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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서는 전혜진 작가님의 배턴을 받은 손지상 작가님을 인터뷰하였습니다.

손지상 작가님은 2007년 문장에 투고한 단편소설「인간돼지」로 소설부문 주간 우수상을 수상하시면서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팟캐스터 크로스카운터 패널로도 활동하시기도 하고, KB 정보광장에서 칼럼을 연재하시기도 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고 계시죠. 최근에는 SF&판타지 도서관에서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는 창작 작법 강의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예비 작가는 물론 기성 작가도 귀 기울여 들을만한 정보와 견해가 담긴 손지상 작가님과의 인터뷰가 여기 있습니다!

 

 

작가, 강연가, 번역가, 패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오셨기 때문에 손지상 작가님에 관해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이번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처음 작가님을 접하는 독자를 위해 간략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손지상

안녕하세요. 손지상이라고 합니다.
덩치가 조금 크고 수다가 많이 심하고 혼자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걸 좋아합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전에 일단 장비부터 잔뜩 사두었다가 용두사미의 꼬리를 어떻게, 어떻게 길게 늘이면서 끊어먹지 않으려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번역하기 시작했고, 팟캐스트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었어요.
고향은 없고, 좋아하는 가수는 제임스 브라운과 프린스, 좋아하는 스포츠는 프로레슬링 및 격투기 전반입니다. 취향이 한결같다고 동생이 항상 놀립니다. 이 정도면 될까 모르겠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길기만 하지, 정보 값이 하나도 없네요. 이 자체가 저란 사람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창작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을 출간하셨고, 최근에는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스토리 만들기에 관한 강연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강연이 굉장히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여기저기서 들었습니다. 창작 강연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이며, 또 강연을 시작한 후에 스스로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손지상

SF&판타지 도서관의 전홍식 관장님께서 제안해주신 계기로 창작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 온우주출판사를 통해 「스토리 트레이닝」의 동영상 강의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고, 단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프로젝트 테마에 맞춘 외부 강사 특강의 형태로 소규모 창작 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관장님께 제안을 받았을 때 지금까지 한 강의나 강연과는 다른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어요. 동영상 강의와 달리 사람을 직접 만나고, 특강처럼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8회에 걸쳐 진행하는 강연이니까요. 조금 건방진 생각도 있었어요.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실전편, 단편소설편에서 채 전달하지 못한 다양한 자료, 그리고 그 뒤로 업데이트한 다양한 자료를 전달할 기회다 같은 '자뻑'으로 두근두근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강연을 하면서 몇 가지 생각이 변했습니다. 먼저, 조금 더 명확하고, 정리되고, 세련된 형태로 강연을 하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조금은 실망했다고 할까요? 매번 강의시간을 넘겨버렸거든요. 준비해온 자료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를 퐁퐁퐁 하고 꺼내 들다 보니 혼란스러워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저의 안 좋은 버릇입니다. 세 살 버릇은 정말 평생 가나 봐요.) 그리고 저 자신도 질문을 받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제가 하는 작업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는 것을 목표이자 테마로 삼을 생각입니다

 

많은 예비 작가를 비롯하여 기성 작가도 스토리 또는 플롯 만들기에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 또는 플롯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며, 작가가 놓쳐서는 안 되는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손지상

첫 번째는 캐릭터에 집중하세요. 플롯은 십중팔구 인물과 인물의 상호작용에서, 그리고 인물의 성장 과정에서 나옵니다.
막혔다 싶으면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진행하거나 인물을 늘려보세요. 전체를 파악했다는 건 곧 캐릭터가 원래 어땠고 어찌 되고 싶고 어떤 고생을 거쳤는가를 아는 겁니다. (러브크래프트처럼 캐릭터 아크나 플롯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작가는 예외입니다만.)
이 과정을 잘 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압축하고, 요약하고, 분절하라' 입니다. 전체상을 다루든 한 장면의 트리트먼트를 다루든, 일단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겁니다.
어느 정도 아이디어의 내용이 쌓이고 복잡해졌으면, 무조건 휘저으려고만 들지 마세요. 쓰려고 들지 마세요. 왜냐면 우리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흔히 '마법의 수 7土2' 라는 말이 있지요? 인간이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7자리 숫자를 기억하는 정도라고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법의 수는 특별히 과학적인 연구결과로 나온 수치는 아니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3, 4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를 잘 정리하고 분절하고 압축해서 다루기 쉽게 만드세요.
우리가 글을 쓸 때도, 독자가 글을 읽을 때도, 한 번에 한 단어씩 처리하게 마련입니다. 눈앞에만 집중할 때 직관이 발휘돼요. 스티븐 킹의 충고는 바로 이런 이야기죠. 하지만 언제나 전체를 보는 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5번 질문의 대답을 확인해주세요. :-)

