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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홍대 Cafe:U
합평작 최진석, {한국 장르문학을 둘러싼 정황―장르 작가들이 문학상을 타기까지}, [B평] 中, 거울, 2011.
참가자 진아(사회), pena, toonism, 배명훈, 라키난, 아프락사스, 앤윈, 정세랑, 한별(기록)



0. 비평 합평을 시작하겠습니다

1월 21일 [덧니가 보고 싶어] 합평회 직후, 아프락사스님이 [B평]에 수록하신 {한국 장르문학을 둘러싼 정황―장르 작가들이 문학상을 타기까지} 합평회가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이전 합평회와 앞뒤가 이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 부분은 독자 분들께 혼란을 드리지 않기 위해 다듬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두 편의 녹취록을 한 번에 보여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나눠 게재하게 된 점은 다소 아쉽군요.
오랜만에 열린 기사 합평회인지라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 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변을 따로 두지 않고 저자도 토론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준비가 미흡할 수 있어 고민되던 부분이었는데, 선뜻 나셔주신 아프락사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Ⅰ. 한국 장르문학이 처한 현실

ⅰ. 의식하게 됩니다

라키난 아까 『덧니가 보고 싶어』 합평회 마지막 부분에 장르문학을 대하는 편협함이라든가 장르문학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등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잖아요? 그런 시야에 대해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프락사스 장르 밖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문단 쪽에서 주로 받아지는 글이 그런 이상한 오류를 저지르고 있으면 우리가 분노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데, 그쪽에서도 이른바 ‘듣보잡’에 속하는 비평가의 의견을 가지고 우리가 분노하는 건 이상하다는 거죠. 과민반응이죠.

pena 그런 것도 있어요. 출판사에서 번역서를 만들면 외서 뒤표지나 아마존에서 비평을 긁어서 띠지 같은 곳에 넣는단 말이에요. 거기서는 듣보잡일지도 모르는 어떤 잡지의 찬사를 받았으면 그 찬사를 조금 더 포장하고 번역해서 올린단 말이에요. 그 반대의 경우가 나온 것 같은 느낌? 신경숙 씨의 소설이 아마존에서 일개 독자의 평이긴 하지만 어쨌든 욕을 먹었음, 뭐 그런 느낌으로 욕한 게 아니었을까요.

아프락사스 미국 독자의 반응이 되는 거죠, 그게.

진아 ‘내가 아는 여자가 이렇더라’ 하는 걸 ‘여자들은 다 그래’ 하는 것처럼,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에 비평가의 대표가 되어버리는 거죠.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 사람이 우호적으로 평을 했으면 어땠을까요? 굉장히 많은 게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정세랑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공식적인 지면에다 무얼 쓰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있는 일이에요. 아무리 막 등단한 평론가가 쓴 작은 리뷰라도 은근히 다들 읽고 있어요.

진아 블로그 하나에 올라온 글에도 작가들은 신경 쓰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하물며 비평가인데. 그 사람이 그쪽에서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서 설득력을 가지고 있든 간에 타이틀이 비평가고.

아프락사스 작가가 비평가의 견해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시대가 되어버린 탓도 있어요. 비평가가 무슨 권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작가와 비평가가 각각 다루는 영역이 완전히 분리되어버렸기 때문에. 요즘은 작가가 ‘내 글을 그렇게 읽으면 안 되지!’ 라고 말 할 수 없잖아요 앤 라이스가 아마존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악플에 대한 반박을 썼다가 조롱당한 사건을 봤어요. 작가는 일단 창작으로 말해야 하고, 작가가 자기 글에 대해 어떤 견해를 표출하는 건 좀 낯간지럽게 보이는 시대인 거죠. 결국 비평가의 견해에 맞서는 건 좋든 싫든 비평가가 해야 해요. 그런데 ‘이쪽’에는 비평가가 없잖아요?

진아 이 글을 통해서 좋은 지점을 이야기하셨다고 생각해요. 그 비평가가 그렇게 대단한 비평가가 아니라는 걸 누가 이야기해줄 필요도 있었고, 모르잖아요 사실. 그 사람 한 명을 반박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비평의 계보를 훑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당하게 반론할 수 있는, 훈련 받은 비평가가 필요하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 준 것 같아요.

아프락사스 슬슬 나오기 시작했을 거예요. 논문 검색을 해보면 르귄 같은 작가들을 주제로 논문을 쓴 사람들이 나오더라고요.

ⅱ. 비평의 무게

배명훈 질문이 있는데, 비평 쪽에서는 누가 비평을 했느냐가 중요한가요? 유명하지 않은 연구자가 쓰면 비평의 가치가 떨어지나요?

아프락사스 그쪽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논리냐 아니냐의 문제에요. 아무도 보지 않는 학술지들도 허다하니까요.

배명훈 그 글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논리로 쓰였나요? 제가 아는 학계에서는 논리적으로 맞는 글이고 학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이면 누가 썼든 그건 학계의 입장일 수 있는데.

앤윈 그건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 문학 쪽에서는 저자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매우 중요해요. 「안녕 인공존재」 뒤에 비평을 쓴 게 신형철 씨였죠? 그 비평이 나오기 전까지 ‘최근 주목하고 있는 젊은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제가 배명훈 씨를 이야기하면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누구냐는 식의 반응이었는데, 신형철 씨가 이번에 누군가를 평을 했다는 말이 돌고 나자 모두가 「안녕 인공존재」를 읽고 나서는 그 비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 평론가들이 긍정적으로 평을 했다면 그 소설의 입지는 확 올라가요.

