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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axas.pe.krgkman1@hanmail.net
※ 본 기사는 Alt.SF 14호에 실린 {Re: 한국 장르문학을 둘러싼 정황}에 대한 답변 기사입니다.

지난 Alt.SF 14호에는 졸고, {한국 장르문학을 둘러싼 정황: 장르 작가들이 문학상을 타기까지}(이하 {한국…})에 대한 답변 기사, {Re: 한국 장르문학을 둘러싼 정황ㅡ그래도 비평, 비평, 평론, 평론하실래요?}(이하 {Re…})가 실렸다. 엄연히 독자의 반응이니 작자로서는 물론 반가워해야 하겠지만, 해당 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Re…}의 게재 의도를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Alt.SF는 {Re…}의 서두에서 해당 기사가 {한국…}에 대한 ‘반론이나 비판은 아니며, 첨언과 부언을 조금 곁들인 요약 정리 소개글 정도가 될 예정입니다.’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문제는 이 기사가 단순 요약ㆍ정리ㆍ소개에 약간의 첨언을 덧붙인 기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기사의 상당 부분을 요약하지 않고 건너뛰었다는 점에서 요약에 충실했다 볼 수 없으며, 그나마의 요약보다 Alt.SF의 ‘첨언’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정리에 충실했다고 할 수 없고, Alt.SF의 첨언과 원문의 의견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소개 또한 빈약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졸고의 소개보다는 첨언이 본 목적 아니었나 하는 인상까지 받게 한 기사였다.

{한국…}이 보다 접근성 좋은 지면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면 해당 기사의 내용도 그리 신경쓸 것은 못된다. 허나 그 글은 환상문학웹진 거울 비평선 [B평]에만 실린 글이고, 당분간은 다른 지면을 통해 공개될 일이 없어 보인다. 결국 Alt.SF의 기사를 읽은 독자들 대부분은 해당 ‘요약,정리,소개’ 기사와 원문을 비교해보기가 어려운 셈이다. 본 저자로서는 영 달갑지 않은 일인바, 이 지면을 통해 Alt.SF의 기사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고, Alt.SF가 ‘덧붙인’ 첨언들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Re…}가 {한국…}의 순서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으므로, 이 글 또한 {Re…}의 순서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쓰고자 한다.



1. 장르문학 담론의 실제

Alt.SF에서도 설명했듯, 나는 이 장에서 ‘문단문학 vs 장르문학’ 구도의 허구성에 대해 지적했다. 그 허구성이란 문단문학과 장르문학이 애당초 대등한 대립 구도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본래 ‘문학’이란 애당초 소설ㆍ시ㆍ희곡ㆍ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소설 장르 안에서도 하위 개념에 지나지 않는 SF/판타지 소설이 난데없이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격상될 수는 없는 바, 그 ‘장르문학’이 (형식상의 조건을 갖춘) ‘문단문학’과 동등한 개념으로서 여겨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팔 한 쪽 잘라놓고서 그것을 사람이라고 우길 수 없듯이.
또한 ‘(한국) 문단문학 vs (한국) 장르문학’의 이분법적인 도식이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막는다는 지적도 제기하고자 했다. 즉 장르문학 팬덤은 등단 작가/비평가 내지는 관련 출판 자본들 사이에도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체 ‘문단’이라는 허상을 쫓고 있다는 것이다. 실화소설이나 여성소설 같은, 왕년의 비주류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Alt.SF는 ‘다른 집 애들도 왕따 당한 적 있다고 해서 우리 애가 왕따 당하고 있는 게 우리집에서 허구적으로 설정한 대립 구도일 뿐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나는 2000년대 이전까지의 문단 주류가 SF/판타지에 대해 어떤 적극적인 혐오나 폄훼보다는 주로 무지나 무관심을 견지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335쪽) 사실상, 문단 주류에서 SF나 판타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 했던 연구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예시로 들었던 실화소설이나 여성소설 장르들은 이미 70년대부터 ‘상업주의소설’이라는 이름 아래 주류 연구자들의 비판 대상이 되어 왔다. 이들에 비하면 SF나 판타지는 멸시를 받은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볼만한 대목은, 2000년대 이후의 SF나 판타지 진영과는 달리 그들은 ‘장르문학’ 따위의 개념으로 스스로를 부르려 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2. 2000년대 초반 한국문학계의 자의식

