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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 당선작 리뷰


글지패, S.A. ( airysnow@hotmail.com )



 당선작으로 뽑힌 몸은 이미 읽어보고 비평을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 만큼 내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읽었을 당시에는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이유가 없었기에. 평론이라는 것은 확실히 완결이 나기 전에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비슷한 작품이 넘치는 나머지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 매너리즘을 가졌나 보다.
 황금가지측의 당선작 평론을 읽어보고 몸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었다. 내가 처음 비평을 했을 때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지루함을 참고 끝까지 다 읽었다. “아하.”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곳엔 별거 아니었던 플롯에 의미를 부여하는 결말이 있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나는 제 3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 응모가 끝난 시점에서 생각하길, 당선작이 없을 줄 알았다. 괜찮은 작품은 두세 개 있지만 문학상이라는 권위에 들어맞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성숙된 작품이 없었다. 그렇다고 시류를 타는 것도 없었고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도 없었다.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점에서는 시대세공사나 향해, 몸 등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학상은 작가의 능력을 본다. 미래를 내다보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면 뽑는 것이다. 몸의 경우에는 장르 문학 중에서도 열악한 수준인 호러 문학의 발전을 위해 발판을 열어주는 뜻에서였겠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발전이 필요한 문학 장르는 호러 말고도 무수하다. 듣고 나면 아, 그런 장르가 있었지, 라고 할 정도로 잊혀진 장르도 분명 있다. 다만, 문단에서는 유독 호러 문학만 갈구하고 있다. 마치 서사가 없는 소설은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태도와 같다. 무조건 안 돼. 무조건 이래야 해. 문학을 문단이 대변하는가? 문단 경향이나 문단주의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다.
 로맨스 소설에는 로맨스 플롯이 있고 모험 소설에는 모험 플롯이 있으며 성장 소설에는 성장 플롯이, 저마다의 특성에 맞는 플롯이 존재한다. 이건 장르의 개성이다. 그러나 견고하고 엄숙한 문단은 장르 문학을 몰개성화시킨다. 심한 경우는 출간된 소설 저작물에 대해서 기존의 문단문학과 다르다고 소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대개 오자가 많다거나 내용이 가볍다. N세대 감성 소설이라는 이모티콘 소설이나 판타지는 거의 전부가 그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어째서 소설이 아닌지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당선작이 뽑혔다는 사실과 그 대상이 몸이라는 점에서 두 번 놀랐다. 두 번째 이유를 좀더 정확히 밝히자면 뽑은 이유 때문에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장르 문학의 대부분이 대중 문학이다. 예술적 가치를 위해 쓰인 순수 문학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존재한다. 물론 대중 문학이라도 기본적인 틀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틀이 주가 되어선 안 된다.
 요즘의 통속 대중 소설을 보면 무언가 잘못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작가는 분명 통속 대중 소설을 쓰려고 한 것 같은데 스토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순문학의 고결한 향취를 내뿜는다. 나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흔한 말로 작가가 되는 일이 벼슬 한 자리 내주는 것이었던가? 그런 엘리트주의는 이미 100년 전의 유물이다. 욕먹기 싫어서 잘 쓰려고 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욕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지 쓰는 사람이 잘못인 것은 아니다. 대중성이 희박해지는 건 통속 대중 소설로서는 미덕이 될 수가 없다.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면서 비평가나 문단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뭐 하러 노력하는가. 비평가나 평론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오래 전의 문예 사조일 뿐 아닌가.
 평론은 절대적인 평가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철학이나 종교, 사상, 개인 등에 의해 변하는 평가다. 어느 학파를 따르느냐에 대해서도 차이가 심하다. 그러니 평론가의 생각에도 많은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작품을 읽고 평결을 내려주는 평론가의 수도 적다. 그에 반해 순수한 독서로 즐기는 독자는 수백 수천 명이나 된다. 자신의 작품을 읽고 즐거움을 느낄 수많은 독자보다 작품의 질이 어떨지 말해주는 한 명의 평론가가 어째서 더 소중한가. 그건 자기만족에서 나오는 단순한 감정을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심정으로 쓴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들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런 말을 한 것은 몸의 마지막을 읽고 느낀 생각 때문이다. 연작 공포 소설 몸은 연작 소설이라 해 놓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구성을 보여줬다. 연작이 될 수 있는 건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서이다. 심인성 정체감 장애. 영화 ‘아이덴티티’나 ‘늑대 인간’, 드라마 ‘M’ 등에 사용됐던 소재다. 현실에서 보는 것이 무척 힘들지만 흥미롭기 때문에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사용된다. 연작 공포 소설 몸에서는 심인성 정체감 장애를 안고 있는 영화감독이 등장한다. 즉, 각각의 에피소드가 전혀 달라 보이지만 실은 영화감독 한 명의 이야기라는 설정이다.
 본문에서도 이런 설정에 대한 힌트가 많이 등장한다. 가장 두드러진 힌트는 자기 암시. 심인성 정체감 장애도, 정신적 충격에서 회피하기 위해 자기 최면을 걸어 자아를 분리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때문에 전혀 다른 인격이 아니라 내면에서 형성된 성격의 일부분이 일시적으로 그 사람 전체를 조종하는 것일 뿐이다. 감독의 경우는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설정은 수준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흥미롭고 낯설게 사용하느냐는 것인데 몸에서는 실패한 요소이기도 하다. 연작을 구성하는 각 에피소드는 신체 일부분이라는 공통분모와 플롯이 비슷함에도 닮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다. 이런 괴리감은 설정이 밝혀지는 마지막 에피소드까지도 계속 된다. 정교하게 맞물릴 때 효과를 자아내는 설정이지만 전개 내내 괴리개념으로 여기게 만드는 전개 방식은 결말에서 위화감만 느끼게 했을 뿐이었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자칭 연작 공포 소설이라 했으면서 결국 자칭에 머무르고 말았다. 각 에피소드들은 전부 결말 강조의 건행법이었는데 같은 농담도 세 번이면 질린다는 말처럼 참신성을 잃고 말았다. 뒤로 갈수록 진부하고 고루한 전개. 공포감을 유발시키지 못하고 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울 수 있는 점이 심리적 효과를 자아내는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서사를 이용하는 방법이나 몸은 장편 이전에 연작 구조다. 따라서 각 에피소드가 자체적으로 유기적인 구조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연작이면서 일반적인 장편의 구조를 따랐기에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고 머리와 다리만 살아 있는 몸이 되었다. 이는 작가가 상당한 무리를 했음이다. 심인성 정체감 장애라는 소재에 너무 집착한 결과가 아닌가. 마음에 와 닿고 감동을 주는 글은 작가 자신의 집착을 버리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몸이 문학상에 걸맞지 않은 작품은 아니다. 다만, 작가의 집필이 앞으로 공포 소설로 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식의 작품은 구조 자체를 보여 주기 위함이지 정말로 공포심을 유발시키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공포 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몸을 선택한 것은 작품의 오독이었다고 본다.

