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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너를 소리쳐!
- 아밀, 날개, 임태운 신예작가 3인방


진행: 진아
질문 및 기사: 자하
인터뷰이: 아밀, 날개, 임태운


 70호의 표제는 “미래”이다.
 거울은 2008년을 매우 뜻 깊게 보냈다. 거울 작가들의 글이 실린 단편집을 3종이나 펴냈고, 그중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김이환 외, 황금가지, 2008년 7월)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5주년을 맞아 많은 커뮤니티와 출판사에 거울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고 축하받는 자리를 마련했으며, 연례행사로 지속해온 거울 중단편선과 앤솔러지도 호평을 받았다.
 2009년의 행보는 더욱 바쁘다. 거울 사상 최초로 ‘특집’을 시도하여 웹진으로서의 면모를 좀더 갖추었고, SF 단편을 모은 [U, Robot](듀나 외, 황금가지, 2009년 2월)을 황금가지에서 출간했다. 거울 필진들이 타 웹진이나 잡지에 글을 게재하고, 창작물과 번역물을 출간하는 일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연도별 중단편선과 소재 앤솔러지 외에 거울에서 준비하고 있는 깜짝 이벤트도 있다. 대외적으로도 거액의 상금을 내건 장편 공모전이 속속 등장하고 국내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등 작가라면 그 어느 때보다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2008년이 멋진 한 해였던 것은 그전까지 거울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날카로운 비평을 아끼지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기 때문이다. 2009년, 또 2010년, 몇 년이 가든 이런 꾸준함과 창작열이 거울의 미래일 것이고, 거울의 힘일 것이다.
 그 끊이지 않는 걸음 중 한 보로, 바로 얼마 전 날개가 첫 작품집 [환상결핍증]을, 추선비가 [50년 전의 연인]을 출간했다. 곧이어 임태운의 [황제를 암살하는 101가지 방법]이 곧 나올 예정이며 아밀의 [병 속에 든 바다]는 4월 중 출간 예정이다. 거울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개인 작품집이자, 이들 작가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는 무대이기도 하다.
 거울의 미래이자 힘, 개인 단편선을 출간하는 무서운 신예 작가들을 만난다.


세상에 너를 소리쳐! - 일단 이름부터

 전자책을 출간하는 작가는 네 사람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추선비 님은 바쁜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인터뷰에 함께한 세 사람을 일단 간략하고 불친절하게, 특히나 인터뷰어 마음대로 소개해 올린다.


아밀
 거울의 고딕여왕이자 모던 걸. 옷과 행동 등 모든 것에서 고딕과 모던을 사랑했으며, 오랫동안 거울 합평회를 진행해오면서 나이보다 성숙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하긴 아밀은 언제나 나이보다 성숙했다. 거울에는 7호부터 참가한 필진이지만, 아밀이 편집장과 처음 만난 건 그보다 7년이나 더 전이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밀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고, 떠들썩한 가운데에서도 투명하고 깨질 것 같은 자기 세계를 놓지 않고 자랐고, 이제는 소녀와 여인 가운데에 서 있다. 예전 인터뷰에서 스무 살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던 아밀. 음악을 호흡하고 영화를 읊조리며 모든 독백이 치열한 아밀의 작품집 [병 속에 든 바다]는 실로 투명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날개
 거울의 어린 왕자. 독자 우수 단편에 {가면}이 우수작으로 뽑힌 후 필진이 되었으나 책의 향기와 이벤트 부분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던 작가. 장르문학 정보를 부지런히 실어나르고 여러 공간에서 장르문학과 거울 일을 알리는 데 힘써, 거울 내부에서는 날갯짓이 천 리를 덮는다는 가루다에 비교되기도 한다. 시간의 잔상에는 비교적 뒤늦게 합류하였고 작품 수가 적으나, 그것은 신작을 올려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에 따른 것뿐. 온화하고 착실해 보여 그저 고요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날개가 내면에 품은 것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만큼, 또는 완벽하게 준비가 될 때까지 말을 아끼는 작가 날개. 만만치 않은 내공과 노력이 담긴 [환상결핍증]에서 진정한 면모를 처음으로 내보인다. A면과 B면에 걸쳐.


임태운
 거울의 상큼이. 처음 만나는 순간 그의 엄청난 긍정성과 에너지에 감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임태운은 inkholic이라는 이름으로 거울의 독자 우수 단편에서 참 많이도 만났더랬다. 거울에서는 호평도 받고 혹평도 받았지만 정말로 꾸준해서 닉네임을 보면 반가울 정도였다. 거기다, 혼자서 크로스로드에 투고하여 실리고, 제2회 디지털 작가상도 수상하고, 이야기 발전소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혼자서도 문제없다면서 뛰어다니는 에너자이저를 연상시킨다. 임태운은 누구보다도 할 말이 많고, 그 말들을 부지런하게 쏟아내고, 그 말들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사람이다.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 즐겁게 낄낄대면서 이야기 속에 파묻혔다 나오고 싶은 사람이라면 [황제를 암살하는 101가지 방법]에 귀 기울여 보라.


 일찍이 필진이었던 아밀은 예전에 한 번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으나, 나머지 두 사람은 거울에 합류한 것도 최근이고, 속된 말로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마련했다, 혹독한 사전 인터뷰!

 자하는 이것을 [너의 작가 인생을 반추하라] 파일이라고 이름 붙였고, 날개는 “한 문항마다 한 시간은 생각해야 할 질문들이었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 사전 인터뷰는 물론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할 인터뷰 사전 자료로 활용할 용도였지만, 또한 이것에 대답을 하면서 신예 작가로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련한 것이기도 했다. 골치 아픈 질문들에 성심껏 답해주신 세 분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이 전문을 공개해보는 건 어떨지 고려해주시길. (뻔뻔)

 인터뷰 전날, 세 사람에게서 온 답이 모두 모였다. 작품과 평소에 알던 성격을 감안해볼 때, 매우 다른 답들이 올 거라는 예상은 했다. 세 사람의 개성이 무척 차이가 나니까. 그런데 예상보다도 더 작가를 환히 드러내는 답이 왔고, 예상보다 더 재미있는 대비를 보여 주었다.



 3월 초 이대 입구의 어느 예쁜 까페에서 진행자 진아, 질문자 자하, 그리고 제물(?) 이 아니라 인터뷰이인 세 사람이 모였다. 고딕의 여왕이라 소개한 아밀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화사한 차림을 하고 나왔다. 향기로운 차와 맛난 티푸드로 이름 난 곳이라 모두 분위기가 좋았다.




My Digital Child


얼마 전에 출간한 [유, 로봇]이 먼저 화제에 올랐다.

태운  책이 나오면 점원에게 묻지 않고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서점에 갔는데 매대에 바로 딱 올라 있는 걸 보고 (굉장히 기뻤어요.)

자하  여러분 책은 (출간된 후) 와키에서 검색하면 나오겠네요. 인터넷이니까.

아밀  그렇겠죠.

자하  전자책 구성도 각기 다른데, 아밀 님은 현실이 나오긴 나오는데, 다 환상적인 쪽이고, 그나마 환상적인 걸 골랐다고 하고…

아밀  으하하;;;

자하  날개 님은 A면 B면으로 구성했는데, 테이프를 모르는 사람은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거 아세요? A사이드, B사이드, 이거 이제 모르는 사람은 몰라요.

날개  아, 그래요?

모두 이구동성으로 모를 거라고 입을 모았다. 이 와중에…

진아  아, 그게 그런 의미였어요?;;;

이러는 사람이 꼭 하나 있다. 이래 봬도 테이프 세대.(…)

자하  CD는 두 장으로 나누더라도 테이프의 A, B와는 또 다르니까요.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날개 님은 책을 A, B로 나누어 A사이드는 순문학에 가깝고, B사이드는 환상문학에 가깝게 편집했어요. 근데 그것도 가까울 뿐이고 좀 애매해요. 장르 판타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태운 님이고, 날개 님은 그나마 환상성이 있는 걸 고른다고 골랐는데 보통 거울에 올라오는 글들과는 거리가 멀진 않지만 정통 판타지 쪽은 아니고…

태운  저는 그런 기준으로 뽑은 건 아니었거든요.

