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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호 "귀엽고 쓸데없는 문답"은 최근 장편, 단편 소설은 물론 장르문학 안내서까지 출간하신 곽재식 작가입니다.



곽재식 작가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추리 잡지미스테리아” 2호에 단편 소설범인이 탐정을 수사하다를 실었습니다. 40년대를 배경으로 한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할리우드 느와르 영화와 레이몬드 챈들러 소설로 대표 되는 40년대 범죄물을 흉내내면서도, 당시 정부 수립 직후 무렵의 혼란스러운 대한민국 풍경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미스테리아” 3호에는 그 속편 격인쓰레기를 비싼 값에 사다가 이어서 실릴 예정입니다.






1. 작업하면서 도움이 되었던 음식은 무엇이었습니까?


- 커피 가게에서 원고를 쓸 때에는 열량이 낮은 음료를 찾습니다. 살을 빼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자주 택하게 되는 것은 레몬맛 탄산수 입니다. 십 몇 년 전에 어디 여행 가서 처음 탄산수를 우연히 마셔 보고 정말 맛 없기 때문에 절대 마시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그걸 이렇게 매번 일부러 마시며 살게 될 줄은 결코 몰랐습니다.


 

 

2. 작업하면서 가장 방해됐던 인간이나 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


- 이 소설을 쓰기 전에 다른 엽편을 쓰던 때 일어난 일입니다. 여름이라서 팥빙수를 주문해 먹고 하려고 했는데, 팥빙수 한 숟가락을 먹기도 전에 잘못해서 팥빙수를 통째로 쏟았습니다. 팥과 얼음의 덩어리가 그대로 랩톱 키보드 위로 철퍼덕 쏟아 졌습니다. 팥 덩어리가 둔중하게 키보드 위로 덮쳐 쌓일 때 그 형체가 마귀의 발에 짓밟힌 악마의 검붉은 시체와 같았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저는 팥과 얼음을 수북하게 얹은 랩톱을 그대로 들고 가게 직원에게 찾아 가 이거 치우게 걸레를 달라고 했습니다. 커피를 내리던 가게 직원이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보자, 저절로히이이엨하던 소리를 냈습니다. 역시 인간은 본원적으로 선한 존재이며 남의 괴로움에 공감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잽싸게 얼음과 팥을 모두 치웠고, 몇 차례 확인을 해 보니 컴퓨터는 문제 없이 작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컴퓨터 자판 사이사이의 틈으로 말라붙은 설탕과 팥 조각들이 잔뜩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키는 누를 때 마다 그 사이에 팥 알갱이가 붙어 덜컥 거렸고, 어떤 팥 조각은 비틀어진 채 틈사이로 썩은 껍질을 내밀고 있어서 눈으로 보기에 매우 거슬렸습니다. 타이핑을 할 때 마다 문득문득 제대로 눌러지지 않는 것은 이번 소설의 원고를 쓸 때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정말로 원고 작업을 방해한 것은 불편함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도 자주 쓰는 키에는 팥 찌꺼기가 끼어 있지 않았고, 타이핑도 금세 바뀐 감각에 적응이 되었습니다. 정말 저주처럼 자꾸 마음을 빼앗아 갔던 문제는 그 팥 찌꺼기를 꺼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가끔 우연히 눈이 키와 키의 틈새로 가고 거기에 말라붙은 팥 조각이 보이면 정말 그걸 빼내고 싶었습니다. 참지 못하고 핀 끝트머리나 샤프 끝을 키 틈새에 집어 넣어 팥을 살살 꺼내 보면, 오래간만에 묘한 모양으로 먼지와 함께 굳은 지저분한 팥 조각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상쾌하고 개운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대로 그런 걸 한번 꺼낼 수록 이 키보드 틈새 어딘가에는 아직도 이런 지저분한 것이 곳곳에 끼어 있다는 생각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면 계속 더 많이 끄집어 내고 싶어졌습니다. 게다가 핀으로 팥 찌꺼기를 빼내려고 하면 자칫 실수로 그것이 다른 키 아래로 더 깊이 밀려 들어 가거나 크기가 너무 커서 틈에 걸려 잘 빠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끼어 버리는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그러면 또 그게 아쉬워서 더 팥 찌꺼기 빼내기에 매달리게 됩니다. 특히나 이렇게 쉽게 안 빠지고 걸리는 팥 부스러기일수록 크기가 큰 것이어서, 그걸 빼냈을 때 성취감과 그 기괴한 모양은 더 크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자꾸 팥 찌꺼기 빼내기에 달라 붙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키를 왕창 다 뜯어 내고 탈탈 털어서 모든 팥 찌꺼기들을 한번에 다 모조리 제거 했습니다. 그리고 키를 다시 하나하나 조립해 넣었습니다. 그 후로는 별 문제 없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도 누르고 있는 키보드 어느 한 구석에 썩어가는 설탕 발린 팥 한 조각이 끼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3. 작업하면서 도움이 된 음악은 무엇입니까?


