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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서는 6월 2일 단신 뉴스로 전삼혜 작가님과 양원영 작가님의 "2018 서로 낭독 페스티벌" 대상 작품 선정과 예매 등에 관해 알려드린 바가 있습니다. (링크) 거울에 계셨던 김보영 작가님 포함해서 세 분의 작품이 6월 1일부터 16일까지 3주의 주말 동안 낭독극의 형태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소설과 연극, 그것도 SF소설과 연극이 만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오묘한 만남의 매력이란 게 무엇인지 듣기만 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직접 공연을 한 번 보고, 후기들을 보면서 이 만남에 대해서 꼭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낭독극의 원작을 쓰고, 공연을 보고, 공연 자리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 후 느낀 것들에 대해 세 작가가 직접 푼 이야기들을 들어 봅니다.

서촌공간 서로 2018 서로낭독 페스티벌

낭독공연 감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중심으로)

김보영

서촌 공간 서로 2018 서로낭독 페스티벌
정진세 기획

6월 1,2일 * 소년소녀 진화론(하늘의 파랑 바다의 파랑) : 전삼혜 작가, 강훈구 연출, 출연 류세일/김무늬, 조명 이경은, 음악감독 이재, 의상 김미나
6월 8,9일 *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 김보영 작가, 현예솔 연출, 출연 나경민, 조명 김지우, 음악 Kayip, 영상오퍼레이터 전서연
6월 15,16일 * 아빠의 우주여행 – 인생 : 양원영 작가, 장효정 연출, 극단52Hz

서촌 공간 서로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로 낭독극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을 때 여기가 어딘지, 얼마 주는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수락했다. 내 작품의 공연이니 당연히 기쁜 일이었지만, 이 작품은 알려져 있다시피 한 부부에게 프로포즈용 소설로 선물한 소설이었기에, 관련해서 어떤 행사가 따라붙든 계속 그분들께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서였다. 실제로도 부부가 몹시 즐겁게 관람해서 몇 배나 의미 있는 행사로 기억될 수 있었다.
‘사랑에 관한 SF 소설’이란 기획의도를 들은 뒤 이런저런 작품을 혼자 떠올리고 있었는데, 선정작은 전삼혜 작가의 ‘소년소녀 진화론(하늘의 파랑 바다의 파랑)’과 양원영 작가의 ‘아빠의 우주여행(연작소설인 ‘인생’과 콜라보)’였다. 듣자마자 ‘기획자가 책 읽고 정했는데?’ 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의 추천이 있었다고 하고, 기획자가 상상 이상으로 SF 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사실이었다. 선정 기준에 ‘여자 작가’가 있다는 것은 미리 알 수 있었지만 ‘세월호’에 대해서는 기획자에게 나중에 들었다. 소설을 쓴 연도와 행적(…)을 보면서 선정했다고.
세 작품 다 노골적으로 담긴 코드가 아니라 밑바닥에 들어 있는 것이라 그 섬세한 선정에 다소 놀랐고, 이 작품에서 세월호를 생각했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은 의외로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또한 놀랐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고, 그 해에는 모든 소설에 의도 없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내 극에서는 나경민 배우께서 내내 세월호 팔찌를 끼고 무대에 오르셨는데, 그 또한 반갑고 감사한 일이었다.