2-① 주류문학 진영ㅡ리얼리즘 vs 모더니즘 논쟁


사실 2장에서는 작자 자신이 부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고 말았다. 2-①에서는 본래 60년대 후반 이후의 문단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5,60년대 문단사의 개념인 ‘순수 vs 참여’를 빌어옴으로써 혼란을 빚었다.
2-①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문학계의 주류로 인식되었던 문단 권력들의 문학관을 설명하고자 했다. Alt.SF는 2-① 역시 SF와 관련된 내용이며, SF와 관련된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내 의도를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다. 1장에서 어느 정도 암시한 바와 같이, 나는 이 글 전체에서 비단 장르문학 내부에 한정하지 않고, 그 외연을 감싸는 ‘한국문학’이라는 개념에 대해 접근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Alt.SF가 내 의도를 잘못 읽었다는 점은 ‘장르 소설 수용의 비활성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60년대 논쟁보다 ‘30년대 카프 논쟁으로 올라가는 게 낫’다는 견해를 밝힌데서도 드러난다. 아마 임화의 소위 ‘이식문학론’을 염두에 두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식문학론(과 그것을 포함한 카프문학론)은 Alt.SF가 상당한 비중을 들여 기술한 바와 같이 SF 수입사를 설명하는데는 – 혹은 한국 SF 팬덤이 SF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분석하기에는 - 적절한 틀이지만, 한국 문단을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서는 별 쓸모가 없다. 실상 카프 문학론은 해방 이후 남북한 양측으로부터 외면받았으며, 특히 남한에서는 60년대 후반에 이르면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실상 이 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문단 주류가 어떤 방식으로 한국 문학 담론의 헤게모니를 쥐었느냐 하는 것이었고, 카프 담론은 그 주제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Alt.SF는 ‘모더니즘 진영의 입장에 따르면 왜 장르 소설이 천시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미진’하다고 평가했으나, 주장의 전제부터가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1장에서 문단이 한국 문학의 구도를 ‘문단 문학 vs 장르 문학’이라는 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다시 말해 SF나 판타지를 뚜렷한 ‘장르’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팬덤이 SF 내지는 판타지라고 여기는 작품이라고 해서 문단 쪽이 그것을 SF 내지는 판타지라고 생각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문단이 장르 소설이라는 걸 묶어서 싸잡아 비판한 적은 없다.’라는 전제부터 비판한다면 모르겠으되, 그 전제와 상충되는 분석을 요구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내가 ‘장르 소설’에 대한 ‘모더니즘 진영’(보다 정확하게는 자유주의문학 진영)의 입장을 서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2-①의 절반 가량은 그 문제를 설명하는데 할애되어 있다. 그 내용인즉슨,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사실을 두고 문지를 위시한 자유주의문학 진영이 SF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훌륭한 SF를 출간한게 아니라 창비 쪽의 리얼리즘 창작론과는 다른 무언가로 한국 근현대사를 조명한 소설을 출간했다고 여겼을 뿐이기 때문이다.


2-② 한국 SF 팬덤ㅡ주류문학에 대한 냉소?

Alt.SF는 2-②의 핵심 주장을 크게 세 문장의 인용구로 요약했는데, 작자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요약이다. 왜냐하면 그중 1)은 핵심논의를 끌어내기 위한 전제에 지나지 않고, 2)와 3)은 사실상 같은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일단 작자가 이 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전반부에서는 한국 SF 팬덤이 한국 문단에 대해 갖는 선민의식의 비정상성에 대해 분석하고자 했다. SF 팬덤의 게토 의식은 일종의 선민의식이 전제되기에 가능한 감정이다. 즉 자신들이야말로 한국에서 SF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자부심 말이다. 문제는 그 자부심의 근거가 대단히 빈약하다는 점이다. 한국 SF가 제대로 창작되거나 계승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내세우는 유일한 근거는 외국 SF 고전을 수입해 읽는 사람들이 그들밖에 없다는 점 뿐이다. 즉 영미권 SF 팬덤이 쌓은 성과를 근거로 한국 SF 팬덤이 한국 문단 문학을 조롱하는, “우리 삼촌 돈 잘 벌어.” 수준의 유치한 호가호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반부에서는 한국 SF 팬덤이 영미 SF의 가치를 지나치게 절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했다. 즉 한국 SF의 기준이 영미 SF인 상황이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해 Alt.SF는 ‘SF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난 장르가 아니며, 따라서 기준점은 서구의 작가와 작품들인 것이 당연합니다.’라며 반박했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작자가 충분한 설명을 해놓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된 것이므로, 이 지면을 빌어 보충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이 반박에 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를 설명해야 한다. 즉 한국문학과 다른 국가문학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SF가 영미에서 완성된 장르인가의 문제이다.