- 일부러 40년대 하드 보일드, 느와르 이야기를 따라 하려고 했던 소설이었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도 그 배경에 빠져 보려고 당시 비슷한 이야기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 되었을 법한 노래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Stormy Weather”라든가, “Blue Moon” 같은 노래가 기억이 납니다.

 


 

4. 편집자에게 한 마디 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 추리 소설을 참 좋아하고 언제나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추리물 작가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든데, “그래도 재미는 있겠지라는 믿음 하나로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40년대말을 배경으로 옛날 느와르 영화를 흉내낸 소설을 써 보는 것은 몇 년 전부터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것이었는데, 덕분에 정말로 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이 책의 매력 포인트를 한 줄로 말씀해 주십시오.


- 한 시대를 후려 잡았던 필립 말로식 탐정 이야기란 바로 이런 분위기라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6. 특별히 고마운 장소는 어디입니까? 주로 가서 작업하신 카페라든가?


- 강남역 부근의 길거리 입니다. 걷다 보면 분명히 맨정신인 것 같은데 미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 때가 있는데, 많은 소설 소재를 떠올리게 됩니다.

 


 

7. 작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 3호의쓰레기를 비싼 값에 사다인물들도 좋지만, 한 명을 꼽으라면 2호에 실린범인이 탐정을 수사하다  남자 주인공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여자 주인공입니다. “그녀의 얼굴 살갗은 지금껏 평생 단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라는 묘사와 함께, 어두운 주인공의 사무실에 등장합니다.

 


 

8. 이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디입니까? 휴양지? 카페? 침대?


- 답답하고 캄캄한 퇴근 길 저녁에 전철에서 한숨 돌리며 읽으면 어울릴 거라고 생각 합니다. 혹은, 무슨 재밌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 일 없이 퇴근한 맥빠진 금요일 저녁에, 벌써 밤이 찾아 왔지만 불은 켜져 있지 않은 거실에서, 베란다 바깥에서 비치는 불빛이 새어 들어 오고 멀리서 자동차 달리는 소리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는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 그 어두운 소파에 털썩 기대 앉아 쉬면서 읽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9. 작업하기 진짜 싫은 날 도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그래도 작업하기로 한 날이면 어쨌건 다만 한 줄이라도 씁니다. 한 줄이라도 쓰겠다고 붙잡으면 보통 그래도 한 문단 정도는 쓰게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어떤 때에는 그렇게 시작했다가 잘 풀려서 끝을 보기도 합니다.

 


 

10. 교정본이 나오면 나는 일단 ____을 한다.


- 교정본이 나오면 바로 다시 교정을 봅니다. 저는 제가 쓴 소설을 독자 입장에서 즐기며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11. 이 책은 누구에게 선물하면 좋겠습니까?


- 한때 추리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 범죄, 추리물에 막연히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틈틈히 볼 읽을 거리로 선물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문답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성한 작품 활동 응원하며 다음 작품도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댓글 2
  • No Profile
    박애진 15.10.01 00:51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특히 2번이요. 재식님 입장에선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너무 실감나서, 웃프다는 게 이런 걸까요. ^^;;

  • 박애진님께
    No Profile
    곽재식 15.10.10 20:17 댓글

    지금 이 순간까지 의식하기 시작하면 자꾸 키보드 하나 하나를 누를 때 마다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