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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판타지 시장을 개척한 [드래곤 라자](이영도, 황금가지, 1998년 5월)가 출간된 지도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수많은 판타지 소설들이 출간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독자들에게 강렬히 기억되는 소설 중 하나는 드래곤 라자이다. 이영도 작가의 전권을 수집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십 번씩 읽으며 인명과 지명, 인사말 등 책 내용을 대부분 암기하는 열혈 독자도 있고, 연재시 잡담을 모아 [이영도 잡담 모음집]과 [신비로운 이야기] 팬북을 만든 독자도 있다. 드래곤 라자의 팬픽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까지 만드는 수많은 독자들. 그들에게 드래곤 라자는 어떤 의미이고 이번 10주년을 맞은 소감은 어떨까. 이런 물음에서 시작된 기획은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획을 준비하면서 팬들의 소감을 모아보자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네이버 <이영도 공식 출판 카페>(cafe.naver.com/bloodbird.cafe)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에게 10주년을 맞이하여 ‘드래곤 라자와 나’라는 주제로 짧은 글을 부탁했다.
 [드래곤 라자]가 올해로 10주년을 맞고 기념 양장본이 나왔지만 한정세트를 구매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팬들의 소회를 들어볼 기회는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환상문학웹진 거울이라는 공간에서 팬들끼리 [드래곤 라자] 10주년을 맞아 롤링페이퍼를 쓴다는 기획을 잡았다. 이영도 작가의 열성 팬들인 좀비들에게 이런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원고를 청탁했다. 그렇게 해서 12명의 좀비들이 원고를 보내주었다. 마치 소설 속 12인의 다리를 건너기 위해 모인 것처럼.
 이것은 팬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피드백이자, 팬들끼리 자축하는 자리이며, 10주년을 맞은 [드래곤 라자]에 보내는 축사이다.



▲ 네이버 <이영도 공식 출판 카페>에 쏠(ssol)님이 올린 팬아트. 쏠님은 12명의 아마추어 아티스트로 결성된 팬아트 그룹인 ‘12인의 다리’(12inn.com)에서 활동하면서 [드래곤 라자] 앤솔러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나의 인생과 드래곤 라자, 그리고 이영도

 돌이켜 보면 [드래곤 라자]를 처음 읽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겨울방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자주 다니던 서점에서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었지요. 한권 두권 사 모았던 것을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 낡은 책이지만, 지난 10년 동안 몇 번이나 읽었는지 이제는 세기도 어렵습니다.
 서점에서 처음 [드래곤 라자]를 본 후, 저는 [드래곤 라자]에 빠져들었지요. 그리고 그것은 제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바이서스라는 나라,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영도와 함께하며 보냈던, 그리고 지내왔던 지난 세월들을 돌이켜보면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후회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어렸던 제가 부끄러워지는 일도 꽤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그런 일들이었지요. 반면, 후회하지 않는, 언제나 기쁜 기억으로 남는 그런 일들도 많았습니다.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즐거운 추억들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제 집에는 [드래곤 라자]뿐만 아니라, 이영도가 낸 모든 소설들이 있습니다. 수능을 준비할 때에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이영도 잡담 모음집] 및 '신비로운 이야기' 팬북을 만들어보기도 했었지요. 그 때 만난 모 군은 지금까지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입니다.
 2005년 [피를 마시는 새]가 출간되었을 때는 독자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책을 읽고, 오탈자를 찾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인터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영도라는 사람을 직접 만났고, 함께 술자리를 가지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 그 날은 제게는 지난 청소년기를 정리하고 성인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영도와 함께 했던 수년의 세월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시작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10년 전, [드래곤 라자]가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제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드래곤 라자]가 없는 10년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드래곤 라자]는 제 인생을 바꾸었고, 지금까지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드래곤 라자] 출간 10주년을 맞아, 저는 제 인생을 바꾸었던 소설 한 편을 떠올립니다.

――― ID : 프레이



 
 [드래곤 라자]와 자신

 [드래곤 라자]에서 핸드레이크는 말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고. 수많은 좀비들이 [드래곤 라자]의 하이텔 연재 시절부터 출간 이후의 10년을 타자의 소설들과 함께 해 왔고, 그들이 느끼는 [드래곤 라자]와 타자에 대한 의미는 아마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 라자]를 통해 타자를 알게 된 지 만 9년이 다 되어가며, 본격적으로 팬클럽(?) 활동을 시작한 지는 6년이 조금 넘어가는 지금의 나에게 [드래곤 라자]가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바로 남에게 줄 수 있는 또 다른 나들이 많이 생겼다는 점에 있다.
 사실 조용히 책을 찾아 읽는 것이 취미였던 내게 있어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특정 그룹에 끼어들어 활발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도님의 소설(이 때는 [눈물을 마시는 새]의 연재 및 출간 기간이었다.)을 통하여, 나는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놓고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술자리 또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소설이 주는 주제의식과 다른 소설들과의 연계성, 그리고 각각의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어색함 없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분석할 수 있는 기회는 내게 있어 흔치 않은 경험임과 동시에 매우 멋진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동호회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교류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언제나 설레는 맘을 가졌던 것 같다.
 어떤 분야의 취미이든, 그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동호회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하나는 그 동호회가 공유하는 ‘대상’에 대한 열정이며, 다른 하나는 그 동호회의 ‘구성원’ 상호간의 교류이다. 그리고 [드래곤 라자]의 출간 10주년을 기념하여, 좀비로서의 내가 영도님께 드리는 감사는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것보다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타자가 이야기했던) 대상을 향하고 있는 상호간의 교류에 대한 것에 더 가깝다.
 ‘영도님, 제가 사랑할 수 있는 많은 <나>가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드래곤 라자] 10돌 기념 축사이다.

