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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이 한참 떠들썩하던 1999년을 지나 밀레니엄이 도래하고, 나는 지인의 소개로 적어, 김주영을 만났다. 당시 내 나이 열다섯, 그의 나이 스물 셋의 일이었다.


이렇게 써 놓으니 제목을 ‘운명적 만남 : 김주영♡양원영 사랑의 에세이’나 <스티브 잡스>처럼 ‘소설 김주영’ 이렇게 지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그렇다. 연애소설 도입처럼 느껴지더라도 참아 달라. 사람 일이란 게 참 알 수 없는 탓이다. 당시에 이토록 오래 친분을 유지할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나도 그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터다.

웹진 거울 10주년 동안 단독 특집을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그의 특집호를 맞이하여, 진통 끝에 태어난 <보름달 징크스>의 축하를 겸하여 누구의 낯이 부끄러울지 모를 글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소화 잘 되고 맛있는 고기를 접대 받고 사심 가득하여 쓰는 글이 결코 아님을 미리 언급해 둔다. 그렇다고 이 글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일이 마땅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기억이란 미화되고 부풀려지기 마련 아니던가. 결론이 뭐냐고? 판단은 독자의 몫.

김주영을 처음 만난 사람들은 그의 차가운 인상과 낮은 목소리에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안경 너머의 날카로운 눈매와 체구에서 작아도 딱 강한 사람이란 아우라가 느껴진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 그게 내가 그를 만난 첫인상이다. 시작하자마자 물고 빨고 핥느냐 할 사람들을 위해 변명한다. 당시 내가 한창 중2병을 앓던 진짜 중2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면 이 표현도 과하지 않다. 당시 감성으로 그를 묘사하라면, 너무 길어 적지 않겠다. 흑역사는 지켜져야 하는 법 아닌가, 알 만한 사람들이. 허허.
생김새나 아우라만 강하냐면 또 아니다. 김주영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문체와 내용에서 느껴지는 강건함을 알 테고, 그를 오래 안 사람이라면 심신 모두 강한 사람이기에 표면에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걸음걸이, 앉아있는 자세 무엇 하나 빈틈이 없다. 사람이 강하면 그를 대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사실 이런 인상이 그와 친해지는 데에 자주 장애가 되곤 한다. 그도 인정하고 자주 고충을 털어놓는 바다. 딜레마다. 누구나 바라고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과 실제 보이는 모습이 다르지 않은가.

지금에 와서 이런저런 점들을 하나하나 돌이키다보면 그가 강한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납득되곤 한다. 그러나 사람은 만나보고 교제하며 알아가도 알듯 말듯 한 것이니, 여기에 그러한 구구절절한 사정일랑 적어봤자 큰 의미는 없지 싶다.


김주영을 관통하는 코드를 굳이 생각해보면, 나이와 함께 달라져온 그의 입버릇이 떠오르곤 한다. ‘우주의 방정식’, ‘장단(長短)’, ‘고독’. 그와 내가 나눈 무수히 많은 말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세 가지 단어다. 
우주의 방정식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와 만날 때부터 이미 수학 포기자였으며 방정식이란 3차 방정식 기본 문제나 풀다가 손 놓았다보니 방정식이라면 골치부터 아프다. 그래서 (우주 방정식의) 정확히 의미를 뭐라 설명하기가 궁하다. 다만 내가 아는 바론 그것은 그의 이상이며, 지평이다. 김주영하면 SF가 먼저 떠오르는 때가 있었다.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는 SF 작가들이 우주에 대한 경외를 그들만의 언어로 얼마나 많이 써왔는지 우리는 이미 안다. 아마도 ‘우주 방정식’은 종종 모순과 모호함이 없는 수학적 미학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하는 그가 우주와 삶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는 그만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장단(長短)이란 말은 그가 현실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장단점을 직시하고 체감할 때마다 자주 입에 머물렀다. 까마득한 지평 너머와 이상을 바라기보다 세상을 살아가고 부대끼며 주변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였다. 직장이나 학문분야에서 마주하는 현실과 사회인으로 부대끼는 사람들이 영향을 끼쳤을 터다.
그래서 ‘고독’이란 화두가 이상과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알고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오랜 연마의 시간 끝에 그는 자신 속에서 고독을 발굴해냈다. 최근 그의 글에서 상실과 실종이란 테마가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헌데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의 첫 장편 출간작인 <그의 이름은 나호라 한다>의 주인공 나호는 고독의 결정체이자 상징 같은 인물 아니었던가. 나호 이야기의 어느 에피소드든, 그 에피소드의 여운에는 시린 쓸쓸함이 느껴지는데 말이다.

