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이곳 티벳에서는 자신들의 나라를 카와잔 뵈(Khawajen Bo)라고 부르지요.”

  가만히 두면 소울리에 박사가 선 채로 기절할 것만 같았기에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평생을 바치는 생물학자에겐 해발 3000미터의 높은 고도와 냉랭한 기온이 마치 다른 행성에 떨어진 것과도 같은 기분을 가져다 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내 호의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가쁜 숨을 내뱉으면서도 내 쪽을 돌아본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이죠?”

  나는 그녀의 팔을 살짝 부축하며 대답했다.

  “눈 덮인 땅이라는 뜻입니다. 일년 내내 눈이 쌓여있는 히말라야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이곳 티벳은 모든 걸 덮어주는 눈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거든요.”

  소울리에 박사는 힘없이 웃었다.

  “저에겐 이 눈이 끔찍할 뿐이에요, 첸. 숨쉬기도 벅찬 이 텁텁한 공기도 마찬가지고요. 어째서 헬기나 비행기로 한번에 날아가지 않는 거죠?”

  산 중턱에서도 그녀가 똑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기에 나는 그녀의 말을 단순한 투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소울리에 박사 역시 해발 4000미터에 육박하는 산악 고원지대에 비행기로 날아왔다면 아무런 적응을 거치지 못한 육체는 급격한 고산병에 걸리고 말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상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소울리에 박사의 바로 뒤에서는 미국 질병통제센터 CDC의 직원들이 얼핏 보기에도 무거워보이는 중장비를 끙끙대며 옮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가벼운 차림인 소울리에 박사는 오랜 시간 불평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앞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사람도 분명 이런 곳이 익숙지 않을 텐데, 어째서 저렇게 태평할 수가 있죠?”

  소울리에 박사가 가리킨 방향에는 카라스 주교가 눈밭 위로 큼직한 발자국을 남기며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사제복 위에 간단한 방한복을 걸쳤을 뿐인데도 그는 전혀 추위를 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여섯 명의 사제들은 냉동고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유럽인이기 때문에 추위에 강한 걸까? 하지만 히말라야를 숱하게 올라본 나에게 있어서도 고원의 일교차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이곳의 추위는 외지인이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나는 소울리에 박사에게 한 가지 대답밖에 해 줄 수 없었다.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는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정말 이 산꼭대기에서 악마퇴치라도 할 셈일까요?”    

  소울리에 박사의 말은 카라스 주교가 등에 매고 있는 큼직한 배낭을 겨냥한 것이었다. 신부는 출발 전부터 그 배낭에 매우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소중히 다루었다. 소울리에 박사는 그 안에 십자가나 성수, 심지어는 양파나 마늘까지도 들어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내게는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어쩌면 직업병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 가이드는 여행자의 사생활이나 깊은 부분까지 관여하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여행이 관광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나와 소울리에 박사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일행을 쳐다보면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몇 번이나 등산화를 신는 것이 좋을 거라고 권고했지만 듣지 않았던 그들은 일정한 보폭으로 걷는 수십 개의 군화가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인생의 삼분의 일 동안 누군가를 안내하는 일을 해왔지만 미국의 레인저 한 소대를 안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세상의 모든 충동과 고뇌를 잊게 한다는 티벳의 고원지대에서 레인저들이 착용한 소총은 극심한 불일치가 가져다주는 기묘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첸. 그 마을까지는 얼마 정도가 남은 겁니까?”

  귓가에 면도칼을 들이대는 것만 같은 매서운 목소리의 하보크 소위가 레인저의 행군을 정지시키곤 선두에서 물었다. 이 일행의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말에 나와 소울리에 박사는 자연스레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가 머리에 쓴 검은 베레모에 잠시 시선을 두고 있다가 대답했다.

  “해가 지기 전에 곧 도착할 겁니다.”

  “그건 너무 애매한 대답 아니오?”

  “출발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곳은 관광 코스와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가 힘들군요.”    

