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뿔이 달린 소녀가 옮겨진 곳은 어젯밤 나와 소울리에 박사가 기거한 집이었다. 집 근처에는 레인저의 삼엄한 경비가 세워졌고, 안에는 소울리에 박사와 CDC의 의료진들만이 뿔을 조사하기 위해 몇 가지 장비와 함께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하보크 소위는 초조해 보였다. 빨리 결과를 듣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잠복이 들킨 거죠?”
  하보크 소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키지 않았습니다. 위장은 완벽했어요. 누군가 외부에서 그녀의 위험을 알려준 겁니다.”

  “하지만 우리조차도 레인저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누가?”

  하보크 소위는 천천히 손을 들어 골짜기의 윗쪽을 가리켰다.

  “높은 곳에서 보면 알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잡지 못한 유니코니언은 세 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죠.”

  나머지 아이들이 소녀에게 위험을 알려준 것일까? 하지만 분명 어떠한 외침이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그들의 뿔로 생각의 초점이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 뿔에는 무슨 비밀이 감춰져 있는 것일까?

  “저희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악한 존재들도 서로의 눈과 귀를 공유할 수 있는 법이지요.”

  카라스 주교는 흥분하며 말했지만 하보크 소위는 이제 대놓고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무안해 하는 주교에게 내가 말을 걸려 했을 때, 집의 문이 벌컥 열리고 소울리에 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표정은 피곤해 보이면서도 무언가 놀라운 것을 발견한 희열에 가득 차 있었다.

  “기형이나 돌연변이가 맞는 것 같아요. 무언가 엄청난 화학적 변화가 이 소녀의 유전자 배열을 뒤바꾸어 놓은 게 확실합니다.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지만 매우 단단한 것만은 틀림없어요.”

  “신체 기관입니까?”

  하보크 소위의 질문에 소울리에 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두개골에서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짐작대로 그것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기관이라면 매우 합리적인 모양을 취하고 있는 거예요. 얼굴의 내부에는 그런 기관이 자리 잡을 곳이 마땅치 않거든요.”

  박쥐들이나 돌고래들이 발산할 수 있는 초음파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나는 인간이 그런 기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카라스 주교의 말마따나 차라리 악마가 일으킨 장난이라면 납득이 더욱 쉬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박사, 평범한 인간이 그런 능력을 가진다면 어떻겠소? 적에게 아무런 소리나 기척도 내지 않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면.”

  순간 등골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하보크 소위는 그들의 뿔이 군사용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물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울리에 박사가 거액의 돈을 받고 고용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일 터였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가공하여 사용할 수 있다면 독보적인 무기가 될 수 있겠죠.”

  하보크 소위는 만족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아쉬움과 미련이 잠재되어 있었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 듯 했다.  가이드만큼 사람의 표정에 민감한 사람들도 드물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이들의 표정을 마주하고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 하보크 소위는 무언가 꺼림칙한 것을 감추고 있었다.  

  “그럼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요.”

  하보크 소위의 말에 소울리에 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죠? 소녀를 데리고 하산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우리가 확보한 소녀는 오리지널이 아닙니다.”

  소위는 말하면서 골짜기 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들이 분명 구하러 올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거요.”

  소녀에게 뿔이 돋아나게 만든 소년. 유니코니언의 오리지널 개체. 하보크 소위는 그 소년을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맹수를 노리는 사냥꾼의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아이들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걸었지만 소위는 애초에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기어코 그들이 인간의 손에 넘어왔군요.”

  하보크 소위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루도비코 신부가 등 뒤에서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기에 어떤 심정으로 이런 말을 꺼내는지 유추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의 접근을 눈치 챈 소울리에 박사가 신부에게 물었다.

  “어때요? 생물학자의 소견으로 보자면 저 아이들은 매우 특이한 돌연변이일 것이 거의 확실해요. 아직도 신의 전령이라고 믿고 싶나요?”

  “자매님은 생물학적 안목으로 보셨겠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표적은 인간의 기준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또다시 언쟁에 가까운 토론이 벌어질 것 같았기에 내가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저는 종교도 없고, 생물학적 지식도 없기에 뭐라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겠군요. 저 아이들이 외부에 알려지고 조명을 받는다면 분명 20세기의 그 어떤 발견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파장을 불러 올 것이라는 걸.”

