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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또 다른 시선
: 대륙에서 온 여섯 통의 편지

잠본이

아직까지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는 ‘중국’과 ‘SF’라는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서 보는 것이 매우 낯선 경험으로 남아 있다. 옛날부터 전해진 중국의 각종 설화와 기담(奇譚), 그리고 일세를 풍미한 무협지 등을 통하여 중국의 판타지 소설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중국의 SF는 류츠신의 장편소설 『삼체』를 제외하면 그다지 본격적으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고, 그런 만큼 일반 대중은 물론 뜻있는 SF 독자들 사이에서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중국 SF는 분명히 실존하며, 정치 사회적 격변으로 인해 몇 번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장르문학의 기수로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아래에 소개하는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바로 그 미지의 세계로부터 우리들에게 날아온 초대장인 동시에,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하는 망원경이기도 하다. 

○ 기아의 탑 / 판하이톈
우주선이 어느 사막 행성에 추락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막의 더위와 괴수의 습격을 피하여 유일한 거주구역으로 등재되어 있는 수도원으로 피신한다. 하지만 수도원은 오래 전에 버림받아 식량도 통신수단도 남아있지 않았다.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생존자들은 동료의 시체를 식량으로 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유일하게 그러한 유혹을 뿌리친 젊은 성직자는 옛 수도승들이 어떻게 연명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수색을 계속한다.

극한상황에 빠진 인간군상이 어떤 식으로 변해 가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생존물인 동시에 종교와 과학의 관계, 허상과 실체의 순환을 끈질기게 탐구하는 도덕극이기도 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해결을 모색하는 성직자, 아는 것은 많으나 무기력하고 병약한 화학 교수, 이해타산이 빠르고 모험을 즐기지만 윤리적 판단은 마비된 보일러공, 그리고 카리스마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일행을 통제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하는 군인이라는 4명의 대조적인 인물을 중심에 놓고 이들의 갈등과 변모를 차근차근 보여주면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성직자는 천신만고 끝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옛 격언을 절묘하게 뒤집은 해결책에 도달하지만 결국 인간의 광기와 비이성에 압도당하여 그 해결책을 써보지도 못한 채 파멸에 이른다. 다분히 냉소적이고 허무감으로 가득한 마무리지만 그러한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서 안타까워하면서도 절로 납득하게 된다. 지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여러모로 다른 생태계 묘사도 낯선 환경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 인물들의 막막함을 배가시킨다. 

○ 고래자리를 본 사람 / 탕페이
릴리안의 아버지는 다양한 장치를 통해 퍼포먼스를 펼치는 행위예술가. 말수가 적고 의사소통에 서툴지만 딸의 행복을 지키거나 자신의 예술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다. 그는 딸의 방학 숙제로 제출하기 위해 고래자리에 위치한 어느 행성의 환상적인 풍경을 입체사진으로 꾸미고 합성이 아니라 실제로 찍은 사진이라고 주장한다. 작품 자체에는 감명을 받았으나 그 진실성에 의심을 품은 한 평론가가 이의를 제기하고, 가열되는 논쟁 속에서 아버지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간다. 마침내 한계에 봉착한 아버지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최후의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성인이 된 릴리안의 시점에서 현재와 과거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아버지의 예술에 대한 기묘한 고집과 부녀 사이의 유대를 묘사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실종에 대한 미스터리를 잔잔하게 풀어 나가는 작품. 아버지의 마지막 행동을 결정지은 것이 과연 딸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자기 예술세계에 대한 집착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쩌면 그에게는 이 두 가지 감정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태로 공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아버지 쪽이지만 릴리안도 그의 비밀을 되짚어보는 과정을 통하여 쓰라린 과거를 탈출, 스스로를 치유하고 소중한 꿈을 확인하는 귀중한 체험을 한다. 기술의 도구적 측면보다 그것이 창작의 방식이나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사회적 측면에 더 주목한 휴머니즘 SF.

○ 지하철의 충격 / 한송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각자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탄 평범한 사람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지하철은 계속 전진할 뿐 역에 정차하지 않고 안내방송도 없다. 예상을 벗어난 사태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초조해하고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할 짓을 저지른다. 기묘한 광기가 지하철 내부를 지배하기 시작한 가운데, 암벽등반이 취미인 한 남자가 차량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알아보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어둠 속에서 그가 마주한 진실은…