  하보크 소위는 내 대답에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토를 달거나 하지는 않았다. 레인저 소대가 잠시 멈춰 서 있는 동안 일행의 가장 후미에서 걷고 있던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출발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적이 없었던 지라 위치를 파악하기가 꽤나 껄끄러운 남자였다. 이번에도 그가 무릎에 손을 짚은 채 숨을 고르고 있던 소울리에 박사의 어깨와 부딪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옆을 지나치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순간 내 앞으로 무언가 작은 가방이 툭하고 떨어졌다. 가이드 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물건, 카메라였다. 나는 제법 묵직한 카메라 가방을 들어 눈을 털어 준 다음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가방을 받아든 남자는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발을 놀려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때서야 그의 이름이 생각났다. 에드워드 팔컨. 절묘한 포착솜씨로 주목을 받고 있는 귀머거리 사진작가였다.
  CDC에서 파견된 의료진들과 레슬링 채널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거구인 카라스 주교가 이끄는 카톨릭 사제들. 귀머거리 사진작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령이라면 히말라야 뿐만 아니라 아마존의 밀림 속까지도 침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눈빛의 레인저들. 상식적으로 추측하기 힘든 이 기괴한 조합의 무리들에게도 이름은 있었다.
  바로 유니코니언 탐사대다.


  정확히 18시간 전, 여행사의 긴급 호출이 나를 깨웠다. 휴가에 젖어 있던 나는 부랴부랴 라싸 시내로 차를 몰아야 했다. 사무실에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한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서야 내 몸에서 데킬라 냄새가 독하게 풍긴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영어와 티벳어에 가장 능통한 가이드를 찾고 있었다는 그의 첫인사가 끝나고, 남자는 둘만의 대화를 원한다는 제스처를 내비쳤다. 그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에 당연히 사장이 불쾌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군소리 없이 문을 닫고 물러났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내 눈앞의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남자였는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국가 안보가 걸린 기밀입니다.”

  남자는 품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전날의 숙취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노려보았다. 초점도 잘 맞지 않았고 흐릿한 사진이었지만 무엇을 포착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산등성이를 달려가는 사진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소녀에게는 절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섬뜩한 특징이 하나 있었다. 소녀의 이마에 커다란 뿔이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 무슨 해괴한 장난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심령 사이트에서 주워온 듯한 사진에 미국의 안보가 걸렸다니. 농담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웃음기도 없이 진지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편의상 우리는 이 소녀를 유니코니언(Uniconia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그 사진은 프랑스의 한 등반가가 조난을 당했을 때 찍었던 사진이라고 했다. 정신을 잃은 등반가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인 것이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한 원주민 소녀였다고 한다. 그 소녀의 이마에 돋아난 검은색 뿔을 발견한 그는 기겁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 바람에 흠칫 놀란 소녀는 산등성이 너머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등반가는 황급히 카메라를 들어 그 소녀가 달리는 모습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그 소녀의 신병을 확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긴급히 탐사대가 조직되었는데, 그 무리를 당신이 이끌어주었으면 좋겠군요.”

  사진이 찍힌 곳은 캉첸중가 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 근처였다. ‘치카오’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은 관광객들이나 등반가들의 발이 거의 닿지 않는 오지나 다름없다고 알고 있었기에 분명 쉽지 않은 여행이 될 터였다. 준비 기간만 해도 삼, 사일은 걸릴 껄끄러운 코스였다.

  “지금 당장 출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제게 해발 4300미터로 산책이라도 다녀오라는 말입니까?”

  나는 절대 할 수 없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그 순간 남자가 의뢰 액수를 제시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일개 가이드로서는 절대 꿈꾸기 힘든 거액이었던 것이다. 남자가 제시한 숫자에 흥분해있긴 했지만 나는 무작정 좋아할 바보는 아니었다.
  그 때 불현듯 나의 티벳어 스승이었던 승려 륭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독수리를 잡으러 뛰어오르려면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큰 대가에는 반드시 위험부담이 따른다. 하산할 무렵 륭이 꺼냈던 말은 이런 뜻이었을까.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대체 이 뿔 달린 소녀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중요하다는 겁니까?”

