하여 보라의 작품들은 무게가 무겁고, 작품 내적으로는 좀 더 유려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주류문단과 장르문단 사이를 오가는 경계작가로 보기도 어려운 이유는 그녀의 작품이 가지는 매우 복합적인 중층성 때문이다.
 한 번 더 다소 급진적인 어휘를 빌리자면, 그녀는 콜린과 함께 거울의 작가집단 중에서 가장 뉴웨이브적인 판타지를 쓰는 작가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콜린보다 훨씬 무거운 이야기를, 훨씬 뻔뻔하게 꺼내는 작가이다. 그녀는 ‘호러’ 혹은 ‘판타지’라는 입을 빌려서 사회의 총체적인 스케치를 그리려 하는 작가이며, 개인의 심리적 충격을 통하여 사회를 그리는 데에 매우 능수능란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는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하여 장르적 어법을 끌어오는’ 주류 문단의 작가들과는 다르게 ‘장르적 형식 안에서 숙성되어 문학적 성과에 다다르는’ 매우 이례적인 성과라고 해야할 것이다.



 3. 미스테리/호러 혹은 그로테스크가 가지는 우울한 개인의 군상들

 보라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들은 아마도 ‘미스테리’ 혹은 ‘호러’라는 장르 안에 둘 수 있는 것들이다. 필자의 이 주장에는 다소 수긍할 수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보라의 작품은 유독 호러가 가지는 특징들을 공유하는 작품들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이런 몇 가지 작품들을 통하여 그녀의 작품세계에 핵심이 되는 요소를 살펴보려 한다.

 아무도 믿어주지 못하는 진실 앞에서 홀로 그 진실을 안다면,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녀의 가장 중요한 몇몇 작품들은 주관적 진실이 타인에 의해 묵살되고 파괴되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자아에 반응하는지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조금 과도하게 말하자면, 페미니즘과 연루된 것으로서, 사회적 중심에 서 있지 못하는 여성들,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비밀들, 출산, 임신, 가이아적 여신상이 현실에 투영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일종의 역전된 신화로서 이야기된다. 배명훈과 콜린이 ‘일상 속에 함몰된 환상의 단서들’을 찾아내려 했다면, 보라는 역전된 현상으로서 가장 기괴한 곳에서 시작하여 일상의 단면으로 귀결된다. 바로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보라를 ‘장르판타지 작가’로 묶기보다는 ‘호러 작가’로 묶는 데에 더 설득력을 얻는다. 즉, 그녀의 작품들은 판타지라기보다는 화자의 주관적 내면에 의해 작품의 심상이 일그러지는 표현주의적 성격, 호러나 미스테리에 더 가까운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차가운 손가락}은 가장 고딕적인 주제인 망각과 ‘반복되는 악몽’을 통하여 독자의 심상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망각은 고딕문학의 영원한 연인이다. 필멸의 가능성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며, 이것은 삶에 묻힌 우리가 가장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되는 ‘기억잃은’ 독백을 통하여 그녀는 자신의 과거가 어땠는가에 대해 어둠속에서 끊임없이 혼란하며, 착란에 사로잡힌다. 이런 작품에는 결말이 필요없다. 왜냐면 결말은 우리가 알고 싶어하지 않는 죽음의 심연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고딕적 테마를 가지고 호러적 심상으로 끌고나간 작품이다.

 {죽은 팔}은 어찌보면 보라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여인은 집주인 아들이 집에 남기고 간 한쪽 팔을 응시하면서, 이 집에 대한 불길한 암시를 직관적으로 읽어낸다. 그러나 이 진실은 사회적 주류(남편과 통장, 그 마을의 정치적 힘을 가진 아낙네들)의 눈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된 그녀와 아이만이 알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사회적 배제자들만이 온전히 알 수 있는 직관적 시선은 왜곡된 사회 속에서 커다란 부조리로 막히게 된다. 이 작품은 얼핏 호러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소외된 자들의 시선을 작품 내에서 인정해주면서 주류의 권위를 조롱하는 이중적 구조의 판타지에 가깝다. 호러적 뉘앙스는 작품 전체에 윤색된 장치적 성격에 머물러 있다. 이 작품이 가지는 공포스런 분위기는 히든 호러Hidden Horror가 아니라, 오히려 그로테스크Grotesque에 가깝다.