 

심리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리학 전공자라고 들어서 그런지 인간의 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실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혹시 작가로서 스토리를 구성하거나 캐릭터를 만들 때 심리학을 전공하시면서 얻은 다양한 지식이 도움이 되는지요? 도움이 된다면 어떻게 활용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손지상

일반적으로 학문으로서 연구하는 심리학은 추상명사로서의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심리라는 말 자체가 마음의 메커니즘이라는 의미니까요. 반면 우리가 글을 쓰거나 인간을 이해하는 통찰을 발휘할 때 사용하는 (에퀼 프와로가 말하는) 심리학은 한 개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편의상 한 개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심리학을 심리통찰이라 부르겠습니다.
심리통찰은 문학, 특히 소설과 같은 뿌리에서 자란 꽃입니다. 타인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는 게 심리통찰이고 이 통찰은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나옵니다. 가장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라면 '눈치'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3번 질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일화기억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습니다. 눈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심리학과를 지원했으나, 제가 잘 모르고 착각했다는 사실만 밝혀졌지요. :-(
그러나 한 개인은 결국 사회와 문화 같은 거시적인 층위의 메커니즘과 유전과 천성이라는 미시적인 층위의 메커니즘 사이에 끼어, 다른 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학부 졸업 수준이기는 해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이 과정과 경험은 분명 창작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를 꼽는다면, 의외로 인간의 행동은 내면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나 물리적인 제약조건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그 '의외성'이 작품이나 캐릭터의 인상을 결정하기도 하지요.
많이 끔찍한 예입니다만, 예를 들어,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토막 내어 은폐하려고 하는 범인의 경우, 시체를 옆에 두고 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는 경우가 흔하게 벌어진다고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어떻게 옆에 시체를 두고 음식을 먹지? 역시 사이코패스야!" 하고 손쉽게 타자화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즉물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살인과 시체 훼손은 그 자체로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 강한 부담을 줍니다. 그래서 잠이나 식사 같은 '회복 행위'가 필요한 것이지요.
이와 같은 '인간의 굴레’를 잘 구사하면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거나, 캐릭터의 독특함을 납득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뇌'나 '심리학' 혹은 '행동경제학' 같은 타이틀이 붙은 책을 계속해서 사서 읽고 있습니다. 심리통찰을 더 키우기 위해 직접 사람을 관찰하는 게 중요하지만, 단순히 관찰하기보다 이론적 배경이 있는 편이 훨씬 기억하기도 아이디어를 얻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작가이자 창작 기법 강연자로서 소설가를 지망하는 예비 작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기탄없이, 길이 제한 없이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손지상