――― ID : 요나



 

 누구에게나 그런 책이 한 권은 있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그리움에 저도 모르게 펼쳐들고 마는 책이. 제게는 [드래곤 라자]가 그런 책이었습니다.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몇 권에서는 누구와 만나는지 대강 알면서도 다시 보면 변함없이 재미있는, 실로 불가사의한 마력을 가진 책이었죠. 여전히 똑같은 장면에서 웃고, 똑같은 장면에서 눈물짓고. 시험 때 생각 없이 중간권수를 뽑아들었다가 죽도록 후회하기도 하고(아시잖아요? 한 번 읽으면 다음이 궁금해서 절대로 중간에서는 못 끊는 거.). 사실 폐인처럼 한가하게 생활할 때가 아니면 선뜻 손대기도 두려워지는 터라, 정작 [드래곤 라자]를 전권 독파한 횟수는 의외로 손에 꼽을 정도가 되더군요. 만화책으로 치면 [유리가면]과 같다고 할까요.
 이 중독성 강한 악마의 책을 소개해준 것은 제 세계의 창, 저의 오빠였습니다. 분별없고 철모르던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무렵, 오빠는 한 손에는 [퇴마록], 한 손에는 [드래곤 라자]를 들고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야말로 천운(天運)이었습니다. 그 때 [드래곤 라자]를 만나게 해 준 오빠에게는 정말이지 두고두고 감사하고 있답니다. 당시에는 위인전이나 세계명작을 섭렵하던 나이였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와의 첫 대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죠. 신선하면서도 새로 접하는 수많은 정보에 질식하는 줄 알았습니다. 뒤쪽에 붙어있던 용어집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덕분에 바스타드소드나 파이어볼 같은, 판타지적인 잡학만 쑥쑥 키워나가는 올바른 중학생이 되더군요.
 [드래곤 라자]를 그저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로만 생각했던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2달여 앞두고 학교 도서관에서 [드래곤 라자]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참을 수 없이 기쁘고 반갑더군요. 당시 저의 재력으로는 [드래곤 라자]를 사 모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환호하며 도서관 사서를 꽉 끌어안아주고 싶더군요. 타향에서 고향 사람 만난 것 같은 묘한 그리움에 물들어 무심코 1권을 빌렸던 것 같습니다.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쉬는 시간에만 읽을 생각이었고 몇 교시는 어찌어찌 잘도 버텼습니다만 메뚜기 앞다리보다도 짧은 인내심은 쉬이 바닥나고 말았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책상서랍 속에 책을 두고 읽으면서도 걱정되었던 건, 수업시간에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이 아니라 읽다가 걸려서 [드래곤 라자] 및 판타지 문학이 매도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한 번 읽었던 책, 그만 읽으면 될 텐데 왜 자꾸 손은 책장을 넘기는 것인지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수험생이라 선생님들도 눈감아주셨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문에 나중에는 대담해져서 그냥 책상위에 꺼내두고 편하게 읽었습니다. 12권을 다 읽고 나자 뭔가가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저는 [드래곤 라자]를 정말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 동시에 이영도라는 작가를 무지막지하게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 중학교 3학년 때 사인회에 갔을 당시에도 물론 좋아하고 있었지만, 이영도 님과 [드래곤 라자]를 좋아하는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시나브로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는 것이더군요.
 대학생이 되고 문화생활에 여유가 생긴 저는 [드래곤 라자] 전권을 구입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으로부터의 타박이 곧장 날아들었죠. 어차피 한 번 읽은 책을 뭐하러 사느냐,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을 사야지 그런 쓸데없는 책이나 사느냐, 네가 아직도 어린애냐, 기타 등등. 주요 골자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헛돈을 퍼붓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뭐가 좋냐고요? 저는 그 적당한 균형감이 좋았습니다. 위트가 철철 넘치면서도 절대로 가볍지만은 않은, 사고하는 오락물이라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이전까지는 없던 방식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죠. 새로운 것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하는 사람들이, 저는 정말로 좋거든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로서는 따라갈 수도 없는 재치, 사고력, 발상.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위에 써놓은 이유만으로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하나하나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과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내용, 그리고 가끔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모닝스타도 좋아했습니다. 특히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연신 맞았던 모닝스타는 굉장했죠.
 후치와 함께 마법의 가을을 몇 번인가 지내는 사이에 어느덧 10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드래곤 라자]에서 주워 담은 것도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 시험 때마다 테페리를 찾게 되는 오덕심이라든지, 네크로맨서에 대한 가없는 충성심이라든지, 늘어놓자면 뭔가 사소하게 많습니다만 아무래도 가장 큰 수확은 제 사상관의 뼈대를 마련했다는 점이겠지요. 그로 인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어떤 사건에 대해 인식하는 방식들이 정립된 셈이니 어쩌면 제 인생의 큰 한 축은 [드래곤 라자]를 통해 완성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영도 님 덕분이겠지만 어쨌든 그 시원(始原)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드래곤 라자]와 조우하게 되므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 점에서 이영도 님과 [드래곤 라자], 그리고 제 하나뿐인 오라비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느낍니다. [드래곤 라자]와 함께한 10년, 여러 좀비들과 만나고, 작품을 빌미로 이영도 님을 뵙고, 주체인 제가 객체인 저와 비로소 손을 잡는 즐거운 세월이었습니다. 앞으로 함께 걸어갈 날이 지금까지 걸어온 날들보다 더 즐겁고 의미 깊은 날이 되기를 바라며 이영도 님의 무병장수와 건필을 빌겠습니다. 좀비들이여, 영원하라.