  루도비코 신부와 소울리에 박사도 나의 말에는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소울리에 박사였다.

  “첸의 말에 일리가 있군요. 저는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을 언제나 신비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이들을 수없이 보아왔어요. 그리고 그들이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루도비코 신부가 말을 받았다.

  “자매님의 말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유니코니언이 신의 전령이든, 단순한 돌연변이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확실한 대비책이 없는 한 저들의 존재는 분명 세상에 큰 혼란을 가져다 줄 겁니다.”

  그런가. 방금 전 유니코니언의 뿔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는 하보크 소위의 질문처럼 유니코니언 아이들로 이익을 챙기려는 단체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현재 탐사대에서 유일하게 무력을 가진 집단이 미국 정부의 레인저 소대인 것을 볼 때 그들은 진작에 그들의 가치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을까.
  과연 저 안에 들어가 있는 소녀는 단순한 돌연변이로만 남을 수 있을까.  


  
  “첸. 잠시 할 얘기가 있어요.”

  하보크 소위가 다시금 자신의 레인저들을 통솔하기 위해 떠났을 때 소울리에 박사가 나를 불렀다. 마을에서 가장 한적한 외양간의 뒷켠으로 나를 데려간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출발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 있어요. 우리 탐사대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서요.”

  “진정한 목적이라뇨? 우리가 어젯밤에 나누었던 얘기를 말하는 건가요?”

  소울리에 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에요. 저는 미국 정부에 고용되는 순간부터 줄곧 한 가지 의심을 갖고 있었죠. 어째서 섣불리 움직일 리 없는 그들이 단순히 등반가가 찍었다고 하는 사진에 목을 매달았을까요? 어쩌면 흔히 나돌아 다니는 장난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나 역시도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려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들이 유니코니언을 바라는 진짜 목적.

  “나 역시 무언가 의문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유니코니언 소녀를 발견했다는 프랑스 등반가는 왜 탐사대에 소속되지 않은 것인지. 그가 있었다면 굳이 제가 안내를 맏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죠.”

  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소울리에 박사는 얘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아까 소녀의 이마에 달린 뿔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느낀 건데, 이것이 세상에 내려간다면 의학적으로나 생물학적, 어쩌면 고고학 쪽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아마도 언론에서는 이렇게 떠들겠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인류의 진화된 모습이다.”

  그녀의 말투를 듣고 있자니 나 역시도 알지 못할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요?”

  “미국 정부는 제대로 짚은 거죠. 그들이 이런 오지까지 충분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부랴부랴 군대를 파견한 걸 보면 얼마나 유니코니언을 원하고 있는지, 얼마나 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신의 말은 어째서 그 사진 한 장에 이런 인력이 움직였느냐 하는 거로군요.”

  소울리에 박사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바로 그거죠. 제 생각에는 하보크 소위가 우리에게 감추고 있는 중대한 무언가가 있어요. 우리에게는 단순히 뿔 달린 소녀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건 바보나 할 짓이죠.”

  “그렇다면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이 뭡니까?”

  소울리에 박사는 이마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그걸 모르겠어요. 아마도…….”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오, 자매님.”

  소울리에 박사는 펄쩍 뛸듯이 놀랐다. 그리고 그것은 나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아무런 기척없이 루도비코 신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소울리에 박사는 그가 대화를 엿들은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한 듯 했다.

  “설마 신부님께서 그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군요.”

  루도비코 신부는 예의 그 손바닥을 들어 보이는 동작을 보이며 말했다.

  “결코 불순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소. 다만 두 분에게 알려 주고 싶은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게 뭡니까?”

  나의 질문에 루도비코 신부는 느릿하지만 강렬한 어조로 말했다.

  “유니코니언 탐사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오.”

  처음이 아니다. 그 말은 곧 미국 정부가 움직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박사와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눈을 부릅뜬 채 신부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이번의 탐사가 있기 전에도 미국 정부는 세 번의 탐사대를 파견했었소. 극비리에 치뤄진 작전이었지. 교황청은 마지막 세 번째 탐사에 이르러서야 유니코니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카라스 주교를 파견한 것이오.”

  “무슨 목적으로?”

  소울리에 박사의 말에 루도비코 신부는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그것이 악마의 자식인지, 아니면 신이 보낸 전령인지 알아오는 것이오.”

