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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양원영 인터뷰

2013.05.31 17: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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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 양원영
진행자 : 라키난(feat. pena)
일시 : 2013년 5월 21일 화요일

번 인터뷰는 거울의 10주년과 리뉴얼을 기념하는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리뉴얼을 거치면서 거울은 무사히 만 10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거울의 핵심인 ‘글’과는 별개의, 서버와 웹이라는 기반시설의 중요성이 다시금 확인된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0주년 인터뷰의 주인공으로는 현재 유일한 웹 담당자이자 필진으로 수고하고 계신 양원영 님을 모셨습니다. 필진으로서의 양원영 님에 대해, 그리고 리뉴얼 이전과 이후의 거울에 대해서 다룹니다.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이루어졌고 라키난 님이 진행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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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울의 필진으로서
 
거울의 필진이 된 계기가 있다면?

제법 어렸을 때부터 PC통신을 했거든요. 열한 살 때부터 나우누리를 쓰다가 중학교 들어갈 즈음부터 하이텔을 했고요. 당시에는 VT 통신이 거의 끝물에 다다르고 인터넷이 올라오던 시절이라 사실상 제가 마지막 세대였어요. 나우누리와 하이텔을 거쳐서 판타지 동호회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하이텔 동호회에서 데카메론 프로젝트라고, 주제를 정해서 글을 쓰는 소모임에 참가했어요. 그 다음에 거울이 생기고서 어기여차 필진이 됐죠. 거울 초창기 멤버 대부분이 데카메론 프로젝트와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에서 올라오신 분들일 거예요.

거울의 초대 편집장이자 설립자인 박애진 님 취지에는, 단편을 쓸 공간을 만들자는 것도 있었다고 아는데요. 그럼 거기에 동참해서 시작하게 된 건가요?

 저는 늘 긴 이야기만 쓰다 보니까 단편을 너무 안 써버릇해서요. 거울에 참가해서 단편 쓰는 솜씨도 기르자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어요. 음, 망했지만. (웃음)

단편 쓰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단편을 많이 접하게 됐을 텐데, 자극되지 않았어요?

영향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10년 동안 단편이라고 거울에 올린 게 세어보니 10개더라고요. 물론 필진들 단편 보면서 ‘우와, 어떻게 저렇게 쓰지? 대단하다’ 하고 감탄하거나 좌절감을 맛보거나 시기를 하거나 질투를 하거나 멘붕한다거나 하면서 전전긍긍하긴 무척 많이 했죠. 단편집에 글 올릴 때마다 ‘와 이렇게 대단한 글 묶음에 이런 글을 내도 되는 건가, 진짜?’ 싶기도 했고요.

열 편 올린 거 거의 다 단편집에 실리지 않았어요?

음, 네. 쓴 게 몇 개 없으니 선택지가 적었을 것 같아요. 으하하. 염치불구하고 올해도 올리겠습니다- 하고 쓴 글도 있고요.

거울은 굉장히 단편 중심의 공간인데, 이런 곳에서 장편을 이어간다는 건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뭐랄까, 보통 연재 사이트는 100%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장편이 대세라서 사람들이 단편은 눈여겨보지 않거든요. 거울은 그 반대라서 장편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편이에요. 물론 거울이 원래 조용한 사이트이기도 하지만요.
연재할 때 별다른 생각은 없어요. 봐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좋은 거고, 아님 아닌 거고. 다만 장편 연재는 매 달 한 번만 올라오는 거울 업데이트와 달리 언제나 올릴 수가 있어요. 이렇게 장편을 연재해 뭔가 업데이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거울 사이트가 활기차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살짝쿵 했어요. (웃음)

장편은 거울 업데이트랑 상관없이 올라가는 거예요?

장편 연재는 필진이 원하면 게시판만 받아서 언제든 마음대로 올릴 수 있어요.

신기해요. 정말 다른 곳은 다 장편 중심이었는데 거울은 진짜 장편이 없구나 싶어서. 근데 단편은 거울 업데이트에 맞춰서 기다리게 되잖아요. 그런데 장편은 업데이트 시점도 완결 시점도 정해지지 않았다면 반응 받기 힘들겠다 싶어요.

힘들죠. 확실히 힘들어요. 개인적으로 제 글을 좋아해주시거나 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 읽진 않을 것 같아요.

거울에서 장편에 반응 보여주신 분들이 있었나요?

생각보다 없진 않았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거울에 장편 연재한 건, 반응은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라고 맘 편하게 올린 거라서. 그런데 꾸준히 연재하다 보면 한두 분 정도는 댓글도 달아주시고 그러더라고요.
꼭 팬이 아니더라도 그런 반응이 있다는 자체가 고맙죠. 요즘에야 전부 인터넷 게시판에서 연재할 수 있고, 댓글 시스템 덕분에 독자의 피드백이 순식간에 가능하잖아요. 게시판으로 오기 전에 VT통신상에서는 그런 편리한 댓글 시스템이 없어서, 연재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아주 가끔, 어쩌다 한 번씩 잘 읽었다는 쪽지가 오거나 감상이 올라오면 그 날은 축제 기분이었던 시절이에요. (웃음) 그런 데서 연재해 버릇 하니까, 독자 반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주시면 완전 고마워하고.

