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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에는 한중SF문화교류 기간 동안 한국 SF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후빙하시대 이야기」의 중국 SF 작가, 완샹펑녠万象峰年 씨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5월 북경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과학소설대회(APSFcon)에서 「후빙하시대 이야기」의 인기를 뒤늦게 전달 받으신 작가님이 매우 기뻐하셨다는 후문입니다.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 주신 완샹펑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완샹펑녠 작가님은 심오하고 섬세한 상상력을 작품 속에서 표현하는 바링허우 세대 중국 SF 작가로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류의 운명을 드러내기를 즐기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는 과학소설 편집자이기도 하시지요. 은하상과 중국 성운상을 수상했으며 한해 동안의 최고 단편을 모은 앤솔로지에 여러 번 단편을 수록한 바 있습니다. 단편들 중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어 영미권에 소개되었으며, 한중SF문화교류 기간에 거울에 게재되어 SNS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SF단편 「후빙하기시대 이야기」 는 2007년에 은하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더 많은 단편을 작가님의 블로그에서 원문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는 작가님의 작품에 관한 간단한 질문과 한국SF팬이 보내는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국 SF팬이 보내는 질문’은 번역에 도움을 주신 이소정 선생님께서 직접 완샹펑녠 작가님의 팬들로부터 받아 보내주셨습니다. 덕분에 한국SF팬과 중국 SF 작가가 간접적으로나마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국과 중국 SF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작가님에 대한 소중한 질문을 보내주신 완샹펑녠 작가님의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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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샹펑녠 (출처: 2019 APSFcon 사진집)

작품에 관한 질문

M:

「후빙하시대 이야기」에 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셨는지요?

작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장면은 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재미있던 꿈을 포함하여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손이 가는 대로 적어두는 습관이 있거든요. 꿈속에서 저는 넓고 적막한 방 안에 앉아있었습니다. 그 방 지하에는 옛사람들이 먹다 남긴 소라껍데기들이 묻혀 있었고요. 그 꿈이 바로 제 안에서 이야기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그 꿈은 그 자리에 머문 채 천천히 자라나서 다른 생각과 만나고 또 저의 다른 정서와 만났습니다. 그 꿈이 생명력이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느꼈을 때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이 소설은 저에게 상당히 특별한 소설입니다. 제 기분이 아주 엉망이던 시절에 쓴 소설인 동시에,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저의 어떤 정서를 해방시켜 준 소설이기 때문이지요.

M:

「후빙하시대 이야기」에는 민중의 굶주림과 비합리적인 권력이 등장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절망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지요. 저는 읽으면서 중국 근현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독자는 작가님의 글에서 문화혁명의 흔적이 보인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중국의 근현대사와 사회에 관한 거대한 은유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견해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후빙하시대 이야기」를 읽은 중국 독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요?

작가:

저는 소설을 쓸 때 그런 구체적인 것들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면 좀 더 고심했어야 했겠지요. 저는 인류라는 의미의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상태에, 그리고 인류의 근심과 비극이 서로 통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내가 자라난 문화에서는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 다른 문화 토양에서라면 다른 형태로 발현될 것인지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이질적인 감정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저는 어떤 문화에 제한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제 작품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기억된 소설이었습니다만, 중국 독자들이 그런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이 소설은 제 초기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이 소설을 쓸 때, 제 기분의 움직임이 창작에 있어 주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시기 엉망이었던 제 기분이 이 이야기 속에서 의지할 곳을 찾고 해방되었으니까요. 저의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을 결정한 것 같습니다. 상당수의 중국 독자들은 스스로 겪은 슬픔과 상처 때문에 이 소설을 기억한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독자들이 좀 더 즐거운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죠.
나중에는 저도 이 정도로 비극적인 느낌이 강렬한 이야기는 쓰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M:

많은 SF 속에서 기술은 인류의 발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후빙하시대 이야기」,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도시, 도시城市,城市」에서 기술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강조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 도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기술은 그저 기술인 게 아니다. 기술은 문화 관념의 결합체야. 사람의 사유를 변화시키지. 技术不光是技术,也是文化观念的结合体,改变着人的思维方式。” SF작가로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작가:

저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합니다. 수많은 SF 소설 속에서 기술은 인류가 열었던 판도라 상자를 상징합니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발전을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성공이 필요하지만, 단 한 번의 실패로도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제가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다른 SF 작가들보다 특별히 더 깊지 않고,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감정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습니다. 예, 긍정적이지요.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것은, 수많은 경우 미학에서 나온 기술은 ‘강등’ 당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와 기술 사이의 관계에 관해서라면, 저는 기술이 인간 본래의 생활 방식을 바꿀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술이 인간 본래의 사유 방식을 바꾸리라 두려워하지도 않고요. 저는 인간의 변화가 그렇게까지 나쁜 일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기술과 인간이 서로를 진화시키는 환경이 만들어면서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진화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현재의 시각으로는, 기술이 우리를 사라지게 하기보다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제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지요. 아득히 먼 미래, 극단적인 상황 하에서 이 관계가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둔 바가 있고, 후에 소설로 써볼 생각입니다.
SF 작가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종의 ‘직업병’이죠. 인류가 미래를 책임을 지는 어떤 태도를 구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미래의 좋고 나쁨은 분명 그 시대 사람들이 정의내릴 문제라는 것입니다.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를 피해갈 수도 있고, 그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걱정할 가치가 없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M:

작가님의 소설 속에는 사회 변화라는 주제가 반복됩니다. 「후빙하시대 이야기」에서는 부조리한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도시, 도시」에는 아예 새로운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2014년에 쓴 「유리 위의 먼지玻璃上的灰尘」에서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구절이 들어있습니다. “언젠가 당신도 절망할 것이다. 그러나 부디, 절대로, 결코 어둠에 지지는 말아 달라(有时候你会绝望,但是千万不要,千万不要输给黑暗。)” SF작가로서 미래사회의 모습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중 어느 쪽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가:

이성적인 측면에서는, 미래 사회가 전체적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아닐 겁니다. 사회의 발전에는 기복이 있기 마련이고,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행운을 얻을 수 없으니까요.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불행이 다가오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근심 때문에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언젠가 우리가 어둠을 만날지라도, 그 어둠이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후 만나게 되는 새로운 문제이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구덩이에 다시 빠질 일은 없기를 희망합니다.


한국SF팬들이 보내는 질문

작가님에 관해

F:

작가님의 첫 단편 「도시, 도시」는 상을 탄 후 게재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작가: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아마 몇 가지 정보가 뒤섞인 모양입니다. 「도시, 도시」는 2005년 경 한 잡지 공모전에 낸 소설이었는데 1등상 없는 2등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잡지에 등재되지는 못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공모전은 로버트 J. 소여의 『퀸타글리오 어센션 트릴로지Quintaglio Ascension Trilogy의 중국어 번역본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고 제 작품은 진지한 대접을 받지 못했지요). 후에 그 잡지에 뛰어난 편집자가 새로 왔는데, 제가 그 편집자가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게시판에 제 소설을 올렸지요. 그래서 그 편집자가 제 소설을 보게 되었고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2007년이었죠. 같은 해에 같은 잡지에 발표한 다른 소설은 그 잡지에서 그 해의 소설에 뽑혔습니다.
중국에서 극소수의 SF 작품만이 발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시기가 길었습니다. 소설을 써도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발표하게 되는 경우도 아주 흔했죠. (아마 한국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류츠신의 활약으로 시장이 넓어지며 지금은 발표할 지면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지요.

F:

SF작가로서 꼭 다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결코 다루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작가:

미래를 향한 사유를 쓰고 싶고, 도전적인 창작 영역을 확보하고 싶습니다. 새롭지 않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쓰고 싶고, 가장 불가사의한 것에서 뚜렷한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조차 무미건조하게 느끼는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아요.

F:

작가가 결코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작가:

작가는 물론 사회적, 도덕적 경계선을 지켜야 합니다. 이런 대답이 질문자에게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군요. 그렇다면 철학적 의미에서 ‘마지막 경계선’은 존재할까요? 그렇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저에게도 무척 난해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작가에게 신이 나타나 신의 힘이 깃든 펜을 주는 겁니다. 그 펜으로 써내려가는 창은 종이에서 튀어나와 사람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고, 그 펜이 묘사하는 폭탄은 저 먼 곳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결코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입니다- 결코 그 펜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이 경계선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 하지만, 이 선을 존중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속하는 동시에 현실에 존재하는 경계선을 지니게 되겠지요.

F:

장편집필 계획은 있으신지요?