――― ID : 보늬



 

 10년이 지났다. 내가 [드래곤 라자]를 알게 된 건은 15살 이었을 때이니, 나로서는 만난 지 9년이 되는 셈이다. 강산도 변할 수 있는 긴 시간이 흘렀건만 진부하거나 물리기는커녕 오래 될수록 좋은 와인처럼 [드래곤 라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같이 한 시간만큼의 매력과 중독성을 더한다. [드래곤 라자]를 읽기 시작한 직후 치른 중간고사에서 한 번에 평균을 7점 깎아먹고 집에서 쫓겨날 뻔 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책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내가 느낀 [드래곤 라자]의 매력은 글에서 느껴지는 재미도 재미지만 그 안에 스며든 인간에 대한 객관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서술에 있었다. 어찌 보면 거의 오만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각이지만, 그 안에 깊이 스며든 따스한 시각 때문에 읽고 또 읽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꺼지기 위해 타오르는 불꽃’ 이라니,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굉장했다. 중학교 때 [드래곤 라자]는 나에게 소설책이자 철학서, 신앙서(?)였다. 그건 지금도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재미있고 중독성 강한 소설책이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를 담은 책이자 좀비입문서이니 말이다.
 또 한 가지, [드래곤 라자]는 나에게 이제까지의 좁고 평범한 인간관계를 넓고 다양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인터넷의 힘이 크다고 해도, [드래곤 라자]를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다양한 사람을 사귀고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사람을 추종(?)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가장 큰 즐거움이자 자극제이다. 나의 지난 9년은(읽은 지는 9년 되었으니까) [드래곤 라자]와 영도님을 빼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그 동안 출판된 작품들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영향을 주었다. 그 시작이 [드래곤 라자]였고, 그렇기에 10주년 이라는 타이틀은 왠지 모르게 애틋하면서 특별하게 느껴진다. 영도님의 작품들, 그리고 쓰여 지고 출판될 작품들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기념되었으면 좋겠다.

――― ID : 애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드래곤 라자](이하 D/R)의 양장본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각종 팬 서비스 차원의 상품들과 적절한 가격(?) 그리고 만족스러운 표지나 뭐 그런 것들까지―. 하여튼 군부대 내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관련 지인들에게는 거의 반 포기어조로 ‘하나 더 구할 수 있으면…… 부탁해.’ 라는 우울한 목소리였을 내용의 쪽지 하나씩을 남겼었다.
 다행히 평소 사람들에게 잘 대한(?) 덕분인지 어쨌든 한정판 한 질을 구했고, 아직도 군부대에 있는지라 내 돈 주고 샀는데 구경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긴 하지만, 엄청났을 구매 대폭풍 속에서 무사히 기념할만한 서적의 양장본을 구했다는 안도감이 날 편안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묘한 불안감도―.
 [드래곤 라자]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나에게 있어서 10년의 기간은 그 밉상스러운 벽을 허물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처음 D/R을 접했을 때가 초등학생 시절이었고, 이후 중등, 고등을 거쳐 가면서도 나는 열심히 열심히 월간 행사 격으로 다 본 책을 또 읽었다. 그렇게 보다보니 문득,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 라는 묘한 창조성 욕구가 생겨났고 마침내 초등학생 때 일기와 독후감 수준에서 시작했던 글쓰기라는 것이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조잡한 단편의 형식으로 발전해나갔다.
 모르겠다, 내 주변만 유독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주위에는 도통 그 시절에 무언가 글을 쓴다는 사람이 없었다.
 “너 뭐 쓰는 거야?”
 “어? 아 이거 그냥 내가 생각하는 거 끄적대기…….”
 “좀 보자……. 우와, 소설 쓰냐? 이야~”
 “아, 아니. 소설이라고 하기엔 좀.(완전 민망.)”
 뭐, 이런 식의 반응 속에서 내 주변 사람들은 날 글쟁이 격으로 몰아갔고, 그 몰아감 속에서 내 글은 덩달아 어영부영 뜨기 시작했다. 학교 전체가 내 소설(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을 돌려보거나, 작은 학교 신문, 혹은 반 내 게시물에 올라가는 등,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칭찬해준다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나 보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 조잡한 잡문들을 자신 있게, 당당하게 내보지 못했다. 자격지심이라 해야 되나? 아니 그런 것을 판단할 실력조차 없었다. 단지, [드래곤 라자]라는 하나의 소설이 내 가슴 속에서 거대한 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크나큰 미루나무 아래에서 용을 쓰며 싹을 틔워보고 있는 잡초 한 포기
 독수리를 바라보면서 미친 듯이 폴짝대고 있는 병아리
 문학평론가나 뭐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드래곤 라자]라는 소설이 여전히 반지의 제왕 그늘 아래에 있는 판타지건 어쩌고 하는 말을 하건 말건, 내게 있어서 [드래곤 라자]는 미루나무요, 독수리요, 빌어먹게 밉디 미운 기준점 같은 것이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하나의 주제를 판타지라는 장르를 이용해서 써보니, 재밌을 것 같고 괜찮아서 썼습니다.
 뭐 이런 게 이영도 씨의 덤덤한 대답으로 내겐 인식되어 있는데, 나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죽도록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이용해 내가 생각하고자 하는 바를 그리는 데도 한계를 느낀다. 1인자의 그늘에 묻힌 2인자의 슬픔도 고독도 아니고, 이건 그야말로 그렇게 몇 인자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사람들의 휘광 자체에 파묻혀버린 조잡한 글나부랭이의 시기심 같은 것이라고도 생각하곤 한다.
 양장본으로 되돌아온 [드래곤 라자], 그것은 미루나무가 열매를 맺은 것이기도 하고 독수리가 털갈이를 하고 나타난 것이기도 하며, 하나의 기준점이자 넘을 수 없었던 장벽이 인기라는 것을 등에 업고 더욱 커져버린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요 근래 이런저런 걸 조금씩 써보고 있는 내가, 어쩔 수 없이(왜냐고? 나도 미치도록 D/R을 좋아해서 안 볼 수가 없거든! 푸하핫) 책을 펴보게 되면―. 오 맙소사, 어떻게 될까. 또 그동안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그 동안 쓰던 걸 다시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이 무슨 자기 연민에 빠져버린 놈팽이의 주절부림이냐고? 어쩔 수 없습니다. 으하하. 제게 있어 D/R이란 그런 존재인걸요.
 10주년 기념으로 재출간된 [드래곤 라자], 앞서 적었듯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그런 것들은 구입에 관련된 것일 뿐 책을 읽고 난 후의 제게 일어날 무수한 일들이 절 망설이게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펴보겠지요.
 그게 D/R의 힘이고, 후치에게 일어난 마법의 가을과도 같은 신비스러움이며, 이미 전 좀비가 되어버렸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으캬캭―.
 조잡한 글 스크롤 해주신 분들껜 감사를 드리고, 출간 카페에서 잊혀져가는 군인에게까지 쪽지 날려서 이런 것도 두드려볼 기회를 주신 날개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좋은 꿈들 꾸세요.

