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거울 필진끼리도 사실 글 말고는 서로를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것도 완성되어서 나온 글만 보는 경우가 많죠. 그게 거울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같은 장르와 글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사람들이니까요. 그래도 함께한 세월이 길다 보면 글 외에도 다른 것들을 알게 되는 법인데, 그중 정말 신비롭게 남아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독자우수단편을 통해 거울에 들어오셨고, 2011년 단편선의 표제작 「그림자 용」의 주인공 amrita 님이 이번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입니다. 여전히 글 이야기뿐이지만 그래도 더 알 수 있는 기회라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거울에 바라는 점 항목에서 사상 최대의 야망을 보여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1. 처음 보는 독자분들에게 간략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암리타라고 합니다. 습작 장편 몇몇으로 글쓰기를 시작해서 요새는 주로 짧은 글을 쓰고 있어요.

2. 처음으로 독자를 상정한 지면에서 글을 발표한 것은 언제인가요? 어떤 곳에서 어떤 글을 쓰셨는지 알려주세요.

어릴 때 멋모르고 천리안…이었는지…에 무턱대고 장편을 약간씩 써서 올렸어요.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다가 포에티카로 옮겨가서 그쪽에서 또 장편 (위와 같은, 단지 처음부터 다시 썼을 뿐인…)을 올려대다가 위즈덤하우스 였는지…에서 주최했던 판타지문학상 게시판에서 또 겁도 없이 습작을 올려댔고 또 여러 군데에 무턱대고 글을 들이밀다가 홈페이지를 공중에 날린 뒤 이제는 거울에만 올립니다. 다른 곳에도 올릴까 생각은 하는데, 아직은 그래요.
처음에 썼던 장편 제목은 공개하고 싶지 않아요. 그 다음에 썼던 장편도… 그 다음도… 공개하고 싶지 않아요. 비밀이에요우. 사실 거울에 올려둔 단편 중에서도 몇 개는 지우고 싶은데 그냥… 이냥저냥 시간만 흘러가네요.

3. 자신이 작가라고 확실히 느낀 계기가 있는지,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단편 중에 「황금 비단」을 쓰고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글을 쓴다느니, 쓰지 않는다느니, 그런 걸 내가 생각하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렇다고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는 건 좀 그렇고요. 그냥 그렇게 말하면 출판 작가 같으니까요. 전 출판한 적이 없으므로 아마추어 작가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4. 인생의 책, 영화, 연극 등, 지금의 나를 이루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장녀로 태어난 것, 십대에 다른 나라로 간 것, 그래서 지금도 어정쩡하게 중간에 끼인 위치라는 게 제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어려서는 책이면 다 읽었는데, 좀 더 크면서는 한국 여성작가의 순정만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정말 정말 좋아해요 지금도. 슬레이어즈와 삼국지도 빼놓을 수 없고요. 페미니즘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리고 로잘린드 마일스의 기네비어 삼부작 소설은 정말… 혁명적인 작품이었어요. 대모신과 모계 왕국의 왕인 기네비어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는 『아르미안의 네딸들』이 있고요. 이건 정말… hbo나 넷플릭스에서 12시즌 (아님 15시즌?) 정도로 극화해줘야 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Lost Goddesses of Early Greece』라는 책이요. 지금 진행 중인 친정보살 프로젝트의 주제는 이 책에서 나오는 여신님들로 잡은 건데요.
인도유러피안 문명의 남신들이 이동해오기 전, 여신들만의 신화를 구성해낸 책입니다. 기존의 제가 생각해오던 그리스 신화를 통째로 싸그리 뿌리부터 뒤바꿔준 책이에요.
글쓰기도 그래요. 책과 글쓰기가 없었다면 어떻게 아동기와 십대를 건너왔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혹시 그런 비슷한 시간을 지금 견뎌내는 분이 계시다면… 자신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아는 느낌이겠지만, 이건 무슨 진입장벽이나 장비? 준비물? 같은 게 별로 필요없는 일이기 때문에, 시작하는 건 쉽지만 일단 발을 들이고 나면 나갈 수가 없는 일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쓰십시오, 여러분. 이도저도 안되고 도망칠 수도 없다면 쓰면서 버티세요. 쓰면서 괴로운 것이 안 쓰면서 괴로운 것보다는 낫잖아요.