 덧붙이관데 문학성을 위한 통속 대중 소설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90년대 말 갑자기 일어난 판타지 붐은 수십 년 간 완고히 자리잡아온 문단에 한 방 먹인 새로운 물결이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판타지였기에 다들 오래 가지 못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지금에 와서는 많이 위축되었지만 아직도 많이 읽히며 쓰인다. 하나의 일반 소설이 잘 팔리면 곧 베스트셀러가 되고 대중 소설처럼 되는 열악한 통속 대중 시장에서 보기 좋게 성공했다. 아직은 한 발을 디뎠을 뿐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환상 문학이나 괴기 환상 문학과는 구별되는 판타지 문학으로 인정받을 쾌거를 이룩할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통속 대중 문학을 한 단계 발전시킬 계기가 되진 않을까. 예년의 영광을 찾을 수 없는 순문학을 좇기 보다는 차라리 본래의 취지에 맞게 통속 대중 소설답게 쓰는 일은 어떨까. 이런 문학상의 취지도 언제까지나 과거의 영광에, 관습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존재하지 않는 엘도라도, 맡을 수 없는 노스탤지어, 손에 닿지 않는 이상을 추구하는 일은 언제 끝날까.
 황금 드래곤 문학상은 순수 문학 작품을 기리는 자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본질 아닌가?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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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nn 04.05.03 22:50 댓글 수정 삭제
    잘쓰고 싶다, 재미있게 쓰고 싶다는 기준이야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분명 장르 문학'상'은 장르의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함에도 장르의 눈으로 작품을 읽고 평가하는 심사위원을 뽑지 않는다는(혹은 못한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지요... 음.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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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nn 04.05.03 22:52 댓글 수정 삭제
    아. 장르 문학상은 뒤에 '아직까지'가 빠졌군요. ㅁㅅ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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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냥 04.05.04 00:47 댓글 수정 삭제
    사실 전 아직까지도, 장르의 눈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뭐랄까, '장르를 쓰는 문체는 순문학 하곤 달라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것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어렵더군요, 저한테는.

