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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재 SF 어워드: 빅 픽쳐의 시작
-지역 및 청년 SF 문화 확산-

赤魚(김주영)
 

지난 2018년 8월 1일, 부산대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김진재 SF 어워드 공모전이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로 시작되었다. 어워드 명칭이 고인이 된 정치인이자 현재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인 김세연 의원의 부친 김진재 씨를 기린다는 점에서 의아해하거나 우려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SF 팬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2018년 5월, 북경 APSFcon 행사장에서 김진재 어워드가 시작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나 역시 정치가의 이름이 SF와 결부되었다는 것에 의아함을 넘어선 충격과 함께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부산대 도서관 SF 자문단에 참가하게 되면서 여러 회의록과 서류를 검토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관점과 시선이 바뀌었다. 또한, 이 어워드가 부산대 도서관에서 추진 중인 SF 관련 사업의 일부로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2018년 7월 26일에 열린 부산대 도서관 SF 자문단 첫 회의에서 부산대 도서관 이수상 관장님은 “한국 SF 100년 사(史)에 또 없을 좋은 기회이니, 이 기회를 잘 활용하기 바란다.”는 말씀을 남겼다. 김진재 SF 어워드가 ‘한국 SF 100년 사에 또 없을 좋은 기회’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명확히 말하자면 아니다. 김진재 SF 어워드는 부산대 도서관 관장님이 말씀한, 현재 진행 중인 그 ‘좋은 기회’의 일부이다.

지금부터 그 ‘좋은 기회’가 무엇인지를 김진재 SF 어워드에서부터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정치가와 SF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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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주관하는 김진재 SF 어워드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북경 APSFcon 행사장에서 건네 들었다. 부산 시민에게 건네는, 핵심만 담긴 짤막한 정보였다. 그러나 머릿속엔 길고도 복잡한 의문과 생각이 펼쳐졌다.
제일 처음에 든 의문은 ‘김진재 그분이 대관절 SF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현직 국회의원의 아버님이라는 사실에 다소 거부감이 들었다. 드디어 SF 팬덤이 정치계와 손잡는 지점까지 와있나 싶어 충격과 함께 아찔해지기도 했다.

정치가와 SF의 결합이 의아함을 넘어서 수상쩍고도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폐쇄적으로 움직인다고 자주 비난받아온 SF 팬덤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SF 팬덤은 1990년대 초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기 힘든 SF 장르의 특성으로 인해 많은 초창기 팬덤 구성원들이 지금껏 활동하며 주요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이는 SF 팬덤이 폐쇄적이라는 오해와 비난을 불러일으켜 왔다. 또한, 뒤늦게 팬덤에 합류한 작가나 SF 팬들이 소외감을 호소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고, SF와 관계된 일에 초창기 팬덤 구성원들이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불만을 제공하기도 했다.

비판적인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SF 팬덤 문화 속에는 분명 일종의 관계 구도와 역학이 존재해왔다. 친밀감 혹은 연대감으로 ‘우리’가 만들어지면, 당연하게도 ‘우리’ 밖의 소외된 타자가 생겨난다. 소외된 타자들은 다시 또 다른 ‘우리들’을 만들어 내고, 이편과 저편의 경계가 생겨난다. 이런 현상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경계 사이에 머무르는 냉소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소통 부재로 인한 갈등이 생겨난다.
표면화된 사건들에서 SF 팬덤은 이러한 갈등을 자주 드러내 왔다. 주로 반복적으로 제기된 것은 사건에 영향을 끼친 인물과 집단에 대한 비난과 반발 그리고 그 영향력의 배경에 놓인 ‘결탁’에 관한 의심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느닷없이 나타난 김진재 SF 어워드의 배경과 그 목적을 수상쩍게 여기고 의심하는 SF 팬의 시선은 당연한 현상이다.

정치인의 이름과 SF의 결합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것은 비단 SF 팬덤만이 아니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정치가인 김진재 의원과 SF라니 어떤 타당성이 있느냐는 반문을 던지는 부산 시민을 여럿 마주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고 김진재 의원이 부산에서 ‘인간적으로’ 후한 평가를 여전히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시절에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던 선량한 향토 기업가이자 정치가. 부산에는 그의 오랜 정치 생활이 그 선행을 미담으로 기억하는 사람 덕분이라고 여기는 시민이 많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 아들 역시 정치가인 김세연 국회의원이라는 점 역시 이 어워드의 의도를 수상쩍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부산대 도서관 SF 자문단의 서류를 읽다

부산대 도서관 SF 자문단에 합류한 것은 2018년 7월이다. 김진재 SF 어워드를 비롯하여 부산대 도서관에서 추진 중인 사업의 밑그림은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구매 도서 목록이나 SF 관련 전시 등에 관한 조언 등을 위해 참여하게 되었고, 첫 회의를 마친 후에 지난 1년 동안 진행되어온 SF 관련 사업 진행에 관한 서류를 모두 메일로 전달받았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김진재 SF 어워드가 생기게 된 배경이었다. 여전히 의구심과 의심이 가득한 채로 추진 경과가 담긴 첫 번째 회의록을 열었다.

