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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DOSKHARAAS(도스까라아스) 손지상


제1장. 이론 편.

1. 자전거는 선택받은 자만이 탈 수 있다?

소설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글의 주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양반이나 귀족이나 브라만으로 선택받아 태어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재능을 타고 날 필요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 독서의 경험이 있고, 문장을 이용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며, 연습을 한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자전거를 처음 올라타자마자 타고 다니는 사람만이 자전거를 탈 자격이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요? 드물게 타고난 균형 감각이나 하체 근력이 있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 몇 명만이 자전거를 타겠지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자전거를 그냥 올라타자마자 타는 사람은 드뭅니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하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전거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타자마자 온몸의 균형감각을 총동원해서 중심을 잡으려고 듭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치고 아프고, 그러다 포기할 지도 모릅니다. 포기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데 재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릴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자전거를 타는 올바른 방법, 올라타자마자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요령을 익히고 이를 연습해야한다는 결론이 더 정확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기술은 어렵고 복잡해서 아무나 배울 수 없는 기술은 아닙니다. 누구나 연습만 조금 하면 금방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소설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시스템을 통해 연습만 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소설쓰기와 소설 잘 쓰기를 혼동합니다.
누구나 세계적인 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 나가 우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나 자전거타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둘은 다른 것입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무조건 최고가 되라고 결심하라 강요하고, 아니면 아예 시작도 마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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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를 즐거운 경험으로 여기고 연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설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는 타는 데 필요한 요령을 익히고 경험을 쌓으면 누구나 탈 수 있는 도구입니다. 소설쓰기에도 필요한 요령이 존재합니다. 
물론 요령만 안다고 순식간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연습이 필요하지요. 중심을 잡고 발로 페달을 밟는 경험은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영역입니다. 직접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재능을 타고 났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요령이나 기술을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법은 배우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라고 무작정 타보라 시키기만 하면, 결국 애초에 재능 있는 사람 밖에 자전거를 타지 못합니다. 재능 있는 사람은 그냥 알아서 잘 타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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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보조바퀴와 자전가 타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습 약간만 하면 누구든 ‘일단은’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을 잘 쓰는 것과 일단 소설을 하나 완성하는 것은 다릅니다. <투르 드 프랑스> 우승 컵 같이 명작으로 남을 소설과 일단 소설의 꼴을 갖춘 서물을 탈고하는 것 사이에는 이렇듯 큰 차이가 있다. 
이 글에서 바라는 것은 누구나 일단 소설의 꼴을 갖춘 서물을 탈고하는 것입니다. 자전거 타기를 먼저 마스터해야 나중에 <투르 드 프랑스>에 나가든 <서울시 전국 자전거 경주>에 나가든 할 수 있으니까요.
이 글은 여러분께 보조바퀴를 선물해 주려고 합니다. 알프레드 반 보트의 소설적 문장과 800 단어 장면법이 바로 두 개의 보조바퀴입니다. 그다지 최신은 아닙니다. A급도 아니고 B급입니다. 하지만 믿고 쓸 수 있습니다. 이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즐겁게 자신만의 소설이라는 투어링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2. “어때요, 참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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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작가는 자기가 특별하고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소설을 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쓴 29살 하루키는 1978년 야쿠르트와 히로시마와의 경기를 도쿄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보던 중, 외국인 선수였던 데이브 힐튼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진짜?
 
그럼 그런 계시를 받는 것처럼 극적인 경험이 없는 평범한 우리는 소설을 못 쓴단 말이야? 처음 제가 이 일화를 들었을 때 떠올린 생각입니다. 저는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특별하지도 않았고 기억도 잘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게 22살 때 부터였습니다. 철학을 가르쳐주던 선배에게서 “네 생각은 논리만 있지 감정과 공감, 상상력이 부족해 빈약하고 깊이가 없다. 소설을 읽어보라”는 조언을 듣고 그때서야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미저리>와 <쇼생크 탈출>로 알게 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집에 있어서 같이 읽기 시작했고, 서점에 가니 <소설가 된다!> 1권과 2권이 있기에 사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다음해에 처음 단편을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는 시작부터 소설을 쓸 운명이 아닌 것일까요? (애초에 하루키의 일화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접어 두고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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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는 초능력이 아닙니다. 엑스멘(X-Men)이 아니면 안 되는 특수능력이 아닙니다. 물론 소설 잘 쓰기를 위해서는 슈퍼히어로 급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평범한 몸으로도 슈퍼히어로가 된 배트맨, 아이언맨, 퍼니셔, 닉 퓨리도 있습니다. 물론 돈이나 천재적 두뇌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분은 계시겠지만. 왓치멘(Watchmen)은 어떻습니까? 오지맨디아스와 닥터 맨하탄을 제외하면 왓치멘에 나오는 영웅들은 대부분 타고나기를 평범하게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엑스멘이 아니라, (오지맨디아스와 닥터 맨해튼이 없는) 왓치멘입니다. 우리도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씁시다, 밥 로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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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로스를 기억하시나요?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습니다. 커다란 아프로 파마에 소박하고 푸근한 미소를 짓는 그림 그리는 아저씨였지요. 자장가 같은 목소리로 “참 쉽죠?” 라고 말하면서 붓을 몇 번 움직이기만 하면 캔버스 위에 금방 침엽수나 핑크 빛 구름이 생겼습니다.
밥 로스는 본래 미군이었습니다. 그는 근무 중 보았던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에 그림을 배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본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 거쳐야 할 문제가 많았습니다. 기술을 익히는 데도, 그림을 완성하는 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습니다.
밥 로스는 자신만의 도구와 시스템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웻앤웻(Wet and wet)이라는 기법 하나만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었다. 쉽고 빠르게! 물론 예술성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밥 로스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습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그림을 그립시다>입니다. 어쩐지 어릴 때 집에 있는 물감으로 해 보려 해도 잘 안 됐는데 이유가 있었군요.
밥 로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스템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밥 로스 자신도 자기 그림이 예술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신경도 쓰지 않았지요. 그가 중요시 한 것은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으니까요. 
그가 만든 시스템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 사용하는 사람 개인의 특성을 잘 타지 않습니다. 그만큼 투박하고 진부한 결과를 내놓지만, 기대하는 만큼의 결과는 무조건 산출합니다. 과연 군인 출신이라 군대 물건과 같은 발상을 하는군요.