  남자는 사진을 품속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그 때 난 처음으로 그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알아오는 것이 이 탐사대의 임무입니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다행히 소울리에 박사의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걸음걸이도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발열이나 호흡곤란 증세도 보이지 않았다. 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시작한 그녀는 여유를 찾고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유니코니언이라고요? 나는 아직도 이들이 그 뿔 달린 소녀를 애타게 찾는 이유가 의심스러워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페이스를 되찾았을 때부터 우리는 일행의 선두에 나서기 시작했고, 그 뒤로 카라스 주교와 사진작가 에드워드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보크 소위가 이끄는 레인저 부대는 여전히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울리에 박사는 거의 귓속말로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분명 시커먼 꿍꿍이가 있을 거에요.”  

  그녀 역시 사정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를 찾아온 그 남자가 그녀에게 꺼낸 말은 ‘유니코니언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지점에 있는지 조사해달라’였다. 처음엔 그녀 역시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하지만 거액의 유혹은 쉽게 뿌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첸. 당신도 많이 궁핍했나 보군요? 이런 수상쩍은 의뢰를 받아들이는 걸 보면.”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최근 5년 동안에 일어난 세 건의 대지진 사건을 아시겠죠?”

  “그야 당연히 모를 수가 없죠. 작년인 2013년의 미얀마 대지진 때는 한물간 종말론까지 튀어나올 정도였는데. 카라스 주교라면 그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을 걸요. 천벌이니 어쩌니, 할 것 같지 않아요?”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 어쨌든 기상 시스템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는 그 대지진들이 모두 아시아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로 아시아 배낭여행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죠. 가이드들도 점점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어느 순간부터 여행안내를 하는 날보다 휴가 기간이 더 많아지고 있음을 나는 고백해야 했다. 분명 무리수가 따르는 일이었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울리에 박사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거 아세요? 질병통제센터 CDC가 여기에 파견되었다는 건 웃긴 얘기에요.”

  “무슨 뜻입니까?”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소울리에 박사는 엄지를 들어 뒤를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CDC가 하는 일은 질병, 말 그대로 인체에 치명적인 증후군이나 바이러스를 격리시키거나 퇴치하는 일이죠. 2009년에서야 백신이 개발된 사스(SARS)처럼요. 그들이 이곳에 파견되었다는 것은 유니코니언이란 소녀를 질병의 산물로 보고 있다는 얘긴데, 그거야 말로 코메디죠. 병리학적 증상으로 새로운 신체기관이 생긴다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요.”

  “그럼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뭐죠?”

  소울리에 박사는 오래 생각한 듯 눈꺼풀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돌연변이일 가능성이 가장 크죠. 정교하게 조작된 가짜가 아니라면 말이에요. 물론 뿔달린 인간이 학계에 보고된 적은 없지만 이런 오지라면 기대를 걸어볼 만도 하죠. 개인적으로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때로 돌연변이가 새로운 진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에요. 어쩌면 이 유니코니언이란 존재는 인류의 진화가 멈추지 않았다는 학설에 큰 무게를 더해 줄 수 있겠죠. 인류의 진화가 완료상태인지 현재 진행형인지는 여전히 생물학자들의 최대 토론거리이니까요.”

  얘기가 너무 거창해지는 것 아닌가. 소울리에 박사는 말상대를 만난 것이 기쁜 듯 쉴 새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공감하기 힘들었다. 사진 한 장에 인간의 진화를 들먹여도 좋은 것인가. 그 때 누군가가 우리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거 참 흥미롭네요, 자매님. 유니코니언을 생물학적 발견으로 보고 계시는군요.”

  카라스 주교를 뒤따르던 여섯 사제 중 한 명이었다. 짧고 단정한 머리에 처진 눈꼬리가 선한 남자였다. 그는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소울리에 박사는 자신의 얘기를 엿들었다는 기분에서인지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내었다.