    여하간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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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y 04.05.04 02:16 댓글 수정 삭제
    같은 문장에서 다양한 함의를 익숙하게 읽어내는 것이 바로 '장르의 눈' 아닐까요. 예를 들어,

    "배가 부두에 도착했다."는 문장에서 '메인스트림의 눈'이 바닷가에 서는 어선을 떠올린다면, '장르의 눈'은 이 문장의 '배'가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셔틀, 오랫동안 수면상태로 우주를 떠돌다 지구에 돌아온 -여기서 살짝 쌍둥이 패러독스 끼워넣고- 인간, 다른 대체 현실에서 넘어온 정체불명의 유부체, 시간선을 넘어 과거로 와버린 선박 등일 가능성을 아무 어색함 없이 받아들이는 거죠. (누군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과 글쓴이가 기억나지 않아 적당히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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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fish 04.05.05 02:19 댓글 수정 삭제
    사실 저도 심사평에서 '장르의 정서'가 소홀히 취급 당한 것에 대해서는 좀 섭섭한 기분이 들더군요. ^^ 아마 심사위원단이 순문학 전공 출신이어서 그런 경향이 강하지 않을까 싶은데, 언젠가 장르문학에서도 허리가 세워지면 장르 문학가들 스스로가 '장르 정서'를 지향하는 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심을 장르 문학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 본심을 순문학 전공자들이 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전문가적인 '후광'을 지닌 장르문학 본심 심사위원은 나오기가 때 이른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좀 섭섭해 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회가 전 두 회 보다 '순수 문학 지향' 성향이 강한 것은 금룡상이 회를 거듭하면서 순수 문학을 지향하다가 키를 돌린 순문학 전공자들의 지원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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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lchizede 04.05.05 09:16 댓글 수정 삭제
    여러모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이라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몸]은 끝까지 읽지 않은터라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1, 2회를 지나 이번 3회의 당선작 선출과 심사평까지 진행됨에 따라 황금드래곤문학상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황금가지 쪽에서 키우고자 하는 작가는 톨스토이의 그것이지, 러브 크래프트 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양한 작가층의 형성이라는 면에서, 저는 그러한 관점을 그리 나쁘게 보지만은 않습니다. 장르적인 특성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문학적 교양을 지닌 작가를 배출해 보겠다는 주최측의 의향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 면도 있고 말이지요.(실제로는 문장도 미려하면서 장르적인 특성도 십분 살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솔직히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장르 작가 중에서도, 문장면에서 좀 더 공부가 필요한 사람들도 몇 보입니다.)
    문제는 오히려 문학상의 성향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 때의 것이지, 한 공모전에서 모든 기대치를 만족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북박스와 로크미디어 공모전이 대중적인 흥미도와 통속 소설적인 재미를 만족시켜 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글쎄요, 우선 두 공모전의 첫 결과물을 기다려 봐야 겠지요. 현재 기대작이 몇 있습니다만, 그것들이 출품되었는지는 미지수로군요.(외려 수준 이하의 작품이 선정되어 공모전으로서의 특성을 헤칠 가능성도 있지요.)

    하지만 고민해야 할 부분도 있긴 합니다. S.A.님이 말씀하셨던 장르문학적인 실험성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발휘할 공간으로서의 문학상이 부재한다는 점이지요. (황금드래곤문학상에서는 [착한농부와비둘기공주]가 성의없는 단 한 줄의 심사평으로 그쳤을 때 이미 포기했습니다. 서사의 중요성도 인정하지만 어떤 새로운 시도에 대해 열린 견해조차 표출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가능성이 없지요.) 한국판타지문학상에 잠시 기대를 걸어보았습니다만, 다음회 개최 자체가 불투명하고, 자회사의 성격상 그것도 깊이 바라볼 만한 대상은 아닐 겝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향은 독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거대 웹진이나 소설 사이트의 주최로 아마추어 공모전이 열려주는 것일 겁니다만, 아직은 장르 팬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뭉치기에는 시기가 이르지요.(현재는 계속 밖으로 확장되는 추세.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지요.:)