3. 꽁푸허슬―시스템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다.

시스템을 구축하면 개인의 경험이나 특성에 관계없이 일정한 결과를 산출합니다. 그렇다면 각자가 가진 고유한 개성을 망치지는 않을까요?
오히려 시스템을 철저히 훈련하면 고유한 개성이 나타납니다. 이를 도올 김용옥은 “기의 축적에 의한 기의 창발”이라고 부릅니다. 무슨 말인지 어렵네요.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도올 김용옥의 저서를 보면 “기의 축적”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도올은 온 우주의 모든 과정을 기라 부릅니다. 그에게 있어 사람이란, 과거와 미래의 기가 한 점에 모인 몸(Mom)이 경험, 사고, 느낌 등 삶의 과정을 통해 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 부릅니다. 더 나아가 사회와 문화란 객관적인 형태로 기가 쌓인 것이라 부릅니다. 이 기의 축적이 곧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 기의 축적을 통해 새로운 기의 형태를 창발(創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창발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가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흔히 “물이 임계점이 100도씨를 넘으면 끓어 기체가 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문제는 임계점이 어디인지 우리는 도통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만.) 시스템의 되먹임(Feedback)이 반복되면 전혀 다른 시스템이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점이 궁금하신 분들은 복잡계 과학, 결정론적 카오스, 프랙털 등의 키워드로 조사를 해 보시면 재미있습니다. 참고해보세요.

모든 것은 꽁푸입니다.

7.jpg 도올 김용옥은 이를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라는 책에서 태권도에 적용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세요.) 이 책에서 그는 흔히 우리가 쿵푸라고 부르는 꽁푸(工夫)를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꽁푸는 타오(道)와 떼(德)라는 두 측면으로 구성됩니다. 타오는 효율적으로 몸(Mom)고 특수한 몸의 움직임 패턴입니다. 테는 축적(蓄積)의 적과 중국어 발음이 같은데, 타오를 반복하여 얻은 경험입니다. 이때 단순히 반복하는 게 아니라, 실전에서 직접 사용해 효과를 검토하고 반성하는 과정인 되먹임이 포함됩니다. 
테가 반복되어 타오를 만들고, 타오를 반복해 테를 쌓아가, 더 나은 타오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곧 꽁푸입니다. 도올은 태권도의 경우, 품세가 타오고 대련이 테라고 했습니다. 소설의 경우 시스템이나 작법이 타오고 직접 소설을 쓰는 과정이 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꽁푸는 단순히 무술이 아닙니다. 꽁푸는 시스템이자, 그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이며, 시스템을 통해 얻는 경험이고, 경험을 통해 시스템을 개량하거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모든 과정입니다. 
우리나라 말의 공부는 꽁푸(工夫)와 같은 한자를 씁니다. 의미도 같습니다. 일본말에도 쿠후우(工夫, くふう)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존에 있는 시스템을 개선하고 개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영역이든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운용하며 개량해 것은 모두 꽁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도 ‘소설꽁푸’인 셈입니다!
시스템은 과거 위대한 선현들이 남긴 경험을 쌓아 만듭니다. 연습을 통해 시스템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동안의 수 십, 수 백, 수 천 년의 경험을 대리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재능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테니스의 천재로 타고 난 사람이라도 룰과 기초라는 테니스의 시스템을 모른다면, 잘 훈련 된 (꽁푸!) 중학생에게도 이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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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스땁 더 꽁푸!

이 과정을 통해 소설쓰기는 신에게 선택받은 절대적인 초능력에서 상대화되고 객관적인 기술로써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기술을 철저히 익힌 사람이 새로운 꽁푸의 유파를 만들기도 합니다. 고유성의 탄생입니다. 
여기서 시스템을 이용하면 자기만의 개성이 발휘되지 않고 진부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답이 나옵니다. 단순히 시스템을 익히는 것 만이라면 진부하고 몰개성적인 작품만 나올 것입니다. 애초에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처음 배출되는 결과물은 분명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진부한 것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철저히 떼를 거듭하면 어느 새 자신만의 타오가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도를 깨닫네 하는 말의 정체입니다. 오히려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지 않은 자아니 개성이니 하는 개별성은 별다른 깊이가 없는 것이라고까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도올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기동전사 건담>등을 감독한 토미노 요시유키(冨野由悠季)도 인터뷰에서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현직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실전적 작법서를 몇 권이나 내고 있는 오쓰카 에이지(大塚英二)도 <캐릭터 소설 쓰는 법> 등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자아와 개성을 찾고 깊이를 넓히고 유연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3. “거대한 타이프라이터를 치는 난장이”

“그는 거인이 아니라, 거대한 타이프라이터를 치는 난장이다,” 데이먼 나이트(Damon Knight)가 알프레드 E. 반 보트(Alfred E. Van Vogt)를 두고 한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사실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그는 재능은 없으나 시스템에 기대서 재능이 있는 것처럼 포장했다, 거인으로 불릴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그가 사용한 시스템이 거대했을 뿐이다, 라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구성도 별로고 문장도 별로였지만 시스템을 익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니까요.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좋은 시스템이라면 배워볼 만하다 하겠습니다. 시스템으로 미국 SF 황금기의 X-Men인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ov), 로버트 A. 하인라인(Robert A. Heinrein), 아서 C. 클라크(Arther C. Clark), 알프레드 베스터(Alfred Bester) 등등의 일원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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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레이 브래드버리, A. E. 반 보트, 잭 윌리엄스

여담입니다만 예전에 저는 이 작가를 반 보그트라고 불렸습니다. 저도 그렇게 불렀고. Vogt라서. 이 작가는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표기가 다 다릅니다. 보크트, 보그트, 보오그트 등등. 그런데 알고 보니 가운데 g가 묵음이라는 군요. 보그트나 복트라고 읽는 게 아니라 보트라고 읽어야 맞는다고 합니다. 미국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니 “봰붜우트”라고 하더군요. 저는 반 보트라고 부르겠습니다.