회의록의 맨 첫 줄에는 2017년 7월에 김세연 의원이 대학도서관진흥법과 관련된 부산대 도서관정보학세미나 강연에 참여한 사실이 적혀 있다. 세미나 이후 그는 도서관장과 짧은 만남을 가졌고, 여기에서 그는 대학도서관과 SF에 특히 많은 관심이 있음을 알리게 된다. 이 자리에서 그와 부산대 도서관 측은 대학생 및 지역 학생과 연계된 독서장려사업(특히 SF 분야)의 추진 필요성에 의견을 합의하고 사업 시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그의 집안 사업체인 (주)동일이 부산대 도서관 측과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 위해 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사업 검토에 관한 두 기관의 의도를 기재한 부분이다. (주)동일 측은 “기업의 홍보나 업적이 아닌, 순수 후원의 차원이며, 김세연 의원 선친(김진재)의 이름을 명명하거나 기업의 이름을 내거는 목적은 아님”을 문서에 명시하고 있다. 그의 후원이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검토 단계에서 순수 후원의 의도를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에 높은 평가를 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SF에 관한 언급이다. 실제로 (주)동일이 이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의도는 시작도 끝도 SF로 보였다. “기본취지는 SF 장르의 창작 활성화”, “SF에 관심이 많은 교육 인재 후원”, “SF 저변 확대에 기여”와 같은 의도를 도서관이 아닌 김세연 의원 측에서 밝히고 명시한 사실이 매우 이색적이다.
 

혹시 SF 덕질을 하는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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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그가 왜 이토록 SF에 관심이 많은지 궁금해졌다. 그가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부유한 SF 팬이 국립 종합대에 설치된 도서관 사업을 후원하면서 본격적이고도 광대한 스케일의 SF 덕질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지경이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회를 봐서 부산대 도서관 관장님께 물었다. 그를 다소 기이하게 여기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 관장님의 대답을 그대로 전언하자면 다음과 같다.

“선친인 김진재 의원이 원래 공대 출신이라 SF를 워낙 좋아하셨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SF를 많이 접하고 읽으면서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회의하러 만난 자리에서 보니 진짜 SF를 좋아하긴 하는 것 같습디다. 그리 말도 많이 안 하고 점잖게 조용히 앉아있던 양반이 SF 이야기 시작하니까 눈빛이 달라지데요. 요즘 말로 덕후 아닙니까?”

그는 정말 부유하고 성공한 SF 덕후일까? 아직은 섣불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티브비 화면에서 정치인으로만 보이던 그가 SF 팬덤 행사에 나타나서 소탈하게 SF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현직 정치인이 SF 팬이라는 사실 역시 여전히 초현실적인 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가 참여함으로 인해 부산대 도서관 사업에 SF의 비중이 커진 것은 현실이고 사실이다. 김진재 SF 어워드는 그가 참여하는 부산대 도서관 사업의 일부로 우선 추진되는 행사이며, 더 큰 그림은 그 너머에 있다.
 

국립대 도서관에 SF 전용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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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는 특색있는 도서관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현재 신축 도서관을 설계 중이다. 도서관장님의 말을 따르면, 지금 시대는 도서관이 조명받는 시대다. 거대한 도서관에서부터 작은 북카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특색있는 도서관에 대한 수요와 요구가 거세다. 또한, 세계 여러 대학에서 고유한 개성과 특색을 가진 도서관을 소유하고 있다. 

부산대는 이러한 조류에 관심을 가지고 신축 도서관의 특색을 고민하고 있으며, 신축 도서관 한 층을 SF 전용관으로 꾸미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 SF 전용관이 생긴다면 SF 도서 및 자료 그리고 영상물, SF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전시물로 꾸며질 예정이다.

국립대 도서관이 SF 전용관으로 꾸며지는 일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SF는 하위 문학으로 분류되어, 순문학으로 불리는 주류 문학과 비교하면 문학적 가치가 없이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때로는 허황한 문학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런데 학술을 중시하는 대학에서 주류 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을 그것도 SF를 위한 전용관을 설치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반란이다.