  신부의 말은 매우 그럴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유니코니언이 적어도 세 번은 탄생했다는 이야긴데, 그들은 어떻게 된 거죠?”

  루도비코 신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첸 형제님.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 줄 수 없소. 내가 온 이유는 두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소.”

  루도비코 신부는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하보크 소위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판단했고, 그것이 마을 외곽에 있는 방안갓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소녀를 포획하기 직전까지 레인저들이 교대로 경비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레인저가 유니코니언 소녀가 있는 쪽으로 몰려 있기에 지금은 경비가 매우 느슨해져 있습니다. 저와 함께 두 분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소울리에 박사 역시 구미가 당기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왜 굳이 우리가 함께 가야 하죠?”

  루도비코 신부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졌다.

  “그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루도비코 신부의 말마따나 방앗간 근처에는 한 명의 레인저만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레인저 역시 다른 소대원의 부름을 받고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보크 소위가 대대적으로 잠복을 지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방앗간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무방비였다.

  “자, 나는 여기서 기다리죠. 형제 자매님들이 나올 때까지 뒤를 봐 드리겠습니다.”

  그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미심쩍었다.

  “저 안에 무언가 위험한 것이 있는 건 아닙니까?”

  그러자 루도비코 신부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나는 하나님을 닮아 목자가 되기로 맹세한 몸입니다. 주의 어린 양을 어찌하여 위험에 빠트리겠습니까?”

  내가 자꾸만 망설이자 소울리에 박사가 내 팔을 부여잡고 말했다.

  “일단 들어가 봐요. 나는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일초라도 빨리 봐야겠어요.”

  결국 우리 둘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방앗간 안으로 들어갔다. 걱정과는 달리 어떤 장애물이나 위험요소도 없어 보였다. 방앗간의 문을 닫기 직전 루도비코 신부가 무언가 기도문을 읊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앗간 내부는 어두웠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짚들 사이로 무언가 기다란 것이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얼핏 보아도 그것이 사람 한 명의 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동도 없는 것을 보아하니 살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소울리에 박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검은 천을 휙 벗겨 내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귀머거리 사진작가 에드워드 팔컨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놀란 것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 뿐 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마께에 작은 뿔이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소울리에 박사와 내가 경악에 몸부림치고 있던 그 때, 느닷없이 바깥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총격이었다.

  “무슨 일이죠?”

  밖으로 달려 나가려는 나를 소울리에 박사가 붙잡았다.

  “잠깐만요! 저는 이 시체를 확실히 살펴보고 나가야겠어요.”

  나는 잠시 갈등해야만 했다. 밖에서 들려왔던 총소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증폭시켰지만 소울리에 박사를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박사는 시체를 거리낌 없이 만져대며 에드워드 팔컨의 시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체의 머리에 난 뿔을 만지며 흥미로워했다.

  “다르군요, 확실히. 소녀의 이마에 나 있는 뿔을 크기만 줄여 놓은 것처럼 보여요. 이건 파격적인 변이에요. 유니코니언 아이들은 모친의 자궁에서 뿔이 돋아난 것이지만 이 남자는 이미 신체의 성장을 끝낸 성인이라구요.”

  무언가를 두리번거리던 소울리에 박사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해부해 봐야겠어요. 어떻게 후천적으로 뿔이 돋아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위험할 텐데요. 지금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다가, 하보크 소위에게 발각되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박사는 고개를 힘차게 가로저었다.

  “그런 건 이미 각오했어요. 그래도 나는 알아야겠어요.”  

  방앗간의 문을 벌컥 열어제끼며 바깥으로 나오자 루도비코 신부의 모습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레인저들이 골짜기 쪽으로 황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 흉흉한 모습에 마을 사람들이 겁에 질린 채 수근대고 있었다. 나는 귀를 귀울여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엿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소울리에 박사에게 전해주었다.

  “소녀가 탈출했대요. 그가 데려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는 소울리에 박사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요? 레인저들이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었을 텐데?”

  “가봐야겠어요. 박사님은 어떻게 하실 거죠?”

  소울리에 박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레인저 소대원들이 당황해 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에요. 나는 해부도구를 챙겨서 시체의 뿔을 열어봐야겠어요. 조금 시간이 걸릴 거예요.”