반 보트는 어떤 사람인가? 
미국 SF의 1930~50년대 사이, 이른바 황금기라 불리는 시절의 스타 작가로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필립 K. 딕(Phillip K. Dick)과 할란 앨리슨(Harlan Alison)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중에서도 필립 K. 딕의 경우 그를 자신의 스승으로 부를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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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란 엘리슨과 A. E. 반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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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언의 모티브가 된 <The Voyage of the Space Beagle>                                                                         

 초인원망을 다룬 초창기 걸작 <Slan> 일본에서 오랫동안 인기작이었으며, <신세기 에반겔리온>에 영향을 주었다.


이 양반은 엄밀한 과학적 상식을 지키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동시대에 활약한 같은 또래, 알프레드 베스터(Alfred Best)처럼 상상력이 폭발하는 타입이었습니다. 흔히 1940년대 스타일 SF라 불리는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더라도 흥미진진한 소설을 썼습니다. 괴물들에게 자아를 부여한 사람으로도 유명하지요. 영화 <에일리언>이 반 보트의 작품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반 보트는 자기 작품 표절이라고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했습니다.
그는 초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소설로 표현하였고, 주인공들이 대부분 초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인은 니체의 초인(Ubermensch)이 아니라, 초인(Superman)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이비 과학에 쉽게 속았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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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허버드

예를 들면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 교회의 창시자 L. 론 허버드(L. Ron Huubard)가 사이언톨로지의 전신인 다이아토닉스(Diatonics)를 만들었을 때 초창기 멤버로 참가했습니다. L. 론 허버드는 원래 SF 작가였습니다. 동료였던 반 보트는 최면술이나 유사과학에 관심이 많아, 그와 같이 작업을 많이 했지요. 나중에 사이언톨로지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다이아토닉스와는 거리를 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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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의미론(General Semantics)이라는 이론이자 자기계발 프로그램에 경도되어 Null-A라는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반대된다는 의미로 Null(0)―A(Aristotle) 라고 붙인 것이지요.
그 외에도 막대한 양의 단편을 쓰고, 이를 장편으로 이어붙이는 픽스업(Fix-up) 수법을 처음으로 SF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익힌 시스템은 존 W. 갈리쇼(John W. Gallishaw)라는 사람이 확립한 것입니다. 시대적으로도 그가 사용한 시스템은 대략 백 년 전인 20세기 초에 확립되었습니다. 반 보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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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 내가 말한 가장 귀중한 작법서는 존 W. 갈리쇼가 쓴 <소설을 쓰는 단 두 가지 방식(The Only Two Ways to Write a Story, 1928)>를 말합니다.” 


<A. E. Van Vogt: A Writer with a Winning Formula> Interview by Jeffrey M. Elliot, 1979. Copyright 1979 by R. Reginald and Jeffrey M. Elliot, in Science Fiction Voices #2: Interviews with Science Fiction Writers, Borgo Press.에서 인용. 이하 <A. E. Van Vogt: A Writer with a Winning Formula>.

필자 번역.


존 W. 갈리쇼는 하버드에서 공부한 캐나다 작가이자 교사로 작법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냈습니다. <The Only Two Ways to Write a Story (1928)>, <Twenty Problems of the Fiction Writer (1929)>, <Advanced Problems of the Fiction Writer (1931)>입니다. 이 중에서 <The Only Two Ways to Write a Story>와 <Twenty Problems of the Fiction Writer> 가 반 보트가 읽고 발전시킨 기법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이 기법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영화 시나리오 작법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존 W. 갈리쇼는 케임브리지에서 'John Gallishaw School of Creative Writing'이라는 강의를 하며 후진을 양성 했습니다. 본인도 직접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할리우드에서 MGM, 콜롬비아 픽처,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지에서 시나리오 작가로도 일했습니다. 영화계에서도 일한 바 있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배우 캐리 그랜트 등과도 친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3장이론을 정리한 시나리오 작법서로 유명한 로버트 맥키(Robert Mckee)의 <시나리오 이렇게 써라>나 시드 필드(Sid Field)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원형이자 뿌리인 셈입니다.

반 보트는 스스로를 미스터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로 시스템을 중시했습니다.
여기서 소설을 쓰는 데 그가 사용한 시스템은 소설적 문장(Fictional Sentence)과 800 단어 장면 법(800-word-scenes method)으로 나뉩니다. 미리 지적하자면 그가 사용한 이 두 시스템은 한계점이 뚜렷하게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문체와 인물 묘사의 깊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평론가들이 반 보트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위에도 말했듯 그는 픽스업 수법을 이용했습니다. 픽스업을 하는 대상이 연작 단편이라 같은 주인공에 시간도 이어지면 문제가 없겠지만, 서로 다른 주인공에 서로 다른 상황인 단편들도 엮어서 장편화 시키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통일된 전개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중구난방에 평면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마분지 인물(Cardboard Character)이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반 보트는 초인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이나 내면은 나약한 것이라 생각했고 순수하게 논리적이고 기하학적인 이성(비록 그는 끝내 가지지 못했지만)의 아바타(化身)으로써만 주인공을 설정했습니다. 그러니 흔히 문학적이라 부르는 인간의 깊이 있는 내면이나 통일감 있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평생을 작가로 활동했고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해 왔습니다. 그는 이 모든 공을 시스템에게 돌립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소설적 문장과 800 단어 장면법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2장. 실전 편. 

