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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끝이 아니야가 끝이 아니야!

2018 거울 중단편선 작가별 후기 및 발췌문

지난 2월, 2018 거울 중단편선 아직은 끝이 아니야가 아작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모아모아 거울의 남은 책들을 사은품으로 이벤트도 했고, 작가 7분을 모시고 쇼케이스도 했죠. 그래도 아직은 끝이 아니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참가한 작가들이 직접 뽑은 나의 글과 후기입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도, 본 분도 즐겨주세요. — 거울 편집진

1. 고호관, 「아직은 끝이 아니야」

이건 보통 오자가 아니었다. 엉뚱한 글자로 바뀌어서 짜증이나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오자가 아니었다. 대통령 찬양 기사를 비난 기사로 바꿔 놓는 고차원의 오자도 아니었다.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자의식. 이건 오자가 아니라 생명이었다. - 285쪽

시작은 2005년인가 2006년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원고 교정을 보다가 1교, 2교를 거쳐도 계속 나오는 오탈자 때문에 짜증이 났고, 오탈자란 없다가도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을 품게 됐다. 그래서 블로그에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패러디해서 오자의 자연발생설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거울에서 독재자 앤솔로지를 모집할 때 이 소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태생이 게으른 내가 그렇게 했을 리는 없고…. 대통령의 성이 이에서 박으로 바뀌었을 때 몹시 낙담하면서도 이 소재를 써먹을 수 있는 기간을 5년 더 확보했다는 위안을 얻었던 기억은 난다. 그리고 연이은 실정을 보며 이 정권 하에서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느 추석 연휴를 할애해 결국 완성했다. (그동안 아이를 봐 준 아내에게 감사!)

이야기를 풀기 위해 신문사 현실 고증도 일부 포기했고, 이래저래 구멍이 많을 것이다. 좀 더 치밀하게 짰다면 좋았을 것을. 그 사이에 정권도 바뀌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전보다 나은 정권이지만, 이게 전혀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다 보면 이 이야기가 다시 더 재미있어지는 미래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만, 그걸 바라야 할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2. 곽재식, 「은방장군」

나는 우리 삶이 사실은 거대한 속임수이고, 내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곳 주변만 땅과 건물로 꾸며져 있고 그 사이에 다른 지하철역에 내려서 그 바깥으로 나가면 사실은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빈 종이 같은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 적이 한 번 있었다. - 39쪽

나는 이 이야기를 쓸 때 어쩌다 보니 병원에 입원하게 된 상태였다. 다른 할 일은 없이 병원 안에만 있어야 했는데 그런 중에 웹진 거울 마감이 곧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은 한창 웹진 거울에 올릴 단편을 꼬박꼬박 써 보자고 결심한 참이라, 다른 핑계로 소설 쓰는 것을 미루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병실 한편의 작은 탁자 위에서 이 단편을 썼다. 그때는 딱히 소설을 쓸 특별한 다른 소재도 없었고, 정교하게 이야기를 짜 맞춰서 신선한 이야기를 떠올릴 상황도 아니었기에, 그냥 병원에 머물던 밤,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생각나는 것들을 최대한 모아서 가능한 한 빨리 단편 한 편을 완성해 보려고 했다.

그 때문에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재미이지만, 나로서는 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내 상황을 돌아보는 기억이 특히 새록새록 한 소설이기도 하다.

3. 김두흠, 아이템 획득

장애인들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 타인의 도움을 거절할 텐데, 아이템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도와줬다. 고개 숙이고 있는 아이템을 앞에서 번쩍 안아 올렸다.

“헉!”

깜짝 놀란 아이템은 목발까지 떨어뜨렸다. 다리가 하나 없어서 그런지 상당히 가벼웠다.

“가벼우시네요.”

“다리가 하나 없으니까요. 아시면서.” - 87쪽

내용이 좀 잔인해요. 게다가 이 소설 쓴 지도 꽤 됐어요. 4, 5년 전에 썼을 겁니다. 그걸 거울에서 후기까지 쓰라고 해서요, 와 진짜, 거울이 저보다 더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후기 써야 하니까, 이 소설 썼을 당시를 돌이켜봐야 하잖아요. 그게 어떤 느낌이냐 하면요, 마치 살인자가 범행 4, 5년 뒤에 잡혀서, 범행 일체를 자백한 뒤 수사관들과 함께 현장검증을 하는 느낌이에요. 당시 기억을 또 떠올려야 해서 괴롭습니다.