정세랑 그런 점에서 평론가들은 권력이 있어요.

앤윈 그걸 일반적으로 문학권력이라고 칭하는 거죠.

진아 시발점이 그랬다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건데, 안타깝게도…. 이쪽의 열등감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게, 어떤 체제가 부럽긴 하잖아요. 우리도 그런 체제를 원하는 게 분명히 있단 말이에요.

정세랑 지면이 많죠.

진아 네, 지면이 많고, 훈련 받은 비평가에게 비평을 받을 수 있고.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세계가 이미 있다면 그 세계를 영입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내 글에 사용된 문법이나 어떤 것 이전에 글로써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다고 생각해요.

ⅲ. 거인의 어깨가 필요한데

라키난 비평의 부재가 담론의 부재로 이어지는데, 이 글에서 담론의 부재가 특히 SF계 안에서 맥이 뚝뚝 끊겨 있다고 분석하셨잖아요? 그 의견에 동의하거든요. 문단 같은 경우에는 비평이 계속 생산되고 노출되면서 담론이 만들어지는데, SF 쪽은 그런 것 없이 그냥 작품만 나오니까 작품으로서만 이야기되고, 그 이상은 이야기되지 않기 때문에 논의가 축적되지 않고 사라지는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런 점에서도 비평의 필요성이 있는 것 같아요.

배명훈 저도 많이 느껴요. 저 이전에 SF 작가가 없었던 게 아닌데 어느 매체랑 인터뷰를 하면 ‘SF란 무엇인가’에 대한 첫 질문을 받게 되요.

앤윈 뭐라 그래야할까, 제가 논문 준비를 하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통시적인 글이 거의 없어요. 한국 장르문학의 세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을 찾아보기가 되게 힘들어요. ‘이 시기의 한국 장르문학은 이런 경향성을 보인다’ 이런 걸 찾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아예 인프라 구축이 안 되어있다는 느낌이에요.

pena 아프락사스님도 쓰면서 그러셨다는 것 같던데….

진아 자료 찾기가 되게 힘드셨다고.

앤윈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읽고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 논문에 축복을 내려주시는군요!

(웃음)

아프락사스 한국의 판타지나 SF 쪽에 대해 쓴 글 자체는 꽤 많이 있었어요. 문제는 그 글들이 그 전에 나온 글들을 참고하지 않은 상태로 나온 글들이라는 거죠. 문단 쪽에서는 각종 학술 DB만 검색하면 심지어 세로쓰기로 한 논문까지 다 나오거든요. 앞 세대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참고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앞 세대가 고생고생하며 이룬 경지를 후속 세대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달성할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SF나 판타지는 그 DB가 없어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는데 하이텔이 망하면서 글이 다 없어지고, <정크SF>가 없어지면서 글이 다 없어지고 하는 식이었으니까요. 그러면 그런 커뮤니티들이 없어진 다음에 새롭게 이 장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그냥 맨땅에서 시작해야 하는 거죠. 예전 팬덤이 초짜시절 저질렀던 오류들을 그대로 반복하게 되요. 결국 예전부터 꾸준히 자기 나름의 DB를 쌓아온 소수의 인원이 아니라면 뭔가 새롭게 진전된 논의를 내놓기 어려운 구조인 거죠.

라키난 지금 이야기하고 있던 게 비평의 부재, 담론의 부재잖아요? 비평이 있어야 노출이 되고 쌓이는 게 있고, 논의를 하면서 담론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이 비평을 노출하시고, 그 다음에 반응을 받아서 하나를 더 쓰세요. (웃음)

한별 지금까지 필요했던 게 그런 거잖아요.

진아 네, 이런 게 굉장히 필요했죠.


Ⅱ. 분석과 목표점 설정

ⅰ. 판타지와 SF

진아 전 이 글에 재미있는 것들이 좀 있었어요. SF 쪽은 주류문단에 대해서 ‘니들이 뭘 아냐?’ 그러고 판타지 쪽은 ‘우리도 문학입니다!’하고 읍소하는 걸 잘 지적하셨어요. 진짜 그런 게 있어요. SF는 기본적으로 외국문학이었기 때문에.

pena 니들이 PKD를 읽어봤나?

앤윈 그런 정서!

(웃음)

진아 사대주의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게, 훌륭한 작품들인 건 사실이기 때문에…. 반면 판타지는 내수가 있었는데, 그게 하필 또 대여점이었고. 빌려보는 책 = 싼 책이라는 개념이 생겼어요.

앤윈 ‘양판소’란 말을 듣기 시작했고.

진아 출판사에서 밀어내기를 해야 하는 거예요. 책이 빨리 나와서 다른 출판사 책을 대여점에서 빨리 밀어내야 자기 출판사 책이 들어가니까. 더 길게, 더 멀리 나갈 수도 있었던 작가들을 너무 우려먹으면서 소진시킨 면도 있는 거죠. 첫 작품부터 누가 그렇게 대단한 명작을 쓰겠어요?