알렉산더 멕켄드릭의 '영화 수업'에서 발견한 조언입니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구상의 과정을 시나리오 그 자체로 하지 말고 다른 방식을 시도하라. 영화 '제3의 사나이'의 각본 및 소설 작업을 한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은 먼저 단편소설을 쓰고 난 뒤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이 말에 저는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런데, 하나는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라, 나머지는 영화의 플롯 양은 중단편소설의 플롯 양과 비례하는 편이다. 이 중 첫 번째에 대해 '조금 길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첫 번째 조언의 목적은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체란 '게슈탈트'를 말하는데 자세한 설명은 이야기가 길어지니, 일단 생략하겠습니다.) 스토리를 쓰기 전에는 먼저 어렴풋이 대강 떠올려도 좋으니 최소한 전체, 즉 '처음, 중간, 끝'을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반론이 나올 겁니다.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스토리다." 혹은 "스티븐 킹도 그랬다." 같은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저는 이 반론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캐릭터를 굴리면 스토리가 나온다, 는 말은 캐릭터가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이 방해가 되는 지가 정해졌을 때 이야기입니다.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굴려 나가는 과정을 로그파일처럼 기록만 한다고 알아서 스토리의 방향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으면 십중팔구는 길을 잃습니다. 만화/애니메이션 '아키라'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테츠오의 신체가 무한히 증식하는 장면처럼.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토리는 유기적이고 복잡한 것인 반면 플롯은 본래 의미대로 '음모, 협잡'이고 복잡하게 얽힌 스토리를 '발굴'하기에는 너무 투박하다고 지적합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스티븐 킹은 일반적인 의미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티븐 킹이 플롯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보통 '결말을 정해놓고 쓰는 것'을 말합니다. 연역적으로 역산해서 스토리를 '짜는 게' 플롯이라고 스티븐 킹은 생각합니다.
반면 그가 사용하는 스토리라는 말은 캐릭터와 상황만 정해졌으면 어떻게 행동할지 따라가는 과정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는 정하지 않고 직관을 믿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오해해 결말도 전체상도 없이 무작정 쓰라고 권한다고 착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보면 스티븐 킹은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행위가 '전체 이야기가 몇 단어 분량이 될까'를 먼저 고려합니다. 전체상을 파악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책에서 권하는 '스토리 원고'라는 작업은 전체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 전체상을 죽 적는 과정입니다. 스티븐 킹도 전체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갈 지 미리 가늠하는 작업을 빼놓지 않습니다.
미리 정하지 않고 캐릭터와 상황 혹은 아이디어를 직관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유명한 작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솔직히 이게 제일 소설가다운 좋은 방법이라고도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버트 하인라인이 있습니다. "쓰다가 멈추었을 때 짧으면 단편이고 길면 장편"이라고 아시모프가 언급한 적이 있지요. 그런 아시모프를 두고 어느 평론가는 '플롯 감각'이 좋다고 평했다 합니다. 자랑을 좋아하는 아시모프가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에서 밝히고 있지요.
문제는 소위 '플롯 감각'이 자전거 타는 법이나 외국어 말하기 같이 자연스럽게 '체득'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면 평생 헤맨다는 것입니다. 체득하고 나서야 일일이 자전거 탈 때의 공정을 자각하지 않듯, 설명할 때도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고밖에 못하게 되지요.
저는 이 플롯 감각을 익히기 위해 저 자신이 후천적으로 시도한 다양한 훈련법을 바탕으로 작법서를 쓴 셈입니다. 저 자신이 처음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습작을 할 때 끊임없이 벽에 부딪혔던 데다가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소설을 쓰겠다 마음먹은 순간이 의식적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채 반년도 안 되었을 때였던 사람이라 무엇이든 후천적으로 익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연구를 해야 했고, 가이드라인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플롯을 스토리와 구분 짓고, 플롯을 꽤나 중시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제 개인적인 특성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려 보라고 해도 자기가 겪은 일화를 이야기하기 어려워합니다. 사건이나 등장인물은 애매모호하게 기억하지만 당시 어떤 '정보'를 접했는가는 선명히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 살 때 어디에서 무슨 만화책을 보았다, 같은 것 말입니다. 플롯 감각이 없는 셈입니다. (저 말고 다른 예를 든다면, H. P. 러브크래프트나 톰 클랜시가 있을 것 같군요.)