――― ID : 바드



 

 [드래곤 라자] 10주년의 의미는?

 [드래곤 라자]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입니다. 이제 막 소설이란 것들에 빠져들 무렵이었죠. 특이한 제목에 흥미가 생겨 책을 읽게 되었고, 읽고 나니 책을 사버렸고 그 이후 10년 동안 수십 번을 읽어온 책이 바로 [드래곤라자]군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기에 [드래곤 라자]를 만나게 된 것은 참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드래곤 라자]는 청소년 권정 도서목록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책입니다. 외국에 [어스시] 시리즈가 있다면 한국에는 [드래곤 라자]가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린 나이에는 아무래도 재미 위주의 책만 추구하게 되는데, [드래곤 라자]는 그런 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죠. 와, 재미도 있고, 뭔가 가슴속에 남는 것도 있고 신기하게 느껴졌죠. 그 이후 책을 보는 눈이 점점 높아졌고, 덕분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독서를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한창 자아가 정립되는 시기인 중․고등학생 시절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고, 특히 이영도 작가의 책들에서 얻고 느낀 것들은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바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사람뿐만이 아니라 책장도 꾸몄군요. 이영도 작가 콜렉션 풀 세트. 이게 다 얼마냐?) 덕분에 좀 이상주의, 낭만주의 쪽의 사람이 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요. 하하. 그런 책이 벌써 10주년이 되었다니…… 시간 잘 가는구나 싶습니다. 10년이 흐를 동안 이영도 작가의 좋은 글들은 계속 나왔고. 제 바람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이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바닥도 꾸준히 발전해왔네요.
 그럼 [드래곤 라자] 10주년이 가지는 의미는 뭘까요? 일단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드래곤 라자]는 이 장르 문학이라는 바닥의 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원조를 찾자면 이 책이 첫 시작은 아니지만 지금이 있기까지는 [드래곤 라자](및 [퇴마록])의 영향이 크겠죠. 그렇게나 많이 팔렸고, 꾸준히 팔리고 있고 그게 10년째입니다. 대중들에게는 이 장르문학이라는 바닥에도 이런 좋은 글이 있고, 10년이나 됐는데도 이천여부가 순식간에 동이 나며,꾸준히 팔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기존의 이영도 작가의 팬들에게는 10주년이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자축하며 즐기고 기뻐할 수 있는 일이었죠. 이처럼 [드래곤 라자] 10주년이란 한국 환상소설을 비롯한 장르문학의 희망이자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참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생각해봐야할 문제도 있겠죠. [드래곤 라자] 10주년이 던져준 과제는 무엇일까요? 10주년을 할 수 있을 만큼 이영도 작가는 최고의 작가입니다. 이쪽 장르의 국내 작가 중에는 비교할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인재가 없구나, 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죠. 분명 10년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고, 장르문학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시점에 불과합니다. [판타스틱] 잡지가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고, 황금가지 등을 비롯한 출판사에서는 국내 장르문학 작가들의 단편선을 시작으로 해 키워나가고 있을 뿐이죠. 10년 동안 이영도 작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 성적이나 인지도를 보일 수 있는 작가 하나 안 나온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20주년에는 지금 다지고 있는 토양에서 싹이 트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야죠. 말은 부정적으로 했지만, 그래도 이제야 좀 뭔가 되는 듯해 좋기도 합니다. 음, 그리고 이번에는 이영도 작가 하나만을 짚어볼까요? 언급했다시피, 최고의 작가죠. 풋풋했던 [드래곤 라자]부터 시작해 신간 [그림자 자국]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글의 완성도가 높아만 가고, 작품마다 새롭고, 환상적인 세상을 보여주는, 꾸준히 발전하는 좋은 작가지만, 그만큼 꾸준히 지적되던 문제점들이 있죠. 일단 가장 큰 단점은 매너리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영도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각 작품의 인물들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죠. 인물들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제도 그렇고요. 이미 여러 작품이 나온 작가니만큼 이 문제는 꼭 고쳐져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따스함이 없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겠죠. 이영도 작가의 글이 따스하고 훈훈한 편은 아니죠. 여성 캐릭터들은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라는 의견도 나오고요. 덕분에 연애해라, 결혼해라하는 우스갯소리들도 나왔죠. 좀 더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을 주기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 번째로는 지나친 말장난이 있습니다. 이건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고 저도 나쁘게 보지는 않는데, 이것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많죠. 너무 작위적인 말장난을 치는 대사나 직설적으로 말로 전달하려고 한다 등의 이유로 싫어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굳이 단점은 아닌 것 같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면. 네 번째는 단점은 아니고 그냥 푸념입니다. 작가님 연재 공간이 없습니다. 안녕전화의 사망 이후 마땅히 연재할 곳이 없다는데, 어서 그 고민이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작가가 차별대우 받지 않고, 그러면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작가들도 많고, 자유로운 분위기 등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 준비 중인 금룡상 사이트 등에서 꼭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10주년 축하글을 썼어야 하는데 어째, 안 좋은 소리만 한 것 같군요. 음. 이게 다 애정이 있어서라는 말로 대변을……? 여하튼 [드래곤 라자] 10주년을 참 축하합니다!? 그리고 그 10년을 같이 보낼 수 있던 저에게도 축하를!? [드래곤 라자] 뿐만 아니라 다른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축하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겼으면 싶고, 환상소설을 비롯한 장르문학 바닥이 더욱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다음에는 20주년입니다!? 마음 가는 길은 죽 곧은 길!