앤윈 멋있는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작품들이 뒤로 가면 갈수록 성겨지는 경우가 되게 많죠. 저는 그런 책들을 싫어하지 않아요. 안타까운 건, 3~4권이 되면 얼마나 편집자가 이 사람을 쪼아댔을까 느껴지는, 성긴 면들이 드러난다는 거죠.

진아 판타지 쪽의 분노도 정당한 게,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돈을 버는 장르문학 작가의 90% 이상이 판타지 작가라고 들었거든요. 그걸 인정하고 존중해줄 필요도 있어요. 전업 작가로 계속 살아간다는 것,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 문제는, 저는 환상문학 작가 본인들도 본인이 쓰고 있는 게 그렇게 대단한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별 애당초 독자들이 킬링타임용으로 소비하니까요.

진아 어떻게 만날 존재를 고뇌하기만 해요? 분명 세상에는 킬링타임용 책이란 것도 필요해요. 제가 보기에 판타지 작가들의 문단문학에 대한 열등감 중 하나는 본인들도 자신감이 없다는 거예요.

아프락사스 네, 그게 서론 내용이었어요.

ⅱ. 선민의식의 양날

진아 그래서 저는 판타지가 약간 SF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고급문학이라는 걸 인식시킬 수 있는 어떤 것들이 필요해요.

toonism 4~5년 전에 <리딩 판타지>라는 사이트 사람들과 오프라인 모임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진아님이 말씀하신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표현이 웃기긴 하지만, SF는 독자들이 고급문학으로 인식하는데 판타지는 소비하기만 하는 문학으로 인식이 되어 있다, 그래서 SF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생각했거든요. 저는 오히려 판타지가 부러웠어요. 어쨌든 자기가 판타지를 읽고 있다고 인식하고 읽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SF는 별로 없잖아요. SF가 뭔지 개념도 안 잡힌 경우도 많고.

진아 그 선민의식이 소수의 독자들을 데리고 오늘날까지 오게 만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힘든 상황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예요.

앤윈 맞아요. 그건 사실이에요.

toonism 국내에 SF 작가라고 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인식하는 거겠지만, 해외에서 좋은 SF들이 이미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어서 그보다 못한 건 SF라고 보질 않아버리는 거예요. 작가가 스스로 SF라고 쓴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그게 SF인지 아닌지를 독자가 결정한 다음에 아니라고 생각하면 눈 밖으로 빼버리더라고요. 저는 SF&판타지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작품이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작가가 SF라고 냈으면 무조건 도서관에 들여놓자’고 주장했거든요. 내부적으로 반발이 좀 있어요. 허무맹랑하고 유치한 작품들이 되게 많아요, 많은데, 이런 작품들도 어쨌든 SF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왔다는 걸 독자들이 용인했으면 좋겠는데 못 견뎌요. SF라는 건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툭 튀어나오지 않으면 인정을 못 받아요.

배명훈 그 이야기를 옛날에 대담하면서 한 적 있어요. 형식적 기준, 미학적 기준 이런 것들이 있는데, 장르 기준 자체가 형식적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경이감을 일으키거나 과학적 내용이나 형식이 딱 맞아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두 개 다 신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앤윈 맞아요.

정세랑 맞다, 맞다.

배명훈 경이감을 일으킨다는 건, 정말, 아무튼 훌륭한 작가거든요.

진아 저도 합평회 때 ‘이건 SF가 아니야!’라는 공격을 받아 본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게, 그런 면에서 SF팬들의 굉장한 완강함을 느껴요. 사실 SF도 수많은 하위 장르가 있는데.  

toonism 제가 안타까운 게 그거에요. 추리소설이나 로맨스소설은 독자들이 굉장히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요. 사극이든 SF든, 어떤 세계나 어떤 시간대에서 이야기를 해도 거기에 미스터리한 요소가 들어가면 추리소설이라고 받아들여요. 로맨스도 마찬가지로 어쨌든 등장인물들이 연애를 하기만 하면 로맨스라는 품에 안아요. 판타지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많이 끌어안는데, SF는 유독 엄밀하게 깎아낸 다음에 SF적 요소가 아닌 것들이 남아있으면 SF가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더라고요.

진아 모순적인데, SF 팬덤이 선민의식을 가진 소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기도 했지만 그 선민의식 때문에 확장도 못 하고 있어요.

라키난 SF 팬의 완고함을 이겨야 하는데, 한편 이 SF 팬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인데다가 많은 사람들은 SF가 있는지조차 모르거든요. 그래서 일단 그 기준선을 잡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선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면 지금은 그 선민의식을 없애야 할 때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나요?

아프락사스 저는 한국 SF 팬덤의 자신감이나 냉소보다 차라리 한국 판타지 독자들의 열등감이나 읍소가 더 건강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한국 판타지 팬덤은 한국 소설을 보고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SF 팬덤은 그게 아니거든요. 외국 작품 보면서 외국 거 잘났으니까 우리도 잘났음, 이게 무슨 상관이에요.

ⅲ. 한국의 SF

아프락사스 기본적으로 한국 SF 독자들은 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SF 소설을 보는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 나오는 SF가 소설 밖에 없으니까 보는 거죠. 영상물은 기껏해야 심형래 감독 작품 밖에 없고, 만화는 좀 다르기야 한데… 사실상 소설 밖에 없으니까 설령 문학에 관심이 없어도 문학에 관심이 많은 척 하게 되요. 그러다보니까 팬덤이 뭐가 좋은 문학인가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면 <쿼런틴>이 걸작인 건 기본적으로 영미권 하드SF 팬덤의 기준에서인데, 그 기준이 과연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냐 하는 거죠.