한국문학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한국인이 한국어로 한국인의 생활의식ㆍ감정ㆍ사상을 표현한 문학의 총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한국문학과 타국문학의 차이는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른 사회ㆍ역사적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것들을 표현해낸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요소들의 차이로 인해 한국문학은 다른 나라의 문학과 어느 정도 다른 형태를 띌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의 문학들도 또 다른 나라들의 문학에 대해 그러하듯이.

그렇기에 어느 나라에서건 타국의 문학이 일단 수입되고 나면 어느 정도 토착화되는 과정을 거치곤 했다. 심지어 이식문학론을 정립한 임화에게조차도 토착화는 중요한 문제였다. 임화는 조선에 근대문학이 자생하지 못해 서구의 근대문학 개념을 수입해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도, 조선문학이 서구문학을 전범 삼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된다고 봤다. 조선의 근대문학은 새로운 시대(근대)를 맞이한 조선의 시대정신을 새로운 형식에 따라 표현하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 실상 한국인들이 영국인이나 미국인과는 다른 경험과 기억을 축적하는 만큼, 한국 SF가 영미 SF와 같은 모양새를 띄길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그래야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한국 SF가 영미 SF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SF가 영미권에서 가장 오랫동안 성숙해온 하위 장르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역사가 – 사실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 영미 SF를 불변의 고전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한국인이 미국인, 혹은 영국인과 동일시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토착화 과정이 불필요하다면 모를까 말이다.

또한 Alt.SF는 근대 자연과학의 틀이 완성된 것이 서구이며 서브 장르로서의 SF가 완성된 것이 미국이므로, 그들의 예를 따르는게 맞다고 했지만 이것이 영미 SF의 보편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제3세계의 SF 작가가 제1세계의 기준에 맞춰 SF를 썼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것을 누구에게 보여줘야 한단 말인가? 공감되지 않는 작품을 자국의 독자들이 읽어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제1세계 독자들이 (번역되지도 않은) 제3세계의 SF를 찾아서 읽어줄리는 없을 텐데 말이다.

막상 영미권의 SF 팬덤은 한국의 SF 팬덤에 비해 SF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상기해보라. (물론 이것은 그들조차도 SF가 정확히 무엇인지 쉽게 합의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인 듯 보이긴 하지만.) 영미권의 SF 독자들은 영미권과는 전혀 다른 문법으로 SF를 쓰고, 또 영미 SF에 대해 시종 비판적이었던 스타니스와프 렘에 어떻게 반응했던가? 캐나다인 SF 작가 고드 셀라가 한국인 SF 번역가와의 인터뷰에서 “SF의 비유와 테마를 한국의 문화, 정치, 역사적 상황에 적용”시킨 작품을 기대한다고 했던 것은 또 어떠한가? 좀 더 짓궂은 예를 들자면 2000년에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휴고상 후보에 오르고 결국 이듬해에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 휴고상을 수상한 사건도 있다. 물론 이 사건은 영미 SF 팬덤 쪽에서도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고 하지만, 휴고상은 그 외에도 최소 12편 이상의 판타지 소설에게 상을 준 적이 있는데 말이다. “[반지의 제왕]이 ‘세계 로맨스 문학상’을 받거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네뷸러 상을 받는 걸 상상해봅시다. 말이 됩니까?”라고 하던 입장에서 이 사건은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덤으로, Alt.SF가 이 장에서 이 장의 핵심 주제도 아닌 문학상 수상 내지는 한국문학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은 이 글에서 쓰인 ‘한국문학’이라는 개념을 ‘문단문학’으로 잘못 오독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는 말 그대로 ‘한국문학’이라는 의미한 것이었으니, 굳이 광의의 한국문학이니 협의의 한국문학이니 하는 출처 불명의 개념을 들고 올 필요는 없었을 듯 보인다.