――― ID : 윈디어



 

 [드래곤 라자]라는 소설이 나의 일상에 끼친 영향에 대한 단상

 글이 짧은 내가 [드래곤 라자]에 관련된 코멘트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단문을 쓰려고 보니, 다른 열성 독자들처럼 감상글 및 비평글, 이영도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글과 같은 거창한 글은 내게 너무 과분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을 쓸까하는 단상을 하다가 그냥…… 나의 일상에 끼친 영향에 대한 단상 그 자체를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선 [드래곤 라자]를 처음으로 접해본 무렵은 군대에서 상병을 달았을 무렵인 1999년이다. 군대에서 참 재미있게 읽었다. 책으로 구할 수 없어서 친구들이 갈무리해준 텍스트 파일로 3번 이상 읽었으니 진짜 재밌었나 보다. 그 때는 사실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었다. 그냥 ‘재밌는 소설이었구나.’라는 기억만 떠오른다. 그 때는 이영도 작가라는 사람을 머릿속에 저장해 놓고는 이 작가는 다음 소설이 기대되는 작가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어느새 내 책장에는 [드래곤 라자], [퓨처 워커],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등의 책들이 자리 잡았다. 어느새 직장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직장인이 되어 원하는 책들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지면서 [드래곤 라자]부터 최근에 나오는 책들까지 구입하면서 다시 읽어보고 그러는 와중에 주위 친구들에게 이영도 작가의 책들을 권해주었지만 [폴라리스 랩소디] 이후의 책들은 머리가 굳어가는 친구들에게는 내가 원하고 바라왔던 반응이 나타나지 않아서 실망을 했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좀 더 이영도 작가의 책들의 진가를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는 중에 학생 때는 다닌 적이 없던 영어회화 학원을 직장인이 되어서 다니게 되었다. 보통 영어회화 학원에 가면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지어서 소개하고 그 이름으로 학원에서는 불려지는 ― 한국이름을 가진 나는 별로 원하지는 않았던 ― 영어회화 수업을 받았다. 외국 영어 강사였는데, 기억이 안 난다. 단지, 내가 처음에 내 이름을 말했을 때, 계속 못 알아듣고, 한국 이름을 발음도 못하고 너무 답답하게 굴어서(아마 일부러 그랬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냥 ‘내가 졌다.’ 하고 영어 이름을 지어서 알려 주겠다고 하고 여러 영어 이름을 생각했다.
 난 진짜 남들과 똑같은 이름을 가지기 싫었다. 마이클, 제임스, 스티브……. 오우 노!! 내가 철수, 영수, 갑돌이와 같은 이름을 가질 수는 없으니까!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이름은 싫었다. 그래서 아주 흔한 이름들 말고 생각했는데 나온 이름들이 후치, 샌슨, 칼, 핸드레이크, 아프나이델, 에카드나, 솔로처 등이다. 어떻게 이 이름들이 자연스레 머리에 떠오르다니! 맙소사 군대에서 3번 정도 군전역 후에 여러 번 읽었다고 해서 자연스레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난 흔히들 말하는 오덕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드래곤 라자]에 빠졌던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하여튼 그 때 영어회화 학원에서 내가 최종적으로 정했던 이름은 샌슨이다. 왜 샌슨인가 하면 발음하기 편하고, 스펠링 정하기 편하고, 외국 이름으로 무난해서 정했다. 그 이름을 정하면서 은근히 이영도 작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를 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니……. 반항심이 생겼나 보다. 그 후로 학원을 옮기고, 그 학원에서도 영어 이름을 말할 때 샌슨이라고 했다. 따라서 나의 영어 이름은 샌슨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내가 직장인 영어반에 들어가서 그런지 몰라도 샌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항상 영어회화 학원에서 첫 시간에 자기 소개할 때의 레파토리가 바로 나의 영어 이름의 유래이다. 내 이름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여기서 강세를 주어야 할 것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이 부분이지 절대 ‘주인공’ 부분은 아니다. 여담이지만, [드래곤 라자]에서 좋아하는 주인공을 골라보라고 하면, 이것은 참 어렵다. 다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딱히 정감이 가는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 절묘하게 어울러져 있어서, 그 중에 하나를 딱히 꼽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가 망쳐지는 그런 느낌이라서 아직까지 선택할 수 없다.
 지금은 업무에 치여서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다. 회사에서 50%를 부담하겠다고는 하지만 일이 많아서 다니기가 싫다.(‘일이 많아서’라고 쓰고 ‘귀찮아서’라고 읽는다.) 그래도 혹시 나중에 영어회화 학원에 다닌다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어느 영어회화 학원에서 직장인 같은 사람이, 샌슨 이라는 이미지와 정반대로 생긴 사람(본인은 키도 크지 않고, 근육 없는 가슴과 약간 튀어나온 배를 자랑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 자신을 샌슨이라고 소개한다면 바로 본인이라 생각하시고 꼭!!! ‘나도 그 이름 알아요. 참 반갑습니다.’ 하는 인사를 나누어 주기를 부탁한다. 그러면 ‘나도 이제 영어 이름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하는 단상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바꾸지 않겠지. 아마도…….

――― ID : 사과가쿵



 

 “언제나 가렵고 배고픈 날 긁어주고 먹여주는 고마운 타자, 이영도”