일찍 쓰기 시작해서 좋은 점이군요. 이러니저러니 통신 시절부터 여러 커뮤니티 혹은 게시판을 봐오신 셈인데요. 다른 곳들과 비교하면 거울은 어때요?

역시 조용하다....... 정말 조용하다....... 아니 이렇게 조용해도 되는 걸까....... 안 되겠어, 나라도 개드립을 쳐야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 그건 진짜, 함부로 개드립을 지를 수 없는 엄숙하고 점잖은 분위기....... 싸움으로 시끌시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요. 하지만 사람도 짱짱 많은데!

개드립을 쳐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의 뻘쭘함....... (눈물)

조회수는 있는데 댓글이 없을 때의 그 느낌.......

리뉴얼 작업 전후로 해서 필진 게시판에 개드립을 참 많이 쳤는데요. 개드립에 반응이 없을 때가 제일 슬펐던 거 같아요.......

저 지금 찔려요.

(웃음) 그게 거울의 정체성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죠.

이야기하다보니 거울에 대한 양원영 님의 애정이 느껴지는데요. 거울에 있으면서 얻거나 배운 점이 있다면? 어디에 기인하는 애정일지 궁금해서요.

제가 엄청 게으른 사람인데, 거울 필진으로 지내면서 글쓰기에 대해서만큼은 많이 성실해졌어요. 여기에 소속되어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돼요. 거의 매달 개근으로 글 올리시는 곽재식 님, 정도경 님 보면서 그런 생각이 안 들면 안 될 것 같아요! 그게, 실질적으로야 만나는 사람들도 아니지만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소속감이란 참 여러 가지 감정을 들게 해요.

힘이 되고, 의욕이 생기고, 애착이 생기죠.

그렇죠. 고양되고요. 거울 단신에 누가 잘 되는 글 올라오면 기분 좋고,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자고 자신을 북돋게 되고.

글 쓰는 면에 있어선 어때요? 다른 곳에서 글을 연재할 때와 거울에서 연재할 때 차이가 있다면?

장편만 한정한다면 거울에서 얻는 이점은 없다고 봐야죠. 

그렇겠네요. 오히려 다른 곳보다 안 좋을 수도 있고?

연재를 한다고 했을 때 거울을 연재할 곳으로 잡는 건 그리 현명한 선택이 못 되죠. 아직까진 거울 연재는 자기만족 같아요. 하지만 또 거울에 기여한다는 맘도 있고요.

“먼 여정 지킴이”!

네! 조용하니까 뭐라도 하나!

개드립도 치고!

그렇습니다! 

단편에 대해서는요? 기대만큼의 효과는 없었다고는 하셨지만.

단편 보고 좋아해주신 분들도 계시니까 아주 좋았죠. 1, 2년에 한 편이라도 썼으니 만족해요.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역시 필진 하지 말고 닉네임 숨겨서 독자 단편란에 투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거예요. 여기 올리면 한 달에 한 번 심사를 받을 수 있어! 대단해!

그러다 발각되어 필진으로 등극해버리고!

으앜ㅋㅋㅋㅋㅋ

근데 독자단편란 심사는 좀 탐나는 거 같아요. 올리면 평을 해줘... 상냥해...

매달 보면서 침만 흘려요.

지금이라도 하나 올려볼 생각 없어요?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어요. 조만간 올릴지도 몰라요. (웃음)

(웃음) 심사단 분들! 그러시답니다!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정말정말 적은 확률이라도 제가 우수작이나 가작에 뽑히게 되면 자진 신고하고 상품 안 받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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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 담당으로서

글쓰기와 웹을 다루는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은 잘 없잖아요. 어떻게 거울의 관리를 맡게 되었는지 궁금한데요. 양원영 님이 자발적으로 서버 관리를 맡으신 것도 거울에 대한 애정과 관련이 있나요?

아까 애착이라고 하셨는데, 애착 없으면 못 할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거울의 운영은 누구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뛰어들어서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죠. 누가 돈 주는 거 아니고.

그만큼의 애착이 없으면 못할 일이에요. 실제로 몇 분은 거의 돈 받지 않으면 안 될 수준의 업무량을 감당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의 거울 편집장님들이나 다른 분들이요. 그러다보니 생기는 문제점도 있기 마련이고.

일 분배가 잘 안 된다든가, 맡을 사람 찾는 게 고생이라든가?