아직도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진행해야지 플롯을 짜면 안 된다, 혹은 어떻게 플롯을 짜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꼭 명심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캐릭터=플롯입니다.
플롯이란 '캐릭터가 무언가를 바랐기에 겪은 장애물과 문제를 어떤 행동을 통해 대처했는가를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배열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캐릭터가 없으면 플롯 포인트라 부르는 중요한 국면에서 어떤 선택이나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고, 플롯이 없으면 캐릭터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겁니다. 마치 GTA 5를 처음 하는 사람이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듯이요.
제가 정의하는 플롯은 스티븐 킹의 스토리 원고보다 훨씬 추상적입니다. 등장인물의 관계는 어떻고, 목표나 욕망은 뭐고 어떻게 얽히는지를 일일이 분절해서 따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 작업으로 들어가면 제가 처음 짠 플롯이나 시놉시스, 트리트먼트는 실제 작업을 할 때 거의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흔히 맥도날드 효과라 부르는 현상이 있죠. 메뉴 못 정할 때 누구 하나가 일단 '맥도날드 어때?' 하고 던지면 '그거 보단 이게 낫지' 하고 여러 가지 방안을 떠올리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이 처음 생각에 붙들려 자유를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제 경우에는 도움이 되었어요. 이 연구 결과가 작법사가 된 거고요.)
이렇게 플롯과 스토리를 파악했다면 이제 필요한 건 미시적인 시점입니다. 소설을 읽는 사람의 시야는 매우 좁습니다. 우리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오직 그 순간만을 쓸 수 있어요.
저는 정식으로 연극을 경험해보는 게 글 쓰는 이에게 가장 좋은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애거서 크리스티나나「나의 로라」를 쓴 비라 캐스퍼리는 연극을 좋아했고, 연극의 경험을 살려서 작품을 썼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레이먼드 카버 같은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으시다면 더더욱 연극을 경험하셔야 해요. 그럼 장면 묘사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캐릭터에 대한 통찰력도 달라지고요. 오슨 스캇 카드의 「캐릭터 공작소」와 「당신도 해리포터를 쓸 수 있다」에서는 연극에서 캐릭터와 희곡을 해석하는 방법을 소설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예시와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극이라는 언급은 없지만요. (그 맘 알아요, 제목이 이상하죠. 하지만 이 두 권은 여러분이 무조건 사서 손해 보지 않으실 책입니다.) 심지어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도 글을 쓰다가 막히면 "연극 무대 위에 캐릭터를 올려놓고 대화시킨다"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결국은 캐릭터입니다. 여러분이야 자연스럽게 되겠지만 전 아니었거든요. 새삼스럽게 놀라운 거죠. 캐릭터의 눈으로 스토리 속 세계를 보고, 경험하고, 다른 캐릭터와 지지고 볶는 그 과정이 곧 스토리인 겁니다. (물론 80%만요. 언제나 예외는 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일단은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지금까지 온/오프라인으로 출간한 작가님의 단/장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무엇인지 제목과 간략한 내용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손지상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장 마음에 드는' 같은 걸 잘 못 고르거든요.
제 단편집 「데스매치로 속죄하라-국회의사당 학살사건」에 수록된 ‘인어의 유혹’이랑 ‘지문과 커피’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할 수 있겠네요. ‘데스매치로 속죄하라-국회의사당 학살사건’은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건 제가 쓴 ‘사소설’이라서 부끄러움이 더 큽니다.
‘인어의 유혹’은 겨울 예비군 동미참 훈련 동안 수첩에다 펜으로 초고를 썼던 작품이라 애착도 가고, 또 평소 제가 쓰지 않는 소재와 시도하지 않는 19세기 영국에서 자주 나오던 문체를 시도했기에 기억에 남습니다.
‘지문과 커피’는 단편집에도 경위를 적어놓았지만 본래 엽편으로 한참 전에 쓴 것을 확장한 작품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 제가 살던 용산구 청파3동을 모델로 삼아, 저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투영해서 쓴 글이었어요. 그런 시도를 처음으로 했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제 취향이나 가지고 있는 정보는 넣어도, 의도적으로 제가 직접 한 경험은 배제하고 쓰려고 노력해왔었거든요. 반쯤 사소설인 셈이지요.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고, 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으로 창작한 소설이 어떤 것이었는지 내용 소개 부탁드립니다.

