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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노래같지 않은 세상

2014.03.01 15:4203.01

노래같지 않은 세상





서영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하필이면 과외를 마치고 막 집에 들어온 직후인 새벽 한 시의 일이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서영이 죽었다고, 자살했다고 말하며 은경이는 계속 울기만 했다.


서영이가 문자 보냈는데...... 미안하다고......”

걔 왜 그래. 아니, 미안하면 왜 죽어.”

아까 나 알바 나가려는데 그랬어, 집에서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근데, 나도 여유 없잖아. 생각 좀 같이 해 보자고 하고 나왔는데, 문자가 온 거야. 미안하다고, 집에 경찰 불러달라고.”


은경은 울었다. 서영이 걱정할 때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말할 수만 있었다면, 서영이 죽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은경이도 사정 뻔한데, 걔 성격에 책임지지도 못할 그런 허세를 부릴 수도 없었겠지.


그래서 넌 지금 어딘데?”

경찰서.”

“......거긴 왜?”

내 방에서 자살했으니까. 그냥 간단히 조사만 받으면 된대......”

아우, 정말.”

어차피 경찰은 내가 들어오면서 부르기도 했고. 말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사장은 인간이 좀 된 사람이잖아. 후배가 우울증 있는데 이런 문자 와서 걱정된다고 하니까, 주말에 일 더 하라고 하고 나 바로 보내줬거든. 그래서 경찰 불렀는데, 나 도착할 때 마침 오더라고. 근데 집주인이, 경찰들이 오니까 아무 일 없다면서 돌려보내려고 그러는거야.”

아니, ?”

왜는 왜야, 경찰 왔다갔다 하면 집값 떨어진다고.”

완전 사이코네.”

내가 전부터 그랬잖아. 완전 미친 년이라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전부터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은경이네 집주인은 확실히 좀 심한 인간인 모양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집값 타령이라니. 하긴, 지난 겨울에도 보았지만 정말 독하긴 독한 인간이었다. 아무리 자기가 집주인이라고 해도 엄연히 세입자가 들어와서 사는 방인데, 수시로 왔다갔다 하면서는, 벽에 못을 박는 것도 아니고 고작 스티커못 몇 개 붙이는 것 조차도 나중에 도배 다시 해야 한다고 그 난리를 쳤으니. 은경이 그 방에 처음 이사 들어갈 때에만 해도, 도배를 새로 했다고 빠득빠득 우기는 그 방에는 천정 중간에 파이프가 툭 튀어나온데다 그 주위로 시커먼 곰팡이가 번져 있었고, 방구석 어디 한 군데 결로 잡혔던 흔적이 없는 데가 없었다.


내가 경찰 데리고 들어가는데 말야, 그 썅년이 뭐라는지 알아? 경찰차 저기다 세우래. 자기네 원룸 앞에 세우면 안된다고. 아후, 진짜. 난 서영이한테 무슨 일 있을까봐 미치겠는데, 집주인이라고 개같은 년이 아주 유세가....... , 시발.”


하긴, 서울은 아니더라도 수도권에서, 대학 근처에서 그만한 원룸 주인 쯤 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나 보지. 은경은 집주인을 욕하다가 울었고, 울다가 다시 집주인을 욕했다. 마치 집주인이 서영을 죽이기라도 한 듯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런데.”


묻자마자 나는, 그 질문에 죄책감은 물론 호기심도 조금은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건 아닌데. 나는 벽에 머리를 쿡 처박았다.


문 열어주고, 경찰 먼저 들어갔어. 어떡할까 하다가 나도 같이 들어가려는데 경찰이 못 들어가고 잠깐 안을 보는거야. , 너도 알지. 내 방에 그 파이프.”

겨울에 물 떨어지는 그 파이프. 알지.”

거기 목을 맸어.”

“......본 거야?”

.”


, 여름에는 물이 새고 겨울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 파이프는, 은경의 책상 바로 옆이었다. 아마도 의자를 밟고 올라가 목을 맨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은경이는 이제 어떻게 하나, 그 방에서 이제 어떻게 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은경의 집주인이 그 꼴을 보고 은경에게 어떻게 해 댔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짐작은 갔다. 아니, 그런 생각이 문제가 아니다.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졌을지 모르고 은경이는 그 방에서 잠들 때 마다 서영이 생각을 해야 할 지도 모르지만, 서영이는 죽었으니까.