네. 서버 관련해서 그런 문제가 가장 심각했을 거예요. 웹을 관리하는 건 문학이나 글 쓰는 일이나 작가의 일과는 전혀 무관한 기술적인 부분이거든요.

그러니까요. 진짜 귀중한 인재시고.

어휴, 저는 그냥 기초적인 사항 얼마만 알고 있을 뿐이에요. 기술이랄 것도 거의 갖추지 못했고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리뉴얼 전의 거울 웹사이트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하세요? 막 악성코드 경고창 뜨고. 서버와 웹을 다룰 수 있던 필진 분들이 개인 사정으로 거울에 신경을 못 쓰게 되면서 자연히 방치가 되어버린 결과였어요. 제가 어떻게든 이걸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버와 웹 담당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두 개였어요. '모른다'와 '지금은 없다'.

그렇다고 누굴 붙잡고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쁜 사람 탓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네. 그 분들도 자기 시간 쪼개고 노력을 쏟으며 해주신 거였잖아요. 끝까지 관리하지 않았다고 탓할 일이 아니죠. 거울의 다른 분야는 그래도 어떻게든 후임을 찾아서 이어질 수 있었는데, 실질적인 기술이 필요한 웹 분야는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나설까 말까 마지막까지 고민도 많이 했어요. 까놓고 말해서 거울 웹사이트 관리가 작가로서 경력이 되는 일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뭐라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 이러다가 거울이 영영 없어지겠다 싶어서 나섰습니다. 당장 이득이 없다고 근시안으로 볼 일이 아니니까요. 쥐뿔도 모르지만 아무튼 패기로!

패기로! 아니 근데 쥐뿔은 아시잖아요. (웃음)

쬐끔요, 쬐끔. (웃음)

서버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됐어요?

VT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올 당시에는 개인 홈페이지 만드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블로그가 생기기도 전이니까요. 그 때 홈페이지 만들면서 FTP도 만져보고, PHP도 건드려보고 했어요. 그 경험이 10년이나 지나서 도움이 될 줄은 몰랐죠. 뭐든 배워놓으면 써먹을 데가 있구나, 하는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귀중한 계기였습니다.

거울 관리하면서 더 많이 알게 되셨을 것 같은데요.

리뉴얼 전 거울 사이트가 너무 엉망진창인데다 매뉴얼도 없어서 직접 파일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땜빵하고 고치고 하다 보니. 지금은 짱짱한 웹디자이너님께서 훌륭한 시스템을 만들어주신 덕에 아주 편합니다.

디자이너님 짱짱맨! (웃음) 저야 웹 쪽으로는 모르니까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사용하기 엄청 불편한 구조였다는 건 알겠어요.

 이제는 밝힐 수 있다 거울 리뉴얼! 전 웹 사이트의 문제점!

두둥!

리뉴얼 전에 거울 사이트를 뜯어보았을 때 세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거울이 상주하는 서버가 전혀 관리되지 않는 상태였어요. 둘째로는 지금은 개발이 중지되어 더 이상 보안을 기대할 수 없는 노후된 시스템인 제로보드 4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거울이 10여 년간 쌓아온 데이터베이스가 너무 방대해서 뭔가를 건드리려고 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였어요.
세 번째 문제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냐면, 서버 내 모든 데이터 총합이 기가 단위였는데요. 여기에 담긴 글과 이미지가 얼마나 될지 가늠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텍스트로 기가바이트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텍스트+이미지만으로. 대충 훑어보는 데만 30분은 걸렸으니 말 다했죠.

괜히 10년이 아니네요. 지금 생각하니 워터가이드 등등에 대한 아쉬움도 들어요. 자료 엄청 쌓였을 텐데.

거울 역사의 크기죠. 아,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거울 사이트 관리를 워낙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자기 기술로 땜빵하고 고치고 바꾸고 하다 보니까 도대체 누가 무엇을 건드렸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분명 이 시스템은 누군가가 만들었는데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수정은 해야 하는데 패치를 덮어씌웠더니 먹통이 되어서 원인을 찾느라고 서버를 이 잡듯 뒤지기도 하고.
첫 번째 문제인 서버의 경우, 거울이 비영리 사이트다보니 유료 서버로는 서버비 부담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이는 2000년도 초기에 굵직한 연재 사이트가 모두 쇠락해버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서버 부담이 커져요. 당연한 일이죠. 기업이 아닌 개인이 비영리로 운영하는 사이트는 지원이 없으면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거울이 비록 조용해 보여도 서버 트래픽이 제법 돼요. 그래서 필진 중 한 분의 지인이 운영하는 사설 서버에 둥지를 틀었는데, 이 지인 분께서 개인 사정으로 서버를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여기에 두 번째 문제인 제로보드 4의 보안 취약성을 틈타 어마어마한 악성코드와 해킹에 시달리는 악재가 겹쳤죠.

그래서 경고창 뜨고요.