자하  네, SF 색이 있는 글들은 다른 데 묶였잖아요. ([앱솔루트 바디], [유, 로봇])


▲ 임태운님은 [앱솔루트 바디](박민규 외, 해토, 2008년 9월) 에 표제작인 앱솔루트 바디를, [유,로봇]에 무기여, 잘 가거라를 실었다. 공교롭게도 두 책 모두 SF 단편 모음집이다.


자하  표지는 누가 했나요?

태운  유서하님께서 그려주셨어요.

아밀  저는 표제는 [병 속에 든 바다]로 했고요. 네 명에게 물어봤는데 그중 세 명이 [병 속에 든 바다]라고 하더라고요.

자하  포괄적인 제목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걸 표제로 하면 책이 병이고 이 안이 다 바다라고 하면 되고…

아밀  너무 좋다!

진아  거울 책 광고 문구 고민되면 자하랑 의논을 해봐야…

상담료는 맛난 밥 한 끼면 됩니다. 마음껏 이용해 주세요!(농담)

진아  표지는 누가 했어요?

아밀  거울 분은 아니고요. 제가 예전에 하이텔에서 아이디 빌려 쓰던 분이에요.

날개  저는 제가 직접… 제가 찍은 사진을 응용해서 만들었어요.

진아  날개 님이 [첫 번째 비상]도 표지 디자인 하셨잖아요. 표지 멋졌어요.

날개  제가 전체 디자인을 했었고, 약간만 변형이 되어서… (책이 나왔어요.)

진아  우와, 거울 디자이너 필요한데…

날개  아하하;; (애매한 웃음;;)

와키(북토피아)는 책 표지를 기본으로 제작해준다. 다만 거울 필진 세 분이 다른 분께 청탁드리거나 직접 하신 것일 뿐. 이전에 거울에서 개인 단편선을 내신 분들도 많이 이렇게 하시긴 했다. 아무래도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표지를 구성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듯하다.

자하  표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맡기거나 직접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전자책의 장점인 것 같아요. 종이책 출판사의 경우에는 사실 표제도 사수하기 힘드니까…

진아  작가에게 좋은 점이기도 한데, 그만큼 전자책 출판사가 인력난에 시달린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해요. 하나하나 다 신경 쓸 수 없어서 작가가 하자는 대로 맡기기도 하는 거라…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개인 단편선에 대한 이야기는 부록에서 조금 더 하기로 하고, 작가들을 지탱하고 격려하고 때로 채찍질하는 주위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자하  세 사람이 또,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물론 다 알고서 던진 질문이긴 했어요. 영향력을 끼치는 모임요. 태운 님은 (거울 합평회 외에도) 다른 합평회가 있고, 날개 님은 과소모임이 있고, 아밀 님은 일른이 있고, 다 하나씩 꿰차고 계시더라고요.


이건 그대로 옮겨오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질문은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임 또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주고, 그것으로 인해 당신은 어떻게 변했나요? 그런 변화 중 의도적이지 않은 변화도 섞여 있나요? 있다면 그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였다.(아, 길다…) 여기에 대해 세 사람이 한 답은 이랬다.

아밀  공동창작 프로젝트 ILN(일러스트레이티드 인 런던)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ILN이 저에게 준 변화는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ILN을 통해 쓸 수 있게 된 작품이 이미 수확이겠고, 무엇보다도 서술적인 능력과 글을 구성하는 솜씨가 현저하게 많이 늘었어요. 소설의 플롯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고요. 진귀한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느낌. 다른 사람들의 작품세계와 창작방식을 무척 깊이 있게 체감했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생겼고 글을 빨리 많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분명 이 정도까지의 영향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지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날개  과에서 하고 있는 소설 소모임입니다. 모임을 하면서 계속 글을 쓰게 만들고 합평을 하면서 글도 계속 바뀌게 됩니다. 문장부터 이야기 방식까지요.

태운  제가 써놓은 글을 ‘투고’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을 하고 기한에 맞추어 작품을 내놓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정신적 압박이 굉장하네요. 글을 쓰려고 한다면 언젠가 부딪혀야 하는 장벽이겠지만 이게 과연 적응이 될까도 의아합니다.
(태운님은 한 과학소설 강좌의 수강생들끼리 모여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서로 글을 평해주는 합평 모임에 몸을 담고 있다.)


진아  그런 게 좀 필요한 것 같아요. 뭔가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가게 해주는 거. 힘이 되는 모임이 있는 게,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자하  얼마나 자주 모이나요?

태운  2주에 한 번이오.

아밀  우린 만날 일해요. (웃음) 업데이트는 한 달에 두 번, 15일에 한 번이오.

날개  방학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이고요, 개강하고 나면 이주일에 한 번이오.

아밀  저는 학교 공부하고 동아리 공부하고 겹치잖아요. 둘 다 인문학 쪽이니까.

자하  마감을 어겨본 적 있어요?

태운  지금 어기고 있습니다. ^^;;

아밀  많죠. ^^;;

진아  질문이 잘못됐습니다.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편이세요? 이렇게 물어야죠. 지키는 사람이 훨씬 적은데. (웃음)

태운  이미 초과 상태예요. 편집장님이 억지로 쓰려고 하지 말고, 편하게 쓰라고 하셨는데. 글이 막히니까. 그리고 이걸 어떻게든 진행을 시켜야겠는데, 억지로 진행을 시키다보니 잘 안 되고. 근데 요새 또, 대학 졸업하고 하면서, 육체적으로 많이 바쁘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이게 잘 안 되더라고요. 경제적인 것 때문에 룸메이트가 생겼어요. 집에서 글을 써야 하는데, 룸메이트가 여자친구랑 전화를 엄청 오래 하거든요.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여럿 겹치니까, 글 쓰는데 영향을 많이 미치더라고요. 일단 일단락해서 보내드렸어요. 뭐랄까, 가장 힘든 고비를 넘긴 거예요. 이 뒤 이야기부터는 술술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이 막히면 확 뚫고 나가야 하는데, 그 뚫는 게 너무 오래 걸려요.

자하  세 분 다 소모임 짱이거나 짱이셨잖아요. 소모임 등의 운영자란 ‘마감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 ‘마감을 독촉하는 입장’이 겹치잖아요. 그것 때문에 마감을 더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거나… 자기 일이랑 독촉할 때랑 입장이 완전히 갈린다거나, 어떤지 듣고 싶어서.

태운  저는 완전히 바뀌는 편인데… 예를 들어 대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주말에 중학교 애들 논술 강사를 했었는데… 논술 수업을 딱 들어가면, 애들이 (두 주먹을 쥐고 탁자를 두들기며) “아, 선생님, 10분만 일찍 끝내주세요!” 막 그래요. 그럼 정색을 하고 “너희들이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논술을 위해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수업을 해야 해! 글을 빨리 써!” 그런 다음에 글 조금 쓰면 “이 부분이 잘못됐잖아! 다시 써!” 이런 다음에 다음 날 월요일에 학교를 가면 (두 주먹을 쥐고 탁자를 두들기며) “교수님~ 10분만 일찍 끝내주세요!”


다들 폭소. 탁자를 두들기는 동작이 너무나 실감 났다.

태운  어느 날, 그러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아, 진짜 그렇더라고요. 내가 가르치는 애들은 이런 내 모습은 상상도 못 하겠지, 이러고. (웃음)





자하  날개 님은 어떠세요?

날개  제가 모임을 운영한다고 해서 뭔가 강압해서 한다거나 그러진 않아요.

자하  그럼 어떻게 하세요? 그래도 굴러가요?

날개  네. 헤헤…

자하  왜 굴러가지? 비결이 뭔가요?