낭독극을 보려면 매주 서울에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전부 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시간이 맞아 세 극을 모두 보게 되었다.
덕분에 세 극을 모두 비교할 수 있었고, 대본을 들고 읽는 극이 이처럼 다채로운 연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각색을 많이 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집에 와서 책을 확인한 뒤, 극중 모든 대사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책 그대로였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기도 했다. 낭독극은 소설 원작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현실적인 체험을 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또한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삼혜 작가의 극은 가장 연극적이었다. 무대에 파랗고 하얀 공을 뿌려놓아 그 공이 때로 바다처럼, 때로 모래사장처럼, 때로 하늘처럼 보이게 하는 연출도 좋았지만(전삼혜 작가는 ‘그야… 수소와 산소니까…’ 라고 했다), 소소하게 들어간 연출이 사랑스러웠다.
남녀 배우가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내 무대를 뛰어다녔고(공 때문에 계속 넘어지면서), 여자가 연기를 할 때에는 남자가, 남자가 연기를 할 때에는 주로 여자가 대본을 읽어주었다. 각자 상대방을 대신 서술해주는 것도 로맨틱한데, 서술자가 바뀔 때에는 서로 몸을 접촉하며 장난을 치듯 대본을 빼앗거나 수줍게 건네주는 연출에도 감탄했다. 그러다 서로의 감정이 깊어지자 둘이 관객에게 등을 지고 나란히 앉아 같이 대본을 읽는 것이 아닌가. 와우.
반면 양원영 작가의 극은 내가 일반적으로 상상했던 낭독극의 형태로, 여섯 명의 배우가 대본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아 큰 동작 없이 각자 맡은 배역을 연기했다. 대신 스토리 자체에 연출이 들어갔다고 해야 할까, ‘아빠의 우주여행’과 ‘인생’을 한 작품으로 합쳐 동시에 같이 일어나는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점인데, 그 어우러짐이 자연스럽고도 구조를 다채롭게 만들어주어 많이 감탄했다. 주역보다는 맨 오른쪽에 앉아 온갖 엑스트라 역할을 연이어 하는 배우가 계속 복장을 바꿔 입으며 천연덕스럽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모습이 즐거웠다.
배우가 레고 장난감 우주선을 손으로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의심 없이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상상하며 감동하는 것이야말로 무대연출의 신비려니.


내 작품은 세 극 중 원작을 가장 직독직해한 연출로 보였다. 우선 배우가 대본이 아닌 책을 직접 손에 들고 읽었다. 한 명의 모노드라마였고, 일부 문장을 삭제한 것을 제하면 추가 문장 없이 책 전체를 그대로 읽었다. 애초에 혼자 낭독할 용도로 만든 소설이었으니 고칠 것이 별로 없으리라는 생각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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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이니 내 집중력은 어지간히도 높았을 것이고, 그러니 객관적으로 감상할 도리는 없지만, 한 명의 배우에 그처럼 소박한 연출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오히려 한 사람이 상대 배역 하나 없이, 의자 하나뿐인 무대 위에서 한 시간 반을 끌어가며 홀로 청중을 압도하는 체험이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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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은 대부분 벽면에 쏘는 프로젝터로 진행되었고, 내 소설에서는 한두 문장으로 대충 넘어가버린 과학적인 이야기를 영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연출이 많았다. 배우가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것으로 낭독을 시작하는 것을 들으며 내 대중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작가의 모자란 대중감각을 채워주는 연출이란 또한 감사하지 않은가.
전삼혜 작가의 극에서 여자가 연기하는 동안 남자가, 남자가 연기하는 동안 여자가 대신 읽어주는 연출을 했다면, 내 극에서는 가끔 녹음한 낭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배우가 무대에서 무언의 연기를 하는 연출이 있었다. 낭독이라는 정적이고 청각적인 자극이 내내 이어지다가 갑자기 낭독을 멈추고 동적인 연출을 하는 순간 또한 압도적이었다.


본디 무대예술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대에서 모든 것을 상상하게 해 주는 것이겠지만, 청각에 크게 의존하는 낭독극은 훨씬 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상상하게 해 준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텅 빈 공간에서 오롯이 배우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복잡한 상상들이 단순화되면서 그 이야기들이 훨씬 더 ‘인간의 이야기’이며, 내 가까이에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사실 종종 생각하기는 했다. 한국이 SF나 판타지에서 시각적 연출로 다른 나라를 쫓아가기는 이미 리얼리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이미 하염없이 뒤쳐져버렸고, 시작해볼만한 곳은 어쩌면 아예 시각이 없는 성우의 라디오드라마나 오디오북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한 번 낭독극을 보고 나니, 청각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시각적 환상을 주는 낭독극은 또 다른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SF는 돈이 많이 든다는 말만 많이 들었지만 그 또한 상상력의 부족이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무대에서 배우가 책만 읽었는데도 눈앞에 우주가 다 펼쳐지더라.
내게 첫 실사화인 셈이었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런 기획이 부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연출자 현예솔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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