서버 차원에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는데 서버 담당자와는 연락이 안 되고. 그래서 일단은 안정적인 서버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그 다음이었어요. 보안에 취약한 제로보드 4는 빨리 버려야 했고요. 리뉴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필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웹디자이너를 수배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관리 수준의 기술뿐이라서,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 한 것도 없지만, 잘 된 것 같아서 기뻐요!

네! 이 자리를 빌어서 이름을 들고 감사 인사를 전해도 될까요!

그럼요!

우선 악성코드에 시달리는 와중에서도 무료로 서버를 제공해 주시고 관리까지 철저하게 해 주신 스튜디오 엔시티(http://ncity.net)의 권제메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거울은 서버비 부담을 덜고 계속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분께서는 서브 컬쳐 분야의 부흥을 위해 해당 분야의 서버 지원을 모두 무료로 해주고 계세요. 거울을 흔쾌히 받아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다음으로 제로보드 XE기반으로 멋진, 새로운 거울을 만들어주신 웹 디자이너 강나위 님께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웹 디자이너님이 아니셨다면 거울은 지금쯤 나모 웹 에디터로 대충 만든 홈페이지에서 마퀴 태그로 '거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띄우고 있었을 거예요!

능력자!

그리고 리뉴얼을 위해 기꺼이 군자금... 아니, 비용 일부를 내어주신 거울 필진 여러분께도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리뉴얼 이후에 각종 버그를 제보해 주시고 잡고 수정해 주고 계신 업데이트 담당자 여러분들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_<

 리뉴얼이 끝났긴 해도 아직 도사린 문제는 많아요. 버그 수정도 그렇고, 시스템을 최신으로 바꿨긴 해도 여전히 스팸 접근도 있는 상태고요. 그리고 제 역할은 현재 거울 서버와 웹을 관리하는 것 말고도, 혹시나 제가 이 짐을 내려놓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 짊어지게 됐을 때 제가 겪었던 혼란을 겪지 않도록 기반을 잘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점이네요. 인수인계가 가능하게, 후대는 고생하지 않게, 자발적인 노력에만 기대지 않게.

만약 다음 분이 다행히 저보다 더 능력자라서 제가 어떻게 하지 않아도 척척 잘 하시는 분이면 좋겠지만! 안 그럴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거울 유지 체계가 바뀔 일은 아마도 없지 싶으니까, 최소한 뒤에 일 처리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게 해야죠. 저는 10대도 거울에서 보내고 20대도 보내는 중이고, 별 일 없다면 조만간 30대도 보낼 것 같아서, 향후 얼마간은 붙어있겠지만요.

반생을 함께했네요.

그러게요, 10년이 짧아 보여도 참 길어요.

지금 서버에 대해서는 전담 수준인데요. 힘들지 않아요?

어, 왠지 여기에서는 “아휴, 힘들죠. 그래도 거울을 위해선데 열심히 해야죠.” 이런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리뉴얼이 완료된 시점에서 큰 짐은 이미 벗었고, 관리는 요령과 시간만 있으면 쉽게 쉽게 하니까요. 힘들다,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 이런 상황이면 이 일 못하죠. 감당할 수 있는 수위고, 나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힘들지 않아요.

하면서 재미있는 점이나, 보람이 느껴지는 점이 있다면 어떤 거예요?

음! 관리자 놀이? 제 아이디에 웹사이트 관리자 권한이 걸려있는데요. 절대 권력을 쥔 느낌이라 뿌듯해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애 같나? 진심을 담은 진중한 버전이라면, “거울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걸 보기만 해도 보람차요” 라고 하겠습니다. (웃음) 제가 이 일을 하니까 이렇게 인터뷰도 하잖아요!

그러네요! 근데 진짜 서버관리자 = 게임마스터 = 절대권력자 아닌가요. (웃음)

그쵸. (웃음) 아, 거기다 또 하나. 편집장님이 나중에 특집 짱짱하게 해주신다고 했어요. 책 나오면 봐요. 음 이건 편집 당해야겠다, 너무 적나라한 거래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송에서는 재미를 위해 편집을 안 하기도ㅋㅋㅋㅋㅋ

으잌ㅋㅋㅋ 인터뷰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걸까!

사실 그보다 편집할 때 문제는ㅋㅋㅋㅋㅋ 우리가 이렇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는 걸 어떻게 글로 옮기느냐......?

아.. 아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제 일이려니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하니까 자꾸 ㅋㅋㅋㅋㅋ하게 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곸ㅋㅋ큐ㅠㅠㅠ 죄송해요 제가 진지함 같은 건 상추에 싸먹은 사람이라. 흡.

ㅋㅋㅋㅋㅋㅋㅋ 아뇨 저도 좋아요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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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대문도 관리하고 계시잖아요? 어 근데 이건 전담인가요? 아니면 다른 분도 하시는 건가.