날개  그냥 어떻게든 굴러가요.

아밀  리더가 저러면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껴. 그래서 어떻게든 뭐든 해. (웃음) 나도 좀 그렇게 해야겠다.

자하  날개 님은 “그래, 괜찮아, 무리하지 마. 다음 달 우리 소모임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도적인 시무룩)” 이러시지 않을까?

태운  엠티 가서 한 번 울어주고.

아밀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라거나…

이러한 왜곡에도 날개 님은 꿋꿋이(?) 웃음으로 일관했다. 어쩌면 제일 무서운 분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왜곡)




자하  날개 님은 전혀 아니라는 듯이 웃고 계시는군요.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날개  뭐, 진짜, 어떻게든 되는 것 같아요. 교지편집장을 한 번 했었는데, 원고 받기 참 힘들더라고요. 한 번은 엄청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별 효과가 없더라고요. 그 때부터 포기하고. 어떻게 해서든 기다리고 기다려서, 결국 한 명도 빠짐없이 원고를 다 걷어서 낸 적이 있었는데…

자하  마감은 어떻게 하셨어요?

날개  계속 마감을 늦추고, 늦추고 해서… 어떻게든 해서 교지를 낸 적이 있어요. 두 번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은 했어요.

아밀  저도 비평집 냈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회장이 됐을 때, 그 비평집에 원고를 내기로 한 사람들이 다 제 선배들이었어요.

자하  태운 님은, 본인이 독촉당하는 입장이 되면 어떻게 처신하세요?

태운  전 두 개의 자아가 있습니다. 스위치 켜듯이 바뀝니다. (당당)

자하  날개 님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날개  제가 하는 소모임은 거의 지켜요. 거울에 글이 늦어질 경우에는, 어, 저, 죄송해요, 그러면 진아 님은… (유출되면 안 되는 일급비밀이기에 삭제합니다. *^^*)

아밀  아밀: 저는 지키는 편인 것 같아요. 딱히 제가 독촉을 받거나 해서 기다려달라고 졸라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예전에 논술 첨삭 아르바이트를 엄청 많이 받아서 했을 때를 제외하면요.

“마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소제가 붙어야 할 부분 같다.(…) 이 자세에서도 세 사람의 개성이 엄청나게 다른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진아  사전질문지를 보면 정말로 세 분의 특색이 드러나더라고요. 각자 자기 캐릭터가 너무 잘 드러났어요. 특히 태운 님요. 박상준 님께서 이야기해주신 ‘타고난 낙천성을 가진 작가’라는 점에 저도 깊이 공감을 했고요. 아까도 대답할 때 보여주신 면들, 앞으로 인생에 대한 이야기나… 너무 뭔가 분명하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요. 날개 님은 너무 단답으로 대답하시고 너무 자기 자신을 감추시는 느낌이 좀 있었어요. ‘아직 모르겠다.’, ‘없다.’ 라고 대답할 때도 그렇게 ‘없다’고 말하게 된 이유가 있거든요. 분명히 거기에 그런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는데 앞에 있는 건 다 치우고 마지막 서술 하나만 넣는 거죠. 아직 스스로를 많이 감추시고 조심스러우신 느낌.

자하  날개 님은 인터뷰를 거부하시기도 하셨죠.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웃음)

진아  이런 유형이 오히려 감춰진 욕망이 어마어마할 수도… (웃음)

자하  자기가 보기에 웬만큼 됐을 때 하고 싶은 그런 욕심 같은 거…

날개  그런 게 좀… 있죠. (웃음)

진아  아밀은 제가 세 분 중에서 제일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필진인데, 제일 오래 알아와서, 평소 이야기하던 면들을 많이 봤고.

태운  작품도 주욱 봐오셨겠네요.

진아  네.

아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봐왔으니. (웃음)

진아  아밀 대답이 제일 프로페셔널하다면 프로페셔널했는데, 인터뷰에 응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이랄까, 그런 게 제일 강했어요.

자하  어떤 느낌이었느냐면, 내가 분명히 이건 사전조사용이니까 문장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진솔하고 솔직하게 써주세요, 라고 했어요.

아밀  아… (웃음)

자하  날개 님은 감췄고, 임태운 님은 다 드러냈고, 아밀 님은 포장했어요. (웃음) 이걸 그대로 실어도 괜찮을 정도로.



아밀  미리 그렇게 준비를 했어요.

자하  이런 대비가 정말 재밌었어요.

진아  여러분들이 허락하신다면 세 분 모두 서로 돌려보면 어떨까 싶을 만큼 재밌었어요.

아밀  뭐야, 나 궁금해, 이분들 거.

다들 궁금하시죠? (초롱초롱)

자하  귀여웠어요. (웃음) 심지어 이런 건 너무 부끄러운데, 까지 쓰시고…

태운  아, 정말 부끄러웠어요. 왜냐하면 그걸 내 속으로만 생각했지, 그 분께 그런 의사를 표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주고 있는 작가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요.

자하  아밀 님은 추선비 님을 쓰셨고, 날개 님은 “없습니다.” (웃음)

덧붙이자면 태운 님은 같은 합평회 회원인 윤이형 님을 지목했다. (팡파레~)

자하  완전 청문회예요, 날개 님 건. 없습니다, 모릅니다. (웃음)

날개  질문 하나하나가 다 한 시간씩은 고민을 해야 할 질문들이더라고요.

자하  그래서 제가 일주일이나 드렸어요!

날개  저는 근데, 그런 식의 질문들이 있을 줄 모르고, 토요일 새벽에 열어봤거든요. 오전 중에 보내드리겠다고 말을 했는데, 열어보니까 질문들이 다 그런 거예요.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진아  읽어온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 이런 질문일 줄 아셨을 텐데.

날개  네. (웃음)

자하  아, 제일 재밌었던 대비가 신예작가로서 어려운 점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신예라서 어렵다(아밀), 신예라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임태운), 아직 작가가 아니다(날개)


이것 또한 원문을 공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정확한 질문은 “작가라는 명함을 내밈에 있어 가장 두려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또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이었다.

아밀  명함을 내밀기에는 아직 이렇다 할 밑천이 부족하다는 점? 신예작가,라는 바로 그 점이 두려움을 주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실력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습니다.

날개  아직은 내밀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태운  가장 두려운 것은 그야 ‘내가 과연 작가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확답을 얻지 못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자신 있는 부분이라면 이제 겨우 스타트라인을 벗어난 작가라는 점이랄까요. 젊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입니다.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세상을 똑바로 마주 보는 듯한 아밀 님의 패기, 겸손하지만 속에 품은 것이 웅대함을 알 수 있는 날개 님의 끈기, 출발선에서 설레며 즐거이 뛸 준비를 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태운 님의 신선함이 잘 보이는 답이 아닐 수 없다.


자하  보통 내가 가장 힘들게 쓴 글, 이런 이야기하는데, 평균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한 글을 완성하는데…

태운  분량을 정해주시면…

진아  분량에 따라 시간 차이가 심하세요?

태운  그렇게 심하진 않고요. 분량이 긴 글을 많이 써보지 않았는데…

아밀  단편 치고는 짧지 않아요.

태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리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처음 구상을 잡아서 작업에 들어가서 완성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한 달에서 두 달. 그런데 보통 구상만 여섯 달, 일곱 달 이렇게 하다가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자하  이번 전자책 [황제를 암살하는…]에서 제일 긴 게 A4 16장이더라고요.

태운  항상 열 장이 넘어요. 열 장을 딱 넘기는 순간,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어요. 보통 단편 소설이 열 장 정도면 적정선이잖아요. 원고지 70~80매 정도요. 저는 항상 그걸 좀 초과하더라고요. 그래서 열 장이 되면 뒷덜미를 붙잡히는 기분? 그만 나가! 뭐, 이런…

자하  날개 님은 분량이 일정하더라고요.

날개  저는 그 열 페이지 이내란 강박관념을 가지고 항상 써왔어요.