서영이는 죽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한심하게도 대체 내게 검은 옷이라고는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서영이 장례식장에 갈 때 입을 검은 옷 말이다. 대학 오면서 산 옷들이 죄 다 알록달록 싼티나는 유니클로 물건들 뿐이라, 검은 옷이라고는 완전 한겨울에 입는 코트 정도 뿐. 그렇다고 남의 장례식에, 그것도 후배 장례식에 만화 그림이나 반짝반짝한 스팽글이 잔뜩 붙은 것을 입고 가도 되는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사람이 죽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어머니 연락처는 있는데, 그거 경찰이 전화 걸고...... 집주인은 그 와중에 나보고 방을 치우라잖아.”

진짜 진상이다. 방을 뭘 치우라고?”

...... 있잖아. 사람이 목을 매면.”

?”

사람 죽으면...... 괄약근이 다 열려서...... 근데 경찰이, 사람 죽었으니까 지금 손대면 안 된다고 과학수사팀이 올 때까지 두라고 그랬어. 폴리스라인 치고....... 나 갈아입을 옷만 겨우 들고 나왔어. 그 와중에 집주인이 어디서 죽어도 여기서 죽느냐고, 왜 걔를 재워줬냐고 나한테 얼마나 해 대는지.”


은경이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근데말이야, 근데말이야...... 행거에 아무리 봐도, 누구 장례식에 입고 갈만한 게 없는 거야...... 까만 색이라고 있는게, 봄에 입던 까만 핫팬츠하고 레깅스밖에 없는거야...... 나 미친 것 아냐?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나는 마음이 먹먹하다가,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한 것은 나 혼자 뿐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주 조금 안심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도 그래. 나도 까만 옷 없어. 어떡해.”





 

 

은경은 어떻게든 병원에 좀 와 달라고 그랬지만, 나갈 수는 없었다. 엄마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딱 가로막고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엄마 왜 그래, 지금 나 후배가 죽었다니까?”

그러니까 그러지! 어휴, 이 등신같은 것.”


엄마는 내 등을 찰싹 때렸다. 은경이보다는 그래도 옷장 상태가 좀 나았던 나는,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색 진에 적당한 블라우스를 입고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 얇은 블라우스 너머 엄마 손이 매웠다.


옷 때문에 그래? 없는 걸 어떡해?”

자살했다며! 그런데 얼씬거리다가 경찰에서 조사하고 그러면 어떡해?”

지금 은경이 조사받고 있다니까? 병원에 아무도 없단 말야.”

근데. 네가 그 죽은 애 피붙이야 뭐야? 병원에 아무도 있건 없건, 왜 하필 네가 가야 하는데? 너희 학교 교수나 뭐 그런 사람이 가야지 왜 네가 가?”

여기가 고등학교야? 누가 죽었다고 교수가 책임지고 그러는거 아니거든?”

하이고, 그 돈도 참 날로도 받아먹네.”


엄마는 기막혀했다. 알바 하고 돌아와서 피곤해 죽겠다던 애가 갑자기 뛰어나간다니, 아무래도 미쳤거나 그게 아니면 남의 장례식 핑계로 술이라도 마시고 들어올 생각이라고 단단히 착각하신 모양이었다.


, 시간 많은가보다? 그렇게 시간 많으면 와서 이거 눈알이나 붙여.”

가봐야 한다니까?”

갈 거면 들어오지 말고.”

엄마!”

무슨 계집애가 이렇게 고집이 쇠고집이야. , 너 아니어도 네 후배 장례식 밤샘하고 앉아있을 애 많거든? 계집애가 그러는 거 아냐. 가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

엄마는 하느님도 믿는다면서, 스무 살 밖에 안 된 애가 객지에서 죽었는데......”

너 같은 어린애가 그런 데 다니는 거 아니라서 그래, 엄마 말 좀 들어!”


나는 엄마에게 질질 끌려 내 방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엄마는 내 방문을 닫아걸며 늘 하던 말씀을 하셨다. 너도 커서 너같은 자식 낳아 봐, 그래야 엄마 마음을 알지. 알긴 뭘 알아. 나는 폰을 침대에 집어던지고 웅크려 누웠다. 하느님 믿는다며 주말마다 무슨 봉사 한다고 아줌마들이랑 몰려다니면서, 정말 곤경에 처한 사람한테는 그게 뭐야. 거짓말쟁이. 그때 주연이에게 전화가 왔다.