진아 그건 잠깐, 이상한 논리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걸작이냐 거기서 걸작이냐가 아니라 책을 읽었을 때 걸작이면 그 자체가 걸작인 거죠.

아프락사스 아, 말을 잘못했네요. 전 문학 작품이 작가의 창작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어 공동체의 공동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어로 쓴 문학 작품, 다시 말해 한국문학은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읽히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면 한국문학이 적어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다른 나라와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한국 SF나 판타지에 대한 평가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진아 아, 맞아요, 이 글에서 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순수문학, 혹은 주류문단이 우리나라의 주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가 격변하고 변화하고 사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학으로 그걸 풀어내려는 노력을 해왔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환상문학이나 무협지는 대중적으로 굉장히 사랑을 받았는데도 계속 하위문화라는 인식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사회변화 같은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무심했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에요.

아프락사스 미국 SF를 평가하는 기준을 무조건적으로 한국 작품에 적용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똑같은 시간여행이란 소재로 미국에서는 커트 보네거트가 <제5도살잘>을 썼죠. 한국에서는 김보영이라는 작가가 <0과 1 사이>를 썼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제5도살장>보다는 <0과 1 사이>가 더 깊게 인상에 남았거든요. 그건 <제5도살장>보다는 <0과 1 사이>에 제가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제2차세계대전을 직접 겪었거나 그 기억을 물려받은 사람들이야 <제5도살장>을 더 높게 치겠지만, 저야 그렇진 않으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SF고, 좋은 소설이고, 좋은 문학이다’ 쯤 되겠네요. 하지만 한국 SF 팬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배명훈 국제정치학이나 사회학 쪽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의 정체성이 ‘국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아니면 ‘아시아’에 두고 있는가, ‘지역사회’에 두고 있는가 하는 거죠. SF 팬의 경우 준거로 삼는 공동체가 ‘지구인’인 경향이 있어요. 지구 안의 더 작은 지역이 아니라 지구 자체여서 2차대전이 남의 경험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그런 경향이 있는데, 나쁜 건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진아 저도 명훈님 말에 동의해요. 너무 거친 이야기긴 한데, 순문학은 인간과 사회의 소외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SF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란 존재가 어디서 왔는가를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세계 자체가 지구고, 우주고, 은하수고. 판타지 같은 경우에는 한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표현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런 작품‘만’ 있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는 거죠. 지금 당장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 사회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지나치게 결여되어 있었죠.

배명훈 저는 세계인으로서의 독자와 한국인으로서의 독자 양쪽을 다 인식하고 있는데요, SF 작가들은 비교적 한국문학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적은 것 같아요. 외국에서 나오고 있는 SF들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면서 그 뒤에 무언가를 보태고 있다고 생각하지, 이걸 가지고 한국문학의 무얼 해야 되겠다는 의식 자체가 없어서… 그런 면에서는 우리한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면이 있어요. 결국 한국말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 분명히 반대쪽도 인식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쓰는 이야기에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가니까. 그 사이 지점에서 쓰고 있으니까, 틈새시장이 아닐까요? 그래서 주목받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많아요. 양쪽에서 보지 못하고 있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앤윈 준거집단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저는 사실 그걸 잘 모르겠어요. 제가 방금 명훈님이 말씀하신 스스로를 지구인으로 인지하는 독자의 대표적인 한 사람인 것 같은데, 저는 한국사회의 어떤 무언가와 외국소설에서 드러나는 어떤 무언가가 굉장히 닮았다고 느껴요. 저는 오히려 한국소설 중에서 ‘할리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압구정 다이어리> 같은 것들이 훨씬 멀게 느껴지고 다른 세계 이야기 같단 말이죠. 그러니까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경계라는 것에 신경 쓰는 게 아니라 그걸 무너트리는 것에 방점을 찍고 사고해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배명훈 경계선을 넘을 때 너무 의식하는데,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SF를 쓰기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해요. 경계가 너무 확실하게 그어져있으면 힘들거든요. 집에서 깨어나서 뭘 하고 있는데 이라크에 파병돼 있는 누군가와 연결이 된다,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자기 국경 밖으로 넘어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그걸 쉽게 써요. 그런데 우리는 예를 들어 달에 무슨 기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쓰려면 거기서 어떤 언어를 쓸까, 그리고 이름을 뭐로 해야 할까 부터 막히기 시작해요. 그래서 우리는 경계선에 대해서 막 쓰게 되거든요. 국경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진아 제가 배낭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경 넘는 걸 되게 어렵게 생각해요. 비자나 도장만 받으면 되는데. 표 검사 받듯이 슥 지나갈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선했어요, 개념 자체가.

배명훈 오히려 일제시대 소설을 보면 조선을 넘어서 만주나 일본에 가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경계가 없거든요? 그냥 슥 넘어가요. 제 생각에는 공간이 줄어드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불편함은 그런 글이 나왔을 때 문학 속의 세계를 없애버리고 나니까 작품이 안 읽힌다는 거죠. 그 부분이 안 읽히니까 가지고 있는 분석 틀을 가지고 인물분석만 하는 거예요.