자하  역시 모범생…

태운  준비 본능…^^

날개  쓰다가 80매면 다 썼다, 라고…

아밀  전 들쭉날쭉해요. 구상에서 집필까지 보통 평균 4일 정도요.

날개  저도 그 정도요.

자하  빠르네, 이 사람들.

태운  집중을 하시나 봐요.

아밀  네, 하루 종일해요. 밥 먹는 것만 제외하면 아무것도 안 해요.

날개  저도 밤을 새요.

태운  전 그런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채널이란 소설을 앉아서 한 호흡에 썼거든요. 열네 시간 걸렸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안 되는 건지… 안 되더라고요. 그게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자하  장편을 써본 적 있어요?

태운  한 편 썼었죠. 출판사가 망해서 (출간은) 안 되었지만… 선인세 개념으로 상금은 받았어요. 책이 나온다고 했고, 책이 나온다고 해서 추가로 받는 돈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많이 작가 인생에 전환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게 좀, 안 됐어요. 지금은 거기 매여있다기 보다는 빨리 다른 글을 쓰려고요. 그게 데뷔작이 될 줄 알았었죠.

자하  날개 님은 올해 장편을 한 편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전에는 쓰신 적이 있어요?

날개  고1때 한 편 써본 게 마지막이에요.

자하  어떤 글이었어요?

날개  평범한 판타지였어요.

진아  소드앤소서러 류의 중세 풍에 엘프가 나오고…

날개  네, 좀비도 나오고. 유일한 장편 완결작이에요.

아밀  저는 팬픽 말고는 완결을 해본 적이 없어요.

태운  저도요. 팬픽은 완결해본 적이 있어요. 완결하고 나니 원고지 500~600매 정도 나오더라고요. 그걸 쓸 때 굉장히 행복했어요. 연재라는 걸 해봤는데, 처음에 1, 2편을 올렸어요. 8편, 9편에서 세계가 중첩이 되면서 캐릭터들이 서로 싸우고 난리가 났는데, 그 글을 올리는 팬사이트에서 너무 좋아해주시는 거예요. 다음 편이 궁금하다 그러고. 되게 열심히 쓰게 되더라고요. 마지막 편을 두 편으로 나눠서 올렸는데, 게시판 용량 초과로, 그래서 마지막 편이 올라갑니다, 라고 했더니, 진짜 리플이 이만큼 달리는 거예요. 그 리플을 저장해서 가지고 있어요.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저는 거기 등장한 캐릭터를 가져와서 쓴 거라서, 이미 원작에 구축되어 있는 캐릭터로 새로운 이야기만 끌어내서 만든 거라서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작업이. 그래서 되게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자하  단 한 명이라도 좋은 독자가 있다면, 그게 작가가 계속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사전질문지에 했던 질문은 바로 그런 질문이었어요.

정확한 질문은 “가장 무서워하는 동시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독자가 있나요? 있다면 어떤 사람인가요? 왜 그 사람이 무섭고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가요?” 였다. 아밀 님과 날개 님은 없다고 대답했고, 태운 님은 여자친구라고 대답했다.

태운  아, 그런 질문이었나요. 그럼 제가 질문지에 대답한 거랑 다른데, 거기에는 제 여자친구라고 했거든요. 항상 글을 쓰면 제일 먼저 보여줘요. 여자친구는 첫 번째 독자예요. 그런데 여자친구 같은 경우에는 긴 평은 잘 안 해줘요. 괜찮네, 애썼네, 이런 식이라…

자하  글을 쓰거나 그런 분은 아닌가 보죠?

태운  같은 관데, 읽는 건 좋아하는데 쓰지는 않아요. 저에게 항상 좋은 자극을 주는 독자는 제 친구, 제가 지금 대학교 때 소설 합평회에 들어가도록 꼬신 친군데, 여자애예요. 지금 임용고시 준비하는데, 작품을 잘 봐줘요. 그리고 그 친구는 제 굉장히 초기작부터 죽 봐왔어요. 그래서 내가 이 작품과는 다른 어떤 시도를 했으며 이전의 장점이 묻어 있고, 혹은 네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안 드러났다거나, 그런 걸 다 캐치해줘요. 그리고 아주 성실하게 읽어줘요. 보통은 내가 소설 한 편 썼어, 봐줘, 그러면 알았어, 읽어볼게, 대답은 해도 답이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리는데 그 친구는 봐줘, 그러면 그 자리에서 봐줘요. 혹은 알았어, 이거 가지고 갈게, 그리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봐. 그리고 제 소설 읽는 걸 좋아해주고, 그 친구에게는 영화 준비를 하는 동생이 있는데 그 동생이 굉장히 냉철하고 날카로워요. 근데 내 소설을 항상 평해줘요. 이게 웃긴 관계예요. 그 친구의 동생은 제게 항상 친밀하게 느껴져요. 항상 평이 들어오고, 저는 아, 그렇군! (하고 수긍하는데)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저 자신을 (그 친구의 동생이) 분석해요. 이 텍스트를 보고, 텍스트만 보고 이 작가는 왠지 내면에 이런 게 있고, 이런 생각을 가진 것 같고, 그런 게 놀랍도록 일치하는 거야. 그 친구와 그 동생은 저한테 개인적으로도 친해요. 그래서 오히려 개인적으로 친하기 때문에 쓴 소리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대놓고 하는 쓴 소리. 내가 해도 얘는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아니까. 야, 너 이 캐릭터 이거 아니야, 이런 거. 그리고 그 친구는 여자잖아요. 여자 심리는 이때 이렇지 않아, 라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제 취약점이라서.

진아  여자친구이긴 하네요. (웃음)

자하  계속 그렇게 잘 알아주면, 그땐 무섭게 되거든요.

아밀  그 정도는 진짜 없어요.

진아  그건 태운 님의 축복이에요. 그런 독자 흔치 않아요.

날개  저도 그런 식의 독자는 없어요. 친구랑 서로 보여주는 관계는 있는데…

무릎팍도사 강수진 편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은 남편이, 자기에게 날개가 있다면 그중 한쪽 날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작가에게 그런 독자는 한쪽 날개 정도가 아니라 날개 한 쌍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글을 바로 읽어주고, 기다리고, 글 속에서 작가를 꿰뚫어보며, 작가를 알아주는 독자. 어떻게 보면 좋은 작가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이러한 독자일 것이다.


자하  그러면 자기가 글을 쓸 때 갑자기 기분이 좋아서 속도가 난다거나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런 원동력이 되는 일 같은 게 뭐가 있을까요.

날개  구상이 갑자기 딱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렇지 않을까요.

태운  아, 난 너무 세속적이야. 전 높은 상금이 걸렸을 때.

(폭소)

태운  좋았어! 하면서 딱, 한글 파일을 열고, 오, 영감이 막 떠올라, 그럴 때마다 지치고 힘들면, 상금 얼마라고, 하면서. (웃음) 상금 얼마면 나 PMP를 살 수 있어. 세속적인 거야.

날개  그런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야겠네요. (웃음)

태운  밝은 미래, 상금은 내 거야! 그렇게 쓰기 때문에… 근데 정말로 그렇게 목적하고 썼는데 떨어지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데 딱 됐을 경우에 그 상금을 내가 딱 얻었을 때 그 쾌감은, 진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자하  날개 님은 심지어 독후감 서평 같은 걸로 게임기 같은 것도 받으셨던데…



날개  저는 그런 서평 쓸 때 그런 모드가 돼요. 어, 이건 내가 타야지.

(다들 폭소, 오 날개 님에게도 저런 면이!)

자하  긴 서평을 올리신 걸 봤어요. 그런데 끝에, 무슨 리뷰 대회가 있어 가지고, 상금을 노리고 썼습니다, 라는 해설이 있더라고요.