이야기 들었어?”

.”

한민지 넌, 가 볼 거야?”

가려고 했는데...... 엄마한테 딱 잡혔어.”

그렇구나.”

?”

이 시각에 편의점 비우고 어떻게 가.”

“......하긴.”

바로 길 건너인데. 사장에게 전화했는데, 안 된대. 절대 안 된대. 잘릴 생각하고 가래.”

“......좀 그렇다, .”

학교 친구가 죽었다고 그러는데도 거짓말 하지 말라고. 알바 째려고 자기 할머니 죽었다고 그러는 애들 수도 없이 봤다고 그러는데, 그런 애들도 설마 새벽 두시에 그러진 않았을 거 아냐.”

어떡하냐.”

그러게...... 손님도 없는데 살짝 갔다올까.”

아서, 그러다가 걸리면 지난번처럼 페이도 못 받고 잘린다.”

“......근데,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주연이 속삭였다.


, 아까부터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 서영이가 죽었다는데, , 생활비 생각했어. 알바비 다음 주에나 나오는데, 나 지금 4만원 있단 말야. 4만원. 그걸로 열흘 살아야 하는데 어떡하나,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 되게 바보같지 않냐?”


바보같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은경이도, 못지 않게 하찮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네 말대로, 서영이가 죽었는데. 어쩌면 우린 이런 생각들만 하고 있을까.


사람이 죽었는데, 그 애는 지금 부모님도 가족도 없이 혼자 병원 영안실에 누워 있을 텐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서영이의 학교 선배였고, 그 애는 우리들이 저보다 뭔가 훨씬 더 사회 경험도 많고,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우리들은 고작 대학 2학년이었다. 고작 스물 한 살, 만으로 이제 겨우 스무 살이었고, 자살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뒤처리를 하는 것은 고사하고 문상조차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거기 빈소에서 국그릇 나르던 것 말고는, 누가 죽었을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나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서영이의 부모님은, 이 소식을 들으셨을까. 경찰에 신고를 했다니까, 어떻게든 이야기가 들어가긴 했을 거다. 휴대폰에도 부모님 연락처가 있을테니까. 서영이는 지방 출신이었다. 서영이네 부모님은 서영이가 중학교 다닐 무렵 이혼을 하셨다고 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아버지와는 거의 만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아픈 엄마와, 아직 고등학생인 남동생. 이렇게 셋이서 살았다고 했다. 나와 주연이와 은경이가 함께 속해 있는 노래패에서, 서영이는 구석에서 혼자 소주를 홀짝이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국립대에 올 성적이 못 되었으면 전 대학에 못 왔을 거예요.


우리 모두, 주연이는 제 생활비를, 은경이는 생활비는 물론 학비도 벌어야 하는 입장이라,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나는 그나마 학교에서 마을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진우리 부모님 댁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니 사정이 나았다. 알바가 끊어져도 밥을 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학비는 늘 한국장학재단의 신세를 져야 했고, 온 가족이 함께 힘 합쳐서 언니와 나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다. 공부를 잘 했고 사립대에 간 언니는 집안의 자랑이었지만, 내가 국립대에 간 이후로는 늘 계집애가 쓸데도 없이 돈만 처먹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하는 일 없이 면구스럽게도 효녀 소리를 듣게 된 나는, 언니와 소원해졌다. 언니는 이제는 나와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 탓만은 아니었을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서영이는 늘 형편이 어려웠고, 어머니는 자주 편찮으셨다. 그러니 갓 대학 들어온 애가 정말 쉬지 않고 알바를 구하러 뛰어다녔다. 가늘가늘하니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네다섯 개 씩 하면서도 버텼다. 그러다 보니, 학교 기숙사의 통금 시간을 어기게도 되었던 모양이다. 사정했지만, 학교 기숙사에는 늘 대기자가 줄을 섰고, 사감은 그런 사정 다 봐주다가는 아무것도 못 한다며 그때마다 서영에게 벌점을 매겼다. 고작 세 번, 통금 시간을 어긴 것 뿐이었다. 서영의 이름이 기숙사 현관에 나붙고, 서영은 바로 쫓겨났다. 그렇게 가방 하나 달랑 손에 든 채로 쫓겨나 우리 노래패 학회룸 구석에 웅크려 있던 서영을 주워다가 자기 자취방으로 데려간 것이 바로 은경이었다.