제1초식. 소설적 문장

1. 일단은 문체가 아니고 문장

반 보트의 문장은 좋은 문장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잘 먹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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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 발자크


악문가로 유명한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처럼, 반 보트의 문장은 문법적으로 올바르거나 가독성 있는 문장을 구사하지 않았음에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반 보트의 문장은 외국으로 번역되었을 때 매력적이고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반 보트를 과학소설의 수호성인이자 시적 문장을 구사하는 시인의 반열에 올렸다. 일본에서는 유미주의로 유명하고 미감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미시마 유키오가 반 보트를 애독하고 좋아했다. (이는 <오늘의 SF 걸작선>에 수록된 알프레드 반 보트를 위한 시에서도 ‘그 미시마?’ 라는 대목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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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보트의 소설적 문장은 작품의 톤, 분위기, 특성을 문장의 디테일이나 구조로 녹여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말로 번역되었을 때 더 인정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번역과정 중에서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문장을 정리할 때, 이 구조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의 문장이 문체의 레벨로 인정받은 게 아닌가 하고 저는 추측합니다. 따라서 그의 문장술을 한국어 문장에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문체가 아니라 문장이라 할까요?
영어로 문체는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문체는 단순히 문장의 버릇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이의 개성과 문장의 버릇, 패러그래프를 구성하는 특징, 문서의 톤, 흐르는 감각을 주는 맥락 등을 모두 포괄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래대로라면 소설적 문장은 문체이기도 한 셈입니다. 그러나 반 보트의 경우는 왜 그렇지 못하게 됐는가는 크게 그가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작품을 쓰기 보다는 개개의 장면에만 집착했다는 점과 그의 문장이 지나치게 ‘펄프픽션’ 적이어서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첫 소설을 읽은 잡지 편집자)는 내게 ‘이야기를 쓸 때는 풍부한 분위기를 집어넣어라’ 충고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글에다 ‘양념 좀 느끼한 미사여구’를 많이 넣으라는 것이지요. 난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바로 알아들었습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트루 스토리 매거진>에 처음으로 단편을 판 것도 이때지요. 내 소설은 245 달러에 팔렸습니다. 대공황 시절이었으니 꽤나 큰돈이었어요. 나는 그 편집장이 말한, 양념 좀 친 느끼한 미사여구, 화려한 단어가 무엇인지 이해한 뒤로 항상 글에 ‘풍부한 분위기’를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An Interview with A. E. Van Vogt> conducted by Jeffrey Elliot, published in Science Fiction Review #23, Copyright 1977 by Richard E. Geis.에서 인용. 필자 번역.

“과학소설에 소위 '세련된' 글이 출현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일일 뿐입니다. 과연 이 변화가 영구적일 까요? 196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몇 년 동안이나 나의 문장은 조금 과도한 미사여구와 시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는 '펄프픽션 식 문체'였습니다.”

<A. E. Van Vogt: A Writer with a Winning Formula>에서 인용

문체란 작가 개성이 문장에 녹아나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예를 들자면 작가 자신의 타오가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작가 자신의 타오가 나오기 전 단계의 훈련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상의 이유로 여기서는 문체가 아닌 문장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2. 소설적 문장의 3요소―감각(Imagery), 애태우기(Suspense), 감정(Emotion)

소설적 문장은 좋은 문장을 써 주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성격에 맞는 문장을 쓰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따름입니다. 이야기에 어울리며 시스템적으로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문장을 쓰는 기술이 소설적 문장입니다. 반 보트가 그랬듯 적나라하고 노골적이며 천박한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글쓴이가 주제에 맞추어 통일성을 부여하려 하는 가, 글쓴이의 개성이 녹아들어 가는 가 등 작품 구성과 관계해서 볼 문제입니다. 문장 자체의 문제는 아닙니다.
소설적 문장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독자가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내용을 문장에 녹여놓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반 보트의 독자는 그의 소설적 문장에 만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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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털 구조

왜 그럴까요? 문장 구조와 이야기 내용이 일종의 프랙털 구조로 서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실천편이니까요. 여담입니다만 제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떤 분은 일본 작가 니시오 이신(西尾維新)의 작품이 문장 구조와 이야기 내용이 프랙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니시오 이신은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니, 추후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소설적 문장은 문장의 목적을 분명하게 하고 목적에 맞는 요소를 집어넣으려 합니다. 
반 보트는 이상적으로는 소설에 포함된 모든 문장이 소설적 문장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건조하고 객관적인 디테일이나 사실정보를 전달하는 문장이 아니라 ‘촉촉한’ 문장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문장을 읽기 위해서는 독자가 능동적으로 빈 곳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세한 디테일을 전달하기보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깁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글은 속독이 불가능하다 주장했습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현대의 순수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촌스러운’ 문장으로 치부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분명 효과적입니다.
소설적 문장의 요소는 크게 1) 감각(Imagery), 2) 감정(Emotion), 3) 애태우기(Suspense),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여기서 감각은 특정한 감각적 이미지를 말하고, 애태우기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감정은 말 그대로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정 상태입니다. 이 중 하나 이상의 요소를 문장마다 집어넣어, 소설 세계 내에서의 독자의 임장감(Reality)을 높이고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1) 감각(Imagery)


감각이란 글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감각 묘사, 이미지 등을 통칭해서 말합니다. 

시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 촉각적 이미지, 운동감 등등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실을 서술하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감각정보를 되살릴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환유나 비유, 은유와 같은 수사법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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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앤더슨

문장을 쓸 때는 항상 독자가 환기할 감각 정보가 있는 지를 의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에 대한 예는 <타임 패트롤> 시리즈로도 유명한 폴 앤더슨(Poul Anderson)도 지적합니다. 폴 앤더슨은 다작을 하면서도 평균적으로 높은 질을 유지한 작가입니다. 그는 언제나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문장을 쓰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환기시키며, 매우 큰 임장감을 줄 수 있습니다. 
최면에서도 공감각적 이미지를 이용합니다. 임장감이 더 커져 최면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와인 전문가가 “벨벳 같은 붉은 향”이니 “마그마가 용솟음치는 듯 한 톡 쏘는 미감”이니 하는 표현을 쓰는 것도 세밀한 자신의 임장감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지, 잘난 척 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가끔은 멋 부리려고 그러는 사람도 있어 보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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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유나 비유, 은유 같은 수사법이 강력한 이유도 이 공감각적 이미지에 있습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은유의 힘에 대해 다루는 장면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는 지 주인공 마리오에게 네루다에게 묻자, 네루다는 은유(Metaphor)를 말해줍니다. 심지어 마리오가 연인 베아트리체와 교제하려 할 때, 그녀의 부모는 은유가 무슨 저주인 양 힘이 세서 결혼을 못 막을지도 모른다고 한탄하는 장면도 있지요. 재미있고 울림 있는 소설이니 꼭 읽어보세요.