태운  그게 정말 원동력이 돼요. 왜 대회의 상금이 높겠어. 근데 돈을 위해 썼어도, 그게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그런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너는 뭐 돈을 위해 글을 쓰냐 그러는데… 옛날에 시를 쓸 땐 더 심했어요. 시는 시 한 편에 상금이 50만원에서 비싸면 80돼요. 이게 장난 아니거든. 왜냐면 저는 시는 하루에 쓸 수 있는데.

자하  30편을 투척해요?

태운  인해전술? 물량공세? 그런 걸 많이 해요. 친구들이 너는 시를 쓴다는 애가, 시에 몰두해야지, 돈을 위해 시를 쓰면 되느냐, 그러는데… 그게 원동력은 되는데. 그게 뭐랄까, 작품에 영향을 안 준다는 거죠. 작품을 쓸 때는 더 좋은 작품을 내야지, 그런 마음만 들고.

아밀  동기가 되는 거죠.

자하  날개 님은 그럼 그런 마음이 안 들도록 컨트롤 한다는 생각은 있으세요? 글을 쓸 때는 글만 바라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데는 신경을 의식적으로 차단한다거나.

날개  그렇지는 않아요. 저도 여러가지 공모전 생각하고 쓰고 그러는데. 그게 원동력이 되거나 불타오르지는 않을 뿐이지, 어떤 공모전이 열리면, 거기 한 번 써봐야지, 그런 생각은… (해요.)

자하  하긴 불타오른다는 건 이 사람 캐릭터랑 안 맞아요. (웃음)

이 말은 정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개 님은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뿐이지, 내면에는 불꽃이 도사린 사람 같다고.

날개  글을 쓰는 계기는 되는데… 저도 항상 공모전 보고 그걸 계기로 삼고 글을 쓰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진 않아요. 항상 어디 낼 거고, 이건 어디 낼 거고, 그렇게 계획을 잡고 쓰거든요.

자하  표본조사도 하세요? 거기서 원하는 글이나 전에 당선된 글을 찾아본다거나.

날개  네, 아, 여기는 이런 글을 뽑아왔구나 하고, 읽어보고, 생각하고 쓰죠.

자하  실제로 많이 넣어봤나요?

날개  그렇게 많이는 안 넣어봤어요.

자하  본심까지 올라가 본 적은 있나요? 예심 심사평에 작품이 거론된다거나.

날개  교내 문학상에 내서, 가작 탄 정도…

자하  아밀 님은 민음사에서 책 낸 적 있죠.

아밀  네.



▲ 아밀 님은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로 제10회 대산청소년문학상에 당선되었으며, 표제작으로 선정되어 같은 제목의 작품집(민음사, 2002년 11월)에 수록되기도 했다.

자하  평을 받은 게 기억에 남는다거나?

아밀  일단 [대산청소년문학상]같은 경우에는 본심에 오른 애들이 다 같이 캠프를 가게 돼요. 그 때 심사위원들이랑 기성 문인들이랑 같이 가서 실제로 같이 프로 같은 것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 때 이야기 같은 것도 듣고 그랬거든요. 기억은 다 나죠.

자하  뭐라고 그랬어요?

아밀  예를 들어 그 글 같은 경우에는 만화를 그리는 애들끼리 서로 동아리를 만들어가지고 서로 꿈을 향해 달려가다가 낙오되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낙오되는 과정을 그리다 보니까, 스토리를 죽 나열해 놓은 것 같은 게 되어버렸어요. 묘사나, 사건을 보여준다거나 그런 게 거의 없어서, 그런 점을 지적해주시더라고요. 도움이 되긴 했어요.

자하  날개 님은 어떤 글이 되었고, 어떤 평을 받으셨어요?

날개  {가면}이요.

자하  거울에 처음 올린 글도 {가면}이죠.

날개  평범한 평이었는데, 트라우마를 다룬 글이었다, 뭐, 그런.

자하  평을 해준 게 아니라 요약을 해줬군요. (웃음)

아밀  그런 경우가 가끔 있죠. (웃음)

자하  우리가 해준 평은 기억나요, 혹시?

날개 님의 {가면}은 거울 단편 게시판에 올라와 31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된 바 있다.

날개  대충… (말을 흐린다.)

진아  기억하지 마세요. ^^;;

태운  전 거의 외우고 있는데…

(다들 놀람)

태운  생각날 때마다 봐요. 다시 보고, 내가 독자우수단편에 떨어졌을 때나 붙었을 때나.

아밀  컴퓨터를 보다가 예전에 하이텔에서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할 때 진아 님이 저한테 메시지로, 네 글 참 좋았다, 글본능이 좀 있다, 고 해준 걸 찾았어요. 그걸 다 긁어서 제가 저장을 해뒀더라고요.

진아  우와… (얼굴이 좀 빨개짐) 저도 기억나요. ‘월아’였을 거예요. 아밀 님 글 처음 본 거.

아밀  진짜 한 줄짜리 말, 그런 것도 다 저장을 해뒀더라고.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에서 소모임으로 [데카메론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다. 매달 소재를 정해 같은 소재로 글을 올리는 모임이었다.

태운  저도 진아 님이랑 나는 대화 저장한 거 있어요. 저에게 거울 필진이 되겠느냐고 물으셨던 거.

진아  … 메신저는 늘 조심해야 해요. 어디선가 내 말을 다 저장하고 있어. (웃음)

태운  독자단편에 글을 참 많이 올렸었는데,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걸 올렸을 때, 그 글이 제 개인적으로도 느낌이 좋았거든요. 이 글은 왠지 뽑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안 뽑히면 왠지, 평소엔 안 뽑혀도 상심하지 않았는데, 이 글은 왠지 안 뽑히면 상심을 할 것 같았어요. 거울 업데이트 날이 되었어요. 집에 가서 거울에 접속을 하면 메인 화면에 뜨잖아요. 근데 {무기여 잘 있거라}가 뜨는 거야! 그래서, 예이~ (두 주먹 불끈!) 그리고! 그 때 평도 좋았어요.

태운 님이 말만 하면 웃음이 터진다.

자하  날개 님은 어떤 계기로 오시게 된 거예요?

날개  그냥… 저는… 워터가이드에서 있었을 때 거울 홍보 글이 올라왔고, 그래서 즐겨찾기를 했고, 항상 눈팅을 했어요. 항상 눈팅 중이었으니까… 갑자기 간 건 아니었는데… 생겼을 때부터 보고는 있었어요.

자하  독자 단편 게시판에는 그냥 글을 발표한다는 생각으로 올리셨던 거예요?

날개  그 일에 대한 에피소드는 저번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아는 과선배를 우연히 거울에서 만나서 너무 신기했어요. 그 선배랑은 거울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그 선배가 독자단편란에 글을 올려봐라, 하기에 네, 하고 그 날 바로 올렸어요. ^^;;
그 선배가 거울 자유게시판에 답사를 갔다왔다고 썼는데, 위치가 제가 갔다온 곳과 같은 곳이에요. 그래서 과에서 만났을 때 혹시 거울에 글 올리시느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자하  아밀 님은 초기 멤버라서 평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웃음)

아밀  네. (웃음) 부끄러운 글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합평회로 웬만한 글은 다 씹혔(!)을 것 같기도 하다. (…)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 글에 대한 평을 한 줄이라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작가에게는 양분이 필요하다. 이제껏 해온 것이 의미가 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손길 하나.

자하  전자책에 수록될 글들을 인터뷰를 위해 보내달라고 말씀드렸고, 그래서 받아서 봤는데, 태운 님과 아밀 님 글은 그래도 대체로 읽어본 글들이었는데, 날개 님 글은 대부분 못 본 글인데다 글도 많아서 놀랐어요.

진아  저도요. 이렇게 써 놓은 글이 많았는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들어온 이래 그렇게 글을 안 줬단 말인가! (웃음)

날개  아, 다 과거에 쓴 글이라서요. 저는 항상 글은 신작을 발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하  완전 모범생이시라니까요.

