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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런 도끼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 Alt.SF 휴/폐간에 부쳐


해망재


지난달에 내 블로그에서 개인적으로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에 대해 생글생글 웃으며 불쾌함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악스트의 듀나님 인터뷰를 읽고) SF적 텍스트 퍼포먼스니 어쩌니 해도 그 글의 결론은 그거다. "그게 인터뷰냐."라고. 오죽하면, 그걸 모욕으로 읽지 않기 위해 "그래, 문단꼰대 아재가 외계인을 만난 이야기로구나"로 받아들이려 노력씩이나 했겠는가.


악스트의 질문들은 적절치 못했다. 배수아와 정용준의 질문들은 그들이 아무리 SF에 익숙치 못하다 한들, 작가를 인터뷰할 때 적어도 그 사람이 쓴 책을 구경이라도 하고 나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백가흠의 질문들은 더욱 심각한 것이, 20년 넘게 익명성 뒤에 서 있던 작가에게 굳이 성별을 묻고, 그의 성과들을 깎아내리려 애쓰며, 나중에는 "너 나 알지! 우리 본 적 있지!"로 요약 가능한 부끄러운줄 모르는 인정욕구 전시로 흘러간다. 사람을 면 대 면으로 두고 인터뷰를 할 때도 대개는 편집부와 의논해서 산으로 가지 않게 큰 틀을 정하고 가는 것으로 아는데, 무려 이메일로 인터뷰를 하면서도 악스트 편집부는 이 총체적으로 난국인 질문에 대해 한 번 걸러 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긴, "이 인터뷰 그냥 나가면 곤란하다"는 말을 곱게 돌려서 보낸 듀나의 메일까지도 포함해서 이 인터뷰를 당당히 실어버린 것을 보면 그냥 싸우려고, 소위 "어그로를 끌려고" 작정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이 상식으로 알려진 이 현대 사회에서, 비록 아직도 사람들은 상대방의 직장을 묻고, 결혼 여부를 묻고, 남의 가족관계에 오지랖을 떨어댄다고 해도, 적어도 문예지라는 것은 최소한의 품위와 지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성별을 묻고, 깎아내리고, 익명성을 벗겨내려 애쓰다 못해 자신의 인정욕구 전시로 흘러가는" 일련의 질문들은, 상대방을 나와 동격으로 놓고 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런 질문은,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는 질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듀나는 과연 백가흠보다 아래쪽으로 놓여야 할 사람인가? 아직 불행히도 수직사회인 한국에서, 나이라든가 학번, 먼저 그 바닥에 들어온 년도 같은것은 사람을 줄세우는 데 꽤 중요한 잣대로 쓰이는데, 듀나가 공저자로 나온 첫 책은 1994년에 나왔고, 단독저자로 나온 첫 책은 1997년에 나왔다. 설령 사람을 놓고 줄부터 세우는 수직사회의 논리에 맞춰 생각하더라도, 21세기에 등단한 백가흠이 이미 20세기에 저서를 냈던 듀나에게 일방적으로 그런 식의 무례를 저지를 만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등단하고 데뷔는 다르다"고 말하는 설익은 문창과 학생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설익은 문창과 학생에게 몇년간 시달려 봐서 하는 소리다.) 그런데 정말로 순문학계의 등단과 장르문학계의 데뷔가 다른 것이라면, 자신과 단순히 수직으로 서열화 할 수 없는, 다른 카테고리의 사람에게 서열질을 한 것이 된다. 말하자면 농구선수와 야구선수를 놓고 똑같이 공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우열을 가리려 든 셈이다. 불행히도 문단이라는 이름의 농구선수들은 다른 종목들은 자기들보다 작은 공을 갖고 논다는 이유만으로 야구든 축구든, 이 아니라 다른 장르 전반을 두고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온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개인 대 개인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공적인 성격을 띠는 인터뷰에서 하기에는 참으로 치졸한 일이긴 했다. (이것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하는 말인데 실제로 농구선수가 축구나 야구선수를 비웃는다는 뜻이 아니다!!!!!)


뭐, 그로 인해 트위터에서 SF 독자들과 작가들이 좀 시끄럽게 떠들긴 했지만, 덕분에 악스트 4호는 매진되었다. dcdc나 곽재식 등의, 악스트에 대한 기고가 실리기도 했고,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 기사 자체에 대해서도 몇몇 언론에서 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마케팅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꽤나 불쾌한 마케팅 방법이긴 해도.