서울에서 커피집 할 때 쓴 소설입니다.

크지 않은 가게에서 혼자 하루 열네 시간씩 일을 했어요.

제가 직접 가게에서 커피도 볶았기 때문에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쉬었고요.

작은 가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미칠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가게가 송파동에 있었어요. 근처에 롯데월드도 있고 석촌호수도 있었어요. 주말이면 친구 연인 가족 등등, 가게 앞으로 많은 사람이 지나다녔어요. 놀러 다니는 저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가슴이 폭발할 것처럼 부러웠어요.

봄이면 석촌호수에서 벚꽃축제를 해요. 벚꽃축제 기간에는 평일에도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요. 주말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이 지나다니고요.

저는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저 자신이 낯설 때가 있어요. 어떤 감정이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폭발하듯이 제가 펑! 하고 터질 때요. 그리고 대개 그럴 때 단편소설을 씁니다. 그 상태에서 단숨에 쭉 써요. 대신 소설이니까 좀 더 과장해서 써요.

벚꽃축제 기간에 기어이 폭발했어요.

날씨가 너무 화창했고, 석촌호수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그러면 그럴수록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제가 너무 답답하고 불쌍했고요. 그러다가 결국 펑!

그때 쓴 소설입니다.

잔인한 내용이 많아서 쓰는 동안 힘들었지만, 특히 이 부분 쓸 때 가장 많이 힘들었습니다.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어요. 쓰면서 제가 저를 욕했고요.

4. 김인정, 궁천극지

선술을 익혀 바람과 구름을 끌고 다니던 녹주신녀는 수십 겹 비단을 걸치고 아홉 겹 지붕 아래 무료하였다. 그녀는 명쾌하게 검을 들어 목숨을 거두고 그 피의 값을 스스로 뒤집어쓰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등선하지 못할 것을 명확히 알던 시절. 기꺼이 그리 행하던 시절.

그녀는 물고기를 친 병풍을 치우고 자개장 안에 든 검을 꺼내 쓰다듬었다. 호선의 꼬리털이 섞인 끈목은 그새 썩어 버렸다. 선인의 터럭도 지상에 속하면 상하는구나. 녹주는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 185쪽

「궁천극지」를 비롯한 일련의 이야기는 amrita 님과 몇 년째 느긋하게 주고받으면서 진행 중인 “운화” 프로젝트에 속합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쓰는 이야기는 별개로 “화락춘풍”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왔습니다. 이 화락춘풍 연작은 대체로 여자 이야기인데, 궁천극지 역시 녹주와 태선이라는 두 여자가 중심입니다.

모티프 중 하나는 『열이전』(조비 저, 지만지 출판사)의 [풍 부인] 이야기.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환제의 귀비였는데, 사후 그녀의 무덤이 도굴꾼에게 해를 입었습니다. 그 후 환제의 무덤을 이장할 때 생전 총애했던 풍 부인을 함께 배향하고자 하였지만 그녀의 사체가 “더럽혀졌기 때문에” 함께 묻을 수 없다며 신하가 반대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 사람이 아닌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낀 아이러니하고도 불합리한 부분이 오래 뇌리에 남았습니다. 머릿속에서 구르던 이야기가 이리저리 뻗어 나가, 나중에는 “이겼다”고 최후의 최후에 선언하는 여자와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는 여자에 대해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비로소 이겼다고 말하기 위해서 제도를 이용하는 태선과, 매우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도 안에서’ 녹주를 모욕하려는 진강과, 바로 그 제도의 기괴한 면을 이용해서 같은 방식으로 되갚는 녹주.

또 다른 모티프는 물론 수많은 요괴 설화입니다.

“이 다음에 어떻게 됐는데?” “그래서 그게 뭔데?” “저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게 누군데?” 하면서 주춤주춤 다가가다가 앗! 하는 사이에 위험에 빠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매우 연약한 상태를 자처하는 일이란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연약한데도, 다음 순간 앗 하고 꽉 깨물지도 모르는 이야기의 맨얼굴 앞으로 용감하게 나아가, 그 모든 위험을 읽어내서 결말을 발견합니다.

이제 무엇을 보았는지 들려주세요.