작가:

예, 편집자로 부터도 장편을 쓰라는 독촉을 받고 있고(웃음) 현재 노력 중입니다. 가장 쓰고 싶은 구상은 지금 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니고 좀 더 많은 것을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F:

SF 편집자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 여가 시간에는 주로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요? 그리고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읽고 계신지요?

작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여가 시간에 독서를 가장 먼저 선택하지는 않거든요. 저는 책을 읽는 속도가 아주 느린 사람이고, 꾸준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다독하지는 못하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곤 합니다. 평소에 드문드문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데, 주로 세계의 변화, 새로운 인식, 새로운 과학 기술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상징적 의의가 있는 SF 소설이라도 다 읽지는 못하고 선택적으로 읽습니다. 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 방법 등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요. 지식을 넓히기 위해 학술 서적 등을 읽기도 하는데, 필요에 따라 정독하기도 하고 대충 훑어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제 창작에 필요한 사상을 구성해줄 수 있는 글을 주로 읽고 있습니다.

F:

신화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미 뉴웨이브 SF는 무엇인지요?

작가:

아닙니다. 저는 신화에 대해서는 특별한 흥미가 없습니다. (귀에 익어 자세히 말할 수 있고 마음에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라면 말이지요) 저는 구체적인 지식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신화, 민간 전설, 도시 전설 등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에는 흥미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움직이는 법칙에 관심이 있지요. 글을 쓸 때는 스스로 신화를 창조할지언정 각 문화의 신화 속 세세한 사항을 재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린 시절 꽤 많은 신화를 접했고(중국 신화와 외국 신화 모두 접했습니다), 제 세계관 형성에 분명 영향을 끼쳤지요. 신화는 중국에서 유행하는 문화 속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신화 자체를 찾아보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간접적으로 문화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중 SF 교류 중 김주영 작가님이 쓰신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김주영 작가님은 한국과 비교할 때 중국과 일본 문화 속에 신화가 비교적 깊이 뿌리내렸다는 인상을 받는데, 아마 이것이 중국과 일본 두 나라와 한국이 SF를 받아들이는 정도에서 차이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고 하셨지요. 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SF는 역사적으로 황당무계한 것, 사람을 현실에서 동떨어지게 하여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이 때 신화는 결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지요. 그리고 지금 중국에서는 ‘중국인들은 현실 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에 쉽게 하늘의 별을 보지 못한다. 중국에서는 SF의 토양을 쌓기 어렵다’는 관점이 항상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SF는 마이너의 문화입니다. 저는 SF가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처했던 위치가 분명 비슷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를 여러 편 보았는데, 예를 들자면 〈곡성〉 같은 영화를 보면서 한국인들이 미지의 사물에 대해 예민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화가 분명 같은 방식으로 각 개방된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영미 뉴웨이브 SF는 무엇인지 묻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네요. 그래서 다른 대답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저는 최근 어슐러 K. 르 귄의 『차원면 이동Changing Planes 중 제가 빼먹고 읽지 않았던 부분을 마저 읽는 중입니다. 르귄의 소설은 소년 시절의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요. 예를 들자면 「기의 비행자들The Fliers of GY(*『판타스틱』 2007년 11월 7호 수록_편집자)」 같은 단편이 그렇습니다. 일종의 기이한 현실입니다.


중국 SF에 관해

F:

세계적으로 여성을 비롯 소수자의 시선을 조명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중국 SF에도 이런 흐름이 있는지요?

작가:

네, 현재 중국 SF에도 그런 추세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세계의 초점과 점점 더 관계가 깊어지는 동시에 중국 사회의 발전 단계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SF 소설이 예전에는 드문드문 나타났다면, 지금은 관련 태그 아래 모여 전파되고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인류를 관심의 대상으로 하는 SF 소설에 있어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건 필수적이고 반드시 거쳐야 할 발전 과정입니다. 중국의 SF 작가와 SF 팬들은 일찍이 ‘인류라는 총체적인 신분’ 혹은 ‘인류의 복지를 도모하는 신분‘을 인지하면서 SF 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시야와 더욱 복잡한 사유, 더욱 높은 자신감을 얻은 후에는 인류 속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집단과 개체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정확한 위치를 찾고,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을 찾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유를 향해 달려갈 힘을 찾는 것이겠지요.

F:

중국에는 SF 작가 양성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추이가 궁금합니다. SF 작가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요?