다음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사족을 조금 덧붙여 왜 제가 예술작품에서의 형상화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이미저리(Imagery)를 심상이나 이미지 등으로 번역하지 않고 감각으로 번역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흔히 이미지라는 표현을 쓰면 ‘시각적 이미지’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듯, 영화를 보듯 한다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미저리의 의미 중에는 아예 화상, 그림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이미지에 편중된 번역이 될까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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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뇌가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통로를 (1)시각, (2)청각, (3)후각, (4)미각, (5)촉각 혹은 체감각, 운동감 (6)언어, 정확히는 언어를 통해 상기된 감각기억, 이렇게 여섯 개로 분류합니다. 여섯 개의 통로를 통해 뇌로 전달된 감각정보는 연관된 특정한 기억을 환기시킵니다. 이를 내부표현(Representation) 또는 이미지(Image)라고 부릅니다. 내부표현의 경우 표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인간이 활자를 읽으면, 언어를 통해 뇌에 저장된 감각기억, 객관적인 정보인 의미기억, 그리고 주관적으로 직접 겪은 일과 이에 얽힌 감정의 기억인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을 환기시킵니다. 이 과정 중에 임장감이 발생합니다. 
이와 똑같은 원리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임장감을 느끼고, 꿈을 꾸면서 임장감을 느끼고, 최면을 통해 임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꿈은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 중에 환기된 기억 때문에 임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최면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언어를 통해 기억을 환기시키고 조작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시각적 이미지와 연합된 이미지나 심상보다는 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감각이라는 명칭으로 번역하였습니다. 

2) 감정(Emotion)


감정은 그 자체라기보다는 감각과 병행해서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문장에 사용하는 단어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사실에 감정이라는 필터를 통해 읽는 이에게 가장 강력한 기억인 일화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감정을 이용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기억의 환기가 곧 임장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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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표뜨르 도스또옙스키, 빅토르 위고

이 기술에 능했던 작가로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오노레 드 발자크, 빅토르 위고(Victor Hugo), 표뜨르 도스또옙스키(Fyodor Dostoevsky) 등이 있습니다.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사실에 대한 해석과 개입, 그리고 이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을 전달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문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흑석동에서 살았다. 흑석동 골목에서 자주 여자 친구와 만났다.”

라는 문장이 있다고 합니다. 이 문장은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미니멀리즘 소설이나 하드보일드 문체를 이용하는 소설, 혹은 누보로망이나 안티로망 등은 이러한 문장이 문학적으로 ‘옳은’ 문장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 의견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이렇게 쓰는 편이 건강식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반 보트의 소설적 문장은 불량식품입니다. 읽는 이에게 이렇게 써서는 감정을 환기시킬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써야 할까요?

“이제는 낡은 흑백사진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은 흑석동 골목길을 떠올릴 때 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흐른다. 눈앞에 젖은 풍경사이로 그곳에서 만났던 여자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려 가슴이 조인다.”

이렇게 쓰라고 반 보트는 제안합니다. 이 문장이 감정을 넣은 소설적 문장입니다. 문장 마다 감정을 환기시키는 문구나 감각요소가 들어있습니다. 문장을 적을 때, 화자의 감정을 태그 붙이듯 덧붙여 쓰고, 은유와 비유를 이용해 감각정보를 이끌어내는 식으로 적는 것이 감정을 넣은 소설적 문장입니다. 이 방법으로 오노레 드 발자크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발자크의 감정을 이용한 문장 작법은 <거장같이 써라>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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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직필원고


발자크는 문장에 쓸데없이 장황하고 번잡해 문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 받는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문학계의 거인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조차, “그는 악문가이지만 강력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소설이 방대하고, 매우 힘 있고, 거침없고, 재미있는 이유는 문장력이 떨어지는 만큼 감정이 풍부해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여담입니다만 그의 문장력은 싸구려 소설을 마구마구마구마구 써 댔던 과거 때문에 엉망인 문장이 아예 버릇이 되어버린 탓입니다. 그는 평생 이 점을 후회하며 한번 소설을 쓸 때 마다 퇴고를 위해 “가위와 풀로 문장을 잘라 옮겨 붙이고 여기저기 가필하고 수정하고 하느라 원고가 엉망이 될 때 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원고에 직접 글씨를 수정하고 종이를 잘라 붙여 편집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읽을 수 있는 발자크의 작품은 그 결과물인데도 문장이 엉망입니다. 그나마도 번역자가 잘 정리해서 덜 혼잡한 겁니다. 프랑스 어 원문으로 보면 장난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평생을 두고 자신의 문체를 엉망으로 만든 일에 후회를 했습니다. 그러니 모두 주의합시다.

소설적 문장으로 이야기를 돌리겠습니다. 
감정을 다룰 경우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적 진폭이 커다랗게 변할 때 마다 이러한 감정을 담는 것입니다. 내적 독백도 좋고 인물들의 생리상태도 좋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문장에 담는 것이 소설적 문장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이미 언급한 <거장같이 써라>와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모든 문장을 이렇게 쓰는 것은 무리입니다만, 이러한 문체의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 감정은 분명 소설을 읽는 재미가 됩니다.

3) 애태우기(Suspense)


과학소설/환상소설에서는 애태우기(서스펜스)를 넣어야 한다. 이것이 반 보트의 주장이었습니다.
애태우기는 의도적으로 문장마다 정보를 모호하게 하거나, 디테일을 부족하게 유지해, 다음 문장을 읽게 만드는 지연작전입니다. 