5. 김주영, 「인간의 이름으로!」

“부수지 말고 참지 그랬어?”

선생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로봇은 언제나 진심이다. 그래서 로봇 앞에서만은 나도 진심으로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때는 화가 났단 말이야.”

“화가 난 거지 루루가 싫었던 것은 아니잖아.”

정곡을 찌르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사랑하지만 상처 입힌다는 모순을 로봇인 선생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다. - 63~64쪽

시설에 있는 사춘기 학생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경험이었어요. 자신을 버린 부모를 보듯 어른을 적대시하며 간혹 폭발적으로 표현하는 거친 감정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상처받는 선생님들도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생에게 받은 상처와 그로 인해 생긴 분노를 서로 다독이며, 앞으로 이 학생들과 지내야 할 나날을 가늠하며 힘겨워했지요. 그렇게 스트레스와 싸우며 우리는 학생들과 1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학생들의 서투른 애정 표현을 알아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과 불안함이 늘 마음속에 있어서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우리를 싫어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사실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세상 이런 츤데레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 시기에 학생들의 거칠고 난폭한 행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상처를 학생들에게 준 일은 없는가 반성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난폭함에도 끄떡없고, 쉽게 학생을 판단하지 않으며, 그들이 내뱉은 모든 감정을 온전히 수용하고 지지해 주는 로봇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내게도 그런 로봇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드로이드 사업이 빨리 발전하기를 빌고 있습니다.

6. 손지상, 「고양이 덫」

소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증오도 미움도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해하려는 욕망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신문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사건은 분명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저지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 156~157쪽

이 단편은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보신 버전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특정한 문체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한 버전입니다. 제가 무슨 제임스 조이스도 아니고 어떤 종류의 문체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었고 실험을 통해 무엇을 증명하려고 했는지를 거창하게 해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요. 여러분이 보신 단편은 실험의 흔적을 철저히 솎아내고 잘 사포질을 한 버전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분량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지요. 회화의 양이 평소 제가 쓰는 글보다 많은 이유는 실험의 흔적입니다.

‘고양이 덫’의 아이디어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얻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그분의 체험이 담겨있는 아이디어였고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낀 오싹함을 제 나름의 개성을 담아 증폭시켰으면 하는 마음에 쓴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신문 기사로도 난 적이 있다고 하니 기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체험은 이미 10년도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들었거든요.

저는 ‘맹목’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극단적인 수준으로 치달아 갈 만큼 몰두하는 일도 거의 없고, 또 그런 사람에게 끌리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 주제에, 정기적으로 ‘누군가 맹목적인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통제하고, 소유하고, 보호하고, 독점하려는 에고 때문에 “맹목적으로” 폭주하는 바람에 도리어 그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 마는 이야기’를 쓰고는 합니다. 저도 모르게 저는 주객전도나 본말전도가 삶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지금 이 후기도 그런 것 같네요.

7. 엄길윤, 「내겐 너무 완벽한 로봇」

문을 열자마자 로봇이 튀어나와 놀라 주저앉았다. 로봇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기계음으로 된 음악 같기도 하고 다시 들어보면 사람이 중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음성 기능이 있었단 말인가? - 27쪽

이야기는 때로 질문에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꼭 결말이 나고 모든 의문이 풀려야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떠들썩했던 인공 지능 알파고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안다. 언젠가는 인공 지능이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시기가 온다는 사실을.

이미 현재의 인공 지능은 인간을 거의 따라잡은 것처럼 보인다. 쉽지 않으리라 여겨졌던 예술이라는 추상적인 상징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인간만의 전유물처럼 생각했던 창작도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다. 이 정도의 발전 속도라면 인공 지능이 감정을 가지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인간이 행하는 모든 어리석은 일 또한 인공 지능도 똑같이 할 거라는 말과 같다.

감정이라는 게 뭔가? 인간의 모든 것이며 어쩌면, 불완전함 그 자체다. 인공 지능이라고 해서 감정의 본질을 피해갈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이야기는 질문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아주 많이.

인공 지능이 감정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건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절대 우리가 예측한 대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인공 지능은 우리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 그 사실을 잊고 우리에게 질문하고는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8. 엄정진, 「뚜공! 우리의 지구」

마치 뜨겁게 달아오른 록밴드 콘서트 중에 스테이지 다이빙을 시도한 록커처럼 우리는 단인들이 치켜든 손 위에 누운 채로 어딘가로 떠밀려가고 있었다.