2-③ 한국 판타지 팬덤의 상황ㅡ주류문학에 대한 인정투쟁

Alt.SF는 한국 판타지계의 상황에 대해 별달리 설명하지 않고 지나갔지만, 작자로서는 그렇기가 어렵다. 앞서 반복해서 말했듯 나는 이 원고에서 ‘한국 장르문학’, 나아가 ‘한국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고, 2-③ 또한 2-① 및 2-②와 함께 그러한 논의의 한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더욱이 2-②와 2-③은 서구에서 수입된 두 하위 장르의 소비 계층의 태도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견주어 읽어야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했었다. 즉 같은 수입산 장르를 소비한 계층인데 왜 한국 SF 팬덤은 문단에 대한 선민의식(냉소)을, 한국 판타지 팬덤은 문단에 대한 열등의식(읍소)을 전면에 보다 전면에 드러내는 차이를 보였느냐는 점이다.

판타지 소설계에서도 외국의 걸작들은 많이들 수입되었다. 하지만 한국 판타지계는 2000년을 전후로 거대한 창작 판타지 붐을 경험했다. 그 덕에 한국 판타지 팬덤은 상당수가 (그 수준이야 어찌되었건) 한국 소설을 통해 판타지 장르를 접한 독자들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한국 판타지 팬덤이 (여전히 외국 작품을 주로 읽어야 했던) 한국 SF 팬덤과 달리 ‘한국문학’이라는 개념을 보다 의식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중대한 것을 의미하는데, 한국 판타지 팬덤이 한국 문단에 대해 품었던 감정은 최소한 그들 자신의 성과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살펴볼 때 한국 SF 팬덤의 선민의식은 한국 판타지 팬덤의 열등감에 비해 별달리 건강할 것도 없는 감정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3. 2000년대 후반의 상황 변화ㅡ문단

3장에서 나는 주류 문단의 몰락, 혹은 문단문학의 상업주의화를 문단 측의 SF 영입 욕구와 연결하여 설명하고자 했다. 즉 87년 체제 종결 이후(혹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체제 본격화 이후) 주류문학 담론이 주류의 위치를 잃게 되자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새로운 문학’에 대한 욕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문단의 입장에서는 SF나 판타지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 ‘발굴’된 ‘새로운 문학’에 불과하다.

또 하나 내가 크게 염두에 두고 설명한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 ‘발굴’이 기존의 문단 주류보다는 출판 자본 내지는 책 장사에 보다 노골적인 태도를 취하는 새로운 문학 권력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이다. 즉 하위 장르 담론에 관심조차 없던 문단 주류가 갑자기 SF/판타지에 관심을 갖게 된건 SF/판타지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하게 돼서가 아니라, 담론의 부재로 인한 억지춘양 내지는 단순 출판 시장 진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3장의 주된 목적은 문단의 SF/판타지 작가 영입 시도를 그리 장밋빛으로 볼 것은 못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이 장을 염두에 뒀다면 이후 5-①의 주된 내용을 “ 장르소설가들이 주류 문단 쪽의 주목(과 시상)을 받은 것이 장르 창작-주류 비평의 행복한 결합 혹은 심지어 필연적인 귀결인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요약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4. 2000년대 후반의 상황 변화 ― 장르

4-① 한국 판타지 팬덤의 와해ㅡ’1세대’ 작가군의 몰락


4-①에 대한 Alt.SF의 요약은 작자 역시 흥미롭게 읽었다. 왜냐하면 Alt.SF는 2-③에 대해서는 ‘SF와 별로 관계 없는 이야기이니 넘어갑시다.’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역시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장의 내용은 상당히 공들여 소개하고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Alt.SF가 요약ㆍ정리ㆍ소개할 부분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기준이 궁금해지긴 했다.

Alt.SF는 내가 ‘초기 판타지 작가들이 시장의 변화에 따라 (사실은 필연적으로) 몰락한 뒤 대안적 출구로 메인스트림으로의 진출이 필요해졌다.’는 식으로 서술했다고 설명했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소위 ‘1세대’라 불리는 초기 판타지 작가들이 시장의 변화로 인해 상업적 실패를 거듭하게 되자, 그 ‘이후’의 작가들은 앞선 작가들과는 다른 경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작가들은 무너져 가는 게토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게토 체제를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한편, 어떤 작가들은 대여점 체제를 벗어나 출판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했다.’(364쪽) 그 이후에는 대여점 시장을 빠져나오고자 한 판타지 작가들의 출판 시장 진출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메인스트림으로의 진출’(Alt.SF의 다른 표현으로는 ‘주류 문단으로의 진입이 모색’)로 요약되는지는 알 수 없다.