  결국 그녀는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며 달려갔다. 나는 소녀가 붙잡혀 있던 집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 소녀는 어떻게 삼엄한 레인저들의 경비를 뚫고 탈출 할 수 있었을까?
  나의 궁금증은 골짜기 쪽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풀릴 수 있었다. 텐카가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하보크 소위가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치카오 마을의 주민들이 총소리에 놀라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보크 소위가 으르릉거렸다.

  “어째서 풀어준 거야!”

  텐카는 눈을 부릅뜨고 하보크 소위를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노에 찬 하보크 소위가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한 레인저가 급박하게 외쳤다.

  “타겟의 위치를 포착했습니다. 1시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보크 소위는 텐카를 잠시 쏘아본 뒤 말을 전한 레인저 쪽으로 뛰어갔다.

  “타겟을 추적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마라!”

  우왕좌왕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로 레인저 부대가 지나치며 달려갔다. 나는 텐카를 일으켜 세웠다. 심하게 발길질을 당한 듯한 얼굴은 퉁퉁 붓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나의 말에 텐카는 다짜고짜 나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리찌를 살려 주시오!”

  텐카는 감춰두었던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리찌는 유니코니언 소녀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놀랍게도 텐카는 그 소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밝혔다. 어제 오후 조장터에서 그가 장례를 치른 촌장은 하보크 소위가 오리지널이라고 부르는 유니코니언 소년의 아버지였다고 했다. 마을 전체가 아이들을 추방했지만 부모들만큼은 그들 걱정에 가슴 아파하며 음식을 전해다 주며 돌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영문을 알 수 없는 두통이 계속 찾아들었으며 급기야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점점 쇠약해져 결국 숨졌다고 한다. 아이들의 혈육 중 유일하게 텐카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는 절규하듯이 외쳤다.

  “아이들에겐 아무 잘못이 없소! 태어난 것이 무슨 죄란 말이오!”

  텐카의 말에 담겨 있는 절규는 그 자체로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어느새 표본으로만 생각했던 두 아이에게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텐카는 거듭 리찌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당신은 그들에게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이곳을 안내해 주었을 때 나는 아이들을 치료해 주는 줄만 알았소. 그런데 어째서 저 사람들은 아이들을 다치게 만들려는 겁니까.”

  텐카가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무언가가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때 해부를 끝내었는지 소울리에 박사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그녀 역시 텐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신은 그 아이들을 버렸을지 몰라도…… 나는 버릴 수 없어요!”

  텐카는 바닥에 털썩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카라스 주교를 비롯한 사제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레인저 소대원들 역시 유니코니언 아이들을 추격하기 위해 모조리 계곡 쪽으로 이동한 뒤였다. 주변에는 치카오 마을의 주민들이 곳곳에 숨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마치 송곳이 되어 나를 찌르는 듯 했다.

  “일단 그들을 쫓아가 보겠습니다. 서두르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요.”

  

  아직 해가 질 시간은 조금 남았는데도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워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쏟아낼 듯 찌푸린 구름들이 히말라야의 설원 위에 펼쳐져 있었다.
  소울리에 박사와 나는 레인저들의 발자국을 따라잡으며 점점 계곡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뿔에 대해서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소울리에 박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해부해본 결과 에드워드 팔컨의 머리에 나 있던 뿔은 피부가 급속도로 각질화를 이루어내 만들어진 결과물이에요. 그리고 그 뿔 속에는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팔 모양의 기관이 숨어 있었어요.”

  “그것으로 유니코니언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거겠군요. 그런데, 어째서 그 사진작가의 이마에 뿔이 나 있던 거죠? 뿔이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건가요?”

  소울리에 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사인은 총상에 의한 과다출혈이었어요. 뿔은 그가 사망하기 전에 생겨난 것처럼 보였구요. 왜 그 사진작가의 이마에 뿔이 나 있었는지는 나 역시 모르겠어요.”

  그러나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자궁 속에서 뿔이 돋아난 유니코니언들과 에드워드 팔컨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공통점?”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거죠. 에드워드 팔컨은 교통사고로 인해 청각을 잃었지만 사진작가로 성공해 유명해진 인물이에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특징과 뿔이 돋아난 것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데요.”

