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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6월 23일, 연희동에 있는 SF&판타지 도서관에서 합평회가 있었습니다. 본 녹취록은 그날 나왔던 여러 작품 중 하나인 앤윈님의 작품 [밥줄을 지켜라] 합평회에서 나온 내용을 기록, 편집한 것입니다. [밥줄을 지켜라]는 종합착작지 텍스툰에 연재되고 있는 기획 프로젝트인 ‘홍대기담 2012’의 한 작품으로, ‘홍대기담 2012’는 홍대 앞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작품들을 연재하는 연작 기획입니다.

참가자 라키난(사회), 날개, 明, 박애진, 앤윈, 한별, pena


1. ‘괴물’인가?

라키난 [밥줄을 지켜라]는 화자가 고양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정말 좋았거든요.
(웃음)

라키난 제가 고양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웃음) 고양이가 인간한테 잡혀서 중성화 수술을 받는다거나 하는 게 고양이 입장에서는 이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라는 걸 처음 생각해보게 되어서 좋았어요. 고양이를 수술하는 장면이 정말 잔인했고, 그래서 그 뒤로 고양이가 변화한 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잘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박애진 좋은 소설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이라는 복잡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중성화 수술에 대해 말하면서 ‘왜 이 고양이는 특별한 고양이가 되었는가?’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 같고. 그리고 한때 고양이었지만 자기 엄마, 배우자도 알아보지 못하고 인간이 되어버린, 자아를 상실한 고양이와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고양이가 나오는데, 이 고양이들의 행동은 생존을 위해서였단 말이에요? 밥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드니까. 포장마차의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죠, 어떤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밀려나오고 있으니까. 이 두 가지 이야기를 고양이의 시점에서 잘 그랬다고 생각하고, 장르 문학에서 많이 다루지 않는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봤어요.

라키난 저도 그런 부분이 좋았어요. 특히 고양이에게 핫바를 주는 아주머니의 생각은 고양이의 입장에서 밖에 안 나오잖아요? 아주머니의 생각이 굉장히 분명하게 드러나는데도 거부감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거나 아주머니가 직접 말했으면 안 받아들여지거나 반박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고 설득력이 있는 방식의 말하기였다고 생각해요.

박애진 작품에 필요한 부분들만 드러내는데도 작위적으로 안 느껴지고요.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생계가 중요하다는, 이 두 가지 생각 말고 다른 생각들은 안 드러나잖아요. 그래도 그게 설명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어요.

pena 저는 이걸 읽다가 용역이 포장마차를 덥치는 장면에서 눈이 뜨거워졌는데, 왜 뜨거워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걸 어떻게 구경만 하고 있어”라는 대사에서 감정이 터졌는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다음에 글을 분석하지 못하고 있어요.

 고양이 화자라는 관점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중성화 수술을 받고 나서 화자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겨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됐고, 고양이면서 사람과 그 중간에 연결되 있는 ‘괴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좋았는데, 등장인물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많은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는 느낌이 들어요. 뭐랄까, 등장인물이 많아서 모두를 이해하기가 조금 힘든 것도 있었고. (웃음) 이야기가 더 함축적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인간이 되어버린 고양이를 ‘괴물’이라는 표현하는데, 이 작품에는 현실에 있는 거리가 나오고 고양이와 상인, 길 가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현실적이잖아요? 그런데 ‘괴물’이라는 캐릭터 때문에 갑자기 판타지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괴물’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도 좋은데, ‘괴물’의 위치가 잘 이해가 안 됐어요.

라키난 ‘괴물’이 사람이 되어서 좋은 점은 밥을 굶지 않게 되는 건데, 사람도 굶고 살거든요. ‘괴물’이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고양이 입장에서는 설명이 잘 안 된 것 같아요. 그냥 ‘인간이 되면 안 굶는구나, 대신 긍지를 버렸구나’ 이 정도의 느낌이라서. 괴물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긴 해요.