아프락사스 제가 말한 건 공간감각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고요, 굳이 예를 든다면… 용산참사를 가지고 쓴 한국 SF를 보고 싶다는 거죠. 꼭 용산참사를 가지고 써야 한다는 건 아닌데… (웃음) 말하자면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겪었던 어떤 사건 현상 감정… 이런 것들을 담아봤으면 좋겠다는 거죠.


Ⅲ. 엇갈리는 현황

ⅰ. 넘보고 침 흘리기

진아 저 때문에 판타지 소설을 처음 접한 친구들을 보면 환상소설이 이런 건 줄 알았으면 그냥 읽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환상문학이나 SF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진입장벽이 있어요. 반대도 마찬가진 것 같아요, ‘이쪽’에서도 순문학은 지루하고 문장만 꼬고 다 재미없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젊은 작가상 수상단편집>을 보면 좋은 글이 많이 나오거든요. 안 읽는 건 피차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안 읽으면서 ‘니들은 왜 우리를 문학으로 안 보니?’라고 말을 하는데, 기본적인 문장력이 차이가 나는 소설이 있으니까….

앤윈 그건 뭐, 없다고 할 수 없죠.

진아 가끔 장르작가들 중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는데, 문장이 뭐가 중요하냐고…. 문어체로 써도 되고 구어체로 써도 되고 뭐든 상관은 없는데….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렇게 써도 돼요. 그런데, 그렇게 쓰면서 좋은 문학으로 평가 받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거죠. 문학적 완성도를 평가 받기 바란다면 그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자기가 뭘 바라는지는 알아야죠. 소설을 쓰는 사람이 ‘문장이 뭐가 중요해요,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되지’라고 말하면서 ‘왜 나는 문학으로 안 봐줘?’ 이건 아니거든요.

toonism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승부하려는 작가라면 이야기만으로 소비하는 독자들이 있는 시장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죠. 문장을 즐기는 시장에 들어가려면 문장을 공부할 수밖에 없는 거고.

앤윈 전 킬링타임용 소설도 웰메이드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킬링타임용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소설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문학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등단제도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아프락사스 열등의식이나 이런 것?

앤윈 네. 그걸 구분하는 가장 큰 선이 등단제도에 있는 것 같아요. 문장 이야기 하셨잖아요? 문단 작가들이 문장이 좋은 건 사실 당연해요, 정말 부당하다고 느끼는데, 어쨌든 그 사람들은 심사를 거쳤거든요. 그걸 통과하기 위해서 기술적으로 갈고 닦은 거예요.

진아 주제의식이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주제의식, 스토리텔링, 문장, 이것들이 다 합쳐졌을 때에만 어떤 문학 작품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지, 그 중에 하나…? 모르겠네요, 어려운 문제네. 갑자기 하나만 잘 되도 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웃음)

아프락사스 그거와 연관 지어서 이 원고에서 했던 이야기가, 요 근래에 문학상에서 판타지나 SF를 많이 뽑아주고 책 내주고 평 써주는 게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거였죠. 문단 쪽에서 판타지나 SF의 문학적 완성도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등단 제도의 권위가 계속 무너지고 있고, 점점 출판계가 상업주의적으로 흘러가다 보니까 SF나 판타지를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요.

진아 문제는 상업적인 성공을 원해서 문학상을 제정하고 했는데 문학상 대부분이… 판매량이 상금을 못 넘고 있거든요. 저는 요새 고액 공모전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지 않나…. 너무 한 방만 노려도….

배명훈 아까 기술 점수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뭐냐면, 문단 쪽에서 새 글을 발굴하는 시스템이 돌아가요. 이 시스템이 해야 하는 일 중 제일 중요한 게, 좋은 글이 있으면 발굴해서 무조건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사실 그게 걱정인 위태로운 상황이잖아요. 정말 좋은 글이 있으면 무조건 우리가 끌어올 수 있나? 저쪽은 희미하지만, 안 그럴 것 같지만, 심지어 자기네 영역이 아닌 곳까지 그 시스템이 작동을 하거든요. 누군가 한두 명은 발굴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글을 발굴해서 시스템 안에 끌어올 때 기술적으로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했는가 평가가 들어가는데, 거기서 좀 꼬이는 것 같아요. 자기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틀에 맞춰서 글을 들여오는 것 같아요. 다른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면 정말 흥행할 수 있는 글을 뽑았을 지도 모르는데, 장르적인 흥행요소가 더 많은 글인데도 문학계에서 받아들이기에 뭔가가 부족하면 결격되어 버리고. 그 부분에서 저는 삐긋삐긋하는 걸 느껴요. 언제 느끼느냐 하면, 편집자랑 교정지가 오가면 숨길 수가 없잖아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글을 보는 기준이 문장 하나하나에까지 다 보이고, 저도 문장 하나하나까지 다 보이면 ‘아 우리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작업을 했군요’라고. (웃음) 굉장히 불편한 게, 문단 쪽에서 가지고 있는 기술점수 평가기준은 업계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표준이에요.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제가 직접 이야기해야 해요. 이러이러한 기준으로 쓴 거라고 납득을 시켜야 하는 단계니까.

진아 명훈님이 많은 편집자를 납득시켜 주시면 후발주자들이 편하죠.

배명훈 그런데 혼자 하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일 년에 두 명씩 만나도 십 년이면 이십 명인데.