손지상

저는 소설 자체를 의식적으로 읽기 시작한 게 2005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입니다. 그전 부터 책을 좋아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주로 철학서나 인문서, 심리학서, 정신분석서, 아니면 신비주의 명상서적 같은 걸 대량으로 읽었습니다.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어요. 재미를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과 내에서 열린 독서 소모임에 가입했습니다. 주로 철학서나 인문서를 중심으로 주최자인 선배와 독해하는 게 주 내용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경험이라 열심히 따라 했지요.
한 학기를 진행하고 나서, 주최자 선배가 제게, 네 사고방식에는 논리의 뼈대만 있고 살이 없어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니 간접경험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소설을 먼저 읽어보라, 하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고전을 읽기 어려울 테니, 플롯이 확실한 추리소설부터 읽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선배였기 때문에, 저는 그 말에 따랐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본가에 내려가 있는 사이, 시간적 여유가 생긴 김에 헌책방에서 닥치는 대로 추리소설을 사 모았습니다. 동서추리문고, 해문사, 고려원 미스터리 문고 등등……..그리고 사는 족족 이해도 못하면서 계속 읽기 시작했어요. 저는. 소설 읽는 사람으로서도, 쓰는 사람으로서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초보자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공하거나 한 것도 아니어서 근본도 없었어요. 일단은 뭐라도 지식이 아쉬웠어요. 지식은 인식을 가로막는 맹점이지만 지식이 없이는 인식도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집 앞에 있는 서점에서 관련된 책이 없나 싶어 찾아보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주조 쇼헤이의 「이 책 잘 읽으면 소설가 된다 1, 2」를 샀습니다. 처음부터 소설을 쓸 생각으로 산 것은 아니었고, 소설이 뭔지 잘 모르니 구조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산 책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조금 접근하는 각도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마술이나 프로그래밍 같은 걸 독학으로 해보려 했던 경험 탓 같아요.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책을 따라 습작 흉내를 내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소설 연재 사이트라는 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미완성 습작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지금은 없어진 ‘드림워커’라는 곳입니다.)
하숙방에 책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계속 읽으며 시간은 갔고,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공익근무요원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하고 본가로 다시 내려왔을 때, 그 책을 만났습니다. 고려원 미스터리 문고에서 나온 오오야부 하루히코(大藪春彦)의 데뷔작 「야수는 죽어야 한다(野獣死すべし)」를 읽게 됩니다. 주조 쇼헤이의 책에 이름이 소개된 적이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여담인데, 주조 쇼헤이는 누가 자기에게 오오야부 하루히코의 책 100권을 읽었다고 하면 진지하게 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 존경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뒤로 오오야부 하루히코의 책을 70권 정도 구했는데, 아직 40권 밖에 못 읽었어요. 아직 멀었습니다.
「야수는 죽어야 한다」는 오오야부 하루히코의 자전적 소설이자, 이상형을 그린 완전범죄 소설입니다. 제가 읽은 판본에는 시리즈 제1편인 단편과 제3편인 중편이 실려있었어요.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최초의 하드보일드 작품이기도 했었죠. 저는 이렇게 사람에게 생리적으로 충격과 감동을 주는 소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설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한동안 하드보일드 소설에 경도되어 열심히 읽었습니다.
논산 훈련소에서도 몰래 반입한 소설책을 읽고 계속 메모를 했습니다.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계속 생각했었어요. 훈련소를 퇴소하고 난 뒤 천안시청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하기 직전, 돼지와 인간이 유전적으로 비슷해서 인공 장기를 만들기 위해 돼지의 몸에 이식한다는 식의 말을 얼핏 텔레비전을 통해 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들은 것도 아니었는데 돼지와 인간이 닮았다는 식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퇴근할 때쯤에는 아예 뒤섞여 버려서,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첫 번째는 한고조 유방의 아내 여후가 측실 척부인을 잔인하게 고문하여 ‘사람돼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두 번째는 예전에 읽었던 나가이 고의 만화 「바이올런스 잭」에 등장하는 팔다리가 잘린 ‘인간개’의 그림.
세 번째는 돼지고기는 너무 맛있어, 라는 제 내면의 목소리.
투쾅.
그렇게 저는 귀찮은 서류작업을 재빨리 끝내고 단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완성했어요. 제목은 ‘인간돼지’였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남자가 부모와 사람에게 멋대로 실망하고 돼지야말로 진짜 자기 형제라며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돼지에게 먹이다가, 스스로 팔다리를 자르고 돼지가 되려다가 출혈 과다로 죽습니다. 저는 스플레터 영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로테스크하거나 고어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상할 정도로 그런 이미지가 활자를 통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완성은 했는데, 어디 보여줄 만한 데도 없어 묵히던 차에 사이버문학광장 문장이라는 데가 있다는 걸 비슷한 시기에 알게 되었어요. 투고했지요. 주간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매달 단편을 써서 투고하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지금도 혼자서 써나가고 있습니다. 근근이. 근근이.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손지상