  소울리에 박사는 생각에 깊이 골몰했을 때 보여주는 특유의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무언가 답을 찾아낸 듯이 말했다.

  “이렇게 가정해 보자구요. 인간의 머리에는 세 개의 감각기관이 있어요. 시각, 청각 그리고 후각.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 세가지의 감각기관이 정확한 균형을 이루며 자리잡고 있는 거죠. 하지만 이 중에서 하나의 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일종의 감각 불균형이 생기는 셈이죠.”

  “유니코니언의 뿔이 그 불균형 속을 파고든다는 소리군요.”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한번도 보고된 적이 없으니까 그들이 뿔을 통해 가지고 있는 여섯 번째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로지 뿔을 통해서만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해요.”

  그때였다. 레인저들의 발자국으로만 이어지던 길에 다른 것이 섞여서 보이기 시작했다.

  “핏자국이에요.”

  소울리에 박사의 말은 음산하게 들렸다. 멀리 앞쪽에 불그스름한 두 형체가 눈밭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유니코니언 두 남자 아이의 시체였다. 무자비한 총격에 당한 모양인지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이건 마치…… 총구 앞으로 달려든 것 같아요.”

  소울리에 박사의 말은 그들이 레인저를 저지하기 위해 뛰어들었다는 점을 피력했다. 시간을 끌기 위해 육탄돌격을 한 걸까.

  “그렇다면 남은 아이들은 두 명이겠군요. 구출된 소녀와 오리지널.”

  내 말에 소울리에 박사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서둘러야겠어요.”



  
  우리가 그들을 뒤따라 잡았을 때, 상황은 이미 늦어 있었다. 유니코니언 두 아이를 포위한 레인저들이 아이들을 향해 수십 개의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다. 소녀를 부둥켜안고 있는 큰 덩치의 뿔 달린 소년은 마치 새끼를 지키려는 늑대처럼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총에 맞았나 봐요!”

  소울리에 박사가 소년의 다리 쪽을 가리켰다. 분명 소년의 다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보크 소위가 나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첸. 티벳어로 저들에게 전하시오. 한 번만 더 이상한 그것을 쏘았다가는 목이 달아날 거라고!”

  소년의 다리에 박힌 총알은 위협사격이었던 셈이다. 나는 하보크 소위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를 생각은 없었지만 두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리찌? 일어설 수 있겠니?”

  리찌라는 말에 소녀가 반응할 줄 알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하보크 소위를 향하고 있던 소년과 소녀의 눈빛은 결코 내 쪽을 향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향인 티벳의 언어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통하지 않습니다. 듣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내 말에 하보크 소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제길. 반드시 생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소울리에 박사가 하보크 소위를 향해 외쳤다.

  “죽여서는 안 돼요!”

  하보크 소위가 코웃음을 쳤다.

  “어째서? 당신은 돈만 받으면 그만 아닌가.”

  소울리에 박사는 소위의 냉랭한 말투에 움찔했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저 소년의 뿔만이 위치가 달라요. 다른 유니코니언 아이들의 뿔은 이마에 돋아 있지만 저 소년의 뿔은 정수리에 달려 있잖아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하보크 소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유니코니언 소년의 뿔은 분명 이마가 아닌 정수리에 돋아나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박사?”

  하보크 소위는 차츰 소울리에 박사의 말에 빠져들었다.

  “나는 뿔을 직접 해부해봤어요. 그 속에는 나팔처럼 생긴 기관이 들어 있었죠. 분명한 것은 그 기관이 무언가를 받아들이거나 흡수하기에는 적합하지만 발산해 내기에는 부적합한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는 거죠.”

  “……계속해보시오.”

  소울리에 박사는 손을 들어 유니코니언 소년을 가리켰다.

  “다른 이들의 뿔은 수신용일 뿐이에요. 발신용 뿔을 지닌 것은 저 소년이 유일하죠. 그렇기 때문에 저 소년은 당신들 레인저들이 유니코니언 아이들을 포위할 때 높은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위험신호를 ‘발신’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위험신호를 수신할 기관이 없었던 다른 레인저들은 뇌에 받아들여지는 충격을 못 이겨 기절하고 만 거죠.”

  하보크 소위가 침착하게 물었다.

  “본론이 뭐요, 박사? 저 소년을 죽이면 유일한 발신용 뿔을 잃게 된다는 거요?”