    안타깝습니다. 장르 문학상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보해 주지 못하고 있는 꼴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는 분들이 있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독자들이 있는 한, 공모전 주최측에서도 좀 고려해 보지 않을까요?
    힘 없는 개인은 그렇게 생각해 볼 뿐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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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son 04.05.09 15:10 댓글 수정 삭제
    문학성을 띠는 통속소설이 꼭 성공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군요. 오늘날 팬터지의 근간이 된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기본적인 문학성을 띠고 있는 건 사실이고, 대중소설가로는 손에 꼽히는 스티븐 킹 역시 기본적인 문학성을 띠고 있는 작품들을 많이 발표한 바 있습니다. 문학성을 띈 글도 얼마든지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은지요. 최근 말이 많은 귀여니의 소설의 경우,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러한 N세대 연애소설들이 기본적인 언어 구사조차 맞춤법에서 벗어난 '외계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부족한 묘사나 서사의 한계를 이모티콘으로 메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 '틀'의 문제점을 차치하더라도, 내용조차 외모지상주의나 신데렐라 콤플렉스, 폭력미화 등등 N세대들이 안고 있는 폐해들을 고스란히 연애의 필요충분조건인 양 담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물론 그렇다고 그 부류의 소설들이 '소설'도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문단에서 '유독 호러문학만을 갈구하고 있다'는 말씀도 글쎄요... 팬터지의 경우 '많이 위축되었지만 아직도 많이 읽히며 쓰'이고 있다지만, 국내 호러의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종호 님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호러작가라 불리울만한 작가가 전무한 상황입니다(<퇴마록> <왜란종결자>의 이우혁 님의 경우는 퓨전장르 작가로 봐야하겠기에 제외하겠습니다). 호러강국인 일본이나 미국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지요. 이번 황금드래곤문학상의 당선을 제외하고 '문단에서는 유독 호러문학만을 갈구'하고 있는 면면이 또 있었는지요.

    글지패, S.A 님께서 '언제까지나 과거의 영광에, 관습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역시 팬터지가 이룩한 '영광과 관습'에 얽매인 관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호러매니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역시 같은 말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호러였기에 다들 오래 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아직은 한 발을 내딛었을 뿐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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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 04.05.09 18:08 댓글 수정 삭제
    제 글을 제대로 읽지 않으셨군요. 그래도 첨언하자면, 저 또한 문학성을 띠는 통속 소설이 꼭 성공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이종호 님을 제외하고 호러 작가를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도 동의합니다. 역시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번 황드문학상 당선을 제외하고 문단에서 호러 문학만을 갈구한 면면이 또 있었습니다. 역시 당연한 말입니다. 하물며 호러 마니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역시 같은 말이 나올 수 있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비평에 대한 비평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그러나 간단한 수사법도 구별하지 못하는 독자가 텍스트를 마음 대로 해석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러니 부탁이건데, 논리가 결여된 감정적인 반박은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공공 게시판은 깨끗이 사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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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son 04.05.09 18:52 댓글 수정 삭제

    S.A.님께서는 비평을 하시기 이전에 기본적인 인격수양부터 하셔야겠습니다. 댓글은 말그대로 비평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다는 것 아닌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옳으신 말씀'이라면서 '간단한 수사법도 구별하지 못하는 독자가 텍스트를 마음 대로 해석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는 말이나 '논리가 결여된 감정적인 반박'이라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드네요. 듣기 거북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공공 게시판은 깨끗이 사용합시다'라는 캠페인까지... 허허... 그저 제 의견을 달아놓은 것이 S.A.님의 고결한 비평을 더럽히기라도 했다는 말씀입니까. 님의 비평에 대해 두둔한 댓글은 님의 고결한 비평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겁니까.

    문단에서 호러 문학만을 갈구한 면면에 대해 님은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비평하고 있고, 그에 대해서는 여전히 '또 있었다'는 말고는 전혀 언급이 없으시군요.

    저 역시 '비평과 간단한 의견도 구별하지 못하는 비평가가 마음대로 다른 시각의 댓글을 폄하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 게다가 님의 댓글 역시 감정적인 반박으로밖에 안 보이는군요.

    오만과 편견이 비평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본적인 인격과 겸손은 비평가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수요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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