거울 대문의 경우 어쩌다보니 제가 전담하게 됐어요.

어쩌다보니... 네, 그렇죠 뭐.

지난 편집장님 말기에 나왔던 책들의 광고를 제가 맡아 했거든요. 광고 디자인 하고, 그걸 대문으로 올리고, 또 리뉴얼 하면서 리뉴얼 대문 걸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까 하게 됐네요. 저번 편집장이신 유서하님께서 대문과 광고까지 다 하고 계셨다 보니, 그 업무를 대신하면서 자연스레 받아왔어요.

그렇겠네요. 대문 선정 기준 같은 거 있어요?

책이 나올 땐 책 위주로, 또 사이트 내 공지가 있을 땐 공지를 걸고, 이벤트가 있을 때는 이벤트를 편집해서 올리기도 해요. 요즘처럼 이벤트도 뭐도 없을 때는 매 달 업데이트 대문을 만들어 올리고 있고요. 디자인 센스가 썩 좋진 않아서 촌스러울 때도 많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리뉴얼 끝난 후 첫 대문 있었잖아요. 엄청 궁서체의 그거.

아, 그건 웹디자이너님이! 임시 대문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웹디자이너님이 즉석에서 슥슥 만들어서 철썩 붙이시더라고요. 너무 대박이라. 한동안 계속 붙이고 있자고 해서 오래 붙였어요. 예전 거울이라면 생각도 못할 센스죠!

네ㅋㅋㅋㅋ 점잖음은 벗어버리고ㅋㅋㅋ

편집장님의 공지 개드립력도 점점 상승하잖아요? 무척 기뻐요. (수줍)

하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고ㅋㅋㅋㅋㅋㅋㅋㅋ

음, 10년이잖아요. 천천히 해 나가죠. 이제 10년이었으니 앞으로 10년. 즐겁고 떠들썩한 거울로? (웃음)

책 디자인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만악의 근원이신 편집장님이... (이하생략) 너 원영아 재주가 있으면 능히 펼쳐보이라 하심에, 소인의 재주가 하찮을 따름이온데 괜찮겠사옵니까 여쭈었더니, 윤허한다 지금은 손이 없느니라 하셨사옵니다.

그래서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이 나온 거예요?

그렇습니다!

만들면서 어땠어요?

어려웠어요. 취미생활로 만화나 일러스트는 그리는데 디자인을 해본 건 처음이지 싶어요.

좀 다르죠?

많이 달라요. 쓰이는 폰트의 종류나 크기, 그림의 위치 등등. 다른 책들은 어떻게 했나 뒤져보고 이전 거울 책 디자인도 참고하고 그랬어요. 시안을 여럿 만들었는데, 제가 마음에 드는 시안과 편집이 본업인 편집장님이 괜찮게 여기는 시안이 또 다르더라고요.

그 부분은 편집장님이 편집 경험이 있어서 좋네요.

확신이 없으니까 편집장님이 선택하신 걸로 골랐어요. 인쇄 나올 때까지 아주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예쁘게 나와야 할 텐데. 으으으.

나온 거 보니까 어땠어요?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랬죠. 좀 더 예쁘게 그릴걸! 그래도 첫 디자인 치고는 썩 만족스러웠어요.

또 하고 싶은 생각 있어요?

만다라나 패턴 무늬의 향연 이런 거 그리라는 주문만 아니면요.

그런 건 패턴을 사서 쓸 수도!

필요하다면 꼼수를 부려야죠. 역시 어깨너머 배운 재주라도 언젠가는 쓸 데가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계기가 된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러게요. 능력 있는 자에게 기회를 주는 장이로군요.

좋은 경험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현재 웹 담당으로서,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 있어요?

음음- 음! 네. 기왕 여기 이 자리에 온 거 입 발린 이야기는 안 할게요. 제가 맡은 일은 별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 또한 아니에요. 많이 도와주세요. 너무 가혹한 요구는 하지 마시구요. 여러분의 거울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제일 필요한 부분은 어디인가요?

데이터 이전하면서 이전 기사들 중에 깨지거나 누락된, 버그 포스팅이 많아요. 저도 틈나는 대로 보면서 수정하고 있는데, 이게 얼마나 더 있는지는 감이 안 잡혀요. 틈날 때마다 보시고 수정해 주시거나 수정 요청을 해주세요! 엄밀히 말하자면 리뉴얼은 80%정도 완료된 상태입니다. 게시글 수정이 얼추 다 끝나고 지금 기능하지 않는 부분들이 제대로 기능하게 되면 그 때야 완전히 마무리될 거예요. 10주년 전에는 어떻게든 맞추고 싶었는데, 그만큼 여력이 안 났네요.

그거야말로 여러 사람이 동원되지 않으면 무리죠. 하지만 아마 11주년 전에는 되...지 않을까요!