“뚜공! 뚜공! 뚜공! 뚜공!”

단인들은 다른 낱말을 다 잊어먹고 이거 하나만 기억하는 것처럼 뚜공만 연발했다. - 356쪽

「뚜공! 우리의 지구」는 연작 과학소설인 〈우주선 임라나 시리즈〉 중의 한 편으로 웹진 거울에 실었던 단편소설입니다. 오랜만에 거울 중단편선이 그것도 아작 출판사의 협력으로 출간되어 서점에 유통되었는데 실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쓰기 전 구상을 할 때는 ‘지구에서 보낸 짧은 휴가’라는 평범한 제목이었는데(브라이언 올디스의 『지구의 긴 오후』 오마주) 초고를 쓴 후에는 역시 이 제목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뚜공’은 어감이나 극 중 표현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한때 우리나라를 강타한 주스 광고의 환호성 ‘따봉’을 참조하여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기억하는 이도 쓰는 이도 거의 없지만 한때 엄청난 유행어였음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랄까요. 언어란 한순간에 만들어져 고정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생겨나고 의미가 더해지거나 변한다는 걸 명심하며 지은 낱말입니다.

인류의 후손이 되는 지성체가 곰을 닮았다는 설정은 테리 비슨의 「불을 발견한 곰」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전형적인 카고 컬트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는 없겠죠. 딱히 복잡하게 꼬지 않고 정공법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핵심 줄거리는 ‘뚜공이 무엇이냐?!’니까요. ;-)

그럼 부디 즐거운 미래 지구 여행이 되길 바라며…….

9. 유이립, 「피그말리온넷은 왜 다운됐는가」

건우는 골목에서 나와 포장마차를 향해 걸었다. 포장마차는 천막과 슬레이트로 엮어 고장 난 버스와 이어서 지붕을 만들었다. 지붕 아래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꼬치를 먹고 있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안경 쓴 얼굴들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건우는 자리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오늘 일하게 해 준 고용주가 내일도 나오게 해 준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요즘 용접이나 철근 박는 일 하면 억대 연봉을 받는대. 못 배운 놈들이 잘 나가는 세상이야.”

“형. 그것도 힘든 일이에요. 오브젝트로 경험을 받을 수 있지만 근육도 있어야 하고 손재주도 있어야 해요.”

“동생은 그런 일 하고 싶나? 우리는 그래도 대학 졸업장 받았잖아?”

“코딩, 큐에이, 웹홍보나 하는 일용직 신세 못 벗어나는데 무슨 일이든 해야….”

“아니, 동생. 진지하게 생각해 봐. 진짜 그런 일 할 수 있겠어?”

동생이라 불린 사람은 뜨거운 김이 서린 안경을 닦고, 허공에 시선을 던지며, 생각에 빠졌다. 격렬히 고개를 저었다. - 228쪽

이 장면으로부터 이 소설이 시작됐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상상된 이 이미지로부터 앞뒤를 연결하며, 왜일까? 어떤 분위기일까? 어떻게 나아갈까?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왜일까? 어떤 분위기일까? 어떻게 나아갈까? 소설가 혹은 창작자들이라면 거쳐야 할 사유과정을 제대로 연마하지 못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사유과정에 대한 인식이 생겼습니다.

정서라는 좀 어려운 단어에 대해서도 알아가던 시기였고, 나름 반영하려 애를 썼습니다.

쓰면 쓸수록 ‘고장난 버스와 연결되어 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포장마차‘ 이미지를 스스로 대견하게 여겼습니다. 진짜 뭔가를 창조한 느낌이었고,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쓰는 장르가 SF이고 그 중 사이버펑크라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장르뉴비였고, 이제 막 리그에 진출한 아마추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SF로는 많이 부족하며, 괜찮은 소설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추어들의 특성인 어제 배운 걸 오늘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허술함도 컸습니다. 먼훗날 현재, 비문과 단정하지 못한 문장을 보니, 보시는 분들께서는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게다가 SF로서 그렇게 최신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음. 배울 것이 많았던 시기 철없이 나서던 과거여서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거듭 반성할 게 많은 작품입니다. 사실 작품이라는 말도 아깝고 습작에 가깝지 않을까요? 운이 좋아서, 이 소설이 거울 단편선집 ‘아직은 끝이 아니야‘ 에 수록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 대신 피그말리온 넷이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을 출판된 지금에야 다시 보니, 많이 부족해도 그때는 제법 진지했구나. 최선을 다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을 써가면서 앞으로 제가 어떤 장르 중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도 정해졌습니다. 앞으로 더 겸손하고, 더 노력해서 좋은 소설을 쓰려 노력하겠습니다.