빈 터 모양으로 대충 생긴 그 건물에서도 구석방이라, 직사각형과는 거리가 멀게 생긴 은경의 방은, 들어갈 때는 묘하게 좁은데 안쪽에 보면 사람 반 명쯤 더 누울 자리가 애매하게 남았다. 기숙사에서 덮는 이불 한 장과 갈아입을 옷 몇 벌이 든 가방 하나만 들고 쫓겨난 서영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은경이도 형편은 어렵지만 각박한 애는 아니라서, 그렇게 쫓겨나서 오갈 데 없게 되었으니 잠깐 같이 사는 것, 따로 집세나 생활비를 달라 할 생각은 없었다지만, 서영이는 또 그런 데는 깔끔한 아이였다. 은경이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알아서 집세며 반찬값을 내놓았다.


그런 서영이가 죽었다. 은경의 집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 것도 아니고, 방 안에서 목을 매고. 세상에. 나는 그 와중에 집값 타령을 했다는 은경의 집주인이, 이해될 것 같아 무서웠다. 앞으로도 살아야 할 방에서, 자기가 좋은 마음으로 데려다 살았을 후배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때 은경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대체 어떤 식으로 애도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이런 내가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순간에, 돈 걱정을 하고 알바 걱정을 하고 장례식에 입을 검은 옷이 없어서 고민을 하고. 누군가의 죽음은 정말로 이런 취급을 당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빈소조차 차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병원에 가 보기라도 했다면 마음의 짐이라도 덜었을텐데. 경찰 조사를 받고 혼자 병원에서 여기저기 연락을 하고 있을 은경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이런 내가 하찮아서, 숨 쉬는 것조차 아까웠다. 나는 끄윽끄윽 숨죽여 울며 단톡 방에 서영이의 소식을 알렸다. 까똑, 까똑. , 누가 죽어? 자살했대. 걔가 왜 자살을 해. 부모님은. 왜 죽었대. 남자 문제? 돈 문제. 어떡하냐. 은경이 방에서 자살했대. 은경이는 무슨 죄야. 스마트폰이 순식간에 서영이의 죽음으로 가득 찼다가, 다시 산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하지만, 처음 만난 죽음이 이런 식으로 여겨져도 되는 것일까. 정말로.

 



 

단톡 돌린 덕분에 소식은 빨리 퍼졌다. 아침 무렵에는, 서영이 죽었는데 공강 안 하냐는 말도 올라왔다. 미친 년. 우리는 더러는 한숨을 쉬기도 하고, 더러는 야유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결국 공강은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며 아침을 맞았다. 씻고 아침 밥을 먹는 내내 엄마는 문상은 가도 되지만 밤샘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왜 엄마 말에 대답을 안 해?”

“......봐서. 봐서 한다고.”

, 한민지. 걔가 네 피붙이야, 뭐야.”

엄마.”

오냐, 그래. .”

걔 말야, 고향이 저기 경남 쪽이거든? 걘 어젯밤에 죽었는데, 걔네 가족들은 연락만 받았지 와 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을 거라고. 서영이네는 차도 없고 아빠도 이혼해서 없어. 가족이라고는 엄마랑 동생밖에 없는데 친구들 선배들이 좀 챙겨주는게 뭐가 그렇게 나쁜데?”

남자애들 있잖아, 남자애들.”

걔들이 서영이 남친이야 뭐야. 왜 걔들이 챙겨줘. 그리고 엄마, 우리 학교 애들 열 명 있으면 남자애들 두셋밖에 안 되거든? 우리 학교 반 여학교 소리 듣는 학교인데, 왜 그런 건 남자애들 나서라고 그래? 2학년 학회장인데 학회장이 그런데도 못가보고 이게 뭐냐고.”

누가 학회장 그런 것 하라고 했니? 딴따라 될 것도 아니면서 어디서 데모할 때 부르는 노래나 부르고 다니고. 얌전히 시험 준비나 할 것이지 노래 부르고 다닌다고 쏘다닐 때부터 내 알아봤다. ......”

언젠 대학 가면 다 하라더니!”

그래, 대학 갔으니 공부도 하고, 알바도 좀 열심히 하고, 시간 남으면 집안일도 하는 거지 누가 그런 데 신경을 쓰래? , 그렇게 쓸 데 없는 짓 하고 다닐 거면 학교 가지 마. 학교도 가지 마.”