애태우기란 용어는 Hang-Up, Suspense를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스펜스의 의미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통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래의 의미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지연시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미스터리와는 정 반대의 방향성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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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미스터리는 이미 벌어진 살인의 이유를 찾는 것이고, 서스펜스는 범인이 무슨 짓을 할지는 알지만 언제 벌일지 모르는 것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식사 중에 갑자기 테이블 아래에서 폭탄이 터지만 미스터리, 폭탄이 테이블 안에 들어있는 지 모른 채 가족이 식사를 하면 서스펜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서스펜스를 훨씬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용어의 정확한 번역어가 없는 것을 저는 항상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과거 여러 가지 형태로 이 서스펜스, 반 보트의 용어로 하자면 ‘Hang-Up'을 번역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어를 고안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일단 ‘애태우기’로 번역하겠습니다. 독자를 애태우기 위해 정보 제공을 지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애태우기는 공포 영화 등에서 "핏줄기를 따라 카메라가 이동한다. 카메라에 피 묻은 식칼이 보인다. 화면이 더 따라가면 가면 쓴 살인마가 보인다." 같은 장면과 비슷합니다. 정보를 조금 씩 전달해서 '질질 끌고 애태우는(Hung up)'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이를 플롯의 차원에서 하면 절단마공이니 떡밥이니 하는 것이 이에 해당 합니다. 매 문장마다 주의를 붙잡아 독자의 애를 태워서 내용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추상적인 표현, 대명사, 정보와 감각적 이미지를 서로 결합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특히 과학소설이나 환상소설의 경우, 전달해야 할 디테일이나 정보가 많으니 더욱 애태우기가 중요합니다. 디테일을 그냥 전달하려고 하면 위의 1)감각에서 설명했듯 임장감이 전달되지 않아 독자가 몰입을 느끼지 못합니다. 따라서 애태우기로 몰입시켜야합니다.

마지막으로 반 보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글을 쓰던 초창기에 가장 많이 쓰던 중요한 기법은, 모든 문장 속에 ‘애태우기(Hang up)’를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비평가들이 마냥 (그 사람들은 그저 이야기가 무엇에 관한 지만 알면 그만인 사람들이죠.) 내 글을 훑어보려 들면, 헛갈려서 금방 난항에 빠져버립니다. 왜냐면 내 글의 매 문장마다 들어간 ‘애태우기’가 요구하는 만큼 글에 '참여(contribution)'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내 글을 즐겨 읽는 애독자들은 내 글을 읽으면서 헛갈려 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 제대로 참여하여 글을 읽기 때문입니다. 내 이론에 의하면, 애태우기가 들어간 문장이 과학소설의 ‘소설적 문장’입니다. 나는 과학소설을 쓸 때 모든 문장에 애태우기가 꼭 들어가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쉽게도 가장 처음으로 출판된 과학소설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처음으로 썼던 과학소설 <야수의 지하 감옥(Vault of the Beast)>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괴물이 바닥을 기었다.’ 독자는 이 괴물이 어떤 종류의 괴물인지 모릅니다. 이게 애태우기지요. 또 다른 문장은 이렇습니다. ‘이 어설픈 사람의 형체는 접힌 피부 주름 사이로 뒤틀린 손을 뻗어 넣더니 작고 빛나는 금속 물체를 꺼냈다.’ 이 문장에는 애태우기가 네 개 들어있습니다. (역주-어설픈 사랑의 형체, 접힌 피부 주름, 뒤틀린 손을 뻗어 넣더니, 작고 빛나는 금속 물체, 이렇게 네 개임.)

(중략)

나는 특히 애태우기가 들어간 문장으로 쓴 이야기가 다른 형태의 이야기보다 오래 간다고 확신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그 세대의 독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현실과 자신들이 속한 시대의 정보로 ‘참여’하여 애태우기를 하기 위해 비어놓은 틈을 채워 넣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내가 모르는 정보거나, 이 이야기를 쓸 당시의 내가 모르던 미래의 정보 까지도 말입니다.”


<A. E. Van Vogt: A Writer with a Winning Formula>에서 인용


“과학소설을 쓸 때에는 매 문장마다 읽는 이가 상상력을 발휘해 창조적인 기여, 혹은 참여를 할 수 있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매 문장마다 애태우기(역주-Hang up.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눈길을 잡아끄는 빈틈, 수수께끼)가 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각 문장마다 무언가 빠져야 합니다. 마샬 맥루한이라면, 내가 쓴 과학소설은 "핫"하다고 할 겁니다. (역주-마샬 맥루한은 그의 매체이론에서 매체의 정보량이 적거나 추상적이어서, 정보 수신자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한 매체는 마찰이 심한 것으로 은유해 뜨겁다는 의미로 "핫 미디어"라고 정의한다. 반대로 정보량이 많거나 구체적이어서 정보 수신자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매체는 마찰이 적다는 의미에서 "쿨 미디어"라고 정의한다. 반 보트는 자신의 문장은 독자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핫"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독자가 꼭 안으로 들어와 판에 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독자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야기의 빈 곳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게끔 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작품을 훑어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독자들은 내가 집어넣은 애태우기에 걸리게 되고, 이를 스스로의 상상력을 이용해 '풀어'내지 않으면 다음 문장으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이에 반해 많은 과학소설 작가들은 '서술적인 방식 Narrative approach'으로 접근합니다. 작가의 시점에서 글을 쓴다는 말입니다. 로버트 실버버그 같은 작가들은 이 기법을 이용해서 아주 아름다운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내가 과학소설을 쓸 때 취하는 장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읽는 데 시간을 훨씬 많이 잡아먹지요. 이 방식으로 쓰려면 각 문장 마다 (소설적 문장이 되게끔 하는) 핵심성분을 제대로 넣어줘야 합니다.  여기에 양념 삼아 나는 특정한 감정을 환기시키는 소리의 울림을 이용해보려고 합니다. 보통은 이야기를 다 쓰고 난 다음 몇몇 단어를 특정한 소리로 바꾸어 봅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내 이야기에 음악적 배경을 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하려고 는 안합니다. 말 그대로 "양념"삼아 풍미를 더하는 것이지요. 특수효과를 만들어 보려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모르고 넘어갈 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를 다 읽었을 때 특정한 인상을 남겨 줄 만한 특수효과 말입니다.”


<An Interview with A. E. Van Vogt>에서 인용


2초식. 800 단어 장면 법


 

- 태초에 존 W. 갈리쇼가 있었다.