10. 이나경, 「냄새」

나는 죽음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전히 고요하고 엄숙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미지의 존재가 발하는 의지처럼 보였다. 생명을 집어삼키겠다는 집요한 의지 말이다.

다행히 나는 아직 그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다.

다행? 나는 안도하기는커녕 공포에 질렸다. 지금까지 내가 가깝게 느꼈던 죽음이 실제로는 아득히 멀리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흡사 얕은 물가에서 첨벙거리면서 파도에 휩쓸려 죽을 것을 걱정하는 꼴이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요컨대 파도의 크기였다. 비록 냄새는 못 맡았을지언정 이내 파도가 나를 덮치리라는 사실만큼은 또렷하게 예감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파도가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거대하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해일만큼. 그것이 내게 다가온다면 그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되었다. 태양은 손바닥으로 쉽게 가려지지만 그것의 진정한 크기는……. 나는 행성만 한 크기의 죽음이 나를 짓누르는 악몽을 꾸었다. 꿈에서 본 행성은 나를 향해 눈을 번득거리고 있었다. - 392~393쪽

재작년 초에 처가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보라카이였다. 그곳에선 많은 일이 즉흥적으로 결정되었는데, 마지막 날의 마사지샵 방문도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들끼리의 방문이었다.

마사지? 나는 아내를 따로 불러 격정을 토로했다. 아내도 내가 마사지라면 질색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이 그렇게 됐다고 했다. 일이 그렇게 된 이상 나만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뿐 아니라 다들 표정이 썩 밝지 않았지만, 아무튼 일이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마사지샵 주인은 뜻밖에도 한국인이었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주절주절 설명하더니 에센스 오일을 꺼냈다. 마사지할 때 사용할 테니 마음에 드는 향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신중하게 냄새를 맡아보고 하나씩 골랐다.

“그건 삼파기타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필리핀 재스민이에요.”

삼파기타, 삼파기타. 나는 내가 고른 이름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우리는 팬티 차림으로 가운을 걸쳤다.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서늘함과 짜증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문득 오기가 생기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좋길래 다들 기꺼이 반죽 취급을 받으려는지 알아내야겠어. 그래, 르포를 써서 낱낱이 고발하는 거야. 뭐를? …뭐든!

성급하게도 나는 제목부터 정했다. <아내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윽고 마사지사가 들어왔다. 나는 침대에 엎드렸고 마사지사의 손가락이 내 몸에 닿았다. 이후 강렬한 깨달음이 쇄도했다.

‘좋다고 고른 냄새가 바로 죽음의 냄새였구나….’

삼파기타, 그것은 죽음의 냄새였다. 내 몸이 마사지사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재조립되었다가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는 르포 대신 소설을 떠올렸으니 그게 바로 ‘냄새’다.

이건 사족이지만, 올 초에도 처가 식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역시 사족이지만, 아무래도 또 소설을 쓸 것 같다.

11. 이서영, 「구제신청서」

“땀과 피와 정액이 모두 묻어서 끈적거리는 요 위에서 베개가 젖도록 우는 삶에 대해서 네가 뭘 알아! 난 부끄럽지도 미안하지도 않아. 이따위 책상은 다 갖다 버릴 거야. 씨발년아, 네가 뭘 알아!” - 125쪽

이 소설은 제 두 가지 경험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소설입니다.

첫 번째는 노조에서 일하면서 내내 노동청에 제출하는 구제신청서를 쓴 경험입니다. ‘정당한’ 이유도 ‘부당한’ 이유도 구제신청서라는 읍소의 형식 안에서는 이상하게도 지질해 보이곤 했습니다.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정상참작’을 요청하는 노동자들을 글로써 대리하고 있자면 마음이 갑갑해지곤 하였지요.