그리고 Alt.SF(이후 알트SF)에서도 관련 기사를 냈다. 이 기사에는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 중 백가흠의 "질문"부분이 상당부분 인용되었으며, 이에 대한 비판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인터뷰 기사를 본다고 하면 인터뷰이의 답변을 보고자 함이지, 인터뷰어의 질문을 보고자 함이 아니다. 또한 한 기사에서 다른 기사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하는 것은, 인용한 내용 이상으로 그에 대한 비판이나 해석이 들어가 있다면 공정이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은행나무에서 알트SF에 보낸 메일에서도, 알트SF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나와 있는 부분은 없다. 애초에 분명히 저작권 문제가 있는 부분이었다면 저작권위원회에서 그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이를 두고 알트SF에게 "법원에 일임"이라는 부분을 굳이 강조해 가며 메일을 보냈다. 은행나무에서 정말로 저 저작권위원회의 메일을 "알트SF가 잘못했으니 법정으로 끌고 가라"는 뜻으로 인식했는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압박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전자라면 명색이 문예지에서 한국말도 못 읽는가, 라고 묻고 싶고 후자라면 치졸한 협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무엇보다도, 펜과 키보드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다른 언론의 비판기사에 대해 펜과 키보드로 맞서는 게 아니라 법을 들먹이는 태도를 보이는 것 자체가, 이길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아, 설마 앝트SF가 언론이 아니라 "개인 블로그"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일까? 그렇다면 "기사에 대해 항의한 개인을 협박한"것과 "개인미디어 또는 1인미디어라는 단어를 모르는"것 중 어느 쪽이 더 남부끄러운 일일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참고로 개인미디어는 1996년, 1인미디어는 1998년부터 언론에서도 쓰인 단어다.


무엇보다도 알트SF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격월로, 한국에 소개된 SF와 한국 작가의 SF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모두 언급하려 애쓴 매체였다. 물론 전문적인 비평보다는 집요한 독자의 감상에 가깝고, 취향을 타며, 독설과 비꼼이 적지 않게 들어가 있으며, 삽질이라 불릴 만한 실수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 의견은 정론과는 거리가 있는 거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로서의 가치와, 장르 팬의 힘을 스스로 증명한 팬진이었다.


듀나 인터뷰에 대해서는 이미 나와버린 것, 사과할 것은사과하고, 팬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며,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다음번에야말로 다른 SF 작가 모시고 좀 더 제대로 준비한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만회할 수도 있었다. 악스트가 알트SF를 언론이라고 생각했다면 공정이용으로 넘어갈 부분이요, 일개 팬이라고 생각했다면 더욱이 그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악스트는 최악의 수만 골라서 둔 끝에, 한국 SF에서 지난 20년을 꾸준히 지켜온 작가를 그런 식으로 모욕한 것도 모자라, 독설과 미묘한 삽질들이 있을지언정 꾸준히 한국에 출간된 SF와 한국 SF에 관심을 보여준 웹진을 문닫게 만들고 말았다. 장하다, 문단. ^^


휴간 안내 | alt.SF


몇달 전 보았던 악스트의 창간사는 인상적이었다. 장르쪽 사람들도, 새로 창간하는, 생각을 깨는 도끼가 되고 작가들을 위한 잡지가 되겠다는 악스트에 기대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글을 인용하고, "우리는 우리이기 위해 도끼를 든다"며, 위로와 격려의 판이 되겠다고 했던 악스트는 결국, "도끼를 들고 춤을 추어도 좋겠다"더니 도끼를 들고 망나니처럼 휘두르면서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장르를 깨부수는 데만 일조하고 말았다.


대체 그런 도끼를 어디다 써야 할 지 모르겠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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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립 16.03.02 23:01 댓글

    그보다 잡지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말 소설가만을 위한 잡지도 아닙니다.

    기존 문예지와 별로 다른 게 없습니다. 

    기존 문예지는 올드하기에 묵직하게 움직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생이고 새로운 대안을 보이겠다고 했지만

    훨훨 멀리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웬만한 정보을 얻을 수 있는 이 시대에 

    아직도 작가 지망생들의 수준을 낮게보고 계몽시키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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