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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파도

2013.08.31 22:5808.31

파도

 

1.

‘윗동네’의 레스토랑은 꽤나 화려한 곳이었다정각 열두 시에 문 앞에 도착해서도 나는 어쩐지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앞에 서서 좀 망설였다그리고 망설이던 끝에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을 때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왜냐하면 사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가 서 있던 그곳은 문 앞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외부 장식이 복잡하다 보니까 내가 보기엔 꼭 옆으로 여는 문처럼 생겼는데 그냥 통유리에 기둥을 박아 모양을 냈을 뿐이고 정작 입구는 다른 데 있었다그런 저런 이유로 나는 조금 늦었다.

“죄송합니다오래 기다리셨어요?

복도 안쪽 방에 헐레벌떡 들어서며 내가 물었다이모는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오래는 아니지만 좀 기다렸다와서 앉아.

이모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성격이라서 어조가 저렇다나는 이모 옆의 의자를 빼면서 속으로 좀 웃었다.

“인사해이쪽이 내가 말한 우리 친구 딸저쪽은 내 옛날 제자였던 B선생.

자리에 앉으며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이모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분도 마찬가지로 나를 향해 웃으며 답례로 고개를 살짝 움직여 보였다이모가 말했다.

“우리 B선생이 지금 결혼한 지 몇 년 차랬지? 15?

17년이랍니다.

B선생님이 여전히 상냥하게 웃으며 정정했다이모가 말을 이었다.

“그래결혼 17년 차에 아이도 셋이나 낳아서 훌륭하게 잘 키우고…둘은 쌍둥이였지?

“네.

B선생이 자랑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도 잘 짰고 운도 잘 따라줘서 두 명을 한 번에 해결했답니다.

“그래천운이지.

이모가 웃었다그리고 덧붙였다.

“얼마 전에는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 키우는 데 대한 책도 썼어베스트셀러 작가야.

말하면서 이모가 나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B선생은 수줍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아유베스트셀러까지는 아니구요그냥 제 나이또래 여자분들이 공감을 좀 많이 해 주신 덕분이랍니다.

“그 책 나도 읽어봤는데문장이 참 좋아아주 술술 넘어가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구.

이모가 칭찬했다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 B선생이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전문가인데거기다가 중매를 그렇게 잘 선대요여태까지 몇 쌍이나 성사시켰다고 그랬지?

“여섯 쌍이랍니다.

B선생님이 재빨리 대답했다.

“제가 가장 최근에 맺어준 부부가 여자가 서른 아홉이고 남자가 마흔 여섯인데보자마자 서로 첫눈에 반해서 한 달 만에 결혼했답니다지금 얼마나 깨가 쏟아지게 잘 사는지 모른답니다.

B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지엽적인 사안 하나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저 사람은 어째서 거의 모든 문장을 -답니다’로 끝맺어야만 하는 것일까글을 그런 식으로 쓰는 사람이야 많이 봤지만 실제로 말을 저렇게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이모가 격려하듯이 계속 물었다.

“그 남자 쪽이 친척이랬나?

“사실은 저희 시아주버님그러니까 제 남편의 형이랍니다.

B선생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이모가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집안에서 아주 경사가 났겠네?

“그럼요시어머님이 얼마나 좋아하시던지…얼마 전에 드디어 라이움으로 올라와서 첫 아이 낳고 정말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저한테 거의 매일같이 사진도 보내고 그런답니다.

“그것도 재주야재주.

이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B선생 복 받을 거야나는 그런 재주가 없어서…이제 은퇴하기 전에 얘를 좋은 사람하고 맺어주고 가야지 이렇게 물 속에다 버려두고 어떻게 나 혼자 남쪽으로 내려가겠어.

이모는 한 달 뒤에 퇴직한다은퇴하고 나면 햇볕 좋고 침수 걱정 없는 남반구로 내려갈 예정이다오늘의 모임도 처음에는 이모가 짐을 싸다가 갖고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어머니의 유품을 발견했으니 와서 보고 가져가라고 연락한 것이 시초였다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대화가 이어지다 보니까 알게 된 바어머니의 유품은 핑계였고 진짜 이유는 중매였다.