아밀  언제나 신작을 올리신다는 건, 스스로에게 어떤 원칙을 부여하시는 것 같아요. 아, 그런데 제가 왜 분석하고 있죠? (웃음)

자하  날개 님이 말씀이 없으시니까… 그런데 말은 없지만 속에 담아둔 게 없지는 않다는 게 보이니까. 자꾸 막 해설을 하게 되는…

게다가 원래 진행자를 했던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석하고 진행하고 그러는 버릇이 들어 있다. 3년 넘게 합평회 진행자였고, 지금도 ILN의 프로듀서(?)인 아밀에게도 진행병이…….

언제나 모든 인터뷰의 하이라이트인 질문을 했다.



자하  신작 계획은?

날개  장편은 이제 설정 들어가고요. 다른 글 하나 쓰다가 이제 막 단편들 쓰려고 하고 있어요.

진아  저 이번에 날개 님의 (시간의 잔상 외 다른 거울 기획으로 준비 중인) 원고를 받으며 날개 님이 보내신 메일 문구에서 정말 배신감을 느낀 게, “글은 빨리 쓰니까요.” 였는데, 세상에, 글을 빨리 쓰시면서 시간의 잔상에 합류하신 이래 이토록 글을 안 주실 수가 있었나, 저는 날개 님은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쓰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는데… (대사가 안 끝난다.;;;)

아밀  날개 님 글은 보면 오래 걸릴 것 같았는데 의외였어요.

날개  저는 제 문제점으로 너무 빨리 쓰는 걸 고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이제 거울 기획 글은 다 썼으니 다른 걸 쓰려고요. 하나가 안 끝나면 다른 걸 못 써서요.

* 거울 기획은 곧 발표합니다. 기대해주세요. *^^*

아밀  뭔가 쓰긴 써야죠. 쓸 글감이 있다기 보다는 써야 할 상황들이 생겨서… 쓸 거 같아요.

자하  일른은 어느 정도 남았나요?

아밀  (막 웃음) 모르겠고. 1/3 정도 됐나?

자하  헉, 아직 머네요.

아밀  분량이 생각보다 길어진 것도 있고요. 작업이 좀 오래 걸려요.

자하  공동소설을 쓰게 되면서 자기 소설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나요?

아밀  굉장히 많이 해요. 일른 하면서 2년 동안 하면서 일른을 통해서 글이 많이 늘었다는 걸 스스로가 느껴요.

자하  장편을 쓰신다면 거울 먼여정에 올려보실 생각은 있나요?

날개  일단 아무데도 안 올리고 쓸 생각이에요.

자하  저 봐, 준비본능. 자기가 마음에 들 만한 질이 될 때에야 내보내는 거야.

태운  지금 {마법사가 곤란하다}를 장편으로 쓰고 있고. 이걸 완결하게 되면 당분간 단편을 많이 쓰고 싶어요. 단편을 구상한 게, 일곱 편에서 여덟 편이 되어 가요. 그걸 배출을 못하고 쌓여가고 있어요. 지금 단편을 하나 쓰고 있는데 다른 단편 아이디어가 생각나. 그럼 이걸 빨리 마무리를 짓고, 다음 걸로 넘어가야 하는데, 쓰는 속도보다 발상이 떠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니까, 갭이 커요. 내가 발상만 해주면 그걸 그대로 소설로 나와주는 기계가 있으면 얼마나 편하겠느냐마는… 그래서… 당분간은 단편에 매진을 할 것 같고, 거울에도 왕성하게 글을 올려보고 싶은데… 일단 써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법적인 문제라서… (웃음) 장편 신작은 아직 (지금 쓰는 것 외엔) 계획이 없네요.

자하  이번 책은 전자책으로 이름을 달고 나왔는데 다음 번 책은 어떤 책이 됐으면 좋겠다거나… 구성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거나…

아밀  개인책을 낸다고 하면 연작을 해보고 싶어요. 연작으로 책 한 권.

날개  저는 아무래도 장편을 한 번…

자하  연재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어요?

날개  어느 정도 분량이 쌓이거나 완결을 한 후 연재를 하고 싶어요, 연재를 해도. 실시간으로 연재를 하면 작품 질이 자꾸 낮아질 것 같아서.

아밀  이해는 해요. 연재를 하다보면 걷잡을 수가 없어요. 앞에 걸 고치지 않는 한.

태운  저는 종이책으로 제 단편집이 제 이름만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지금 책이 두 권 나왔는데, 다른 작가들이랑 같이 작업한 거잖아요. ([앱솔루트 바디]와 [유, 로봇])
이 두 권이 나온 것만으로도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여기서 좀 더… 단기간에 그렇게 되길 바란다기 보다는… 언젠가는… 종이책으로 나온 내 단편집, 나만의. 일곱 편에서 여덟 편 정도 들어간.

자하  제가 각 작가별 카피 뽑아드릴까요? (웃음)

진아  해줘.

자하  제가 자폭이 특기예요. (한숨)

카피는 아니지만 프로필을 썼으니 어찌 탕감 안 되오리까? (비굴)


작가는 직업이 아니라 상태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의 나이는 매우 비슷했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디딜 나이. 작품집을 출간하고, 계속 글을 쓸 생각이지만 요새 경제가 경제이니만큼, 또 다른 의미로도 전업 작가에 대한 전망은 어두웠다.
어찌 보면 전망이 어두운 일을 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고 심하게 반대하는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기도 하다. 가족에 대한 질문을 했다.



자하  작가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한 적이 있나요?

아밀  네.

태운  저는 삼형제의 막내예요. 그래서 큰 형은 전기공학이고, 둘째 형은 화학공학이에요. 둘 다 취업을 했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취업이나 결혼에 대한 부담이 전무해요.

자하  뜨기만 하면 일등 신랑감이군요.

태운  집에서 방목을 했어요. 그래서 글을 쓰겠다고 하는 것도 뭐…

진아  튼튼하게만 자라라, 인가요. ^^;;;

태운  저는 작가로서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그런 환경 면에서는 조금 뭐랄까, 축복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날개  저도 동생이 있어서, 제가 장남이긴 한데, 저희 부모님도 방목형이셔서… 모든 걸 다 저한테 맡겨 주셨거든요. 아무런 간섭이 없기 때문에 제가 어떠한 인생을 살아도… (별 말씀 안하실 거예요.)

자하  (아밀에게) 외동이었지?

아밀  그렇습니다. 전 외동딸입니다. (웃음)

자하  아들도 아니고 딸!

아밀  아들이면 나중에 남편이 되어야 하고 가장이 되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딸이다 보니까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자하  그럼 부모님이 밀어주신다거나, 아니면 반대까지는 안하셔도 내심 다른 길을 가길 바란다거나 하는 건 없나요?

아밀  부모님이 반대는 안 하시는데요. 그 일은 마흔 살, 쉬흔 살이 되어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오히려 어떤 삶의 경험을 충분히 쌓았을 때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고 염려하기는 하시지요. 그런데 어차피 지금 경기가 안 좋아서 취업도 힘드니… (웃음)

태운  졸업하신 거죠, 이번에?

아밀  네, 이번 2월에요.

취업 이야기가 나오자 숙연해졌다.

태운  소주 한 잔이 필요할 것 같은… (웃음)

진아  아밀 님과 태운 님은 졸업을 하셨고, 날개 님은 졸업반이신데, 당장 취업을 앞둔 지금, 작가라는 게 불안한 직업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미래상 같은 게 있다면요?

자하  사전질문지에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받긴 했거든요.

태운  그거랑 다르면 어떡하지?

아밀  해보세요.

태운  가수가 될 거예요, 막 이러고.