됐어. 엄마 진짜.”


나는 자리를 박차듯 일어나 가방을 들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정말로,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은 이정도밖에 안 되는 일일까.


누가 죽었다고 신문에 실리면, 그 죽은 사람이 이제 갓 스무살 된 젊은 사람이라면, 다들 그 젊은 나이에 죽어서 아깝다고, 불쌍하다고, 지금 힘든 시기만 어떻게든 지나가면 좋은 날이 올 텐데 안타깝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데 대고 악플을 달고 다니는 쓰레기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오히려 이렇게 현실의 사람들이, 누가 죽었을 때 보이는 반응이 더 공포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강의실 구석에서, 숨을 죽여도 비집어 나오는 소리, 어깨를 떨던 은경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울음 소리를 듣고 있는 아이들 중에도, 공강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겠지. 문상 같은 것은 가기 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을 거다. 과 회장 선배가 조의금을 걷는다며 돌아다녔다. 만원씩 내라는 말에 강의실 분위기가 금세 안 좋아졌다. 누군가가 불쑥 물었다. 어차피 이따가 문상 갈 건데 그거 안 내도 되잖아요? 다른 아이의 목소리가 바로 따라붙었다. 그거 내면, 이따가 조의금 안 내도 되는 거예요? 과 회장은 짜증을 냈다.


이건 과 이름으로 내는 거니까, 만원씩 내.”

과비 냈잖아요. 과 이름으로 하는 거면 과비로 해요.”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같이 앉아 있던 주연이를 흘끔 쳐다보니, 주연이는 손끝만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주연이에게 나직하게 속삭였다.


내가 빌려줄게.”

고마워.”

알바비 받으면 줘.”

.”


학교에 와 보니, 서영이 이야기는 꽤 구체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첫 타격은 기숙사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기숙사생 애들은 다들 입을 모아 그 깐깐한 사감을 욕했다. 사감이 결국은 애를 하나 잡고 말았다고. 그 다음은, 알바를 잘렸다고 했다. 1학년 애들이 한 말이었다. 일하던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서영은 일자리를 잃었다. 하필 제일 페이가 세던 곳이었다. 그런데다 어제 음악 실기시험 본 것을 망쳤다고 했다. 음악 과목 교수는 꽤 까다로웠는데, 자기가 가르치지도 않은 수준을 시험때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작자였다. 장차 교사가 되면 악기도 두루두루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해도, 평생 피아노 학원 한 번 안 다녀 본 애가 갑자기 소나티네를 치고 소나타를 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3, 4학년도 아닌 1학년에게는.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다음 학기를 다닐 수도 없을 것 같다던 서영이에게는 타격이 컸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아프셔서 급히 돈이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어젯 밤 안에 어떻게든 보내달라고 했다고. 어머니가 편찮으셨고, 그걸 고민하다가 자살했다는 말에 다들 정의의 사도라도 된 듯, 어떻게 돈을 모아서 어머니께 해 드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떠들기 시작했다. 다음 아고라나 뭐 그런 데 올려서 모금을 하자는 말도 나왔다. 아까는 만원 내는 것도 벌벌 떨었으면서. 그때 은경이가, 나와 서영이를 슬쩍 잡아끌었다.


?”

무슨 일이야?”


은경은 우리를 끌고 강의실 밖으로 나와, 아예 한 동을 더 가서 지하로 내려갔다. 익숙한 장소, 우리 노래패 학회룸이 있는 곳이었다.


노래패라고 하면 예전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북적였다는데, 보수적인 국립대라고 해도 노래패에는 사람 끊이는 일이 없었다는데, 그것도 사실은 다 옛 말이 되어버렸다. 회원은 제법 많았지만, 우리 기수 중에서 꾸준히 나오는 애들은 우리 셋 밖에 없었다. 그나마 1학년중에 꾸준히 나오던 서영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 볕도 들지 않는 지하 구석, 늦여름에도 냉기가 돌던, 지금은 오싹하도록 한기가 가득한 학회룸 문을 열고 들어가며, 우리는 이제 정말로 서영이는 이곳에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들자 라커가, 서영이의 교과서와, 선배들의 것을 다시 복사해서 묶은 악보가 보였다. 올 가을 행사 때 같이 부르기로 했던 노래만큼 좋은 세상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나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그 악보를 만지작거렸다.