될 거예요. 되게 할 거구요. (웃음) 거울 정말 잘 버텼어요. 이번 리뉴얼이 앞으로 나아갈 큰 고비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왜, 배움에도 인생에도 어떤 고비를 한 번 넘기면 그 이후는 잘 풀리는 그런 때가 있잖아요. 모두가 이 고비를 넘으려고 애썼어요. 놀랍고 대단하고 자랑스러워요. 앞으로는 분명 잘 될 거예요. 그렇게 믿어요.

3. 글쓰기에 대해

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일찌감치 글을 쓰고 있었으니, 주변에서도 "얘는 글 쓰는 애" 이런 인식이 있었을 것 같아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학교도 자주 땡땡이치고 그랬으니까, 자유롭게 사는 애라고 부러움도 많이 샀어요.

땡땡이도 많이 쳤어요?

어휴, 말도 못하게 많이 쳤어요. 글 쓴다고 학교 빼먹은 적도 많고, 교문 앞까지 갔다가 귀찮아서 그대로 영화관 가서 조조로 영화보고 만화방에 틀어박히기도 하고. 찜질방 가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기도 했고. 해운대 바닷가에서 혼자 물장구치고 모래쌓기 하고 놀고.

그건 글 쓰는 거랑 관련 없어 보이는데요!

그 때의 경험이 지금의 이 사람을 만들었고 이 사람이 쓰는 글에 배어나와 있습니다. 정말이지 후회 없는 학창시절이었어요. (웃음)

좋은 답변이다. (웃음) 근데 정말 연재를 일찍 시작하신 것 같은데. 통신 이력 = 글쓰기 이력이라고 본다면, 초등학생 때부터 아닌가요?

거의 그 무렵이에요. 초등학생 때는 단편도 아닌, 뭐랄까 지금 보면 절규하고 덮어다가 납으로 봉인해버리고 싶을 만큼의 글쪼가리만 좀 썼어요.

흑역사. (웃음)

진짜 흑역사죠. 중학생 때 장편이랍시고 정식으로 연재하기 시작해어요. 사실 그거도 반 이상은 흑역사고. 여담으로 그 때 연재했던 글에 처음으로 감상을 써주신 분이 날개님이셨어요. (웃음)

꺅!

거울에서 만나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안돼, 내 흑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저기 있어!’ 하고.

 이 바닥 좁죠.

날개님 그때부터 성실하게 감상 쓰셨구나. 진짜 좁네요.

그러니까요. (웃음)

당시에는 글 쓰는 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요. 그래도 거울의 다른 분들에 비하면 진짜 막내뻘이죠?

아마 초기 멤버 중에서는 제가 가장 막내였을 거예요. 거울 들어오고 나서도 몇 년간은 쭈욱 막내였을 걸요.

막내라서 좋았던 점, 혹은 반대로 어려웠던 점은 없었어요?

비단 거울에 한정한 이야기는 아닌데요. 막내면 예쁨 받아서 좋고, 무슨 짓을 해도 철이 없어서라고 폭넓은 용서와 관용도 받을 수 있잖아요. 반대로 어리다고 무시당하거나(거울에서 그런 일은 없었지만), 무슨 말을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요. 너무 이르게 어른들의 영역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까 이런저런 딜레마도 많긴 했어요.

예를 들면요?

음, “쟤는 어리니까” 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어리니까 오히려 자신을 어리다고 배제하는 시선이나 표현에 부쩍 예민해요. 저를 같은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라 어린애로 규정하고 논외로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역으로 그런 나이차에 굴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해주는 사람과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누군가를 나이나 성별 등에 구애 받지 않고 존중하는 분들은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사람이에요. 결코 쉽지 않거든요. 그런 딜레마가 있어서, 때문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편집장님처럼요. (웃음)

기승전칭찬. (웃음)

거울에서 지금까지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저를 어리거나 막내가 아닌, 한 사람의 필진으로 대우해줬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거 중요하죠. 거울이 친목 모임이 아니라 글을 위한 곳이라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네. 그래서 굉장히 심심하다고 여겨질 때도 많지만요. 작가로서는 아주 좋은 산실이 됐어요. 거울을 통해서 기회도 많이 얻었고요.

출간이라든가?

그렇습니당. 제 몇 줄 안 되는 이력 중 두 개가 거울에서 얻은 기회였어요. [한국환상문학단편선2]와 [아빠의 우주여행]요.

넵, 봤어요. 그런 게 사람이 모여야 하는 이유인 듯해요.
한편 막내라든가 10대라는 점은 글쓰기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글에는 자기 경험이 묻어나게 마련이잖아요.

당시에는 잘 못 느꼈지만, 지나고 보니 확실히 그 때랑 지금은 쓸 수 있는 폭이랄까, 많이 달라요. 10대 때는 자극적이고 즐겁고, 엉망진창이지만 하고 싶은 말은 가감 없이 했던 것 같아요. 자기주장 현시욕이 폭발하던 때.