작가:

중국의 SF 관련 기구 여러 곳에서 SF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가장 큰 곳은 FAA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저도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FAA는 기본적으로 서구식 워크숍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SF의 기본 사유 방식 훈련을 추가하고 창작 실습 과정에서 동료들의 피드백을 얻게 되죠. 매 과정마다 최소한 한 편의 소설을 써야 합니다. SF 소설 창작에 종사할 뜻이 있는 작가에게는 첫걸음을 뗄 수 있는 도움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국 SF 작가는 오랜 세월 자발적으로 본인의 흥미에 따라 글을 써왔습니다. 글을 발표하는 데도 곤란을 겪는 동시에 이 장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상황을 겪어왔습니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와의 토론도, 독자들의 피드백도 부족한 상황이었지요. 때때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흥미로운 창작 집단이 결성되기도 했으나, 게시판이 시들해지면 곧 뿔뿔이 흩어지곤 했습니다. 시장이 SF를 중시하기 시작하면서 능숙한 작가들을 좀 더 많이 요구하게 되었지만, 작가들은 인원수로나 전문성으로나 시장의 요구를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각 기구는 기초적인 작업에 더 노력하게 되었죠. 더 많은 SF 애호가들이 성장하는 것을 도울 수 있기를, 그렇게 하여 그들이 이 업계에 남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한국에 관해

F: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신가요?

작가:

많은 한국의 문화상품이 중국에 수출되었고, 중국의 젊은이들은 한국 문화에 익숙합니다. 제가 접했던 한국 문화는 기본적으로 대중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들이었는데요. 몹시 감탄했던 영화가 몇 편 있는데, 〈괴물〉, 〈부산행〉, 〈설국열차〉, 〈소원〉 그리고 사회 현실을 다룬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문화 창작자들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우리가 배워야할 부분이 아주 많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사람들끼리 인터넷에서 종종 입씨름을 벌이지만, 한 국가의 우수한 문화작품이야말로 진정으로 설득력을 갖는 동시에 국가의 정신적인 힘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F:

작년에 거울과 FAA가 한중SF문화교류를 진행하는 동안 한국 SF 단편들이 중국에 온라인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읽어 보셨는지요? SF 편집자로서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작가:

작품 대부분을 읽어보았습니다. 한중 SF 교류를 통해 읽게 된 작품 중에서 저를 가장 감동시킨 작품은 김보영 작가님이 ‘과환춘만’에 참가해 쓰신 「니엔이 오는 날」(주1)입니다.
이 소설들은 아주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들이 서로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어떤 소설들은 제가 그 전에는 본 적이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작가들은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힘을 매우 주목하고 세상에 대해 연민을 품고 있는 듯 했습니다. 중국의 수많은 SF 소설들이 기이한 풍경을 전시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읽은 한국 SF 소설들은 미묘하고 정교한 장면에 편중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좀 더 심각한 주제가 소설을 지탱해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이 소설들은 주제와 관련하여 매우 설득력 있는 세세한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대담한 시도도 있었습니다. 어떤 작품들은 독특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작은 나라의 보통 사람이 어떻게 인류의 정신과 세계의 발전에 융합하게 되는지, 경계에 위치한 사람이 어떻게 위대한 인격을 지닌 왕자가 되는지(동시에 어떻게 그가 지닌 권력을 사라지게 하는지) 등등의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SF 소설의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공통적인 유형화를 표현하는 동시에 독특한 문화를 담을 수 있지요. 어느 날 인류가 하나로 모이는 날이 온다면, 한국의 SF 작가들은 분명 인류 문화 속에서 퍼즐의 귀한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F:

중국에서 다른 작가들과 같은 주제로 각자 소설을 쓰는 협업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작가들과도 협업해 보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작가:

그런 기회가 있다면 매우 기쁘게 그리고 진지하게 참가해보고 싶습니다.

F:

류츠신 작가의 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SF 동호인들과의 첫 오프 모임에서 암호를 '홍안서점은 어디 있습니까?'로 정했다는 이야기를 웹에서 읽었습니다.)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소설 외에 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류츠신 작가의 소설이 있으신지요?