B선생이 홍조를 띠며 말했다.

“제가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딱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그런데 보통 그렇게 어머이 여자쪽하고 저 남자쪽하고 이어주면 될 걸 내가 여태까지 왜 몰랐지그런 생각이 들면 그 뒤로는 거의 일사천리로 성사가 되더라구요저희 시아주버님 때도….

B선생은 자신이 남편의 형을 결혼시켜 라이움에 정착시킨 과정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이야기했다이모도 흥미롭게 듣는 것 같았다그리하여 선 볼 당사자인 내가 자리에 나타난 지 삼십 분이 지났을 때 주선자가 될 B선생이 드디어 나를 직접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언제 만나는 게 좋아요이번 주중이 좋겠어요주말?

 

2.

라이움(Raium)은 허공의 성이다급격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피해 인간이 살기에 최적화된 주거지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핵심은 최적화된 주거환경을 ‘건설’할 뿐만 아니라 ‘유지’한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서 해수면이 상승한데다 해류와 기압의 변화로 인해서 태풍과 허리케인쓰나미 등 심각한 수해가 계속 발생한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었다전지구적으로 해안가의 도시들이 침수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도시들을 뒤덮은 바닷물은 방사성 물질에 오염돼 있었다또한 북반구에서 여름에 수해가 지나간 뒤에 가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짧아지고 겨울은 길고 극심하게 추워졌다물에 뒤덮인 도시들은 얼어붙었고이듬해 여름에 잠시 날씨가 풀려 얼음이 녹으면 즉시 홍수가 나서 다시 물에 잠겼다.

주로 북반구의 유럽과 아시아북미 대륙에 몰려 있던 소위 ‘선진국’들은 대부분 물에 잠기거나 얼음에 덮여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 돈이 있고 권력이나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남반구로 떠났다침수되지 않은 지역 중에서 사막화의 위협도 비교적 덜 받은 남미의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일부 지역이 일차적으로 인기가 높았다남부 아프리카도 기후적으로는 침수와 빙하기의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콩고나 르완다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잠비아처럼 에이즈 등의 질병이 창궐하는 지역이 많아서 모잠비크를 제외하면 남미만큼 인구와 자원의 대량 유입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물론 이런 지역에서도 기후이상을 피해 도망쳐온 일명 ‘기후난민’들을 무작정 반갑게 받아주지만은 않았다기후가 온난한 지역에서 안전하게 자리 잡아 새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았다모든 것은 결국 돈과 권력이 결정했다. 그런 돈이나 권력이나 연줄이 없는 사람들은 다시 물에 잠기고 얼어붙은 자기 나라로 추방되었으며 그 중 많은 수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죽었다.

여름이면 물에 잠기고 겨울이면 얼어붙는 땅을 떠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남아서 자연과 싸우던 사람들이 어찌 보면 더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달리 갈 곳을 잃은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물 밑으로 들어가거나아니면 하늘로 떠오르거나.

인간이라는 종은 어떻게든 계속 생존할 방법을 찾아낸다.

물이 덮치는 여름과 얼음이 덮치는 겨울을 수십 번 겪은 끝에 이제까지 인간이 알던 지구라는 작은 세상의 모습은 완전히 재구성되었다생산시설과 기반시설은 물 밑으로 내려갔다또한 그러한 시설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함께 물 밑으로 내려갔다. 방사능에 오염된 바닷속햇빛도 달빛도 미치지 않는 해저도시의 생산 시설에서 노동하며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이런 사람들은 물리적인 위치로 보나 사회적인 위상으로 보나 밑바닥 계층으로 여겨졌다.