 사람들은 말한다, 대중은 우매하다고. 꾸준한 보수 공사로 인하여 넓어지는 배움의 길, 흐르다 못해 넘쳐나는 정보 등을 통하여 모든 개개인은 보다 똑똑해졌지만, 이 불특정 다수들이 모인 집단은 우매해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 중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 다음의 내용을 꼽고 싶다. 특정 다수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집단이기 때문이라는 것. 튀어나온 부분도 패인 부분도 없이 고만고만하고 평평하게 형성된 이 대중이라는 집단이 대중매체에게 요구하는 것과 대충매체가 대중에게 강요하는 것들은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다수 안에서 소수는 등한시되기 일쑤고,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열린 사고를 주창하지만 실제로는 다양성이 배제되는 이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소수들은 언제나 강한 욕구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강한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여러 소수집단 중 하나가 이영도 타자의 팬 층이다. 필자 역시 이영도 타자의 팬 층을 구성하고 있는 일원이니, 필자 자신을 예로 들어 이야기 하고 싶다.
 어째서 문학은 재미없는 것만이 가치를 인정받을까? 왜 학교에서는 독후감을 강요할까? 나에게 있어 책 속은 드넓은 놀이터였으면 좋겠는데 어째서 학술토론의 장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왜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를 좋아해야만 어른들의 칭찬을 받는 것일까? 재미와 가치가 함께 있는 소설이란 대체 뭘까?
 두드러기 같은 질문들이 돋은 마음 곳곳이 가려웠지만 시원하게 긁어주는 무언가가 없던 나날들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타자 : 두드리는 자”로 지칭하는 온라인상의 작가가 내던진 소설들은 훌륭한 효자손이다.
 흥미진진한 전개와 기발한 발상, 튼튼한 기초공사의 덕을 고스란히 본 세계관의 집합체인 이영도 타자의 작품을 읽다보면 처음은 물론이거니와 재독 삼독을 할 때에도 손에 땀을 쥐거나 숨도 크게 쉬지 못한다. 이영도 작가 전반에 걸친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 바라보는 신선한 관찰자적인 시점은 물론이요(고로 타자와, 타자의 작품과 합일화 된 독자는 인간의 못난 특성에 대한 따끔한 정문일침을 놓을 수 있는 통쾌한 입장에 설 수 있다), 물리적 실체가 없기에 확실한 윤곽을 잡지 못했던 사상이나 사회적 문제 등을 콕콕 꼬집어 내는 문장들까지! 이영도 타자의 작품은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필자의 마음 속 두드러기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효자손이다.
 이영도 타자는 재미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작가이다. 필자는 이 “재미”에 대하여 단순히 유희적인 의미만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필자가 추구하는 재미란 기초공사가 잘 된 탄탄한 재미이다. "재미있게“느껴지는 이영도 타자의 작품을 음식으로 비유해보자. 이영도 타자의 작품은 흥밋거리나 순간적 유희라는 강렬한 고추장만 넣어 비빈 어설픈 비빔밥이 아니다. 짭조름한 감성, 고소한 사상, 쫄깃한 느낌과 톡톡 터지는 은은한 즐거움까지 골고루 비빈 훌륭한 비빔밥이고 그가 만들어낸 비빔밥은 필자를 비롯한 모든 이영도 타자의 팬 층의 입맛과 정신건강에 꼭 맞는 맞춤형 식단이다.
 필자에게 있어 이영도 타자는, 가렵고 배고플 때 마다 성심성의껏 긁어주고 먹여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이영도 타자의 처녀작인 “드래곤 라자”의 출간 10주년인 2008년의 끝자락에서 되새겨본 “나에게 있어서 이영도 타자의 의미”는 결국 횡설수설이 되어버렸지만, 이 난장판을 어떻게 정리할 도리가 없으니 다소 부끄러운 마음으로 여기서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2009년에는 이영도 타자의 신작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좋은 밤 되십시오.

――― ID : 오키타



 

 저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무슨 책이든 가리지 않고 그냥 읽었습니다.
 처음엔 책을 읽고 싶어서 읽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했거든요.
 친구랑 노는 대신 잡은 게 책이었죠.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룬의 아이들 - 윈터러](전민희, 제우미디어, 2001년 7월)를 시작으로 판타지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양산형이라고 불리는 소설들부터 영도님의 소설들까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도서실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읽었지요.
 사실 영도님의 소설 중 처음 접한 게 [드래곤 라자]는 아닙니다. 가장 처음 읽은 건 [퓨처 워커]였어요. 드래곤 라자를 읽은 건 아마 [피마새]가 연재되고 있을 때쯤이었을 겁니다. [피마새]가 나오기 전에 나온 다른 영도님 소설들 중 가장 늦게 읽은 게 [드래곤 라자]였어요.
 그런데 그 당시의 저는 말 그대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냥 글자를 읽은 겁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었어요.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새로 만난 담임선생님은 교무실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시는 분이었지요.
 전 선생님께 책을 빌려다 읽었습니다. 읽고, 돌려주고, 다시 빌리고, 읽고…… 그러다 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었습니다.
 너는 책을 왜 그렇게 읽느냐고,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이 그냥 그렇게 글자만 빠르게 읽는 게 책을 읽는 게 아니라고요.
 그렇게 꾸중을 듣고 나서 한동안 책을 안 읽었어요. 학교에서는 수업시간 외에는 계속 엎드려 잤습니다. 책 읽는 것 외에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겁니다. 위에도 썼듯이 전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거든요. 담임선생님께 책을 빌려 읽지 않게 되면서 그나마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시던 선생님과의 대화도 끊어졌습니다. 이 때는 수업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는 것 외에는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고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한텐 눈이랑 손만 있으면 돼, 같은.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나 하고 살았죠.
 그러다가 다시 잡은 책이 [드래곤 라자]였습니다. 차근차근, 천천히 다시 읽었습니다. ‘후치’를 따라가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생각하면서요. 완전히 몰입해서 읽은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뭔가 말로 할 수는 없지만 가닥이 잡힌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에 읽었을 때랑은 기분이 달랐어요. 뭐랄까……. 좀 더 인물들과 가까워진 느낌이었달까요. 그리고 저는 다시 다른 책들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아마 고등학교 막 올라갈 때쯤이었을 겁니다.) [드래곤 라자]를 세 번째 읽었을 때는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확 와 닿았습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어요.
 나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채 이대로 혼자여도 좋은가, 하고요. 그래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1학년이 지나는 동안 아이들 틈에 섞여서 서툴게 같이 웃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정말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6명 정도 생겨나 있었지요.
 2학년 때는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과 좀 더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고, 선생님들과도 좀 더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3학년. 네, 지금입니다. 저는 이제 대부분의 반 아이들과 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대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과회 때지요, 저는 생전 처음 보는 옆 분과 같이 웃으면서 짤막짤막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웃으면서 대화를 한다, 저한테는 이런 거 생전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대학교 합격자 소집일, 어느새 전 세 명의 동기들과 친해져 있었습니다. 같이 신촌 거리를 돌아다니고(길을 잃을 뻔 했습니다만) 이야기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처음 만나는 사람이랑 하루도 안 돼서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거, 중학교 때라면 상상도 못 할 상황이었지요.
 뭔가 글이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드래곤 라자]는 제게 있어서 두 가지의 큰 역할을 했습니다.
 책 읽는 방식(이건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역할도 큽니다만)을 고치고, 타인과 소통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습니다.
 특히 후자는 제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거였지요. 정말, 아직까지 제가 혼자였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안 가네요.
 제게 바깥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도록 해 준 [드래곤 라자]와 이영도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ID : 블츄