다들 웃음



태운  어떤 분의 인터뷰에서 읽었던 것 같아요. 작가가 했던 말이 있는데…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라 상태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말이지만 저는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면 소설을 안 쓰고 있다면 무직이다, 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소설가라 해도 소설을 안 쓰고 있으면 무직인 거죠.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서, 소설가를 직업, 직장으로, 어릴 때는 생각을 했죠. 작가가 될 거야. 근데 그것의 단점이 작가의 길 외에 다른 길에 대해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걸 대학교 후반, 3~4학년에 이르면서 뼈저리게 실감을 한 거죠. 지금은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거든요. 취재기자, 편집기자 아카데미를 다니는데 거기서 좋은 성적을 보이면 선생님들이 취직을 알선해줄 수도 있겠고, 굉장히 재밌어요. 뭔가 내가 글을 쓰는 것 말고 다른 것을 내가 배우고 있다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말고, 제가 배우고 싶어서 무언가를 배우는 걸 처음 느끼는 것 같아요. 살면서. 소설을 쓰는 걸 가르쳐주는 곳은 별로 없었는데, 그런 어떤… 그 쪽 직장을 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직접 취재하고 현장을 파헤치는 그런 기자가 아니라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편집하고, 꾸미고, 그런 일… 기사를, 취재기자가 써오면 편집기자가 제목을 붙여요. 그런 제목… 예를 들면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 모두가 뻔한 기사를 내놨는데 한 기사가 그런 기사를 내놨어요. <그가 떠나는 마지막 밤, 흰 눈이 내렸다.>

자하  우와~

태운  진짜로 흰 눈이 내렸거든요, 기적처럼. 눈이 내리는 날이 아니었는데. 그런 제목을 뽑아주는 게 편집기자의 일인데, 그걸 배우는데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내가 제목을 뽑는 게. 마치 옛날에 시를 썼을 때, 시적 문구를 하나 뽑아내는 것처럼. 그렇게 일을 하다가 사전질문지에 썼던 것처럼 29살이 되면 여행을 떠날 거예요. 다 때려치우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을 하고 있었더래도 다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고, 돌아와서 다른 삶을 시작해야겠죠. 왜 29살이냐고 친구들이 묻는데, 20대 때 여행을 떠나고 싶거든요. 다들 대학 중반에 혹은 대학을 졸업하면 여행을 떠나는데 저는 경제적 상황이 그렇게 안 됐어요. 그걸 가지고 여행을 떠나면 내가 망해버릴지도 모르는 게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여행은 욕심이 있고… 40대 50대가 되면 잠적해서 글을 쓰고 싶어요. 외부로부터 절 완전히 격리시키고…

아밀  (더 이상 못 참고) 태운 님, 너무 귀여워요!

태운  (조금 당황해서) 왜, 왜요? 난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진아  진지하지 않다는 게 아니에요. (역시 귀엽다에 엄청 동감하며)

아밀  그냥 말 그대로 좋다는 뜻이에요.

자하  여자의 귀엽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어요. (웃음)


글자만으로 태운 님의 귀여움이 전달되는가? 안타깝다.


태운  (이야기를 이어서) 4, 50대가 되면 외부와 차단해서 글을 쓰고 싶어요. 주변분이 왜 지금 그러면 안 되겠느냐고 저한테 이야기를 하셨어요. 다 끊고 글을 한 번 써봐라. 그런데 제가 이제 막 사회에 나갈 초년생인데, 외부를 끊고 글을 쓰기에는 내 청춘도 아깝고.

아밀  끊을 게 없죠. (웃음)

태운  그런 두려움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장기 계획은 그렇게 보고 있어요. 어릴 때는 나이가 들면 글을 못 쓰게 되지 않을까, 글의 생명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좀 여유를 갖게 되었어요.

자하  날개 님은 어떠세요? 날개 님은 사전질문지에서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와 모호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올해 안에 장편을 쓴다와 졸업을 대비해 장래준비를 한다, 고 하셨는데 뭘 준비하신다는 거예요? ^^;

날개  올해 계획은 장편 한 편을 쓰는 걸 목표로 잡았고요. 장래계획은… 글을 쓴다고 하면 누구나 전업작가를 꿈꾸는데, 4학년이 되어서 과연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짜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일부러 한 6개월의 유예시간을 저에게 줬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생각만 할 시간을. 그래도 결론이 안나요. 6개월이 짧더라고요. (웃음)

자하 : 너무 블로깅을 많이 하신 거 아니에요? 정보 블로그로 완전히 자리매김 하셨어요.

프로필에서 밝혔다시피 날개 님은 현재 장르문학의 정보전도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날개  그것도 목표 중 하나였어요. 파워 블로거가 되어 보자. 그것도 하나였는데…

자하  그건 성공하신 것 같은데요.

진아  거울 [유, 로봇] 이벤트도 250명이나 응모한 건 다 날개 님의 날개짓 덕분인 것 같아요.

자하  책관련 이벤트에서 이 사람 이름이 빠진 걸 못 본 거 같다, 는 말도 봤어요. (웃음)

날개  취업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이번 1년 취업준비를 해서, 취업을 해서 글을 쓸 수 있게… 그래서 지금, 모호하게 적었어요.

잠시 날개 님에게 각자 경험에 따른 조언이 쏟아졌다. 어느 쪽은 어떠냐든가, 대학원은 도피로 가서는 안 될 곳이라든가…

자하  아밀 님은 번역 쪽을 생각한다고…

아밀  네. 저는 워낙 안 해본 일이 없어서… 여기저기 손을 다 대 가지고. 공연기획 같은 것도 많이 해보고, 그림도 안 그린 건 아니고, 노래도 안 한 것도 아니고, 피아노도 쳤었고, 비평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책을 안 내본 것도 아니고, 많이 했는데. 저는 항상 이렇게 생각을 해요. 아까 (태운 님께서) 작가는 상태라고 하셨는데, 저도 전업작가라는 직업으로 작가를 갖는다는 것에 대한 동경은 있지만, 글을 쓴다는 건, 글 쓴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직업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저는 사람이 항상 노동을 하든가 공부를 많이 하든가 뭔가를 자기가 수렴하는 게 있어야 자기가 발전을 할 수 있잖아요. 그냥 쓰기만 해서 좋은 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다른 직업을 반드시 갖고 싶고. 그 중 번역이 저한테 가장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첫 발을 내딛는 때이기 때문에 세 사람은 고민하고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글을 쓰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뚜렷한 주관을 담아 인생을 설계하는 모습은 어찌나 굳건하고 똑부러지는지 인생을 아주 약간 더 산 선배로서 흐뭇할 뿐이었다.


 약간 잡담을 더 나눈 후 인터뷰는 끝났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여서 시간을 잡기도 힘들었고, 오랜 시간 함께하기도 힘들었다. 까페를 나서서 지하철 역으로 모두 함께 걸어가는데, 나란히 걸어가는 세 사람을 보니 너무나 뿌듯하고 흐뭇했다.

 여기 각자 다른 개성만큼이나 뚜렷한 세 사람의 첫 발짝을 모두 주목하시길! 이 한 발짝은 개인에겐 작은 한 걸음이지만 훗날 세상에는 큰 걸음으로 기억될지 모르니까. (by 닐 암스트롱)




<부록 1> 인터뷰 제목에 얽힌 비화

자하  이번 인터뷰 준비를 위해 빅뱅 인터뷰 책을 사봤었는데, 거기 이런 게 있었어요. ‘~본능 대성’ 뭐, 이런 식으로 애칭을 붙이더라고요. 질주 본능 태양 등등…

아밀  우린 무슨 본능으로 해요?

자하  태운 님은 낙천 본능, 날개 님은 수줍 본능?

진아  비상을 준비하는?

자하  준비 본능?

진아  오히려 오래 알아온 아밀 님이 바로 안 떠오르네요.

자하  아밀 님은 포장 본능.

(다들 웃음)

저 책의 제목이 “세상에 너를 소리쳐!”이다. 신예 작가들에겐 더없이 어울리는 구절로 보였기에 낼름!