자, 이제 800단어 장면 법(800 word scenes method)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아까 전 내가 말한 가장 귀중한 작법서는 존 W. 갈리쇼가 쓴 <소설을 쓰는 단 두 가지 방식>를 말합니다. 갈리쇼는 당시 최고의 작가들을 관찰했고, 그들이 쓴 소설은 대부분 대략 800 단어(3@) 정도 되는 길이의 장면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때 각 장면은 다섯 단계로 나뉩니다. 나는 이 시스템도 나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언어를 다루는 만큼 소설과 음악은 조금 다를 순 있지만 큰 차이 없이, 어떤 음악도 이 다섯 단계로 구성된 장면만큼 엄격하게 체계적일 수는 없습니다.”

<A. E. van Vogt: A Writer with a Winning Formula>에서 인용>

이 방법의 장점으로 반 보트는 이야기의 리듬감을 줘 가독성과 흥미를 유지시킨다고 설명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야기를 장면이라는 작은 단위로 잘게 쪼개 이어붙이는 방법입니다. 이야기는 흔히 서-파-급, 기-승-전-결, 발단-갈등-위기-절정-결말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고 합니다. 
존 W. 갈리쇼는  이러한 단계를 더욱 세분화 시켜 영화의 시퀀스나 쇼트 같은 개념으로 세분화 하였고, 각 장면마다 이러한 단계를 밟게 하여 프랙털(또 나왔죠?)의 형태로 이야기를 구조화 하였습니다. 이는 영화 시나리오 작법에서는 이미 스탠더드가 된 방법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먼저 각 장면은 500~800단어로 구성됩니다. 이때 단어 수는 영어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대략 600단어, 2000~3000자, 200자 원고지 20~30매 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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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망가 대왕

각 장면은 내부적으로 다섯 단계의 이야기 단계를 밟아나갑니다. 이 장면들을 서로 연결해 전체의 이야기가 구성된다는 발상입니다. 짧게 연결하면 단편, 길게 연결하면 단편이 되겠지요. 연결이 장면 간에 긴밀하게 연결되면 플롯이 긴밀한 영화 같은 구성이 됩니다. 연결을 느슨히 하면 에피소드 식 구성이 됩니다. 반 보트는 이 기법을 발전시켜서 픽스업 장편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은 4컷 만화를 길게 이어서 장편화 시킨 <이웃집 야마다군>, <아즈망가 대왕>, <러키☆스타>와 같은 방식입니다. <소년점프>와 같은 주간만화잡지에서 연재되는 만화인 <나루토>, <원피스>, <드래곤볼> 등도 마찬가지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찰스 디킨즈와 같은 연재소설을 주로 쓴 작가들도 같은 구성입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영화는 장면 내의 단계 뿐 아니라, 장면 자체의 기능도 메타적으로 단계를 밟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면 안에서 밟는 이야기 진행 단계의 기능을 밟는 것입니다. 이렇듯 단순히 연결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 장면의 기능이 기승전결에 맞게 충실하게 구성하면 영화적이고 짜임새 있는 구성이 됩니다. 
이러한 방식의 이야기 구성을 연재소설 방식과 융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바로 속칭 미드라 불리는 시즌 제 미국식 드라마입니다. 각 화 마다 개별적인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전체 스토리도 전개되고, 각 화마다 다음 화를 위한 소위 '떡밥'이 제시되고, 나중에 이 모든 것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이야기를 위한 전개였다는 탄탄한 구성이 가능해 지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800 단어 장면법의 장면 안의 이야기 단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각 단계마다 들어가야 할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배경을 제시해 주인공이 지금 있는 시공간을 한정합니다.
(2) 주인공이 해결해야 할 문제나, 상황이 전달하고자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3) 문제는 점점 꼬여만 가고 주인공은 이 일을 해결하려고 고생을 합니다.
(4) 문제가 해결되었든 안 되었든, 주인공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명확히 합니다.

(5) 문제가 해결되든 안 되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새로운 정보가 제시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기동전사 건담 (1979)>의 도입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배경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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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우주전쟁이 일어나고 인공콜로니는 독립을 선언한다는 대략적인 배경 이야기가 내레이션으로 제시됩니다. 이야기는 우주에서 벌어지며, 인공콜로니 사이드 7로 접근해오는 모빌수트 자크 여러 대가 접근해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아무로 레이는 기계 만지기 좋아하는 음울한 찌질이입니다. 모빌수트 자크의 습격을 받아 피난 공보가 내려졌는데도, 소꿉친구가 피난 가자고 억지로 끌고 가 겨우 피난을 갑니다. 아무로 레이는 아버지가 모빌수트 개발자라 자료를 미리 보고 봤습니다.


(2) 문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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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눈앞에 적이 나타나고, 아무로 레이는 건담에 타게 됩니다.


(3) 문제 꼬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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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로 레이는 어쩔 수 없이 자크라는 모빌슈트들과 교전을 하게 됩니다. 무기도 다룰 줄 몰라서 허둥지둥 대다가 공격당해 죽을 뻔합니다.


(4) 문제 해결되든 안 되든 명확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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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로 레이는 자크를 물리치게 되고 화이트베이스라는 전함에 난민으로 타게 됩니다.


(5) 새로운 정보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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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사실을 적의 간부 ‘붉은 혜성’ 샤아가 알아냅니다. 샤아는 화이트베이스와 건담을 노리고 공격해 올 준비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가는 겁니다. 여기서 새로운 정보라는 것은 굳이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혀 지거나 반전이 생기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야기가 앞으로 진행되게끔 하는 겁니다. 정보를 조금씩 업데이트 해 나가는 것이 곧 이야기의 전개가 되는 것이지요.
800 단어 장면 법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시나리오 작법서를 참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기법을 반 보트보다 더 세련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곳이 할리우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법을 그대로 소설에 적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영상과 활자라는 매체의 차이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 구성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01 플롯> (데이비드 스콧 벨 저)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제3장. 결론 

  

1. 이 시스템에 빠진 핵심과 시스템의 한계.