  소울리에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소녀 역시 마찬가지에요. 소위는 이미 두 명의 유니코니언 아이들을 죽였어요. 저 두 아이의 뿔의 기능이 명확히 반대되기에 당신은 무사히 저 두 명 모두를 생포해야 할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소위의 임무는 실패로 끝나는 거죠. 소울리에 박사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보크 소위가 그 이면에 담긴 뜻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 듯 했다. 어떻게 소년과 소녀를 상처 없이 생포할 것인지.
  그 때 내가 소위에게 말을 꺼냈다.

  “에드워드는 어떻게 된 거죠? 당신들이 그렇게 만든 건가요?”

  하보크 소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역시 저 둘을 촬영하려고 접근하다가 갑자기 그가 이마를 부여잡더군. 그리고 그의 이마에서 뿔이 돋아나기 시작했소. 나는 그것을 위험신호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소. 팔컨이 유니코니언에게 전염되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죽인 겁니까?”

  “어차피 대충 둘러대면 그만이오. 귀머거리 한 명의 죽음 따위는.”

  하보크 소위는 매우 흥분한 듯이 보였다. 상황은 말 그대로 일촉즉발이었다. 두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레인저들의 총구는 불을 뿜어댈 것 같았다. 그 위태위태한 대치 상태가 계속 되고 있을 때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들 멈추시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카라스 주교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루도비코 신부를 비롯한 여섯 사제가 뒤따르고 있었다. 하보크 소위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소울리에 박사는 불안한지 내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카라스 주교 일행은 놀라운 속도로 우리 앞에 도착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시오!”

  하보크 소위가 신부의 말에 대꾸했다.

  “우리는 당신의 권유를 들을 이유가 없소, 신부.”

  그 때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카라스 주교의 신부복이 기이할 정도로 부풀어 있던 것이다. 마치 옷 속에 무언가를 두른 것처럼. 그 때 느닷없이 카라스 주교가 양 옆으로 옷을 활짝 펼쳤다.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오.”

  뿔 달린 두 아이를 제외한 모두가 신음을 흘렸다. 카라스 주교가 옷 속에 숨겨온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액체폭탄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나 다룰 법한 무시무시한 모양의 폭탄이 주교의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보크 소위가 발악하듯 외쳤다.

  “미쳤소, 주교! 다 같이 죽을 셈이오?”

  카라스 주교의 오른손에는 기폭장치로 보이는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 그가 모두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저 두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가선 안 됩니다.”

  카라스 주교의 말은 기묘하게 들렸다. 유니코니언이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마치 미국의 횡포를 견제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신부의 표정을 봐서는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나의 질문에 카라스 주교가 아닌 루도비코 신부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첸,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거요. 항주, 반달레이. 그리고 고락푸르. 이 세 곳에서 유니코니언 아이들이 발견되었지. 무언가 떠오르는 게 없소?”

  중국의 항주. 미얀마의 반달레이. 그리고 인도의 고락푸르. 그 세 도시에 무슨 공통점이 있다는 거지? 재빠르게 기억을 뒤져보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요? 그 세 곳이 어떤 곳인데요?”

  나는 말을 꺼내기가 두려웠지만 소울리에 박사의 말에 대답했다.

  “최근 5년 동안 대지진이 일어난 도시의 이름입니다.”

  “뭐라고?”

  하보크 소위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레인저들의 총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차례도 예외 없이 국가 규모의 피해를 입혔던 세 번의 대지진은 그 어떤 시스템도 예측하지 못했고, 전 지구인에게 공포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루도비코 신부는 지금 그 대지진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저 아이들의 뿔을 보십시오. 그것이 악마의 상징이라 주장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그들이 발견된 곳에 어김없이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기막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전에 조직되었던 탐사대가 모두 전멸했던 거요. 다름 아닌 지진 때문에.”

  하보크 소위의 이마에 핏줄이 터질듯이 불거져 나왔다.

  “우리 소대가…… 처음이 아니라고?”

  카라스 주교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모르고 있을 줄 알았지. 교황청에서도 몇몇만 알고 있는 사실이오. 하보크 소위, 당신은 그저 이용당한 것이오. 이전에 파견되었던 부대들이 지진의 진원지에서 모조리 전멸했다는 것을 알면 사기가 떨어질 테니까.”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주교님?”