처음에는 단순한 납치나 기계 고장으로 인한 차량의 폭주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는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우주적 스케일로까지 확장된다. 그에 따라 장르도 일상에서 갑자기 비일상으로 끌려들어간 이들의 고충을 그린 밀실 스릴러로 시작했다가 종국에는 갖가지 진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괴기 생물학 SF로 전환되는 쾌거를 보여준다. 기관차나 객차들 사이에 연결통로가 전혀 없는 중국 지하철의 특성을 전제한 뒤 승객들이 시공을 초월한 아득한 여행을 경험하면서 저마다 생존을 위해 각기 다른 돌연변이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급기야 각각의 객차가 폐쇄된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기발하고도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다. 중국의 고전 가상박물지 『산해경』이나 올라프 스태플든의 소설 『별의 창조자』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변종 생태계의 묘사도 압권이지만 그 모두가 하나로 수렴되는 결말에서 ‘이러한 세계들은, 모두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의 대뇌 안에서 구상되어 나온 것이다’라고 메타적인 관점을 섞어 뻔뻔하고도 산뜻하게 마무리하는 작가의 센스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 인류의 여신 G / 천츄판
선천적인 결함 때문에 성생활과 출산이 불가능한 몸으로 태어난 미스G는 간절한 기도 끝에 기적을 체험하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하여 오르가즘을 느끼는 특이체질로 변모한다.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챈 모 기관에서 그녀를 잽싸게 스카우트하여 상류층 인사들을 위한 구경거리로 만들지만 교묘한 수단으로 주도권을 빼앗은 그녀는 공연의 내용을 바꿔 나가고 결국에는 자기가 느낀 자유의 오르가즘을 일반 대중에게 전하여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강렬한 종교적 흥분에 사로잡힌 대중은 엄청난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파괴적인 방향으로 내달린다. 

기상천외한 특이체질의 주인공을 내세워 성(性)과 쾌락이라는 테마를 유쾌하고도 미려(美麗)하게 풀어낸 작품. 타인과의 애정이나 접촉 없이 온전히 혼자서 느낄 수 있는 궁극의 성감이 존재할 경우 그것을 보유한 자가 세상에 일으키는 파문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처음에는 그저 다른 여성들과 같은 평범한 행복을 꿈꿨던 미스G는 전신이 성감대로 변해버리는 바람에 그런 행복과는 오히려 더 멀어지고, 마침 무기력에 빠져 진화의 추진력을 잃어가던 인류는 미스G의 특이체질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사람들에게 일깨운 오르가즘은 통제 불가능한 광기로 변하여 더 큰 문제를 낳는다. 고민에 빠진 미스G는 자기의 오르가즘이 꾸며낸 것이라고 거짓 발표를 하여 대중을 진정시키지만 그 때문에 과격파의 미움을 사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다.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해서 사회 전체의 문제로까지 발전했던 미스G의 여정은 다시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자리를 찾는 정체성의 문제로 회귀한다. 그녀가 일깨우는 쾌락에 면역이 있는 한 남자의 존재가 그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 탈피 / 자오하이홍
깊숙한 지하 동굴에 사는 혈인(穴人)들은 평생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아홉 번에 걸친 탈피를 하고 어둠 속에서 살다 죽어간다. 그런 혈인으로 태어났으나 우연히 지상인의 탐사대를 만나 땅 위로 올라온 ‘공’은 배우로 데뷔하여 성공을 거두고, 현재의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다음 탈피를 약물로 억제하며 가식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녀보다 나중에 올라온 동족 ‘투’는 그러한 그녀의 생활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생명마저도 위험할 수 있는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현재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변화와 성장을 거부하며 계속 같은 상태에 머무르려는 ‘공’과 진정한 자신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생명의 불꽃에 스스로를 불사르는 ‘투’의 대조를 통해 진정한 생명이란, 진실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작품.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탈피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신체를 분해했다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혈인의 생태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인간이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생하는 모습에 대한 은유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작품이 쓰여진 사회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있는 거대국가 중국의 일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수민족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이야기로 독해할 여지도 있다. ‘투’의 선택에 내심 공감하면서도 끝내 그의 뒤를 따르지 못한 채 거짓된 삶을 이어가며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공’의 처지는 각자의 현실적인 제약에 의해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고 비루한 삶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처지와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더더욱 심금을 울린다. 

○ 우주표 담배 / 텅예
인류가 우주로 이민하여 행성 지구가 중요성을 잃어버린 미래. 담배업계를 독식하여 부를 축적했으나 합성 대체품 ‘센티멘털 니코틴’의 창궐로 인해 경영위기에 빠진 ‘우주 담배’사(社)는 일생일대의 엄청난 도박을 기획한다. 텅 빈 지구를 통째로 사들인 뒤 수만 킬로미터의 우주 정거장을 지구에 연결하고 바닷물을 몽땅 빨아들여 극상(極上)의 담배를 재배·가공해서 상류층 인사들을 위한 초거대 흡연실을 제공하는 것이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이 계획은 평생의 꿈과 전 재산을 바친 어느 경영인의 노력에 의해 점점 현실로 바뀌어 간다.

상상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장대한 이미지로 독자를 압도하는 동시에 그럴싸한 물리학적 설정을 구축하여 그 이미지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중국인답게 엄청난 스케일과 유쾌한 리듬으로 쉴 새 없이 뻥을 치지만 마지막의 기발한 반전으로 인해 그 뻥이 한 순간에 납득이 가게끔 배려한다. 부지불식간에 인간을 서서히 침식하는 ‘중독’의 문제와 그로 인해 안타까운 처지에 빠지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초거대 구조물을 소재로 한 하드 SF와 인간 의식의 밑바닥을 탐구하는 뉴웨이브 SF를 한 이야기 속에 집약하는 놀라운 위업을 달성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환상특급』 같은 SF 앤솔로지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로 영상화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법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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