  “저는 과학자에요. 카톨릭 신부와 진화론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은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군요.”

  남자는 두 손을 치켜 올리며 자신에게 나쁜 목적이 없음을 드러냈다.

  “루도비코 신부라고 합니다. 저 역시 두 형제, 자매님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저 두 분이 나누고 계신 주제에 흥미가 생겼을 뿐이지요.”

  소울리에 박사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가이드인 나로서는 카라스 주교 쪽의 사람을 알아두어서 나쁠 것이 없었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소울리에 박사를 대신해 그의 말에 대답했다.

  “가이드인 페이 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루도비코 신부님께서는 유니코니언을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그가 대답하려는데 소울리에 박사가 코웃음을 쳤다.

  “사악한 피조물로 보는 것 아닌가요? 카라스 주교를 보세요. 마치 당장 엑소시즘이라도 할 듯한 기세잖아요.”

  루도비코 신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엑소시즘 의식 역시 지난 세기에 비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밀한 메디컬 시스템과 의료진이 뒷받침되어야만 하죠. 종교 역시 더 이상 과학과 반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알고 있는걸요. 무엇보다 저희가 그 소녀를 악마의 현신으로 규정짓고 있지는 않답니다.”

  신부는 온화한 표정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지만 소울리에 박사의 기세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래요? 신학에서 뿔은 두 말 할 것 없이 사탄의 상징 아닌가요?”

  “사탄의 뿔은 두 개죠. 유니콘, 즉 일각수(一角獸)의 뿔은 오로지 하나 뿐이구요. 시편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주께서 나의 뿔을 유니콘의 뿔같이 높이셨으니 내가 신선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리이다.’ 유니콘은 성경에서도 신성하게 비유되는 동물입니다. 안디옥의 성 저스티나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지요.”

  루도비코 신부의 조목조목 답하는 말투는 소울리에 박사를 조금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럼 뭐죠? 당신은 오히려 성스러운 전령으로 받아들이는 건가요?”

  “그건 아직 알 수 없죠. 교황청이 저희를 파견한 목적은 악마퇴치가 아닙니다. 유니코니언의 정체가 하나님의 정령인지, 악마의 화신인지 알아오는 것이죠. 물론 저는 카라스 주교님처럼 유니코니언의 존재에 대해 미리 확정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질병이나 돌연변이는 아닐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명명백백한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신부의 단호한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어떤 말이든 꺼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이드 일을 하기 전에 저는 륭이라는 승려에게 티벳어를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티벳어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제게 가르쳐 준 스승이었죠.”

  둘의 시선이 서로에게서 나로 옮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륭이 제게 새 한 마리를 가리키며 묻더군요. 저 새가 어떤 새인지 아느냐고. 제가 보기에 그 새는 티벳의 습지에서 서식하는 검은목 두루미였습니다. 하지만 륭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검은목 두루미와 쇠재 두루미는 생김새가 매우 흡사해 구분하기 힘들다고.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어떻게 저 새가 쇠재 두루미인 것을 아셨습니까? 그랬더니 륭이 답하더군요. 나도 모릅니다. 저 새가 검은목 두루미인지, 쇠재 두루미인지.”

  소울리에 박사가 실소를 머금었다.

  “뭐예요, 그게?”

  “륭은 제게 말하더군요. 보는 이가 검은목 두루미라고 믿으면 그게 진실이 되는 것이고, 쇠재 두루미라고 믿으면 그 역시 진실이 되는 법이라고. 때로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 정체를 변화시킬 때도 있다고 말입니다.”

  내가 륭에게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루도비코 신부와 소울리에 박사는 무언가를 곱씹듯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내가 의도한 바였다. 험난한 산행길에 너무 많은 대화는 피로로 쌓이는 법이니까.  