정세랑 납득시켜 놓으면 편집자가 그만두겠죠.

(웃음)

pena 같이 작업한 편집자가 중요한데 편집자가 오래 못 버티는 시장이거든요, 출판시장은.

배명훈 작업하면서 원고가 왔다갔다하면서 ‘이건 이런 식의 기준을 가지고 쓴 글이니까 무슨 기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면 받아들여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그 편집자가 사라진다니까요.

진아 거의 대부분의 장르 작가들이 자기가 무언가의 종결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편집자가 나가는 문제가 아니라, 다 없어져요 그냥. 편집자가 없기 이전에 출판사가 못 버텨요. 구조적으로 장르는 너무 상업적으로만 접근하다보니까… 이 세계도 똑같은데.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과 기타 등등이 필요한데. 장르는 더 쉬울 거야, 장르는 더 빨리 쓸 거야, 장르는 더 많이 팔릴 거야 하는 시각으로 접근하니까 출판사가 금방 접고. 1억 원으로 작가 한 열 명 키우는 데 쓰지, 그런 생각은 절대 안 하고.

정세랑 천만 원씩 주지 그냥.

진아 맞아.

배명훈 장르문학 쪽에서 성공하는 글의 기준이 분명히 있고, 그걸 잘 채우면서 보편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서 문단 쪽의 기준도 어느 정도 이상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장르적인 기준에서 100을 채운 사람이 있는데 문단의 기준을 통과하는 수준이 80이었다면 80점으로 점수가 매겨지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100이었던 글이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분명히 들거든요. 그 기준이 투쟁의 대상처럼 보이는 거죠. 문장이 뭐가 중요하냐는 이야기 저도 약간은 하는데, 안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문장이랑 문단에서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문장이 다르다는 거예요. 저는 복잡한 개념을 간결하게 딱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제일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쪽에서는 짧은 내용을 길게 묘사해서 마음으로 가는 문장을….

진아 문단의 ‘좋은 문장의 기준’은 저도 굉장히 별로라고 생각해요. 길고 꼬아야 하고 복잡하고, 그게 아닌데. 길고 아름다워 보이게 치장하고, 그게 아닌데.

배명훈 그 지점에서 미학적인 투쟁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내 글을 쓰면서 내 글에 대해서 그 미학적인 투쟁을 할 수는… 편집자 정도는 설득할 할 수 있지만.

진아 약간 장르문학 쪽 편을 들자면, 이쪽에서 문장을 신경 안 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주 뭐라고 할 만하지는 못한 게 문단에서 말하는 좋은 문장의 기준이 되게 이상해서. 좋은 문장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되게 안 좋은 방식으로 퍼트리고 있어요. 모든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 뿐이고 문장에 신경 안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그걸 말하는 것뿐인데….

배명훈 여러 가지 방식에서 그게 걸리는데, 실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랑 작업을 하면… 뭐 예를 들어, 어떤 장면을 묘사할 때 저 같으면 독자가 어떻게 느껴야 될 지까지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독자가 마음대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지점에서 주인공이 어떤 걸 느끼고 있는 지를 묘사를 하라고 계속 요구를 받아요.

앤윈 감정을 강요하는 느낌이죠.

배명훈 그런 부분이 걸려요. 논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미학적인 부분이라서. 서로 ‘으엑!’ 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죠.

ⅱ. 지금 당장 부족한 점들

라키난 이 글의 결론은 장르문학이 문학상을 받고 주류문학에 편입되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은 출판사가 새로운 출판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장르문학에 눈을 돌렸다, 그래서 문학상을 받은 게 꼭 긍정적인 건 아니라는 거잖아요? 확실히 안 좋은 쪽을 향하고 있다는 게 보이는 게, 제가 2009~2011년 출판된 책 종수를 세어 봤어요. 2010년에는 굉장히 많이 나왔거든요. 특히 단편집 같은 것들이. 그런데 2011년에는 거의 안 나왔거든요. 2010년에 책을 찍어내고 나서 더 이상 출판사에서는 투자를 안 하고, 장르문학 쪽에서 쌓여있던 건 더 이상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거나 느리게 만들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2011년에는 출판사가 ‘에이 뭐야’ 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진아 겨우 하나 뚫렸는데 또 막히고…. 어떻게 해야 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지 답이 없는 거예요.

pena 기본적으로 자본이 없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는 구조라든가 읽어낼 수 있는 문법이 사실상 종(種)이 다를 정도로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세계에서 새로운 문법이나 기준이나 장기적인 비전을 키울 만한 자본이 없어요 그냥. 그래서 자본이 있는 문단 쪽에 편입되려고 하고, 문단 쪽에서는 씨앗이 별로 없으니 장르 쪽에서 캐올까 한다 해서 뭐가 되진 않는 거죠. 이쪽에서는 저쪽에서 원하는 것만큼 빵 터트릴 수가 없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걸 그대로 할 수 없고.

진아 ‘나꼼수’를 들으면서 거기서 가장 마음에 든 말이, ‘내 생활의 모든 스트레스의 근본은 정치라는 걸 알아야 한다’ 에요. 일단 실업자가 없고 취직률이 높아서 돈을 벌어야 책을 사지. 모든 문제가 너무 얽히고설켜 있어서….