그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말했다. 한참 초기 한국 판타지가 출간되기 시작할 무렵 좋은 출판사와 좋은 편집자를 만나 책을 내고, 수상도 했다고 말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 지금까지 잘 해내왔다고 돌이키곤 한다. 비록 엄청난 인기를 누린, 소위 말하는 히트 친 작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지금까지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넓히며 한 글자 한 글자에 이야기를 자아왔다. 나는 곧잘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곤 하는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더라도 직감적으로 그러하리라 여겨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을 두고 업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나, 굳이 업이라 표현한다면 김주영은 글을 써야하는 업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글이 그를 간택하기 전에 그가 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선택. 결국 선택의 문제다. 그는 최근까지도 많은 선택 사이에서 방황했다. 얼마 전 만났을 때는 선택에 대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후련하고, 밝았다. 살아가는 동안 그는 또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할 터다. 하지만 그가 글을 손에서 놓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다. 그가 글을 선택했기 때문에.

뭔가 구구절절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소중한 것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치를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 방향을 바꿔서 정말 사랑의 에세이라도 쓸까 싶지만 과한 오해가 무서우니 나만의 키티 일기장에나 쓰고 좋아해야겠다. 김주영의 강한 모습 이면에 자리한 여성스럽고 우아한 모습을 또 적으려니 중매쟁이가 된 기분이라 적지 않겠다. 이런, 정말 적을 게 없잖아?

그럼 양원영에게 김주영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나 써야겠다. 보통 인터뷰나 어떤 사람에 대해 쓸 때 말미에 꼭 이런 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와 나 사이에는 독특한 호칭이 있다. 나는 그를 함장님이라고 부르고, 그는 나를 부함장이라고 부른다. 조조와 그의 장자방이던 순욱의 관계 같은데 이건 결말이 안 좋으니 치워두자. 무엇보다 내가 책사 타입이냐면 아니다. 장수면 모를까. 
함장과 부함장 호칭은 내가 그와 한참 교우를 쌓아가던 이십대 초반에, 우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대화하던 도중에 나왔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위치한 베스타 찜질방에서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였다. 
“다른 차원의 저 하늘 어딘가에서 우리가 우주함선을 타고 유영하고 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그가 말했다. “그럼 당신이 함장이고 내가 부함장이겠군요.” 내가 답했다. “함선 이름은 베스타로 합시다!” “그거 좋습니다!” 거리에서 껄껄대며 웃고 작당한 뒤로 그런 호칭이 굳어졌다. 때때로 전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함장님, 하고 말했다가 주위 사람들의 묘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사람 연이 그저 엮임이 아니라면 정말로 어느 세상에선 우리가 함선을 몰고 다닐 수도 있지 않겠나.
어린 나이에, 그를 잘 알지 못했던 때에는 작가 김주영을 보다 의식했다. 당연한 일인 것이 가장 표면에 드러난 모습이 그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선망과 존경심이었다. 지금은 인간 김주영을 작가 김주영 이전에 의식한다. 여전히 선망과 존경심이다. 방향성은 다르다. 감히 이 관계를 벗이라 정의하고 싶다. 그는 나를 손아랫사람이나 후배로 여기지 않았고, 언제나 자신과 같은 선상에서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다. 뜻을 함께 나누는 벗이라 여겼다. 그래서 나는 그가 글로, 혹은 글이 아닌 일로 이룩하는 모든 일이 기껍고 좋다. 사심 없이 축하하고 내 일 마냥 행복하다. 더욱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좋은 모티브를 주는 사람이다. 문우지정(文友之情)이라면 이만한 게 없다.

더 썼다간 정말 사랑 고백 비슷한 뭔가가 되거나 결론을 “그러니 김주영에게 한 표를!”이라고 내야할 것 같으니 이쯤 접어야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출간을 축하하고, 얼마 후로 예정된 필자의 출간을 기념하여 아래와 같은 계약을 체결하였으니, 이 글을 보는 모두를 공증인으로 강제 임명하는 바이다. 이미 나는 철마 한우 축제에서 그에게 한우 대접을 하기로 예약을 한 상태다. 우리가 이렇게 정답게 지낸다. 좋은 말 많이 썼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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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보름달 징크스> 꼭 사서 보시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책이니 널리널리 사랑받기를.


2013. 9. 29 부함장 양원영



공상가(空想家)의 공(空)은 영원(永遠)한 결핍(缺乏)의 각인(刻印)일지니
그대, 삼라만상(森羅萬象)에 아로새긴 고독(孤獨)의 주인(主人)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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