  “사람이 보입니다!”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카라스 주교가 외쳤다. 그의 말마따나 전방에 티벳 원주민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공터에 서서 무언가를 주워 담고 있었다. 아마 치카오 마을의 주민일 가능성이 컸기에 우리는 남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형제님. 그런데 저 자가 뭘 주워 담고 있는 겁니까?”

  카라스 주교가 내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우리와 함께 걷고 있던 루도비코 신부는 자연스럽게 주교의 뒤 쪽으로 물러났다. 나는 남자의 주변을 조금 살펴본 뒤에야 그 공터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저기는 조장터인 것 같네요.”

  “조장터?”

  “죽은 사람의 시체를 독수리에게 보시(布施)하는 겁니다. 조장이라는 티벳의 장례법이죠. 저 남자는 아마 독수리가 뜯어 먹은 시체의 뼛조각을 주워가는 듯 하군요.”

  가이드로서 몸에 배인 설명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뒤에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카라스 주교의 어깨가 터질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기괴망측한 일이! 악마의 풍습이오!”

  고원지대에서는 목재가 매우 귀하다. 따라서 화장을 할 수도 없고, 차가운 기온의 땅에서는 시체가 잘 썩지도 않는다. 관광객들의 비위를 꽤나 상하게 하기는 하지만 조장법은 티벳 사람들만의 현명한 장례법인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꺼냈다가는 카라스 주교를 더 자극할 것 같았기에 나는 조용히 하보크 소위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와 그의 레인저 소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남자와 말을 나눠보겠습니다. 하지만 소위님과 레인저분들은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군요.”

  “그렇게 하겠소.”

  하보크 소위는 내 말에 담긴 뜻을 알아들었다. 티벳 오지의 원주민이 무장한 군인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카라스 주교는 쉼없이 성호를 그어대며 이태리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기에 나와 소울리에 박사만이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내 예상대로 남자는 우리의 목적지인 치카오 마을의 주민이었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과 말투로 봐서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텐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슬쩍 훑어본 그의 옷은 티벳 전통 의상 중에서도 처음 보는 종류의 두터운 것이었다. 치카오라는 마을이 얼마나 외진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그는 친구의 장례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그다지 우리를 경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본론을 꺼냈다.

  “혹시 이마에 뿔이 달린 소녀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텐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치 나의 말이 흉기가 되어 그의 급소를 찌른 것처럼. 그는 다시 친구의 뼈를 주워 담기 시작하며 대답했다.

  “무엇 때문에 찾는 거요?”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하고 있었기에 유니코니언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식의 대답에 나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침묵을 달갑잖게 받아들였는지 텐카는 더욱 퉁명스런 말투로 내뱉었다.

  “우리는 뻬이렁띠아오 더하이즈라고 부르지.”

  내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자 소울리에 박사가 껴들었다.

  “첸. 저 남자가 뭐라고 하는 거죠?”

  “유니코니언을 봤다고 하는군요. 그들은 ‘신이 버린 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분명 신이 버린 아이가 아니라, 신이 버린 아이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한 명이 아닐 수도 있겠어요.”



  치카오 마을까지 안내해 줄 수 있냐는 우리의 부탁에 텐카는 잠시 망설였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다만 마을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약속 하에서였다. 하보크 소위는 그 말을 전해듣고는 ‘우리의 목적은 유니코니언 뿐이니 장소만 알려주면 상관없다’는 식의 대답을 주었다. 결국 레인저 소대는 마을 밖에 캠프를 치기로 결정했다.
  텐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12년 전 마을의 한 부부가 남자 아이를 낳았는데 특이하게도 머리에 커다란 뿔이 돋아나 있었다. 부부는 그 아기의 모습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여느 아기와 다름없이 건강했기 때문에 만족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뿔 달린 아이가 다섯 살즈음이 되자 마을의 어른들은 아이와 함께 있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고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아이의 머리에 달린 뿔은 흉한 징조라며 사람들이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러한 사람들의 불안이 터지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부부의 옆집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의 이마에서도 뿔이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뿔 달린 남자 아이가 흉한 기운을 퍼트리기 시작했다며 바깥으로 추방하자고 말했다. 결국 뿔이 달린 남자 아이는 마을 뒤의 골짜기에서 숨어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뿔이 달린 여자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마찬가지로 말을 하지 못했던 여자 아이는 집 밖에 절대 내보내지 않으며 키웠는데 누군가가 데려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뿔이 달린 소년과 소녀가 함께 골짜기 근처를 돌아다니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후 마을에서는 일곱 명의 신생아가 더 태어났고 그 중 두 명의 남자아이에게 뿔이 돋아나 역시 마을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결국 네 명의 유니코니언 아이들은 마을 바깥을 떠돌며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있는 건지도 몰라요.”