이거...... 정리해서 어머니 갖다드려야 할 텐데.”


은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은경을 바라보았다. 주연이도 이상하다는 듯 은경이를 쳐다보았다.


은경아?”

“......아까 어머니 뵈었어.”

“......”

장례식 하실 형편이 아니라서, 그냥 화장 하신대.”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러긴.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 원래는 무덤도 쓰는 거 아니라는데.”

어머님이 그러셨다고?”

외삼촌이. 서영이 외삼촌.”

“.......너무한다.”

너무하는 게 아니면, 우리가 그 비용 대 드릴 수나 있고? 못 하잖아. 불효자식이 어떻고 해도, 결국은 돈 문제인 것 뻔히 아는데.”

어머님은 괜찮으시대?”


주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님 편찮으셔서 급히 돈 필요했던 거라며.”

나도 그런 줄 알았어.”


은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정말 그런 줄 알았어. 동생에게서 온 문자, 나한테도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어머니가 너무 멀쩡하신 거야. 어디 편찮으신 것 같질 않은 거야. 어떻게 된 건지 알아? 서영이 동생이, 그 개같은 새끼가...... 노스 패딩 입고 싶다고......”


은경은 학회룸 구석에 놓인, 스프링이 튀어나오도록 낡은 소파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으며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소리는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비명같기도 하며, 짐승 소리처럼도 들렸다.


동생이 노스 패딩 때문에 그렇게 뻥카를 친 걸 모르고....... 서영이는 정말 자기가 돈 못 구하면 엄마 죽는 줄 알고 어제 나 붙들고 울었는데...... 서영이 불쌍해서 어떡하니. 어머니가 그 이야기 들으시고 정말 어떻게 말도 못 하게 우셨어. 근데...... 집주인년은 병원까지 쫓아와서는, 사람 죽은 방인데 이제 거기서 누가 사냐고, 아주 개지랄을 하는 거야. 소문 가라앉을 때 까지 방도 안 나갈 테니 그 돈을 자길 달라고. 그 방, 서영이 방 아니거든? 살아도 내가 계약해서 사는 방이고, 그거 월세도 아니고 연세로 이미 연초에 다 준 거거든? 근데 그 지랄을 하는 거야, 나도 그랬지, 사람 죽은 방이니 방세 빼줄 것도 아니면서 어디서 약을 파냐고. 집주인년이 나보고 나가라고 그러더라. 씨발년. 그 와중에, 자식 죽은 엄마 앞에서 그 소리가 입에서 나오냐. 지도 자식 키우고 어디 교회 집사라고 그러는 여편네가.”


우리는 은경의 울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가 잘못되었을까. 생각할 수도, 감히 말을 보탤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이 노래같지 않은 세상에서, 서영이는 차라리 도망친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구 하나, 그 애의 죽음을 진짜로 슬퍼하고 위로하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그 애가 술 취하면 부르던 그 노래처럼, “내 안에 지지 않는 별 하나를 띄우지 못한 거라고. 우리는, 그 낡은 소파 위에서 셋이 서로 체온을 기댄 채 웅크려 있었다. 띄엄띄엄, 그 애와 함께 부르던 민가들을 부르면서,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카카오톡이 수십 번은 더 소리를 내고 전화벨이 몇 번은 더 울리도록, 그 학회룸 밖으로 한 걸음도 걸어나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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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로봇 반란 32년1 2014.04.30
양원영 효용가치1 2014.04.30
아이 2014.04.30
赤魚 흔한 남자들의 기적 (본문 삭제) 2014.04.30
미로냥 채미가(采薇歌) 2014.04.30
곽재식 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 (본문 삭제)8 2014.03.31
정도경 흉터 -- 본문삭제 2014.03.31
아이 지옥의 분홍, 로희 2014.03.31
양원영 마에스트로 G4 2014.03.31
해망재 노래같지 않은 세상 2014.03.01
곽재식 망했다4 2014.03.01
pilza2 우주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2014.03.01
아이 무서워서 2014.03.01
미로냥 페일 블루 발라드Pale blue ballad 2014.03.01
해망재 사과나무 2014.02.01
곽재식 꿈 속의 여인4 2014.02.01
pilza2 두 부부 이야기1 2014.02.01
정도경 201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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