5.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 또는 이때를 틈타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책이 아닌 다른 매체여도 좋아요!)

위에 언급한 책들 하고요, 조이 하조Joy Harjo의 모든 시집을 전부 몽땅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토니 모리슨의 『술라』와 르귄의 어스시 시리즈, 패트리시아 매킬립Patricia A. McKillip『Riddle-Master』, 미셸 클리프Michelle Cliff 의 장편 『No Telephone to Heaven』과 단편집, 영상물로는 〈오션스 8〉, 헬렌 미렌 주연의 〈엘리자베스 2부작〉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청하 주연의 〈동방불패 1〉, 〈동방불패 2〉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6. 항상 글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어요. 처음에 거울에서 봤던 글에 비해서 요새는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하고 계신데, 어떤 계기로 변화를 주게 되었는지, 목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pena님 질문)

감사합니다. 저는 전부터 제가 보고 싶은 글을 써왔기 때문에, 요새는 이런 글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쓰고 있어요.
전에는 좀 더 판타지 쪽이었다면 요즘은 좀 더 현실 혹은 SF쪽과 접점이 많아지고 있어요. 판타지 쪽이 내부세계의 완성이라면 SF는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만남 같다는 느낌이에요.
혹은 방향성이 다르게 그려지는 느낌이에요. 판타지는 내부에서 시작되는 움직임이 외부로 번져나가는 느낌이라면, SF는 외부의 윤곽들을 (좀 더 직접적으로) 사용해서 내부까지 울리게 하는 느낌에 가까워요. 결국은 둘 다 변화된다는 면에서는 같지만요. 둘 다 나름대로의 맛이 있어서 각자 좋아해요.
나름 목표라면, 지금 쓰는 글은 단편 시리즈물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끝까지 잘 마무리짓고 싶어요. 그리고 다 모이면 『나무아미타불 친정보살마하살』 같은 제목을 붙여서 책으로 내고 싶습니다. 아님 『단군 언니가 알려주는 신세대 경영법: 회사는 이렇게 굴려라!』라든지…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되면 e북이라든지 출판 판매대행이라든지 방법을 찾아봐야죠.

7. 글을 쓸 때 어떤 것을 가장 신경 쓰시나요?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8. 작가로서 지키려고 하는 습관, 피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나요? 또는 징크스처럼 느끼는 것이 있나요?

그다지 없어요… 한 달에 단편 하나는 쓰려고 해요. 그것 말고 혹시 뭐가 있나 생각해 봤는데 역시 별로 없어요…. 평소에 잘 먹고 잘 쉬고 스트레스 받을 상황은 최소화 하고….

9. 글을 쓰면서 독자층을 생각하고 쓰시나요? 어떤 사람들인가요?

아… 저는… 제가 읽고 싶은 글을 쓰기 때문에…… 네….

10. 본인의 글 중 본인이 좋아한 글과, 남들이 좋아한(반응이 좋거나 많았던) 글을 소개해 주세요.

반응이 가장 빠르고 좋고 많았던 것은 팬픽이고요, 창작 (장편) 쪽에서는 친절한 분들을 만났던 기억이 있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지금은 여력이 없어서 밀어놨지만 언젠가 자청비 장편은 다시 도전해보고 싶네요.
단편 중에 개인적으로 제일 짠한 건 「파몽낙매」예요. 아무것도 기댈 곳이 없는 모녀가 지옥의 막다른 곳에서부터 어떻게, 어떤 심정으로 어둠을 긁어오르며 상승하는지 쓰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글 자체의 분류나 퀄리티는 나중으로 밀어놓고 보더라도 취향이 같은 분을 만나게 되는 일은 기쁜 일이에요. 백년 마이너 취향이라….