  내가 전해준 얘기를 차근차근 듣고 있던 소울리에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과연 그럴까요? 물론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힘들지만 그것이 전염이 된다면 왜 마을 어른들의 이마엔 뿔이 나지 않았던 거죠?”

  “뱃속의 태아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사람의 머리에 뿔이 달린다는 건 신체 기관이 확립되는 모친의 자궁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겠죠.”

  소울리에 박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탐사대는 치카오 마을에까지 당도했다. 해가 뉘엿뉘엿 산맥 뒤로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었다. 텐카와 했던 약속대로 마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들뿐이었다. 하보크 소위는 내일 아침부터 수색을 시작하기로 하고 캠프 치는 작업에 몰두했고, 그 옆에 CDC의 대원들은 온갖 의료장비들을 점검하며 풀어놓고 있었다. 카라스 주교는 혼자 있겠다며 사제들을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치카오는 서른 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먼저 와서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을에 촌장은 없습니까?”

  나의 질문에 텐카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이제는 내가 촌장이오.”  

  이제는? 순간 낮에 보았던 조장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시체는 촌장의 시체였던 거군. 그리고 촌장을 이어받은 텐카가 장례를 치뤄준 거고. 그의 어두운 표정 때문에 촌장이 죽은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텐카는 마을 안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많이 처리하는 듯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소울리에 박사가 머물 수 있는 집 한 채를 내 줄 수 있었으리라.
  집의 내부는 지저분하고 허름했지만 소울리에 박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강행군이었던 산행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축복처럼 여기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소울리에 박사는 내 옆에 털썩 드러누워 낮에 다하지 못했던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루도비코 신부의 말처럼 유니코니언은 분명 전설 속의 동물 유니콘의 이름에서 따온 게 틀림없어요. 그런데 성경에서도 유니콘이 등장하는 줄은 몰랐군요. 그러고보니 유니콘에 대한 전설은 동양에도 전해 내려오지 않나요?”

  “기린(麒麟)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제를 알아본다는 영물?”

  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소울리에 박사는 더욱 신이 나서 얘기했다.

  “정답이에요, 첸. 서양이든 동양이든 일각수에 대한 전설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죠. 황제의 얼굴을 가진 자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린의 전설을 들어봤을 때 유니콘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주목할만 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 생각해봐요. 첸. 미국 정부에서 왜 유니코니언에 대해 이렇게 호들갑일까요? 머리에 뿔이 달려 있을 뿐 그 아이들이 괴물인 것도 아니고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것도 아녜요.”

  “하지만 뿔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 그게 아니다?”  

  “그렇죠. 19세기 런던에서는 실제로 유니콘의 뿔이 약의 재료로 공공연히 팔리기도 했어요. 그것은 사실 유니콘의 뿔이 아니라 일각고래의 어금니였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철썩같이 믿었고, 유니콘의 뿔은 불티나게 팔렸거든요.”

  “하보크 소위가 왜 유니코니언을 원하는지 알 것 같군요. 유니코니언을 손에 넣어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아이콘으로 삼으려는 거겠네요. 신비로운 상징으로.”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첸. 하보크 소위가 원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 원하는 거에요.”