4-② ’새로운’ 한국 SF 작가들의 출현ㅡ이식문학 SF의 명암

여기에서는 일단 Alt.SF의 지적을 통째로 인용한 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복거일, 듀나, 배명훈&(?)김보영에게 단속적으로 국내에 유입된 해외의 SF들이 구체적으로 과연 무엇무엇들이었으며, 그 영향은 또한 과연 어떠어떠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텐데, 별로 상관 관계가 없는, 국내 번역 출간 해외 SF 작가군의 중복 문제만 잠시 건드리더니 뜬금없는 ‘따라서’라는 지시어로 건너가버리니 할 말이 없어집니다.

우선 단속적으로 유입된 해외 SF들이 구체적으로 무엇무엇이었들이었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하면서 해외 SF 작가군의 중복 문제가 그와 별로 상관 관계가 없다고 한 대목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상 외국 SF의 유입과 외국 SF의 번역/출간은 크게 다른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서 출간이 아니라면 한국 SF 팬덤이 대체 무엇을 통해 외국 SF를 접한단 말인가? 물론 통신상에서 자체적으로 소설을 번역하거나 아예 외서를 직접 읽은 팬들 또한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과연 그 수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아울러 왕년에는 SF 소설이 번역되는 경우가 워낙 적었던 만큼(그리고 절판이 잦았던 만큼) 한국 SF계에서는 자주 출간/재간된다는 것 자체만으로 한국 SF 팬덤의 고전이 될 가능성이 다분해진다. 기사에서 레이 브래드버리, 로저 젤라즈니, 로버트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 어슐러 르 귄의 이름을 언급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 SF 팬 중에 이 작가들의 소설이 얼마나 자주 출간되고 재간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 실상 이들 작가들은 7,80년대부터 수차레에 걸쳐 소개되었고, 그럼으로써 한국 SF 팬덤에게 필수적 교양으로 자리잡았다. 말하자면 영미 SF 중에서도 고전에 해당하는 작가 및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수입됨으로써 사실상 SF관 자체가 그 시절에 고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5-①에서 다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덤으로, “우리는 SF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문장에 대한 반응에는 실로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 문장은 내가 이 원고에서 유일하게 ‘유머’를 시도해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국민교육헌장을 빗댄 농담이라 생각하겠거니 했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 문장은 논의 전체에서 보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문장이다.


4-③ 장르문학 팬덤의 자체적 대안 모색과 그 결과

여기서는 게토를 빠져나오려던 한국 SF/판타지 작가+팬들의 시도를 이야기하려 했다. 실상 출판 시장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시도들(문학상 제정, 출판사 설립 등)은 대부분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아울러 단순한 팬을 넘어서는 ‘제대로 된 비평가 내지 서평자 집단’의 양성 실패라는 한계 역시 하나의 문제로 지적하고자 했다. 결국 장르문학 진영에서 만들어낸 출판 시장에 진출했다가 실패한 작가들은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건 작가로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건 (잘 팔리지도 않고 변변한 독자도 없는) 기존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영역으로 진출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5. 장르와 주류의 결합, 그 명암

5장은 결론을 대신하는 장으로서, 기존의 논의를 종합하고자 했다. 5-①에서 장르문학+문단문학의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면 5-②과 5-③에서는 그 한계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여기서 나는 장르 작가들이 문단에 진출함으로써 비평가라는 새로운 집단을 만났다는 점은 의의를 둘만하다고 했다. 이것을 Alt.SF는 ‘장르소설의 진흥을 위해 주류 문단의 작가들을 끌어들여보자는 생각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라고 썼지만, 그리 합당한 비유로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1장에서도 이야기했듯 한국 장르문학 진영에는 소설가 및 독자들만이 너무 많다. 한마디로 말해 제대로 된 비평을 다루는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SF 팬덤 쪽에는 그나마 나름의 명성을 쌓은 ‘평론가’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외국 SF 평론에 천착할 뿐, 사실상 한국 SF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설령 이들이 한국 SF에 대한 평을 한다 해도 대체로 ‘영미권 SF에 비하면 어떻다’ 수준의 평이어서 ‘한국 작가’들에게 별로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한국문학 내지는 한국소설로서의 장르소설을 평가해줄 사람이 (한국 SF 팬덤에는) 없기 때문에 문단 비평가들과의 만남에 제한적인 의미나마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문단 비평가들이 제대로 된 평론을 내놓느냐와는 그것과 별개로 평가해야 할 문제다.