게다가 SF 전용관이 서울・경기권이 아닌 지역 대학도서관에 설치된다는 점 역시 혁명적이다. 기형적인 서울집중 현상은 SF 문화에도 마찬가지여서, SF 행사나 전시 및 강연 대부분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이로 인해 SF 문화의 영향력은 서울・경기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SF 문화 저변확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타 지역 SF 팬의 박탈감과 소외감 역시 문제 중 하나이다.
부산대 신축 도서관에 SF 전용관이 설치된다면 이런 문제가 다소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전용관이 생긴다고 해서 SF 문화가 확산되지는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SF 문화 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이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SF 전용관이 생기는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울산, 경남 그리고 나아가 대구, 경북까지 이르는 지역에 거점을 두는 SF 팬덤의 생성 및 활동이 필수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진재 SF 어워드가 의미를 가진다.
 

김진재 SF 어워드가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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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재 SF 어워드는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며, 성인의 경우는 만 27세 이하 성인이라는 조건을 걸고 있다. 전국이 대상인 어워드지만, 지역 기업가이자 정치가의 명칭을 딴 어워드라는 점에서 부산 중심의 지역 응모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워드가 꾸준히 그리고 성실히 진행된다면 SF를 창작하는 젊은 작가, 만화가, 영상제작가를 조기에 발굴하고, 이들이 SF 팬덤의 관심과 지원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SF 전용관을 가진 부산대 도서관이 이들을 성장시키는 SF 문화 활동의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들이 부울경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간다면 지역 SF 문화의 역동은 분명 지금과 달라질 것이다. 현재 SF 문화를 이끌어 가는 세대가 이미 중년에 가깝고, 젊은 세대가 부족함을 고려한다면 이들은 몇 년 후 성장해 지역뿐 아니라 한국 SF 문화의 역동과 그 색을 바꾸어 가는 새로운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전에 없었던 신종 세대가 SF 문화계에 출현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가는 미래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나 그 미래상에 닿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지원자의 부족이다. 부산대 도서관 측에서 과학과 관련 있는 다양한 단체 및 학교를 중심으로 홍보를 계속해 나아가고 있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SF 어워드라는 점 그리고 앞서 지적했다시피 지역에는 SF 문화의 영향력이 적다는 점이 가장 문제점이다.

그래서 김진재 SF 어워드에 관한 의심과 오해를 덜고, 이 상이 가지는 중요성을 홍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긴 글을 썼다. 이 어워드를 정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SF 팬이 있다면, 잠시만 판단을 유보해 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청년 SF 창작자를 지원하기 위한 이 어워드는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디딘다. 어쩌면 SF 덕후일지 모를 정치가의 후원은 한국의 SF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변화시킬 전환점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그에게 다른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것이 분명해졌을 때 비난해도 충분할 것이다.
 

맺음

초창기 SF 팬덤에 합류하여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리서 SF를 지켜봐 왔다. 그 위치가 어디였든 간에 언제나 마음에는 SF를 향한 애정(혹은 애증)이 있었다. SF는 내 유년기와 십 대의 낭만이었고, 이십 대에는 열정이었다. 비록 나의 정체성은 SF를 쓰다말다하는 일개 작가이자 팬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 SF는 좋은 길을 걷고 아름다운 결실을 많이 맺으며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

부산대 도서관 SF 자문단 첫 회의에 모인 여러 교수님은 SF에 문외한인 분이 많았지만, 열의가 높았다. SF를 공부하고 읽으며 선입견이 없어졌다며 해박해진 지식을 보이시는 모습을 마주하며, SF 팬덤 동향에 관한 질문들을 받으며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그 자리에서 아시아SF협회도 생겼으니,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 SF의 거점으로 부산대 도서관을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해운대에 있는 추리문학관처럼 부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한 번쯤 들러서 SF 문화를 접해 보는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아름다운 비젼이 언젠가는 현실로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물결치는 모래사장에 이름을 써본다. 이제 막 부산대 도서관에서 김진재 SF 어워드로 시작한 저 물결이 여기 적힌 이름을 지우고 멀리까지 거세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In necessaris unitas, in unnecessaris libertas, in omnes charitas. 좋아하는 말이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하고, 비본질적인 것은 자유롭게 두되, 모든 것은 사랑으로 하자는 뜻이다. 비본질적인 것, 자신이 서 있는 집단과 위치가 어떠하든 간에 SF 팬들 사이에 일치하는 것은 SF에 가지는 애정일 것이다.
부디 그 애정으로, 어쩌면 새로운 미래를 품은 김진재 SF 어워드를 주변에 널리 홍보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글을 맺는다. 관심이 있는 만 27세 이하 청년 SF 팬께서는 첨부한 파일을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당신이 한국 SF의 새로운 미래로 반드시 등장하면 좋겠다.

(이성적으로 시작한 글이 감성적으로 끝난 것은 늦게 오른 술기운 탓으로 돌린다.)


 

*김진재 SF 어워드 공모전 공식 사이트: https://lib.pusan.ac.kr/kjjsfaward

공모안내제1회-김진재-SF-어워드-공고문-2.hwp

(※이 글의 견해는 편집부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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