그야말로 10대다운? (웃음)

네. 저는 그게 무척 10대다웠다고 생각해요. 어우, 흑역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흑역사와 달리 넷상에 남아있고요. (웃음) 지금은 어떤 점에서 쓰는 폭이 달라졌다고 느껴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이 또한 한 10년쯤 뒤에는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예전보다 글 쓰는 기술은 확실히 좋아졌고, 이야기를 보다 이야기답게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땐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던졌다면, 지금은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게 됐어요.

따져보면 벌써 10년차잖아요.

돌이키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뭔가 달라지긴 했구나, 하고 생각해요.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기회가 생겨서 아직은 괜찮구나 하고 안도하기도 하고요.

쓰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나 소재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어때요?

소재는 그 때 그 때의 유행 따라 바뀌곤 해요. 주제는 썩 많이 바뀌지 않았어요. 비극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잘 못 쓰고, 선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쓰고, 가족에 대해서 특히 많이 쓴다거나.

개인적으로 가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돼서?

나이가 들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돼요. 최근작으로는 <아빠의 우주여행>이 그 집대성이었어요.

저도 많이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긴 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부분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고.

맞아요.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이니까, 그만큼 사람구실 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가족에 대해서든 다른 부분에 대해서든, 10대부터 꾸준히 기록해온 셈이니 나중에 모아놓고 변화상을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글이 모이면 가족 단편집 같은 것도 가능할지도?

그거 좋네요. 그걸 계기로 단편을 좀 더 쓰도록. (웃음)

한번 노려봐요. (웃음)

pp.jpg

아까 그림 이야기 했었잖아요. 원래는 어떤 그림을 그렸어요?

만화 그리기를 좋아해서, 만화나 제 글의 일러스트를 직접 그리곤 했어요. 지금도 그려요.

만화는 어떻게 그리게 됐어요?

만화책 보고서요. 만화책 접한 시기도 되게 일렀어요. 유치원 다닐 때 이미 만화방을 수시로 들락거렸으니까. <스완>이나 <세일러문> 같은 만화를 보고 베껴 그리고 했어요.

빨라!

그러게 말예요, 진짜 빨랐어요. 당시부터 만화방과 오락실 전전하고 그랬으니까요.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서브컬쳐를 많이 접하잖아요. 당시에는 만화방이나 오락실을 가지 않으면 그런 걸 즐길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아니 정말 나 너무 옛사람 같잖아. 아무튼 글보다는 그림을 더 빨리 접해서, 글로 진로를 잡기 전까지는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글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이후에는 그림은 취미생활이 되었고요.

글을 선택한 이유는 뭐에요?

더 쉬워서. 더 돈이 안 들 것 같아서요.

그럼 나름 고민 많이 했겠네요.

집안 형편도 고려해야 했고요. 생각해보면 글로 완전히 마음을 굳힌 계기는 거울과 전신인 데카메론 프로젝트 때문이었어요.

아. 활동 시기가 진로 고민할 때네요.

네. 고등학교 2학년 들어갈 무렵이었으니까. 그 때 제 글에 대해서 굉장히 가능성을 높게 쳐주신 분이 있었거든요. 솔직히 당시에 잘 써봤자 얼마나 잘 썼겠어요. 객관적으로도 봐도 서투르고 허술한 글인데도, 거기서 무척 좋은 가능성을 봐 주신 분이 계셨고, 그 분 덕택에 응원을 받고 지금까지 써 오는 계기가 됐어요. 어찌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계긴데 말이죠. 

진로를 결정하기엔 충분한 계기죠. 어차피 고민에는 끝이 없으니까. 아까 얘기 나왔던 날개님 감상은 어땠는지 좀 궁금해지네요.

정확한 내용은 이제 기억도 안 나는데,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해주셨어요. 황송할 정도로.

날개님은 과연 기억하실지 궁금하네요. 아니지. 기억하면 또 나름대로 곤란한가!

이미 여쭤봤어요, 기억하시더라고요. 아휴, 부끄러워.

그럼 애초에 글을 시작한 계기는 뭐에요?

TRPG랑 [마계마인전](로도스전기)요. 열 살 무렵 오빠가 어디선가 들고 온 D&D 룰북과 [마계마인전] 전권이 결정타였어요. TRPG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알았고, [로도스전기]를 보면서 그걸 글로 풀어내는 즐거움을 알았어요.

TRPG는 지금도 자주 해요?

 TRPG는 거의 안 했고, ORPG를 주로 했어요. 마스터링도 많이 했고,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TRPG는 테이블이고, ORPG는 온라인이에요?