 이처럼 한 인물의 주관적 심상이 사회적 환경에 의해 왜곡되면서 발생하는 마찰들은 그녀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물고기}는 카프카의 단편 {변신}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지만, 변신이 표현주의적 기법을 통해서 타인과의 소통의 완전한 차단성을 이야기한 것과는 다르게, {물고기}는 ‘자유’를 갈망하는 한 수험생의 그로테스크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그녀의 몇몇 작품이 가지는 미묘한 특성들은 호러라기보다는 오히려 낭만적 그로테스크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는데, 이러한 그로테스크는 낭만주의 호러 작가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특징과 유사함을 보인다. (이 주제는 본글과 다소 거리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제외한다.)

 그녀 작품세계의 집결체라고 볼 수 있는 {내 이름을 불러줘}는 호러적 정경과 SF적 외삽, 그리고 보라 특유의 주제가 뭉쳐진 혼합물이다. 하지만 SF적 사유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편이며, 특히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비밀스런 코드들이 작품의 주제에 상징처럼 얽혀서 형상화되어 있다.

 {몸하다}는 생리와 임신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어서, 흡사 레몽 장의 단편을 보는 듯한 면이 있다.

 {전화}는 49제의 모티브를 가지고 망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경쾌한 호흡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명실상부한 전형적인 판타지 소품으로서, 아마미야 료의 <사후편지>와 비슷하게, 망자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을 담백하게 풀어 넣었다.

 보라의 작품들 중에서 유독 주목해야할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메밀꽃 필 무렵}과 {내 이름을 불러줘}, {바늘자국}일 것이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스산한 분위기는 호러보다는 고딕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여기서 ‘고딕’이라함은, 18세기를 관통하며 유럽에서 자생한 고딕소설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흡사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 이야기처럼 동양적 관습에 바탕을 둔 한스러운,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非)로고스적인 것에 대한 연민에서 파생되는 일련의 분위기를 뜻한다. 이는 진부한 표현으로 말하면 ‘한국적 판타지’라는 카테고리를 연상케할 수 있는데, 호러와 고딕의 장르에서 현대사회의 작가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 필법과 문체는 상당히 안정되어있는 ‘근대적 소설’의 그것이지만, 그 문체 안에 담겨있는 정서는 상당히 전근대적인 아우라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의 이질적 배경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점은 이 땅에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눈여겨봐야할 부분이다.

 

 4. 총평 - 경계인으로서의 글쓰기

 환상적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다소 이상할 표현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본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 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리려 노력하는 것, 아마도 작가에게 그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첫번째 작업일 것이다. 그것은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스케치'의 방법으로 그녀의 모든 작품의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그녀가 그리려고 한 '소재'는 분명하게 눈에 띄고 있지만, 그 스케치의 '제목'의 부분은 아마도 공란으로 비워져 있는 것 같다. 이것은 한 명의 작가가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작가적 제스처가 아직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다. 사실상 그녀는 주류문단으로 진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주류문단에서 요구하는 ‘근대적 리얼리티’를 추적하지 않은 채, 삶 속에 투영되어 있는 영상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무겁고 진중하고 이성적인’ 근대적 리얼리티라는 것을 강박적으로 추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녀가 ‘가볍고 즐겁고 환상적인 것’을 이야기하자면 그녀가 이루어낸 작품 세계의 무게 또한 깊다. 아직까지 그녀는 본의아니게 둘의 경계 사이에 놓여있다. 이것이 그녀의 더욱 큰 강점이 될지, 아니면, 그녀의 경계적 위치를 공고히 하는 단서가 될지는 앞으로 더 지켜볼 일이다.





 현서

 경기도 부천 출생. 여러 대학과 강단 등을 유랑하며 철학, 미학, 종교학, 신화학, 문화인류학, 오컬트·포츈텔링 등을 공부하며 이십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독문학과에서 낭만주의 미학을, 국문학과에서 조선 전기 몽유록계소설과 민속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취업준비랍시고 일본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10년째 소설가를 꿈꾸고 있지만, 정작 창작보다는 비평과 미학적 사유를 즐기는 기묘한 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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