<부록2> 개인 단편선에 대한 7문 7답

아밀

1. 이번 전자책에 실리는 작품 중 가장 시기적으로 오래전에 쓴 글과 가장 최근에 쓴 글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가장 오래 전에 쓴 것이 <벌레, 꽃, 그리고 르느와르> 이고, 가장 최근에 쓴 것은 <송신>입니다.
그런데 퇴고하면서, 글을 고친다기보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쓴 것들이 있거든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새로 쓴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걸 고려하면 외려 가장 최근에 쓴 게 <벌레, 꽃, 그리고 르느와르>가 될 수도 있겠네요.


2. 가장 힘들게 (또는 오래) 쓴 글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힘들거나 오래 걸렸나요?

<키리에>였네요. 이유는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가 애매한데, 그때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에 한계가 찾아왔던 것 같아요. 한 줄 쓰고 막히고 한 줄 쓰고 막히고, 쓰는 게 너무 다 뻔하고 재미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죠. 그때 고전들을 좀 탐독하고 난 뒤에야 좀 덜 헤맬 수 있게 되었어요.


3. 전자책에 실릴 작품을 결정하고 배치하는 데에 원칙이나 기준 또는 일관성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좀 순수문학적인 글을 많이 쓰는 편이라서요. (사실 순수문학이라고 구분짓는 개념 자체를 싫어하지만 편의상 사용합니다.) 조금이라도 환상성이 있는 것,을 기준으로 골랐어요. 간단하죠. ^^;


4.  이 전자책의 독자로는 어떤 사람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글을 쓸 때부터 생각한 독자층이 있나요?

글을 쓸 때 독자층을 상정하지는 않고요, 특정 독자를 타깃으로 하지는 않지만요.
장르적 구분으로는 호러에 조금 가깝고, 주재로는 神이 자주 다루어집니다.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도 아마 즐겁게 읽으실 거예요.
저는 환상이란 기본적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경험적인 세계에 대한 욕망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욕망은 당연히 초월성과 실체 개념으로 나아갈 텐데, 그건 아주 날카롭고 치열한 ‘불가능성’을 담지하고 있어요. 그 불가능성은 슬플 수도, 따뜻할 수도, 허무할 수도, 희망찰 수도 있겠지요. 그런 ‘불가능성’으로서의 환상의 속성에 민감한 독자라면 조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5. 이번 전자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 중 가장 힘들었다, 또는 가장 공을 들였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느 면인가요?

아주 옛날에 쓴 글들도 있었기 때문에 퇴고하는 과정이 지난했어요. 과거의 업을 청산하는 느낌?


6. 이번 전자책은 지금까지 글을 써온 시간과 작업물을 돌이켜봤을 때 작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어도 오래는 써왔는데요, 나이가 들고 내가 변하면서, 지금은 할 수 없게 된 말들을 과거의 나는 하고 있었어요. 그런 말들을 정리하고 엮을 수 있어서 참 기쁘네요.


7. 이번 전자책이 앞으로 이어질 집필여정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길 바라시나요?

과거의 나는 할 수 없었을 말들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든든한 자식놈이 되었으면 합니다.




날개

1. 이번 전자책에 실리는 작품 중 가장 시기적으로 오래전에 쓴 글과 가장 최근에 쓴 글은 무엇인가요?

환상결핍증이 가장 오래 전에 쓴 글이고 가장 최근에 쓴 글은 식용 드래곤이 실렸습니다.


2. 가장 힘들게 (또는 오래) 쓴 글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힘들거나 오래 걸렸나요?

대부분 짧은 시일 내에 쓰인 편이라 ‘해안가’가 그나마 비교적 오래 걸렸습니다. 의도적으로 조금 더 천천히 쓰려고 했기 때문에요.


3. 전자책에 실릴 작품을 결정하고 배치하는 데에 원칙이나 기준 또는 일관성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그동안 쓴 글들 중에서 12편을 골랐고, 반씩 나누어서 환상적이거나 장르적인 요소가 강한 글과 그렇지 않은 글로 반반씩 나눠서 배치했습니다.


4.  이 전자책의 독자로는 어떤 사람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글을 쓸 때부터 생각한 독자층이 있나요?

특별한 독자층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5. 이번 전자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 중 가장 힘들었다, 또는 가장 공을 들였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느 면인가요?

전체적인 퇴고 부분들이 힘든 편이었어요.


6. 이번 전자책은 지금까지 글을 써온 시간과 작업물을 돌이켜봤을 때 작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되돌아보는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7. 이번 전자책이 앞으로 이어질 집필여정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길 바라시나요?

전자책을 계기로 한 단계 나아진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임태운

1. 이번 전자책에 실리는 작품 중 가장 시기적으로 오래전에 쓴 글과 가장 최근에 쓴 글은 무엇인가요?

오래전에 : 사모사.
최근에 : 뮤즈의 속삭임.


2. 가장 힘들게 (또는 오래) 쓴 글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힘들거나 오래 걸렸나요?

그레이브 키퍼인 것 같아요.
거울 편집장 님이신 ‘진아’님과 여러번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퇴고 작업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었기 때문인데…… 그 때가 또 눈코뜰새 없이 바쁠 때라서.


3. 전자책에 실릴 작품을 결정하고 배치하는 데에 원칙이나 기준 또는 일관성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북토피아의 이주엽 편집장님과도 상의가 된 사항인데, 제가 가진 작품들 중 저작권이 묶여 있는 작품들은 다 뺐고요…… 그 중에서 어둡거나 진지해서 지나치게 앙상블이 되지 않는 작품들을 빼니(신이 버린 아이들 같은) 자연스럽게 묶여졌어요.


4.  이 전자책의 독자로는 어떤 사람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글을 쓸 때부터 생각한 독자층이 있나요?

장르에 대한 매니아나 해박한 독서량을 가지신 분들보다는 소프트하게 접근하는 독자들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 있습니다. 글을 쓸 때는 늘 제 또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씁니다.


5. 이번 전자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 중 가장 힘들었다, 또는 가장 공을 들였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느 면인가요?

공을 들였다기보다는 새로운 것이라 생소하면서도 즐거웠던 작업이 몇 개 있었는데 ‘유서하’님이 그려주신 표지 일러스트와 직접 지인들께 부탁드렸던 ‘추천사’ 작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6. 이번 전자책은 지금까지 글을 써온 시간과 작업물을 돌이켜봤을 때 작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단편은 제게 있어 까다로우면서도 매력적인 작업인데 이번 기회에 제 작업물들을 ‘한 틀’에 묶어보니 더 애정이 생겼달까요. 미취학 아동들을 입학시키는 기분이라 과연 요놈들이 잘 해낼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요. 좋은 성적표를 받아오기보다는 ‘퇴학’만 안 당했으면 좋겠어요^^


7. 이번 전자책이 앞으로 이어질 집필여정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길 바라시나요?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친다기보다는 이제 작품집에 모여 있는 어떠한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 같아요. 이대로 쭉 가다가는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아서 언제나 ‘거울’이나 ‘표본’처럼 삼고 매진하렵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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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읽다 말고 등을 의자에 완전히 기댄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손으로 가리며 웃다가 정신차리고 자기 블로그로 글 쓰러 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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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 09.03.27 21:11 댓글 수정 삭제
    뭔가 버라이어티한 반응인데요. 무슨 뜻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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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자 09.03.28 23:38 댓글 수정 삭제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밀/루나벨 님은 제가 대1때 청소년 문학상에 대한 소논문을 쓸 때 주 텍스트로 삼았던 것이 '언제나 만화가만을 원해라' 표제작으로 한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집이어서 기억이 납니다(고향집 한구석에 아직 꽃혀 있을 겁니다).

    제가 수능이다 군대다 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가진 채 어정쩡한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을 때, 계속해서 글에 매진하시고, 또 눈에 확 뜨이는 성취를 보이는 모습을 보면 부럽고 또 분합니다(고학번 되어 학교에 돌아가니 이제는 취직과 먹고사니즘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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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냥 제 자세를 한번 묘사해보고 '이크 나도 얼른 뭔갈 내놔야지'하는 생각이들었다는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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