권하고 싶은 책…… 어렵네요.
작법서라면 위에서 추천한 책 말고도 데이먼 나이트의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과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와 브라이언 보이드의 「이야기의 기원-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를 권하고 싶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도 소설을 권한다고 한다면, 마가릿 밀러의 「엿듣는 벽」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분명 시대적 한계가 있고 조금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읽는 동안에는 상당히 빠르고 흡입력 있게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실 거예요.
마찬가지 이유로 에드 맥베인의 경찰소설 시리즈 전부와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경감 시리즈 전부를 추천합니다. 두 시리즈 다 최신 번역작을 막 읽은 참입니다.
너무 길어질까 봐 이 정도에서 줄입니다. ;-)

 

2017년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것만은 꼭 이루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손지상

예정 중인 작업을 모두 제대로 계약서 쓰고 제대로 작업해서 제대로 페이를 받는 것, 이라고 하면 너무 생활에 찌든 것 같이 보이려나요.
올해가 가기 전에 ‘이것만은’ 꼭 이루고 싶은 게 하나 있긴 하군요. 건강 회복입니다. 빨리 예전처럼 붕붕 날아다니고 싶네요.

 

거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손지상

지금 이대로를 계속 유지해나가는 것을 가장 바랍니다. 그거만큼 어려운 게 없으니까요. 거울은 거울만의 독자적인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요. 독자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고요. 많은 이가 거울을 통해 연결되어 외연도 내실도 커지는 것을 바랍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누구나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을까요?

손지상

혹시 밤에 꿈 꾸시나요?
깨고 나면 기억이 잘 안 나더라도 한 번 이상은 꿈을 꿔 보신 적이 있나요?
그럼 당연히 될 수 있습니다. 꿈은 기억을 정리해 장기기억을 만드는 과정이고, 본질적으로 스토리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스토리는 기억이고 리얼리티거든요.
화이팅.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 못하는 분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손지상

사는 게 어딘가요?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언젠간 읽을 것이고, 안 읽어도 꽂아 놓기만 해도 멋있잖아요. 그러니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사세요. 많이 사세요.
화이팅.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생각이나 주장이 혹시 있으신가요?

손지상

뮤지컬과 BL과 WWE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입니다. 세 장르 모두 공통적으로 ‘일반적으로 드라마를 표현 방법인 이루는 대사와 행동만으로는 감정의 격양을 전달하지 못해, 갑자기 표현방법이 다른 형태로 전이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뮤지컬은 감정이 고양되면 갑자기 춤추고 노래하죠.
WWE는 감정이 고양되면 트래시 토크를 멈추고 뒤엉켜 싸웁니다.
BL은 저보다 다른 분들이 더 많이 아시겠지요?
여담이지만, 이 모든 과정은 다 프로레슬링 특유의 상보적 자세로 진행됩니다. 상대방과 모순되지만 서로 의존하는 관계죠. 저는 세상만사가 다 프로레슬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중관불교에서 말하는 ‘공’과 ‘연기’ 개념이 사실은 프로레슬링이 아닌가 하는 망상까지 할 정도죠. (물론 저 혼자만의 망상일 수 도 있습니다.)

 

‘이 필진이 궁금하다!’ 다음 인터뷰이가 될 필진을 지목해 주세요.

손지상

전혜진 작가님의 소망을 제가 대신 해결하겠습니다. 곽재식 작가님을 인터뷰해주세요!

 

거울 단편 » 손지상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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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17.11.24 18:12 댓글

    손지상 작가님.

    2017년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일 꼭 다 이루시길 바라고 건강도 회복하길 기원하겠습니다.

    아! 저는 여름에 플롯 강의를 수강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 정말 유용한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앞으로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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