또한 문단 비평가들과의 결합에는 또 한 가지 장점이 있다. 문단 비평가들이 생산하는 담론은 확실한 (그리고 손쉽게 열람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된다는 점이다. 당장 {한국 장르문학을 둘러싼 정황}만 해도 참고자료의 3분의 2 가량은 문단 비평가들이 생산한 자료들이다.

한국 장르문학 팬덤이 생산한 담론들은 대부분 그렇게까지 잘 보존이 되지 못한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아무리 훌륭한 담론이 축적되더라도 그 담론들은 대부분 사이트 폐쇄와 함께 사라진다. 하이텔 과소동, 정크SF, SF 리더스 위키 등의 자료가 그런 식으로 사라졌다. 그 결과 문단 비평가들의 자료는 1980년대에 생산된 자료조차 집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장르문학 팬덤의 자료는 그저 본인이 운좋게 직접 스크랩해놓지 못한 이상은 건너건너 입소문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 즉, 제아무리 훌륭한 담론이 나오더라도 후대의 팬덤에게 계승되지 못하고 사라지고, 후속 세대 팬덤이 출현할 때마다 매번 맨땅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문단 비평가들이 SF 소설에 대해 별 시답잖은 소리나 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로서 나는 배명훈의 소설에 대한 젊은 작가상 심사단의 평을 인용한 바 있다) 내가 문단 비평가들 쪽에 기대를 거는 바가 있다면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설령 당장은 별 의미 없는 담론이 생산되더라도, 그것이 축적되고 계승되면 언젠가는 쓸만한 담론이 생산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역시 이 결합에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5-②와 5-③에서는 그 한계점에 대해 지적하고자 했다. 우선 문단 진출이 장르 작가들에게 딱히 ‘진출’ 이상의 발전을 의미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둘만 하다. 즉 소위 ‘장르문학 진영’이 작가들에게 ‘데뷔 작가’ 이후의 단계를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문단에서는 장르 작가들을 ‘젊은 작가’만으로 취급하며 유리벽 안에 가둬두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는 앞서의 논의를 통해 장르 작가의 문학상 수상으로 대표되는 ‘장르문학+문단문학’ 현상 자체가 양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른 임시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다면 현재의 결합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SF나 판타지를 노리고 만든 문학상들이 유의미한 상업적 실적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그 결별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Alt.SF에서는 문단 쪽에 별 대안이 없는 한 SF에 대한 추구가 계속되리라 봤지만, 과연 그럴지 의심스럽고, 그런 식의 결합이 계속되는게 반드시 좋은 일인지도 알 수 없다. 문단 입장에서 보면 SF나 판타지는 그들이 역사 속에서 마주했던 여러 변두리 문학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SF나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영입 대상을 찾아낼 수 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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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2.01.29 02:32 댓글 수정 삭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현재까지의 논박에서는

    * 영미권에서 SF를 대하는 방식과 한국에서 SF를 대하는 '방식'(?)
    * '문단문학' '진출'(?)에 대한 전망

    정도가 크게 대두될 수 있는 논점 같은데. 아직까지는 구체적이라고 할만한 분석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조금 아쉽네요. 논의가 지속되다보면 더 다양한 쟁점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근두근.

    특히 Alt. SF에서 인용한 저 박스 안의 구절은 매우 흥미롭네요. 아예 따로이 새로 글을 볼 수 있어도 흥미로울 듯. 아프락사스님의 글처럼 데이터베이스가 남지 않는 한국의 토양에서 해외의 SF들이 한국의 작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어떤 방식이든 비평을 볼 수 있으면 매우 즐겁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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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근 12.01.29 07:19 댓글 수정 삭제
    박스 안의 내용은, 한국 SF 비평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한국 SF 작가들 각각의 작가적 맥락 이전에 통시적 맥락부터 짚어보라는 소리 아니었을까요? SF 전체 판에서 각 작가가 어떤 맥락에서 발현되어 어떻게 전개되었나. 양쪽 컬럼 모두 안 읽어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소리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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