  그 때 머릿 속으로 카라스 주교의 강직한 얼굴과 루도비코 신부를 비롯한 사제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유니코니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탐사대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 일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복잡하고 거대한 그물로 얽혀 있었다. 루도비코 신부의 말이 전부 진실은 아닐 것이다. 교황청 역시 유니코니언의 신병 확보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중얼거렸다.

  “어쩌면 모두가 원하는 건지도 모르죠.”



  유니코니언의 존재가 거의 확실시 되고 있었기에 하보크 소위는 레인저 소대원들만을 이끌고 수색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나와 소울리에 박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들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카라스 주교가 사제들을 데리고 자신도 따라 나서겠다며 길길이 뛰었으나 하보크 소위는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한사코 주교를 말렸다. 결국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이유를 가진 에드워드 팔컨만이 하보크 소위와 레인저들을 따라 나설 수 있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지루했다. 어렴풋이 레인저들의 움직임을 눈치 챈 텐카가 우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 아이들을 다치게 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조사할 게 있을 뿐이에요.”

  내 대답이 그다지 안심을 주지는 못했는지 텐카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뿔이 난 두 아이와 그의 사이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여행자의 얼굴만 봐도 그가 살아온 인생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던 나였지만 텐카의 얼굴에서는 그 무엇도 찾아내기 힘들었다.
  정오가 막 지날 무렵 하보크 소위와 레인저들은 우울한 얼굴을 한 채 내려왔다.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의외였다. 한 시간 뒤 하보크 소위는 탐사대 모두를 캠프로 소집했고, 그때서야 우리는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하보크 소위와 레인저 소대가 기슭 중턱에 도달했을 즈음 그들은 첫 번째 유니코니언을 발견했다. 텐카가 들려준 말대로 소녀가 아닌 어린 남자아이였다. 개울에서 세수를 하고 있던 아이를 관찰한 소위는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무력으로 생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작전을 지시했다. 레인저 소대원들은 낮은 포복으로 유니코니언 아이에게 접근하기 시작했고, 누가 봐도 생포는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던 아이가 느닷없이 개울 상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레인저들은 당황하지 않고 아이의 뒤를 쫒기 시작했다. 예닐곱 살로 보이는  앳된 아이와 철저히 훈련된 군인들의 경주였기에 애초부터 결과가 뻔히 보이는 추격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다음 대목에서 하보크 소위는 약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생전 보지 못했던 기괴한 무언가를 목격한 듯한 눈빛이었다. 레인저 소대원들이 아이를 거의 따라잡았을 때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소대원이 픽 하고 눈밭위에 쓰러진 것을 시작으로 유니코니언 아이를 추격하던 소대원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뒹굴기 시작했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위는 추격을 중지했고 쓰러져 있는 소대원들을 추스려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뇌 속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꿈틀대는 듯한 고통에 모든 감각이 마비되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하보크 소위가 가리킨 소대원 중 한 명이 나와 소울리에 박사를 비롯한 일행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유니코니언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두통은 더욱 심해지는 것처럼 보였고, 심각해지면 일시적인 기절 증상까지 나타날 정도였다.

  “어쨌든 우리는 추격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소. 유니코니언들의 예상치 못했던 기괴한 초능력 때문에 생포는 커녕 근접거리로의 접근조차 실패했으니까.”

  하보크 소위의 말에 소울리에 박사가 물었다.

  “그 원인불명의 두통을 일으킨 대원들의 몸 상태는 어떻죠?”      

  그녀의 질문에 답한 것은 소위가 아니라 CDC의 일본인 여성 직원이었다.

  “일시적인 쇼크일 뿐이에요. 뇌가 감당할 수 없는 압박을 받고 잠시 기능을 멈춘 거죠. 정밀 진단을 받아봐야 확신할 수 있겠지만 심각한 장애나 증상을 일으키지는 않는 걸로 보입니다.”

  하보크 소위가 다시 말했다.

  “유니코니언들이 우리 대원들에게 어떤 식으로 공격을 가한 겁니까? 나는 위험을 감지할 만한 어떠한 기색이나 소리, 심지어는 냄새조차 맡지 못했소.”