 ‘괴물’이라는 캐릭터가 이질적이면서도 잘 이해가 안 갔어요.

라키난 설명이 많다고 하셨는데, 꼽아보면 등장인물이 정말로 많지는 않아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한 숫자거든요. 인물들 전부의 생각을 담으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 정확하시네요. (웃음)

한별 저는 그게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람이 된 고양이와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된 고양이, 포장마차의 아주머니까지 이 세 명의 인물들이 행동하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잖아요? 목적이 굉장히 뚜렷하고 이야기도 여기에 잘 맞춰져 있어서,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먹고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이거든요. 먹고살기 쉬운 인물이 없어요. 용역들이 포장마차를 부수는데 다른 상인들이 구경만 하는 것도 먹고살기 위해서고, 고양이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먹고살기 위해서고, 이 모든 게 제목 그대로 밥줄을 지키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굉장한 응집력이 있는 것 같아요.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이 쌓이고, 그 인물들의 상황이 다시 쌓여가면서 느껴지는 상승과정이 있어요.

라키난 마지막에 “어떻게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인물은 사람이 된 고양이잖아요? 사람이 된 고양이는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먹고살기 위해 긍지를 판 경멸할 만한 존재고,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사람이 아니고 괴물이죠. 그런데 이 인물이 정당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하는 게 재미있어요.

한별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을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무튼 인물들 간에 먹고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또 반대로 말하자면, 인간이 된 고양이가 아무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한 번 자아를 포기하고 인간으로 변했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라키난 혹은 그 말을 하는 게 가장 경멸받고 있는 ‘괴물’이기 때문에 그 인물한테 말하게 시켰을 수도 있고요.

날개 소설이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 서로 주고 받는 대사가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괴물’을 왜 괴물이라고 부를까 생각했어요. 괴물은 추상적인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괴물이란 단어가 추상적이어서 오히려 고양이가 인간이 되었다는 설정이 잘 안 와닿았던 것 같아요. 괴물이라고 부를 때마다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제가 분량을 안 보고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약간 긴 느낌이 있어서 저도 약간, 함축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엑스트라도 많고, 한 번에 다 받아들이기 버거운 느낌이 있어요.

라키난 저는 ‘괴물’에 전혀 괴리감 같은 걸 안 느끼고 읽었어요. 그건 아마 첫부분에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가 스스로를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끼게 된다면 사람이 된 고양이를 괴물이라고 느끼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화자가 이미 반은 괴물이 되어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별 저도 ‘괴물’이라는 어휘가 약간 과하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괴물이라는 어휘가 인간이 된 고양이를 설명하기에는 말의 강도가 약간 과한 맛이 있어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고양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도 아무도 ‘어떻게?‘라고 묻지 않고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게 재미있네요.


2. 길다고 하신다면

라키난 설명이 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생각해보니까 포장마차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거든요. 저는 아주머니에 대한 내용을 보고 작가가 욕심을 부렸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길다고 한다면 그 부분이 필수 부분보다는 조금 더 붙어있는 느낌이긴 해요.

날개 아주머니가 스킨스쿠버 강사라는 부분을 읽을 때 약간 의아함이 있었어요. 갑작스러워요.

라키난 그 장면이 아주머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이긴 하지만 이미 거의 마지막 부분이고, 그 장면이 없어도 충분한 효과가 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아주머니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더 잘 이해를 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했어요.

pena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주마등 같은 걸 본 느낌을 받았어요.

박애진 스킨스쿠버를 하고 나름 낭만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용역 깡패들에게 당하면서 이런 삶으로 내밀렸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위해 그 장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의외성이나 낯섬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지만 읽으면서는 약간 생뚱맞다고 느끼긴 했어요.

pena 왜냐면 스킨스쿠버 강사라는 소재가 그냥 바다를 넣기 위해 넣은 것 같은 이미지 같아서요.


3. 프랜차이즈로 말할 수 있는 것들

날개 “프랜차이즈는 비어있는 곳”이라는 표현이 좋았던 것 같아요.