두 번째는 EA의 게임 심즈 플레이 경험입니다. 아바타인 ‘심’을 키워서 직업을 갖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죽을 때까지 플레이하는 인생 시뮬레이션인 이 게임을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는 유저는 거의 없지요. 2013년의 어느 날, 저 역시 평범한 게이머로서 한 부잣집을 결혼을 통해 ‘먹고’, 남은 가족을 몰살시켰는데요. 의미심장한 버그가 생겼습니다. 귀신을 없애기 위해서는 묘비를 깨거나 없애야 하는데, 남편을 빼앗겨서 ‘적’이 된 전 부인의 묘비는 깨지지도 커서에 잡히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전 부인은 그 집을 떠나지 않는 귀신이 되어 오래도록 제 심과 함께 살았습니다. 제 심은 밤이면 침대를 뒤흔드는 그 귀신과 함께 살면서 승진도 하고 아이도 하나 낳고 그 아이를 결혼도 시켰습니다. 연금을 받던 평온한 어느 날, 제 심의 수명이 다했습니다. 임종하는 제 심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 있던 건 바로 그 귀신이었습니다. 그녀가 죽을 때 우리의 관계엔 ‘적’이라고 표시되었지만, 제가 죽을 때 우리는 ‘오랜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교섭하는 중층적 이야기들에 매료됩니다. 상황을 앞에 두었을 때 사람의 선택 기준은 비단 선과 악뿐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교섭을 합니다. 저항하기 위해서 속옷에 기밀문서를 넣어 옮기는 여성 레지스탕트의 이야기에는 중층성이 있지요. 공권력이 그녀에게 속옷을 벗어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라기보다는 누구의 ‘소유’일지 모르는 자원에 대한 망설임이지만, 그것이 활용되는 양상은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억압받고 빈곤한 이들은 자원이 많지 않기에 가지고 있는 자원을 통해 최대한의 교섭을 해야 합니다.

이 인용문은 이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인용문입니다. 가난 때문에 매트리스 위에 커버를 씌우지 못했던 20대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우울에 빠져 흐느껴 울던 와중에 몸에 달라붙는 끈적함이 더욱 비참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고를 그만두고 싶어서 그대로 잠들었고, 잠에서 깨면 허벅지에 들러붙는 감각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습니다. 자원이 없는 이들은 함정에 빠지기 더욱 쉽지요. 그 함정에서 온 힘을 다해서 기어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자주 웁니다. 세상은 엿 같지만 꼭 엿 같지만은 않다는 게 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12. 전삼혜, 「안드로이드 고양이 소동」

논문이는 한 달 중 일주일 정도를 병원에 있었다. 탈장이 심했고 우리가 가면 알아보는 듯 냐냐거리며 귀여운 척을 했다. 우리는 마스크에 장갑을 끼고 논문이 면회를 갔고 수술이 잘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는 대답을 피했다. 어찌 됐든 논문이가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집 안에 고양이 털이 굴러다녀도, 논문이가 ‘이의 있습니다. 판사님!’ 급의 항의하는 소리를 내도, 어느 날 내 아이패드로 트위터를 하기 시작해도. 논문이가 건강해지기만 하면. 하지만 수술을 하기도 전에 논문이는 새벽에 떠나 버렸다. 논문이의 병원비 청구서를 받아 들고 우리는 3개월 할부 결제를 하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제 고양이 같은 거 키우지 말자. 줍지도 말자. 묘권 후원 센터에 정기적으로 기부나 하고, 네코아츠메나 열심히 하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밤새도록 소주를 마셨다. 석 달 후 륜은 방을 뺐다. 륜이 방을 뺐는데도 곳곳에 고양이 털이 날렸다. - 14쪽

무언가 키우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고양이든 개든 새든 햄스터든. 혹은 인간 아이도요. 저는 뭔가를 키운다는 게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여유가 넘쳐서 뭔가 키우는 건 아니더라고요. 자기 여유에서 빠듯하더라도 빼고 빼서 무언가를 전심전력 사랑할 판단이 서면 키우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랜선 너머로 응원하다가 쓰게 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청소년 SF를 주로 쓰고 출판시장 쪽에 있어서 한 권 안에 묶이지 못할 이야기는 어디 공개할 데가 없는데 다행히도 거울에 들어와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 업둥이를 데려다 키우는 분들이 주변에 좀 계세요. 어떤 아이는 정말 걷고 있는데 구두 위에 올라오고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서 키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기하죠. 어리고 작은 생명에겐 목숨을 건 도전이었을 거예요. 이 거대한 생물이 과연 나를 받아들여줄까. 나의 삶을 책임져줄까. 그런 작은 도전에 응해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중 몇몇 아이들은 하늘로 떠났죠. 인간이 좀 길게 사는 생물이잖아요.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슬프기 때문에 다른 아이를 또 들여와 힘껏 사랑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사랑이란 게 누군가에게는 정말 구원이 되니까, 제 주변에는 구원자들이 많은 거예요. 멋진 세상이죠.