  “악마의 술수는 교활한지라 인간이 눈치 챌 수 없는 것이오.”

  카라스 주교가 으르렁거리듯 내뱉었지만, 아무도 거기에 신경쓰는 이는 없었다. CDC의 일본인 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격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만약 그들이 레인저 여러분들을 공격하려 했다면 잠복해 있는 그 순간에 실행에 옮겼겠죠. 그 원인불명의 두통이 그들에게 가까이 갔을 때에만 발생하는 걸로 봐서 유니코니언들이 자연적으로 내뿜는 무언가에 뇌가 일시적인 장애를 일으켰다고 보는 게 타당해요.”

  바로 그 때 내가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만난 텐카라는 남자도 그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유니코니언 아이들이 처음 태어났을 당시 곁에 있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는 이유로 불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말이었죠.”

  하보크 소위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옆에 있는 레인저 소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서 그 텐카라는 남자를 데려오도록.”

  잠시 후 레인저 소대원은 텐카와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왔고, 어쩔 줄 몰라하는 텐카의 모습을 확인한 하보크 소위는 다짜고짜 텐카를 쏘아보며 말했다.

  “첸, 내 말을 그대로 전해 주십시오. 그 아이들이 식사를 하는 장소가 어딥니까?”

  “무슨 뜻이죠?”

  내가 되묻자 하보크 소위는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나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비록 누더기였지만 분명 그 아이들은 두터운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다가 굶주리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을. 그들이 오랫동안 골짜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마을에서 식량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텐카는 하보크 소위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보크 소위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마을 뒷편에 유니코니언 아이들 네 명이 식량을 가져가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다. 하보크 소위는 다가가서 잡을 수 없다면 유인해서 잡는다는 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그는 마취총을 가진 레인저 여섯 명에게 잠복을 지시했다. 해가 지기 전에 바로 실행에 옮길 모양이었다.
  바로 그 때 루도비코 신부가 자리를 떠나려는 하보크 소위를 붙잡았다.

  “형제님. 그런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진 작가가 보이지 않는군요?”

  하보크 소위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에드워드는 계곡에서 발을 헛디뎌 부상을 입었습니다. 현재 캠프에서 치료중이고요.”

  “그렇다면 제가 잠시 볼 수 있겠습니까? 그에겐 주님의 은총이 간절히 필요할 겁니다.”

  “저희에겐 일류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고맙지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부님.”

  그 말을 끝으로 하보크 소위는 레인저들을 지휘하러 떠났다. 소위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루도비코 신부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하보크 소위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육안으로 찾아보려 해도 잠복한 레인저들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소울리에 박사, 그리고 카라스 주교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유니코니언이 생포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텐카가 말해 준 장소에는 역시나 두 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이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버섯이나 빵 등 푸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야생에서 구할 수 있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진짜였군요.”

  소울리에 박사가 낮게 속삭였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에서 정말로 한 소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에 있는 검은 뿔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무겁지는 않을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크기였다. 불과 24시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저런 여린 소녀에게 악마의 상징이…….”

  카라스 주교가 중얼거렸다. 그는 소녀의 머리에 난 뿔을 매우 불경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울리에 박사의 시선은 달랐다.

  “흥미롭군요. 단순한 기형이나 돌연변이로 보기엔 모양이 너무 정교해 보여요.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고 싶은데요.”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여섯 명의 레인저와 하보크 소위의 잠복이 발각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소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고, 느린 걸음으로 결국 바구니 앞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소녀가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옆에서 소울리에 박사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그 소리는 나한테서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느닷없이 소녀가 바구니를 팽개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레인저의 잠복이 들킨 것일까? 그러나 소녀가 몇 걸음 달아나기도 전에 수풀 곳곳에서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소녀는 달리던 속도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놀랍게도 소녀의 입에서는 비명 소리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하보크 소위가 벌떡 일어났다. 그가 쾌재를 부르거나 환호성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표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유니코니언이 생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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