11. 글을 쓰고 나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별 난동 없이 잘 나오면 기뻐요. 「허밍웨이 베이커리」가 그랬기 때문에 쓰고 나서 좋았어요. 「삼신 상담소」도요. 반면에 「개천절 블루스」는 다른 얘기 쓰던 중에 막판에 회장님이 난입해서 장기판째 들고 날라버려서 쓰게 된 이야기인데, 쓸 수는 있었으니까 좋긴 한데 너무 좀 모든 게 급박스러워서 힘들었어요. 고칠 점도 있고….
그리고 흑 실장님 부분 쓰면서 정말 좋았어요. 「비내리는 2호선」 중간에… 아마 티가 많이 날 거 같은데 암튼 무지 좋았어요. 이 글은 헤카테 주제였는데, 저승 삼신인 동해 용왕의 따님 얘기가 나옵니다. 「미 이사의 조촐한 16번째 결혼식」에서 미 이사의 강림 장면도 쓰면서 좋았어요. 이건 주제가 아프로디테였거든요.

12. 조용한 거울에서도 가장 조용한 편인, 신비에 싸인 작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의도적인 건가요?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하시는지, 아니라면 앞으로 달라지고 싶은 모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 제가요? 뭔가 멋진 분위기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전혀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현생에 치여서 맨날 수면 부족이라 그래요. 여러분 숙면은 참 중요합니다. 매일매일 숙면을 취합시다.

13. 앞으로 계획하신 작업 또는 도전 중인 과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 꾸준히 쓰는 단편들은 그리스 여신 주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데요, 쓰다 보니 그리스 여신+한국 신화+용 (이무기까지 포함) 프로젝트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제 한 4개 정도가 남았는데 잘 끝내고 싶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미로냥 님과 같이 진행 중인 운화 프로젝트의 진도를 빼기 위해 돌려막기용으로 시작했던 것인데… 미로냥 님 다음 글 빨리 주세요. 운화 프로젝트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죠. 저도 제 담당 글을 못 쓰는 중이에요. 이상하게 안나오네요… 한 3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대로라면 9년 채울 듯요.
아무튼 운화 프로젝트도 아직 진행 중입니다. 진도가 안 나가고 있지만 진행 중이에요. 동양풍 판타지 프로젝트인데요… 진도가… 아…. 에코가 되어가는 기분입니다. 그밖에도 진행 중인 다른 여러 소소한 글거리가 있어요.

14. 거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도 계속 번창해 주세요.
기왕이면 거울에서 작가 양성-데뷔-글 판매 및 출판까지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식이나 보석이나 패러디 앤솔로지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재미있는 글들을 모아서 팔고, 수익은 배분하고, 후원도 받고… 거울 문학상도 열고… 계간지도 내고… 굿즈 판매도 하고….
아무튼 거울은 많은 일을 해내왔고, 지금도 많은 일이 되어가는 중이잖아요. 쉽지 않은 일인데 거울만의 저력이 남다르다고 생각해요. 글을 써서 어디에 올려야 할지, 어떻게 알릴지 잘 모르는 저로서는 항상 감사한 곳이고요.

15. 이 작가가 궁금하다! 다음 릴레이 인터뷰 바톤을 받을 작가분을 지명해 주세요. 왜 알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싶은지도 살짝 덧붙여서요.

미로냥 님입니다. 최근작인 『재투성이 왈츠』 정말 잘 읽었답니다. 외전도 다 좋았어요. 『누마의 여름』에서도 그렇고 불꽃이 튀는 순간이 특히 좋은데 어떻게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시는지 창작의 비결이 궁금해요.

댓글 3
  • 아이 19.08.25 08:55 댓글

    진짜 거울이 몇 가지 행사나 기획만 매년 꾸준히 진행해도 효과가 엄청날 텐데요..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아니까 늘 아쉽니다.. 물론 지금의 거울도 좋고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赤魚 19.08.25 19:24 댓글

    거울 야망 진짜 멋지네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딛고(...) 한해, 한해 어떻게든 버티고 조금씩 성장하는 거울의 필진으로 자부심을 가져봅니다!

  • No Profile
    amrita 19.08.28 06:42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답변 작성하면서 좋았어요...

    그래 거울은.. 더 자랄 수 있어! 끄아아아아! 그래서 이것도 하고 이것도..! 다! 끄아아아아! 전부 해먹자! 하는 그런.. 응원하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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