라키난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약간 의아했어요. ‘비어있는 곳’ 까지는 환상적인 분위기라서 넘어가는데, 그게 프랜차이즈라고 하면 너무 뭐랄까, 자본주의는 우리의 적! 이라는 기반 사상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날개 이게 정확한 어휘인가?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설정은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라키난 맞아요, 프랜차이즈는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자리와 대비되는 곳이잖아요? 괴물이 일하는 곳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비어있는 곳이라고 한 건 납득이 가는데, 프랜차이즈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프랜차이즈가 사람은 더 많잖아요? 그런 만큼 가게마다 차이가 있고. 가게마다 그런 인간성이 있는데 프랜차이즈를 단번에 비어있는 곳, 이라고 하기에는… 왜 비어있는 곳인가, 그게 왜 하필 프랜차이즈인가에 대한 설명은 좀 없었던 것 같아요.

 중편이 되었으면 궁금해하는 것들의 설명이 충분히 되지 않았을까 해요. 이야기가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키난 애매할 것 같은데, 이 이야기는 환상성이 있어서 잘 읽을 수 있잖아요? 중편이 되면 설정과 세계관이 확고해져야 하고, 설정이 늘어나게 되는 거랑, 고양이 입장을 벗어나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게 되니까 중심을 잃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자에게) 알아서 잘 수렴하시겠죠. (웃음)

박애진 괴물이 소녀라는 묘사가 있는데, 저는 이게 당황스러웠어요. 남편도 있었고 새끼를 낳은 적도 있었는데 소녀는 좀? (웃음) 글의 분위기가 확 달라질 텐데, 괴물을 아줌마로 설정했으면 나름 재미있으면서 리얼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괴물이 청소부가 되어버리면 고양이로서의 자아를 버리고 먹고 살겠다고 변화하는 최대치가 청소부가 되어버리는 거죠. 고양이와 아줌마는 너무 깨는 조합이긴 한데. (웃음)

라키난 소녀가 후반에 “어떻게 그걸 보고만 있을 수가 있어요?” 라고 외치잖아요? 그것도 역시 소녀라서 가능한 장면인 것 같아요. 소녀가 아줌마가 되면 환상성이 줄어들지 않을가요?

pena 설득력도 떨어질 것 같아요. 그 말을 어린애가 말하니까 더 부끄러운 거잖아요.

라키난 확실히 그런 효과가 있어요. 아줌마가 그런 말을 하면 ‘저 아줌마는 뭐야?’ 할 것 같아요.

박애진 여기까지 가면 글의 분위기가 너무 바뀌니까, 저 혼자 상상해 본거예요. 상상했어요. (웃음)


4. 신화적 고양이

라키난 고양이로서의 긍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작품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고양이는 아홉 번 살고 아홉 번 모두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는데, 왜냐하면 스스로 고양이임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마지막 부분에서. 여기서 고양이가 자랑스러워 하는 것과 인간의 부족한 부분이 대비되기도 하고요. 고양이는 먹기살기 어려워도 긍지를 버리지 않지만, 떡볶이 파는 아줌마 등은 ‘저 사람만 나가면 괜찮다잖아’라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죠. 편집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별 네, 뭐요? 누구요? 누굴 찾으신다고요?

(웃음)

라키난 편집하셨잖아요, 다 알아요.

한별 (웃음) 아홉 번을 살아 아홉 번으로 고양이로 태어나는 건 긍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긍지를 가지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바람이나 희망으로 생각했어요. 긍지가 있어서 아홉 번 고양이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긍지를 가지고 살고 싶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홉 번을 살아 아홉 번을 고양이로 태어난다고 말하는 거죠.

날개 숨겨진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검은 수컷과 괴물의 사연이나 괴물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을까, 괴물은 어떻게 목숨을 잃게 되었을까, 고양이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걸까, 등등. 말하다 보니까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라키난 괴물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남은 생을 포기하고 사람이 됐잖아요? 검은 수컷도 있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날개 주인공이 검은 수컷을 구하기도 하잖아요? 그걸 보면 중요한 무언가가 나올 것 같았는데, 안 밝혀지더라고요.