배명훈 유통체제랑 문화 권력이랑 학교 시스템이랑 등단제도랑 연결이 되어 있는데, 거기서 상징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문제가 되니까요. 우리 쪽의 비평가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 사람이 어디를 뚫으면 뚫을 수 있느냐? 사실 이 체제 자체가 자본이랑 시스템이랑 학교가 다 같이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들을 다 설득시켜야 한 명의 비평가를 등장시키게 되는 거죠. 그래야 이 사람이 우리 책의 표지를 제대로 달게 되는 상황이 되는데, 쉽지 않죠. 작가 하나하나가 등장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고.

진아 <거울> 신년 계획으로 기획자와 비평가를 키우기로 했는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프락사스 보며) 잡고 안 놔줄래. (웃음)

배명훈 ‘우리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뭐냐’는 것도 중요해요. 이런 식의 분석을 통해 ‘장르문학 쪽이랑 문단 쪽이랑 다르다’ 까지 이야기하고 나서, 그러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냐? 그 부분까지 가야 이야기를 하죠. 그걸 찾아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SF가 선민의식 때문에 안 받아들여진다고는 하지만 문단 쪽에서 제일 빨리 찾아오는 이유가 그것 같기도 해요. 연구든 축적이든 뭔가 하고 있어요. SF는 미학적으로 뭐다, 라는 이야기가 적어도 SF 팬들 사이에는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과학기술창작문예 수상작품집 1회 작품집>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몇 년 동안 공모전 같은 게 없다가 생기니까 심사 기준이라든지 심사평에 보면 ‘SF가 뭐다’에 대해서 막 적어놓은 거예요. 그 시점에 SF계에 있는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이상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 번 총정리를 한 것 같은 느낌? 그나마 그런 거라도 있으니까 저도 거기서 출발해서 다른 이야기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고.

진아 아프락사스님, 그래서 다음에는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SF는 왜 나올 수 없는가’라는 주제에 대해서 칼럼을 하나 쓰세요.

여기저기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프락사스 그냥 예시로 던진 말인데. (웃음)

진아 그런 걸 누군가 선언해서 원고 형태로 정리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거울이 담론을 던지는 힘이 좀 약한 부분이 있어요. 나름 알려진 사이트가 됐지만 문제제기 같은 그런 비평 부분이 좀…. 이런 글이 필요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알더라도 한 번 선언해 줄 필요성.

라키난 지금 이 얽혀있고 산재한 문제들을 지금 당장 뚫고 나가려면 어쨌거나 책이 잘 팔려야 되는 거잖아요? 장르문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정확히 안 만들어졌으니까 일단 대중들한테 팔림으로서 인정을 받는 게 필요한 거잖아요? 그런데 만약 사회성을 갖춘, 한국에서 만들어진 SF가 나온다면, 잘 팔리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혹은 이걸 목표로 잡는 게 좋은 생각일까요?

진아 장르문학이 주변부로 밀린 이유 중 하나가 지나치게 그런 문제에 무심했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대단히 예술적으로 나아갔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대중소설이라는 미묘한 경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장르문학계 자체도 그런 자신에 대해서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대안 중 하나로 그런 소설도 나올 수 있지 않나 해요.

아프락사스 가령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문화가 반영한 SF가 나오잖아요. 말하자면 그런 게 ‘미국 SF’의 특징이고 현대 ‘미국 문학’이 공유하는 특징인 거죠. 꼭 작가가 인종차별 문제에 관심 있어서만도 아니고, 사회성을 반영해야겠다고 의식해서만도 아니라 자기가 보고 겪은 걸 쓰다 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쓰게 된 거거든요. 그냥 자기 주변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배명훈 잘 쓰면 그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앤윈 저는 지금 이 이야기가 이해가 잘 안 되는 게, 제가 보기에는 많이 잘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를 반영한 SF가. <타워>나 <절망의 구>나.

진아 SF나 환상문학이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걸 작품으로 보여주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키난 90년대 나온 SF들 있잖아요? 그 작품들 중에는 한국 사회를 반영한 작품들이 꽤 있었던 걸로 알거든요. 그런데 그거 싹 묻혔잖아요. 팔렸는지 안 팔렸는지는 모르겠고.

진아 그게… 주제의식이 좋다고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모르겠어요, 저는 못 본 책인데. 요새 그런 작품들이 나오는 걸 되게 긍정적으로 보고,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키난 혹시 2011년에 나온 <표백> 본 분 계세요? 작가가 SF 쪽에서 활동하던 분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고. 굉장히 한국 20대라는 문제에 깊이 들어간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게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진아 뒤져보면 있긴 한데, 단발적인 작품의 성공만으로는 아직 안 모이는 것 같고, 그냥 점점점. 얘들이 시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뭔가 더….

한별 시너지 효과를 보려면 묶는 작업도 중요하죠.

ⅲ.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pena 실제로는 이런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출판 시장이 안 좋기는 해요. 진짜로. 신경숙,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이 우리가 아는 작가들의 작품 같은 경우 몇십만 부에서 백만 부까지도 팔려요. 그리고 그 밑으로 판매량이 갑자기 뚝 떨어져요.

정세랑 잘 나가던 작가들도 안 나가요. 항상 내면 몇십만 부 나가던 작가들이 오만 부 십만 부 밖에 안 나가고. 제가 아는 편집자 선배들이 그러는데, 출판사는 큰 회사 같은 경우 거의 매년 성장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다 같이 마이너스래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는데.

