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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기금 유감

-웹진과 문예지 사이-

赤魚(김주영)

2018년 올해, 환상문학웹진 거울은 문학주간 행사에 문예지 자격으로 참가해 부스를 운영할 의사가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거울이 이런 제안을 받게 된 배경에는 문예지의 범위를 웹진으로 확대한 주최측,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한문위)의 고민이 있다. 문예지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실물 문예지와 실물은 없으나 문예지로 활발히 기능하는 웹진을 두고 갖게 된 고민이다. 문예 관련 행사 대부분이 문단 문학을 중심에 두고 치러진다는 점에서 장르문학과 웹진의 자리를 만들어 준 한문위의 고민은 신선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이들의 고민은 거울이 가진 문예지 성격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울은 실물로 발간되는 것 외에 문예지의 성격을 대부분 갖추고 있지만, 문예지로 불리는 것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문예지는 종이로 출간되는, 문단 문학을 실은 잡지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장르문학의 성장과 함께 판타스틱이나 미스테리아 같은 장르문학 잡지가 탄생했고,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웹사이트, 전자책을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문학을 공급하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문학 생태계가 변한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웹진은 이제 낯설지 않은, 오히려 보편화된 양식이 되었다. 그런데 예술 지원 정책은 아직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문학주간 2018 행사 참여가 끝난 후에 다른 단체 일로 문예진흥기금 공모를 살펴보다가 거울이 문예지발간지원을 신청할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원인은 단 하나, 실물로 발간되는 문예지가 아니기 때문에 지원을 위해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최근 발간된 문예지 1호’를 등기우편으로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 창작 활동의 중요한 토대인 문예지 발간을 지원하여 문학 창작 및 비평 활동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문예지발간지원의 목적임을 고려하면 쓴웃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2003년 6월 26일 창간된 이래 거울은 매달 빠짐없이 웹진을 발간해 왔고, 장르문학 단편을 발표하는 지면을 제공했다. 독자우수단편란을 통해 장르문학 창작을 독려했고 장르 소설가를 발굴하고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함께 했다. 2017년에는 중국 SF 소설가들과 국제적인 교류를 이어가면서 한국의 SF를 중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거울의 필진이 힘을 합쳐 이뤄낸 이런 성과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단지 실물 발간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문예지발간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문위에서 실물 문예지를 선호하는 이유로는 두 가지 정도가 짐작된다. 첫째는 문예지를 정의하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문학 생태계가 계속 변화하고 있고, 텍스트를 소비하는 독서 형태 역시 예전과 다르다. 종이책만을 소비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고, 휴대폰과 전자기기로 전자책을 손쉽게 찾아 읽는 시대다. 앞으로 등장하는 세대는 더욱더 전자화된 활자에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유독 실물 문예지만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구태다.

두 번째로 짐작되는 이유는 사업비 집행 성과보고에 실물이 있는 편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문예지발간지원으로 받는 예산은 전액 원고료로 지출하게 되어 있다. 매호 실물로 발행된 문예지가 있다면 지원받은 작가나 원고 등을 실질적으로 파악하기 쉽고 자료로 보관도 편리하다. 그런데 문예지 실물이 곧 그 문예지의 가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발간되기는 하지만 그 수준과 성과가 의심스러운 실물 문예지 역시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단지 사업비 집행에 필요한 정량적인 평가를 위해 문예지의 범위를 실물에 한하는 것이 문학진흥기금의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다.

이제는 한문위에서도 문예지의 출간 형태에 관한 인식을 바꿔 문예지발간지원의 기준을 고민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거울처럼 실물이 없는 세계에 놓여 있지만, 실상으로서 존재하고, 문예지로서 활발히 기능해온 웹진이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웹진은 앞으로도 계속 창간될 것이다. 그중 어떤 웹진은 거울처럼 문학의 한 분야 안에서 문예지로서 적잖은 성과를 이루고 성장할 가능성을 가질지 모른다. 그런데 단지 웹진이라는 이유로 문예지발간지원을 신청할 수조차 없다면 문학진흥기금의 취지에 어긋나는 동시에 크나큰 손실이다. 오늘의 유감이 내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한문위의 변화를 촉구하는 동시에 기대한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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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립 18.10.22 23:31 댓글

    한 가지 더 유감스러운 사실은 문학주간 행사라고는 하지만, 행사의 명분을 세워준 준 주력은 거울 부스와 비주얼 문예지 Motif 부스 밖에 없었습니다. 헌책을 뭉터기로 짐짝처럼 판매하러 온 헌책방 부스들 사이에서 문예에 대해 홍보하기란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필진분들의 노고로 거울은 훌륭하게 행사를 치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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