  내 질문에 카라스 주교는 어깨를 크게 부풀렸다.

  “저 아이들이 지진을 불러오는 겁니다. 저 뿔이 악마의 전파탑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거요!”  

  하보크 소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카라스 주교의 말처럼 그에게 주어진 임무에 그런 내용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듯 했다. 나는 부르르 떨고 있는 소녀 리찌와 그녀를 꼭 끌어 안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 두 개의 뿔이 지진을 불러온다고? 지나친 비약 아닐까. 하지만 얼토당토 않는 일이라고 무시할 수가 없었다. 카라스 주교의 말은 그만큼 두려우면서도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요?”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카라스 주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저 두 아이가 악마의 자식이 아니라 신이 보낸 아이들이라면요? 저 두개의 뿔이 운석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인들이 저 뿔을 다치게 했기 때문에 신의 심판을 가져온 것이라면요?”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는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라스 주교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어두운 표정의 루도비코 신부가 주교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소, 첸 형제님. 어쩌면 저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보낸 자식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곳 티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저들을 살려둘 수가 없습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신부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티벳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가 티벳에서 태어난 징조를 말살시켜야 하는지.

  “티벳은 불교의 성지이니까. 이곳에서 신이 보낸 징조가 나온다면……. 카톨릭의 위치가 매우 축소될 테니까.”

  소울리에 박사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말도 안 돼! 그것이 신의 목자가 하는 일이라니!”

  루도비코 신부는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카라스 주교는 여전히 리모컨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단순하게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사정이 있기 마련이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둘을 살리기 위해 사진작가의 시체를 보게 만든 것이었는데. 겁을 먹고 달아날 줄 알았어요. 첸 형제님. 당신이 내게 말했던 것처럼 중요한 것은 보는 이의 관점인 것을. 어차피 우리에겐 이 아이들이 검은목 두루미이든, 쇠재 두루미이든 상관없었소.”

  카라스 주교가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이 곳의 모든 사람들은 티벳의 조장보다 더 끔찍한 장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뼛조각조차 찾을 수 없게 될 테니까. 하보크 소위와 레인저들 또한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극심한 공황을 느끼는 것 같았다. 루도비코 신부는 이곳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미련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죽는 건가.

  그런데 그 때 우연히 나는 뿔이 달린 소녀 리찌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수많은 국가, 인종의 사람들을 보아왔지만 그녀의 눈은 난생 처음 보는 종류의 눈이었다. 과연 저 눈은 악마의 눈일까. 아니면 천사의 눈일까. 갑자기 나는 그것이 미치도록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불꽃이 일듯이 머리 속에 방법이 떠올랐다. 오른쪽 허벅지에 꽂아놓은 등산용 나이프가 만져졌다.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고 있지 않았지만 모두가 머릿속으로 치밀한 계산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보크 소위는 카라스 신부가 눈치 채지 못하게 그를 저격하려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카라스 신부를 둘러싸고 있는 사제들은 계속하여 기도문을 읊고 있었다. 그래, 하는 거다.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나만이 그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꺄악! 무슨 짓이에요, 첸!”

  소울리에 박사의 비명은 오른쪽에서만 들려왔다.  화끈한 통증과 함께 왼쪽 볼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반대쪽도 똑같이 해야 한다. 나는 오른쪽 귀 속으로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끄으윽!”

  기절할 정도의 고통이 엄습했지만 순간 사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기묘한 쾌감이 나를 찾아왔다. 일생동안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완벽한 침묵. 이제 나는 청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거죠.”

  나의 중얼거림에 소울리에가 뭔가 대답했으나 들리지 않았다. 카라스 주교와 하보크 소위조차 피투성이가 된 내 얼굴에 진저리를 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둘 역시 곧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천천히 손을 올려 이마를 더듬어 보았다.
  금방 만들어진 뿔이 만져졌다. 나의 시선은 오로지 두 아이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자, 이제 얘기해보렴.’

  그러자 거부할 수도 없고, 거부하고 싶지도 않은 부드러운 느낌이 뇌를 향해 직접 전달되어 왔다. 그것은 순차적이지도 않고 형용하기조차 힘든 초월적인 의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들을 수 있는 거에요?’