네, 온라인. TRPG는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놀고, 온라인은 온라인 대화방에서 만나서 놀아요. 느낌이나 분위기가 꽤 달라요. 성별반전 캐릭터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닭살스러운 대사도 아무렇지도 않게 칠 수 있고. (웃음)

[로도스전기]도 TRPG에서 나왔잖아요. 혹시 그런 식으로 써본 건 없어요?

 [한국환상문학단편선2]에 수록됐던 <파랑새>는 ORPG 플레이어로 참가했던 캐릭터의 이야기를 쓴 거였고. 거울에 올렸던 <성채>, <일발>, <티레시아스> 역시 ORPG 마스터링을 했던 캠페인의 캐릭터를 가지고 쓴 글이었어요. 리플레이 소설을 하나 기획하고 있긴 한데, 너무 볼륨이 큰 이야기라서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합작 같은 것도 재미있을 텐데요.

비슷한 시도는 해봤어요. 거울에 연재한 장편 중에 <VESTA>가 그래요. 세계관을 짜고 당시 가상세계(소설 커뮤니티)를 열어서 사람들이랑 놀고, 거기서 이야기를 추출해서 쓴 글이거든요. 공동 소설창작 쪽은 “ILN”에서 지금 하고 있고. 독자참여로 참가하고 있어요.

장르에 대해서는요?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면, 혹은 새로 써보고 싶은 게 있다면?

어, 그냥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는 주의라서 판타지나 SF, 시대극 안 가리고 써요. 좋아하는 장르도 썩 가리지 않고요. 새로 도전해보고 싶다면, 무협. 요즘 김용 소설을 읽는데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더라고요. 왜 이걸 내가 지금 보고 있나 싶을 정도로. 

앞으로 써보고 싶은 모티프나 주제는 없나요? 좀 애매한 질문이었는데, 이건 차기작에 대한 질문으로 받으셔도 되고.

음음, 쓰고 싶은 건 무척 많아요. 어렵더라도 꼭 쓰고 싶어서 계획하고 있는 글이라면, 세기말의 좀비물인 두 소녀의 이야기. 제가 워낙 아저씨 영혼이라서 소녀심 충만한 이야기를 못 쓰거든요!

홈페이지에 야구 좋아하신다고 써놓은 거 봤어요. 야구 = 아저씨는 아니지만.

밥 먹으면서 반주로 막걸리 한잔하면서 야구를 틀어 보는 게 하루의 낙입니다.

어디 팬이에요? 아, 부산이니까 롯데인가.

리브 인 부산. 모태신앙이죠.

그럼 다음 질문. 장편을 주로 쓰셨고, 역시 단편보다는 장편을 주로 쓰게 된다고 하셨는데요. 쓰는 입장에서 단편과 장편의 차이는 뭔가요?

그걸 알면 제가 단편을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흑. 아마 처음부터 단편을 각 잡고 쓰기 시작했으면 장편을 못 써서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거예요. 장편은 긴 호흡이고 단편은 짧은 호흡인데, 아무래도 리듬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돼요. 긴 리듬에 너무 익숙해지면 짧은 리듬에 어디서 어디를 연주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고요. 반대로 짧은 리듬에 익숙해지면 도대체 긴 리듬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지 않을까요?
그래서 단편을 썼다고 내놨는데 장편으로 풀어 쓸 이야기 같다던가, 너무 짧아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던가 하는 평가를 많이 받았어요. 써버릇하면 알겠지만 안 써서 문제지. 그렇지만 장편이 더 재미있는걸요.

장편의 재미는 뭐예요?

인물과 이야기에 푹 빠져서 오랫동안 많은 감정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 글 안에 담긴 모든 것과 사랑하는 느낌이에요. 인물은 내놓기만 하면 알아서 움직이니까. 이야기도 자꾸 자라자면 풀어놓기만 하면 되니깐. 행복하죠. 그냥 그래요.

단편은 그게 짧아서 문제군요.

정 붙이기 전에 끝나서 그런가 봐요.

단편 연작은 어때요?

으음!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시도해볼게요.

그럼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행복한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행복하게 쓸 수 있다면 그거만큼 좋은 일이 없을 거예요. 독자들이 보고 나서 행복할지 아닐지는 제 소관이 아니고요. 물론 가급적이면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글로 얻는 행복에는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 행복은 어떤 행복이에요?

그냥 어떤 글을 마무리 지었을 때, 기쁘건 슬프건 참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만족해요.

(웃음) 독자의 행복은 독자 소관일 테고요. 그럼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거울의 10주년에 맞춰 올라가는 인터뷰가 되겠는데요. 뭔가 거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래오래 남아서, 거울에 소속되어있고 혹은 소속되었던 기억마저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 나이가 서른 여덟이 되어서 마흔을 앞뒀을 때도 여전히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후일담

근데 정말 내가 인터뷰해도 괜찮은가요, 편집장님. 내가 뭐라고.

유일무이한 서버관리자잖아요.

영자님하 왜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녕하세여 우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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