작가:

하하, 저 자신도 잊고 있던 일인데, 당시를 떠올리니 조금 민망하군요. 저는 확실히 류츠신의 열정적인 팬입니다. 류츠신의 소설을 읽고 SF의 가장 원초적인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류츠신은 과거 ‘대 예술 시리즈(大艺术系列)’의 창작 계획을 세웠고, 우주와 천체 척도의 시각을 이용하여 예술을 연역해냈지요. 정말 기묘한 결합이었고, 류츠신의 소설의 독특한 풍격이 되었습니다. 아직 완결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시리즈로는 「꿈의 바다(梦之海)」, 「시운(诗云)」, 「환락송(欢乐颂)」이 있습니다. 그 중 「시운(诗云)」에서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외계인이 태양계 전체의 자원을 소모하여 모든 시의 배열 조합 방식을 완벽하게 열거합니다. 단지 그가 느낄 수 없는 시의 아름다움을 모색하기 위해 그런 일을 벌입니다.

F:

류츠신을 제외하고 중국 SF 작가 중 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중국 SF 작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작가:

제약조건 없이 어떻게 취사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중국을 대표하는 SF 작가들이라면 이미 스스로의 창작 능력을 증명한 SF 작가들이겠지요. 한중SF 교류에 참여한 중국 작가들도 유명하고 경력이 풍부한 작가들이거나 새로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실력파 작가들이고요. 그들은 대표적인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하기도 하지요. 한국과 비슷하게, 중국에도 책(장편이건 자신의 단편선이건)을 출판해본 적이 없는 우수한 작가들도 많고, 때때로 각 매체에 글을 발표하곤 합니다.
저는 SF 창작 소그룹에 참가하고 있는데 정기적으로 멤버의 새 작품을 돌아가며 비평합니다. 이 창작 소그룹은 중국 SF 작가들의 한 ‘슬라이스’입니다. 서로 다른 풍격을 포함하여, 서로 다른 문화 관점을 지닌 젊은 작가들이 모여 있죠. 그들 중 누군가는 이미 지명도도 있고 수상 경력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현실의 신분을 숨긴 채 놀라운 작품을 써내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문화 교류에 참여하고 누군가는 과학 기술과 연관된 직업에 종사 중입니다. 누군가는 사회 하층의 이야기에 빠져있고 또 누군가는 SF 편집을 하며 작가가 되고 싶어 하지요. 그러므로 저는 사심을 가지고 저를 제외한 이 창작 소그룹의 성원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마침 제 선택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되겠군요.
그들의 필명은 수이차오水巢, 하오허郝赫, 자오레이赵垒, 무밍慕明, 뤼모모吕默默, 사퉈왕沙陀王, 솽츠무双翅目, 둥팡무东方木, 량링靓灵등입니다.
그들 중에는 SF의 서로 다른 미학적 풍격을 융합해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는데 능한 경우도 있고, 사이버 펑크 배경 하의 중국과 동아시아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기묘한 시각을 찾아 개인의 특징이 풍부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도 있고, 정보량이 극히 많은 철학적 주제를 쓰는데 능숙한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이 흥미를 느낀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좀 더 널리 알려보겠습니다. ■

(주1)「니엔이 오는 날」은 거울의 한중SF문화교류 프로젝트와 별개로 FAA에서 SF 작가들과 온라인으로 실시한 행사 '과환춘만'을 통해 중국에 소개되었음

* 번역 이소정: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북경대에서 중국고대사로 석사를 받은 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중국어 사전실 연구원을 역임했다. 《증허락》, 《장상사》, 《특공황비 초교전》 등 다수를 번역했다. 또한, 2019년에는 청두라는 도시의 다양한 속살을 담은 여행서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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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크리스털 허프 한국 방문 기념 SF 관련 대담 2019.07.01
거울 16주년 기념 거울 탐방 구석구석 162 2019.06.15
대담 콕! 필진 릴레이 인터뷰 (13) - pilza2 작가 2019.06.15
대담 콕! 필진 릴레이 인터뷰 (12) - 잠본이 작가 2019.04.15
거울 아직은 끝이 아니야가 끝이 아니야! - 작가 후기와 발췌문 2019.03.15
대담 신규 필진 인터뷰-해도연 작가님1 2019.03.01
대담 콕! 필진 릴레이 인터뷰(11) - 갈원경(구한나리) 작가2 2019.02.15
대담 친구를 알아보자 - 괴이학회 인터뷰1 2019.02.15
대담 신규 필진 인터뷰-너울 작가님2 2019.02.01
기획 왜 유독 과학소설만 문단에 받아들여질까?2 2019.01.15
대담 콕! 필진 릴레이 인터뷰(10) - 김주영(赤魚) 작가1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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