이 두 시스템을 안다고 해서 금방 무언가가 써지지는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가 없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 반 보트에게 있어 최대의 약점이었습니다. 캐릭터는 단순히 인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는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루겠습니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해 실무적 노하우를 담은 책이 두 권 제게 있습니다. 언젠가 번역을 하면 좋을 텐데, 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800단어 장면 법보다 더 구조적이고 짜임새 있는 플롯 구성이 부족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차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을 드리면 이 부분을 실전적으로 다룬 오쓰카 에이지의 <스토리 메이커>가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2013년 5월 기준)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정리하여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2. 정리

정리하겠습니다. 
소설적 문장은 문장이 건조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소설적 요소를 항상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각, 감정, 애태우기를 문장마다 넣어 읽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임장감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800단어 장면 법은 이야기를 시퀀스와 장면으로 쪼개 각 장면마다 논리적인 단계를 밟아 나가며 플롯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800단어는 영어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한국어로는 600단어, 2300자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신경 써야 할 점은 이야기를 여러 층위로 구조화하고 각 층위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논리를 의식한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개의 보조바퀴 만으로 당신이 단편소설을 하나 완성시킬 수 있다고 단언하고 싶지만, 한계점이 있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론을 소개하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소설을 쓰는 데에 있어,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있어 꽁푸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릴 수 있게 된 것으로 이 글의 소임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꼭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작품을 하나 완성시킬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댓글 21
  • No Profile
    ㄹㄹ 13.06.03 10:19 댓글 수정 삭제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ㄹㄹ님께
    No Profile
    도스까라아스 13.06.04 12:32 댓글

    감사합니다!

  • No Profile
    날개 13.06.03 10:22 댓글

    중간 중간 이미지까지 삽입해서 정말 정성들인 웹진다운 멋진 기사네요. 잘 읽었습니다!^-^/~~~~~

  • 날개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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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3.06.04 12:21 댓글

    감사합니다! 급히 이미지를 찾느라 조금 고생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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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우 13.06.03 20:45 댓글

    공부의 의미를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었다니! 매일매일 소설공부, 소설꽁푸~

    잘 읽었습니다.

  • 호우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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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3.06.04 12:36 댓글

    꽁푸허슬! 위에서 인용한 책에서 일화가 하나 나옵니다. 도올 선생에게 야구선수 김봉연이 물었어요. "우리 야구선수들은 뭐 기껏해야 술 먹고 그런 것인데, 이런 우리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철학을 가르치는 방법이 뭐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머리 나빠서 어려운 말 몰라요." 그러자 도올 선생이 꽁푸의 의미를 설명한 뒤 말했습니다. "어째서 방망이 휘두르고 공을 던지고 팀플레이를 하는 꽁푸를 통해 철학 할 생각은 안하느냐?" 이 말을 들은 김봉연은 "그런 걸로도 철학이 됩니까!?" 하고 매우 감동했다는 일화가 나오지요. 인상깊은 일화였습니다.

     

    소설을 잘 쓰려면 사회경험이 있어야 한다, 사색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하지요. 어쩌면 소설쓰기 그 자체와 소설을 쓰면서 주변의 사람들과 겪는 일들 모두 인격향상을 위한 꽁푸가 아닌 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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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셸먼 13.06.03 21:41 댓글 수정 삭제

    분위기를 나타내는 과도한 미사여구와 애태우기 구사라니, 나스 키노코는 이거 꽤나 잘 하고 있는 듯?

  • 셸먼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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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3.06.04 12:37 댓글

    제가 나스 키노코의 문장을 읽어본 것이 거의 없어 뭐라 말 할 수 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반 보트의 문장에서 드러나던 과도한 미사여구나 지나친 애태우기는 별로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악문 취급이었지요. 그 점에 유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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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립 13.06.05 00:43 댓글 수정 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유이립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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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3.06.05 01:29 댓글

    감사합니다!

  • No Profile
    라비 13.06.05 11:35 댓글 수정 삭제

    좋은글이라고 생각하지만 초반하고 후반의 온도차가 조금 심한듯하네요.

    후반부도 시스템에 대하여 다양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필요하다면 상세는 찾아볼수 있도록 하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 라비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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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3.06.06 23:51 댓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단발이 아닙니다. 초반부는 앞으로 쓸 글의 각론 역할을 상정하고 썼고,  말씀해주신 지적사항은 현재 다음 글로 작업중에 있습니다. 문장에서 플롯, 테마, 캐릭터 등의 다양한 측면이나, 제가 연극에 참여하며 배운 훈련 메소드까지 종합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각각의 주제별로 따로 연속기사로 쓸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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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6.09 21:32 댓글 수정 삭제

    잘 봤습니다. 몇 가지 어색한 문장들.


    그는 자신의 문장을 읽기 위해서는 독자가 능동적으로 빈 곳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 문장처럼 [~입니다]가 아니라 [~이다]로 끝나는 문장이 종종 보이네요.

    짧게 연결하면 단편, 길게 연결하면 단편이 되겠지요.->뒷 부분은 오타가 났나 봅니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 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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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3.06.13 16:04 댓글

    아닛, 쓺님?! 감사합니다!

    위의 사항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으으... 부끄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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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 13.06.12 17:51 댓글

    많이 배워갑니다.^ 다음 편 열렬히 기대 중입니다~.

  • 김효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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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3.06.13 16:04 댓글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 No Profile
    赤魚김주영 13.06.17 23:08 댓글

    유용하고 재미있는 기사 잘 읽었습니다. ^^

  • 赤魚김주영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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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3.06.23 20:49 댓글

    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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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기사에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역시 문학가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런 것들을 다 세세히 따지고 써내려간다니.

    저는 백지 공포증인데, 문학가들은 다르군요. 특히 발자크는.. 뭐 ...

  • No Profile
    반 보트가 맥루한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소설을 <핫>하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잘못된 인용이고, <쿨>하다고 표현해야 옳음. 수용자의 참여가 많은 미디어는 핫 미디어가 아니라 쿨 미디어임.
  • 지나가는 판갤러님께
    No Profile

    반 보트가 원래 그런 사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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