논문이를 이야기 안에서나마 오래 살려두지 못해 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삶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에게 논문이의 삶을 쓰는 건 무리였을 거예요. 예쁜 고양이 사진은 좋아하지만, 그 한 컷 예쁨 밖에 오억 컷 정도의 ‘이 생물은 왜 이러는 걸까’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언젠가는 사람과 동물이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도 쓰고 싶습니다.

반려동물과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에게, 빛나는 순간이 가득하기를 빌어요.

존경을 담아 박수를 보냅니다.

13. 전혜진, 「뺑덕 어멈 수난기」

그전에도 사무실에 막내는 있었다. 하나하나, 계약직으로 들어왔다가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면서 슬그머니 전출들을 가서 탈이었지. 계약직으로 들어온 애들은 고분고분했다. 2년 넘게 붙어 있는 애는 거의 없었지만, 머무르는 동안 살살 비위도 잘 맞추었다. 특히 요전까지 여기서 지내다가, 결혼한다며 사표 내고 나간 애는 참, 인간이 된 아이였지. 여기 터줏대감이 저 계장이 아닌 인덕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본 그 애는, 수시로 술이며 밥이며 제 돈으로 사 바쳤고 여행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면세점 립스틱을 잊지 않는, 싸가지가 된 아이였다. 아빠가 뽑아 주었다는 차가 계약직 막내가 끌고 다니기에는 좀 분수에 맞지 않아 보이길래 몇 번 불편하다는 티를 냈더니, 인덕에게 작은 성의 표시를 할 만큼의 센스도 있었다. 마음도 예쁘고, 구찌 키링도 마음에 들어서 그냥 넘어가 주기는 했지.

여튼 그때 그 애는 사무실 구석의 꽃 같은 막내로는 더할 나위 없는 애였다. 커피도 맛있게 탔고, 입안의 혀처럼 살살거리며 비위를 맞출 줄도 알았다. 게다가 웬만큼 잘사는 집 아이라서 그런지 씀씀이도 나쁘지 않았다. 역시 돈 좀 있는 집에서 난 애들이 구김살도 없어서 그런지 어른 비위 맞출 줄도 알고, 둥글둥글 뭐든 유하게 넘어갈 줄 아는 애라서 업무 시간에도 같이 나가 커피도 마시고 드라이브도 하며, 참 좋게 지냈다.

그랬는데. 좋은 날도 한 철이라고 그다음에 들어온 게 하필 저런 애라니. - 298~299쪽

가끔 픽션이 어떻게 해도 실화를 못 이기는 한국에서 글 쓰기 힘들다는 농담들을 하는데, 이 이야기에도 그 말을 붙여봐도 좋을 것 같다.

안전가옥의 쇼케이스 날 다른 작가님이 이건 “순수한 악”이 아니냐고 물어보신 이 배인덕 씨는, 사실 회사에서 잘 찾아보면 한둘 정도는 보일 평범한 직장상사일 뿐이다. 평범하고, 조금 악랄한. 하지만 막상 당하는 피식자가 아니면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하고 넘어가기 쉬운 그런 사람.

어떤 현실 속의 괴롭힘은 악랄하지만, 너무 비루하고 쪼잔하며 종합적으로 추잡스러워서, 남에게 설명하기 굉장히 고통스럽기도 하다. 학교에서도, 혹은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렇다. 이를테면 사람의 인격을 집요하게 무시해서, 결국은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나에게도 “죽여버리고 싶은 옛 직장상사”라는 게 있다. 나를 무척 고통스럽게 했던 십 년 전 나의 배인덕 씨는 잘은 모르지만 잘 먹고 잘사시며 승진도 하셨다는 것 같다. 풍문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헛웃음만 지었다. 아, 예. 평생 지금 그대로 변하지 말고 오래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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