 마지막에 괴물이 검은 수컷을 알아채는 장면에서 무언가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것도 있어요. 이야기가 더 굴러나올 것 같은데. 그리고 고양이들이 서로 그루밍 해주면서 “한때 신이었고 동족들은 인간들을 먹고 살았고”란 내용이 있었잖아요.

라키난 저 그거 진짜 좋아해요.

 이걸로도 이야기가 하나 더 나올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5. 무관심살인

박애진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몸에 기름을 붓는데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가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이 생각보다 덜 사는 것 같아요. 이 장면을 더 강조해줘야 할 것 같아요. 기름을 부었는데도 ‘에이, 진짜 지르겠어?’ 하고 무시하는 느낌이 확실히 잘 보였나요?

라키난 기름을 붓는 장면에만 주목해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건 그냥….

박애진 그렇죠? 그 장면이 조금 아쉬웠고, [밥줄을 지켜라]라는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에요. 물론 이게 맞는 말이긴 해요. 포장마차는 인간의 생계수단이고, 고양이도 그 포장마차에서 밥을 얻어먹는단 말이에요? 하지만 다른 고양이들도 아주머니를 도와주는 건 단순히 아주머니가 어묵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잘못하면 의미가 희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자가 ‘왜 포장마차를 안 옮겨? 옮기면 되지 않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라키난 그 부분은 ‘당연이 옮기면 안 되지!’ 라고 자연스럽게 납득하고 넘어간 것 같아요.

박애진 하지만 정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포장마차가 삶의 터전이고 그런 걸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의외로 많이들 몰라요. 삶의 터전이라는 측면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라키난 어, 그런데 전 밥줄을 지켜라, 라는 제목은 참 좋아요. (웃음) 핵심 내용이기도 하니까요.

박애진 그리고 용역 깡패들에게 당하고 부서지는 서술이 굉장히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묘사의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정말로. 처음 읽을 때는 눈물이 나더라고요. 굉장히 멋있게 읽었어요. 반죽이 쏟아진 걸 봤을 때 느껴지는 절망감이나, 그런 묘사들을 잘 하신 것 같아요.

라키난 그리고 고양이가 와서 반죽을 먹을 때 느껴지는 위안 같은 것들도요.

pena 고양이가 기름 묻은 손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변화하는 느낌도 확실히 있어요.

박애진 그런 장면이 있으면 좋겠어요. 아주머니는 정말로 죽을 각오로 기름을 끼얹었는데 용역들에게 무시당하잖아요? 무시 받을 때 머리가 하얘지는 게 있잖아요. 그런 장면이 들어가면 굉장히 강렬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이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한 적이 있어요. 이야기를 들으신 분은 건설업계에서 일하는 분인데, 그분이 뭐라 그랬냐면, ‘그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데? 그거 등유야 경유야?’ 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일이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등유인지 경유인지 말해줘야 한다는 거죠.
(등유는 가솔린으로 불이 빨리 붙는다. 경유는 튀김기 등에 쓰이는 기름으로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라키난 하지만 그건 조금 애매할 것 같아요.

박애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칠까요? 그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무심해지는 지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pena 분신(焚身)으로도 시위가 안 된다고 하잖아요.

박애진 용역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중요한 건 아주머니의 여자의 머릿속이 확 비게 되는 것인 것 같아요.

 나는 죽을 생각까지 했는데 너희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 말이죠?

라키난 중요하긴 한데, 경유와 등유 설명이 들어가면 설명이 너무 많이 들어갈 것 같아요.

박애진 저는 무심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게 무서웠거든요. 죽을 각오를 했는데 그게 먹히지 않았을 때 느껴지는 것들을 서술한다면 백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뭘 부수는 장면보다 그걸 무심하게 지나치는 게 더 폭력적일 수 있죠.