라키난 작년에 출판사 줄도산과 지나친 선인세 문제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 선인세 그따위로 주지 말고 이쪽으로 주면 안 되겠냐고 분노했었거든요. 자본이 없는 게 아니라 이쪽으로 자본을 안 돌리고 있는 거잖아요.

배명훈 그게 맞아요. 자본이 없다는 게 우리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뭐가 있으면 자본이 왔다가도 금방 빠져나가거든요.

toonism 한쪽으로 몰린 거죠.

정세랑 국내 작가 중에도 꽤 큰돈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라키난 그 환상을 깨고, 장르문학이 잘 팔리거든요? 여기 돈 주세요! 라고…. (울먹)

(탄식과 한숨)

앤윈 사실 제가 보기에 장르문학은 잘 안 팔려요. 장르문학은 마니아 문학이기 때문에 애당초 잘 팔리기가 힘들어요.

진아 문제는, 외국 작품에 그렇게 선인세를 과다하게 주고 있는데 그 작품들도 실패를 하고 있어요. 저는 이게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실패를 해봤어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하고 있는 건 계속 해요. 그런데 우리가 있는 세계는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무도 모르는 세계에요. 국내작가를 키워야 하는데, 모르니까 안 하는 거예요.

toonism 장르문학 쪽은 성공도 실패도 안 해봤는데, 어쨌든 외국에서 성공한 것만 가져오잖아요. 그러니까 외국에서 한 번 성공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라키난 일단 <신의 궤도>는 꽤 팔리지 않았나요? 그러면 자 신의 궤도를 봐요 팔렸잖아요! 라고 할 수 있지 않아요?

pena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그 사람 데려와!’

라키난 그 사람‘만’…?

pena 그 사람만.

진아 좋겠다, 그 사람.

(웃음)

배명훈 그게 문제에요. 시장 조사를 안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모험은 할 수 없고,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에서 일부를 떼서 출판사가 독립하는 식으로 쪼개지고 하는 것 같아요. 분명히 새로 생기는 부분이 있고 사라지는 부분이 동시에 있을 텐데, 새로 생기는 부분에서는 못 따라가고 사라지고 있는 부분에서는 계속계속 책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pena 출판사들이 조금 느리기도 해요.

toonism 주먹구구란 생각도 들어요. 말하자면 독자가 고객이잖아요. 고객에 대한 수요를 전혀 파악을 못 하고 있어요. 그냥 내서 되면 어쩌다 로또 밟은 거고 아니면 그래 오늘도 평작이구나, 그런 거고.

앤윈 모든 기업이 그렇겠지만, 모험하기는 싫겠죠.

아프락사스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없어져가요.

진아 실업자가 없어지고 취직해서 여유가 생겨야 해요.

toonism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에요. 뭔가를 얻지 않고 휴식만 취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아야 하는데. 예전에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할 때 SF&판타지 도서관에서 부스를 차린 적이 있어요. 거기서 출판사 판매대행을 했는데, 그때 가족이랑 같이 왔던 어떤 어머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거 보면 뭐 남아요?”

(탄식)

toonism 그 엄마뿐만 아니라 제가 겪었던 팬덤 아닌 대다수가 그런 말을 했어요. 그거 보면 뭐가 남는데?

진아 자, 나머지 이야기는 뒤풀이 가서 할까요? 마지막에 아프락사스님의 의견 어떻게 한 번.

아프락사스 다른 합평회와 달리 중간부터 개입해서 같이 이야기했으니 딱히 할 말은 없는데…. 이 글은 애초에 쓰고자 했던 글보다 터무니없이 글이 커진 경우에요. 원래 기획진이 요구했던 글은 ‘장르작가들이 문학상을 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였거든요. 그랬는데, 그 현상을 설명하려면 그 맥락도 설명해야지, 그러면 2000년대의 문학을 설명하자, 이거 하다보면 90년대 이야기를 해야겠네? 80년대도? 쭉쭉쭉, 이렇게 되어가지고…. 그래서 뒤의 걸 제일 먼저 썼고, 앞에 걸 제일 마지막에 썼어요.

라키난 결론 마음에 들어요.

아프락사스 전에 편집진 인터뷰에서도 말했던 건데, 이건 사실 <미래경> 서평에 대한 제 반응이에요. 거기서 제가 필진들의 문학관이나 문학 사관에 대해서 씹어댔는데, 내가 그런 걸 쓰게 생겼네? 그러면 어떻게 써야 하지? 그래서 최소한 내가 지적했던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지, 이러고 썼는데, 결과는…. (웃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고를 수록한 것하고 똑같은 걸 올렸는데, 그건 제가 게을러서가 아니고 반응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냥 그대로 가져온 거거든요. 생각 외로 안 까여서, 이게 뭐지?

라키난 사실 까기에는 다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아프락사스 네, 그랬던 것 같아요.

pena 일단 정리한 시도만 해도 대단하기 때문에.

아프락사스 뒤풀이 자리에서 나오겠죠. (웃음)


―. 합평의 끝에서

아프락사스님이 토론에 참가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소설 합평회 할 때처럼 작가의 변을 떼어놨으면 할 말이 없어졌을 것 같아요.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상황을 인식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데뷔 10년차 작가를 중견 작가로 불러야 하는 장르문학계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시작의 한 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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