  소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이것은 그가 내게 보내고 있는 의지였다.

  ‘그래. 말해보렴. 지금 어떤 기분이 드니? 아저씨에게 말해 봐.’

  리찌를 감싸고 있던 소년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의지를 전했다. 그 순간, 물리적으로는 단 1초도 되지 않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소년이 건네주는 느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년이 보낸 무언가가 내 뿔에 부딪혀 다시 돌아가면서 소년은 나의 의지를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동시적인 의사교환이었다. 유니코니언 소년과 다른 아이들이 그 동안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그것은 이미지와 소리와 냄새까지도 능가하는 순수한 ‘의식의 경험’ 그 자체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버려진 아이들은 스스로 생존해야만 했다. 부모들이 음식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밤마다 추위에 시달려야 했고, 맹수들이 호시탐탐 아이들을 노리고 있었기에 단 한 번도 편하게 잠들어 본적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이 소년은 다른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에 늘 막중한 부담감을 갖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이 다가가서 대화를 시도하면 할수록, 도움을 요청하면 할수록 머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부모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소년이 애타게 울부짖으면 짖을수록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돌을 던지게 되었던 것이다.

  ‘제발 우릴 내버려둬요.’

  살고 싶다. 소년의 입은, 아니 그 뿔은 그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수십 개의 총기를 가진 두 아이가 내 여행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둘의 탈출로를 안내하기로 했다.

  ‘그럼 아저씨가 하자는 대로 하자. 내가 셋을 세는 순간…… 뿔이 터져라 외쳐보는 거야. 나는 살고 싶다고. 그럼 신이 너희들을 살려 줄 거야.’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정신이 혼미해진다. 소년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곁에 있는 소녀에게도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소년과 내가 감응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듯한 하보크 소위가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자. 하나, 둘, 셋.’

  삶을 갈구하는 외침이 두 아이의 뿔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카라스 주교, 소울리에 박사, 하보크 소위 그리고 수십 명의 레인저들-이 끔찍한 고통에 머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그들에게는 수신 기관이 없다. 뿔이 없다. 아이들의 외침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마음으로 외쳤다.

  ‘지금이야! 도망쳐!’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판단인지 두 아이는 황급히 일어나 비틀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보크 소위는 목에 핏줄을 세우며 일어서려 했지만 내가 그의 총에 달려들어 뒹굴었다. 하지만 하보크 소위가 총신으로 내 머리를 후려갈겼고, 나는 눈밭에 쓰러졌다. 화끈한 고통이 끈적이며 달라붙었다. 길고 긴 비명을 마침내 끝냈을 때 차가운 감촉이 볼에 부딫히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하보크 소위가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이 보인다. 레인저들이 쓰러진 카라스 주교에게서 폭탄을 벗겨낸다. 루도비코 신부를 비롯한 여섯 사제들은 절망적인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소울리에 박사는 양 볼을 손으로 감싼 채 울부짖고 있다. 그리고 주교와 신부들을 제압한 후, 하보크 소위는 나의 몸을 가리키며 무언가 소리치고 있다. 레인저들의 총구가 모두 나를 향하기 시작한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총알이 내 몸을 파고 들겠지. 하지만 나는 저항할 생각이 없다. 그저 눈밭 위로 쓰러진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니 쏟아지는 눈발들 사이로 저 멀리 뿔이 달린 소년과 소녀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급하게 달려가는 두 아이들. 저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티벳 고원의 더 깊숙한 골짜기에서 서로의 눈과 귀가 되어 살 것이다. 어느새 쏟아지는 눈발이 아이들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카와잔 뵈. 그 이름 그대로 히말라야는 다시 눈으로 모든 흔적을 덮기 시작했다.

  인간이 버린 아이들은 그렇게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댓글 2
  • No Profile
    Inkholic 07.08.03 22:12 댓글 수정 삭제
    게시판 용량 초과로 두 편에 나눠 올릴 수 밖에 없는 점 양해바랍니다. 합평회 날 뵐께요.^^
  • No Profile
    07.08.04 01:22 댓글 수정 삭제
    첫 합평작이군요.
    수고스럽겠지만 합평작이 원고지로 몇 매인지 제목에 적어 주시면 좋지 않을까요?(원고지 매수가 분량 가늠하는 데 제일 좋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