▲ 네이버 <이영도 공식 출판 카페>에 레체(estrada)님이 올린 '운차이&네리아' 팬아트.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요소, 약간 과장되게 말한다면 인생을 바꾸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타인과의 인연, 감명 받은 명언, 발전의욕을 부추기는 작은 계기 등.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책을 접하면서 이루어졌다면, 10년이 지난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지속될 것이 예상된다면, 그 책은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있어 [드래곤 라자](이하 DR)가 바로 그런 의미이다.
 DR을 처음 접한 것은 운 좋게도 거의 출간 직후였던, 고등학생 때였다. 근처 단골 책방에 가서 여느 때처럼 책을 고르는데, 뭘 봐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중에 주인아저씨가 이 책이 이번에 새로 나왔는데, 잘 나간다고 권해주었던 것이다. [드래곤 라자], 라는 낯선 제목.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와 닿지 않던 뒤표지 짤막한 소개. 일단 모험하는 셈 치고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면서…… 세 페이지도 넘어가기 전에 깨달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첫 단락이 끝나면서. 주인공 후치의 ‘아마 오늘 밤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은 우리 영주님 말고 한 사람 더 있을 것이다.’(기억에 의존했다는 점을 감안해주시길.)라는 문장까지 읽었을 때, 과장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와, 이거 진짜 괜찮겠구나― 라는. 소위 “삘”이 통했다고 해야 하나? 몇 장 읽지 않고 그런 기분이 든 책은 지금까지는 DR이 유일하다.
 누구나 취향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에 책이 많고 많지만, 그 취향에 딱 맞는 책을 찾기란 의외로 어렵다. 그 전까지의 나 역시 나름대로 책을 많이 접했지만 어느 정도의 선은 있었다. 그런데 DR은 그 선을 보란 듯이 한 번에 뛰어넘어 버렸다. 만에 하나 읽고서 남는 건 웃음뿐이라 해도 기억에 오래 남는 책이었을 것이다. 내 취향에 200% 맞는 유머 역시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외의 다른 감정들 ― 슬픔, 감동, 사랑, 설렘 등 ― 또한 놀랄 만큼 확 빠져들도록 만들었으며, ‘인간의 자아에 대한 성찰.’이란 주제에 가서는 생각도 못한 기분 좋은 충격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이러저러하니 어떻고, 기타 등등 지루한 말들을 지리멸렬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내용에 극히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인물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달리고, 가슴이 찡해오는 동안 어느새 그것을 깨닫게 되고 마는 것이다.
 재미가 있다, 없다의 수준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책은 지금도 흔하지 않다. 그런 점에 있어서 DR은 장르의 틀을 뛰어넘었고 ‘판타지’가 아닌 환상‘문학’이란 표현을 가능하도록 하는 출발점이자 모범적인 예로써 존재한다. 좁은 기준에서는 취향에 믿기지 않을 만큼 딱 맞기 때문에, 그리고 넓은 기준에서는 방금 언급한 그런 이유 때문에 DR을 아낄 수밖에 없고 이영도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고 타자님의 다른 작품들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DR과는 다르지만 어버이가 같은 만큼, 그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느낌들은 동일하게 갖고 있으니까.)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 삶의 일부분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책. 작가가 다른 직업이 아니라 소설가를 택해준 것에 감사하고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존재함으로써 그 감사의 마음을 일부나마 전할 수 있음에 즐거울 수 있는 책. 당시로서는 큰 모험임에도 출간을 무릅써서 통신연재로 보지 못한 나도 접할 수 있도록 해 준 출판사에 감사하고 연예인도 아닌 출판사의 팬클럽에 들고 싶다는 농담까지 진심으로 하게 만들어준 책.
 이는 이영도 라는 작가의 모든 작품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처음이자 최초이자 시작이기에, [드래곤 라자]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장황하고 횡설수설, 말이 많아졌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내게는 이렇게 ‘미칠’만큼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자랑 혹은 내가 괜히 미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해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 DR을 읽지 못한 사람들이 이 글을 볼 경우를 염두에 둔 미흡하나마 열정만은 뒤지지 않는 추천이거나.
 [드래곤 라자]라는 책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뛰어난지, 얼마나― 마음에 와 닿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부러워할 것이다. 삶의 즐거움이 아직 하나 더 남았으니까. 그리고 안타깝게 여길 것이다. 출간된 지 10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왜 진작 읽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기분은 비단 사람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니었다. 아닐 수 있다. 이 말을 과장, 허세, 망상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행운을 꼭 누려보시기를 바란다.

――― ID : 레아(물고기 레아)



 

 [드래곤 라자]10주년을 맞아 지난 몇 년간의 '좀비'화 과정을 돌이켜본다.