6. 작가의 변

앤윈 아까 프랜차이즈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제가 ‘홍대기담’ 연작 단편을 스기 전에 다른 분이 먼저 글을 올리셨잖아요? 그 글에서 그냥 가져왔어요. (웃음) 연작이니까 하나 가져다 써도 재미있겠지, 하고 가져왔어요. 그런데 남의 글에서 그냥 가져온 설정이니까 당연히 설득력이 부족하죠! (웃음) 설명을 더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름을 끼얹는 장면은 고쳐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단어에 대한 전복의 이미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괴물’이란 어휘를 사용했어요. 그렇긴 한데, 사실 괴물을 대체할 만한 다른 어휘를 제가 못 찾고 있기도 해요. 조금 더 생각을 해볼게요, 거기서 한순간에 이미작 전복이 되기보다는 ‘어?’ 하는 느낌이 들 것 같긴 해요. 그건 제가 조금 더 생각을 발전시켜볼게요.
그리고 스킨스쿠버에 대해서 말씀하신 건 맞아요. (웃음) 이분이 제가 만든 등장인물이 되니까 제 성격이 많이 들어가서 서정적인 성격처럼 그려졌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괄괄하고 엄청 터프하시고, 그런 분이에요.

pena 박해를 당하는 장면에 바다가 나오니까 서정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앤윈 그래서 그런 이미지를 조금 넣어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아주머니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흥미로워서 넣은 건데, 그런 분위기만 내고 싶어요. 상세한 이야기를 하면, 좀 그럴 것 같아요.

박애진 만약 실제 포장마차만 아니면 포장마차 한 쪽에 바다 그림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면 스킨스쿠버가 조금 덜 붕 뜰 것 같아요.

앤윈 그리고 제가 괴물이 일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 건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삼거리 쪽으로 가면 있는 할리스 커피에요. 거기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pena 사람들이 그 가게를 프랜차이즈라고 부르진 않잖아요? 할리스라고 부르지.

앤윈 어… 그러네요? 할리스라고 부르네요, 프랜차이즈라고 부르지 않지. (박수치고 웃음)
안에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문제가, 제 머릿속엔 이야기가 다 있는 거죠. 머릿속엔 다 있는데 그걸 다 설명하긴 힘드니까 제 머릿속에 있는 내용 중 필요한 내용만 꺼낸 거예요. 제 머릿속에는 괴물이 어떻게 검은 수컷과 헤어졌는지, 애를 낳았는지, 머릿속엔 애를 다섯 마리 낳고 다섯 마리를 다 잡아먹은 것까지 다 들어있어요. 문제는 그걸 다 쓰질 못했네요! (웃음)

라키난 괴물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조금 더 보강해야 할 것 같긴 해요. 아니면 과감하게 다 생략해버리고…. (웃음)

박애진 그걸 작품에서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해요.

앤윈 두리반이 옛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두리반에서 재웠을 텐데.

라키난 저는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넘어갔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실 고양이가 갑자기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집도 있고 가족도 있고 신분증도 있는, 보통 사람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넘어갔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  그냥 ‘고양이가 어떻게 사람이 돼?’와 똑같이 넘어가면 되는 일인 것 같아요.

앤윈 사실 처음에는 그 부분을 메우려고 괴물의 직업을 성매매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커지는 거예요. 너무 방대해지고 무거워지고. 제가 이 이야기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려놨어요.


마무리

[밥줄을 지켜라]는 ‘홍대기담 2012’ 기획 의도에도 잘 들어맞고, 더불어 앤윈님의 평소 스타일에도 잘 어울리는 좋은 글이라는 것이 합평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중론이었습니다. 소설 내에 나오는 장소들의 위치는 사실과 일치하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직접 찾아가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소설이 현실에 영향을 끼칠 때, 소설의 외연은 더욱 넓어지고 의미도 커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덧붙이자면 합평회 참가자 중 다수가 고양이 중독에 빠지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하죠.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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