 대부분 그렇듯이 나 역시 이영도 작품을 접한 건 [드래곤 라자]가 처음이었지만 사실 거기에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지는 않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등으로 이미 한창 판타지 붐이 일어난 뒤인 2005년 경에야 뒤늦게 읽었으니, [드래곤 라자]가 국내 판타지 장르의 문을 열었던 10년 전의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웠으리라. 더불어 내 가치관 혹은 취향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 않은 탓도 있는데, 지금은 정겨워졌지만 많은 영어 사용이나 후치의 독백 등이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분해서 다음 작품에 곧장 손 뻗을 만큼 재밌고 신선했다. 그 때도 톨킨이 북유럽 신화를 재해석했듯 이 작가도 톨킨 세계관을 멋지게 재탄생시켰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퓨처 워커]에 대한 감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운차이의 개그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웃음) 데스나이트와의 전투 장면에서 처음으로 이영도 작품으로 감동을 받아보기도 했다. [폴라리스 랩소디]를 읽을 때부터 이영도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톨킨의 색깔이 없어진 특유의 신화적인 분위기와 개성 있는 인물들에 끌렸다. 그 중에서도 키 드레이번이라는 ‘침착하게 미친’ 인물이 매력적이었다. 지금도[폴라리스 랩소디]에 가장 애정이 간다.
 그렇지만 나를 본격 '좀비'로 만든 작품은 [눈물을 마시는 새]. 다듬어진 문체와 완성도 높은 전개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세계관이 내게는 압도적이었다. 이번에도 ‘침착하게 미친’ 인물인 케이건이 등장한 것과, 그 전까지 나타나던 여성우월주의가 변하고 영어 대신 순우리말을 사용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드라클’에 들어간 것도 그 무렵이었다. [피를 마시는 새]는 [드래곤 라자]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그 길이에 약간 애먹었는데, 지금은 길어서 만족한다.(웃음) 나를 감동시키는 장면이 여럿인, 두근거리는 작품이다. 그 외 단편들은 ‘이영도스러운’ 재미를 즐기며 읽었다.
 ‘좀비’로 활동하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공식 행사가 [드래곤 라자] 10주년 이벤트다. 입문이 늦어서 지금까지 놓친 게 많다는 점은 애독자로서 한이 크지만, 그렇기에 이번 이벤트, 특히 사인회를 겸한 다과회는 더욱 큰 기쁨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시험 기간 동안 눈길 안 주려고 애쓰느라 힘들었던 [그림자 자국]을 만끽하는 일뿐!

――― ID : 이리



 

 저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워낙에 좋아해서 만날 컴퓨터만 붙잡고 살았습니다.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었죠.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말입니다. 한날은 학교에서 친구가 보고 있는 책에 깊이 빠져서 말도 잘 안하는 겁니다. 무슨 책인가 봤더니 [드래곤 라자] 1권이더군요. 그땐 [드래곤 라자]가 얼마나 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책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입을 열고 말했습니다.
 ― 드래곤X라자?
 그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군요. 친구는 화를 냈습니다. 사실 제가 읽고 있던 책에 대해서 알지도 못한 채 막말을 했다면 저로서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무튼 친구는 열을 내며 [드래곤 라자]에 대해 열띤 연설을 펼쳤습니다. 네가 과연 이 책을 읽고도 제목에 대해 토를 달 수 있겠냐,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알고 있느냐 등등. 저는 그대로 친구가 다 읽은 뒤에 곧바로 독서를 강요당했죠. 그때 역시도 저는 책 읽는 걸 지지리도 싫어했습니다. 책만 보면 머리가 멍해지는 건 당연했고요. 그래서 읽는 척만 하고 말려고 했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단 한 번도 책을 진지하게 몰입해서 읽어본 경험이 없던 제가 책에 빠져들었었습니다. 학교에서 1권을 빠르게 독파해버린 후, 그 날 친구와 함께 대여점에 들러 몇 권을 더 빌렸습니다.(찔리는 문장이군요. 그래도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양장본으로 질렀으니 용서를.) 그때부터 낮과 밤을 친구와 함께 [드래곤 라자]에 빠져버렸습니다. 비는 시간마다 보고 또 보고. 약 3일 정도 만에 해치웠습니다. 책 한 권 안 읽던 제가 12권 장편 소설을 완독했다니.
 그때부터 저는 책보는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이영도 작가의 작품은 열이 나도록 팠고 그 기세로 다른 작가, 장르의 작품들도 양껏 읽었습니다. 책이란 게 한번 맛을 들이면 놓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고등학교 때 문득 저를 되돌아보니 어느새 저는 활자 중독에 걸려있었습니다. 손에 책이 없으면 신경이 민감해지는 그런 병 말입니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시기, 저는 교과서 보다 각종 서적에 모든 관심을 쏟아 부었지요. 이야기라는 세계에 매료됐기 때문에. 학생의 본분보다 독서를 중시한 게 굳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만큼 저는 책이라는 존재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있어 [드래곤 라자]는 이야기라는 크고 멋진 세계를 가르쳐준 결정적인 작품입니다. 어릴 때 읽던 동화책 이후로 ‘책이란 게 이렇게 재미있구나.’ 라는 걸 최초로 깨닫게 해준 책이지요. 덕분에 지금도 독서하는 때만이라도 모든 고민을 접어두고 책 읽는 즐거움에 빠지고는 합니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글도 조금씩 쓰고 있기도 하고요.)
 개인과 개인, 개인과 다수의 관계, 그리고 존재들 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와 관련되어 파생되는 관념 등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흥미로운 모험담과 전설 속에 녹아내어, 독자들이 작가가 의도한 바를 쉽게 이해하도록 풀어 놓은 점이 [드래곤 라자]의 가장 커다란 장점입니다. 요즘도 주제가 있는 글은 딱딱하고, 재미가 있는 글은 주제가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께 예나 지금이나 [드래곤 라자]는 경종을 울리기 충분한 작품이죠. 지금 와서 보면 현재 이영도 작가의 필력에 비해 허술한 면이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 라자]는 앞에서 말했듯 주제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독자로 하여금 그 이야기에 오랫동안 빠져들도록 하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선사한다.’
 PC통신 연재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드래곤 라자]에 열광하는 독자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드래곤 라자]의 주제는 여러 논문에서도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일 터요, [드래곤 라자]는 판타지, 환상문학이란 장르도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독서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보물을 찾는 끝없는 보물찾기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지뢰를 밟기도 별 볼일 없는 작품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최고의 보물은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죠.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독서의 처음부터 최고의 보물 중에 하나를 발견했으니까요. 약 6, 7년이 지난 현재, 밤을 새가며 [드래곤 라자] 한 장 한 장을 읽어갔던 그 때의 추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동이 되었습니다.

――― ID : 술펀하루



▲ 네이버 <이영도 공식 출판 카페>에 쏠(ssol)님이 올린 팬아트.  예전 앤솔러지 홍보용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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