이 밑바닥 계층이 물 밖으로 나와서 중산층으로 발돋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아이가 있는 가족을 중심으로 공중의 성 라이움에 입주할 권리가 주어졌기 때문이다다만 조건은 반드시 결혼한 부부여야 하며입주 이후 일정 기간 이내에 정부에서 인구통계에 따라 결정하는 숫자만큼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출산 후에는 막내가 만 15세가 될 때까지 부모 중 한 명이 전업으로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안 그래도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는 시점에서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자연재해로 인해 엄청난 사망자가 나왔고 그 중 많은 수가 노약자와 어린이였기 때문에, 인구를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오염된 바닷물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내놓은 고육책이었다.

실제로 이런 정책을 시행했을 때 반발은 상당히 심했다규정에 전업으로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부모 중 한 명”이라고만 정해져 있을 뿐 반드시 어머니나 아버지여야 한다고 특정한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어차피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여자 쪽이고 출산한 뒤에는 휴식과 회복을 위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현실적인 상황들 때문에 여성은 실질적으로 출산과 함께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더욱이 정부에서는 라이움에 입주하거나 계속 거주하려면 아이를 특정 명수 이상 낳아야 한다고 요구하기만 할 뿐 그 양육에 들어가는 노력이나 비용은 거의 보조해주지 않았다라이움에 거주하게 해주는 것 자체가 특권이라서 그 이상은 정부에서도 보조해줄 여유가 없다고 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물 속의 생산시설과 공중의 주거시설은 양쪽 다 인간이 살기에 자연스러운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기 정화와 실내온도 조절과 쓰레기 배출과 라이움의 경우 중력 조절까지거주자와 근로자들이 살아서 활동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해주는 데만 해도 엄청난 에너지 자원이 소요되고 굉장히 치밀한 계획 및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라이움에 진입했다고 해서 인생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라이움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된 시점에서도 미혼이고 출산예정이 없다면 라이움을 떠나 물 속에서 직장을 구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그러므로 라이움에 진입한 계층은 대부분 자녀를 일찍 결혼시켜서 라이움에 정착시키려 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 외국으로 내보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외국이라 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이나 자원이 여유롭게 남아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외국에 나가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물 속에 살든 공중에서 살든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열망은 흙을 밟고 해를 볼 수 있는 땅에서 거주하는 것이었다독일 출신의 공학 교수와 결혼한 이모는 그런 면에서 대단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물론 이모가 결혼했을 당시에 그런 계산을 앞세웠던 것이 절대로 아니었을 것이다어쨌든 이모의 남편은 공학자로서 라이움 증축과 시설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모는 자식이 없었는데도 라이움에서 살 수 있었고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전업 육아라는 라이움의 거주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그리고 이제 무사히 은퇴하여 남편과 함께 남편의 가족들이 기다리는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으로 떠나기로 한 이모의 경우는 대단히 특이한 삶인 것이다.

“나는 경우가 많이 다르지만이런 체제 자체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일방적으로 악영향만 가져왔다고 보기는 어렵지.

이모는 말하곤 했다이모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라이움 진입으로 상징되는 계급 상승에 있어 관건이 되는 게 결혼한 부부의 생식능력그 중에서도 아내 쪽의 출산과 양육 능력이니까결국 자녀를 포함한 가족 모두의 사회적 지위부터 시작해서 일상 생활의 편의까지가족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는 건 여자 쪽이거든막말로 여자 쪽에서 애 낳기를 거부하면 부부가 함께 물속에서 평생 살아야 되니까여자한테 출산이라는 건 엄청난 책임이면서 동시에 굉장한 권력이지.

여자가 결혼을 했으나 출산을 거부한다면 그 자신도 라이움으로 올라갈 기회를 잃게 된다어디에 거주하느냐가 곧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고그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남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라면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고 물 밖으로 올라갈 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 진짜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내 의견에 대해 이모는 진지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네가 순진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나는 이모를 좋아한다. ‘네가 순진해서 그래’라는 대답도 심각하게 생각한 뒤에 내놓기 때문에 상대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그리고 실제로 이모는 나를 무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해서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결혼의 큰 의미야그리고 현재 체제에서는 그 미래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여자 쪽에 달려 있는 거야.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은 알지 못한다그러므로 나도 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순진하다는 말을 들어도 반박할 수 없다다만 내가 이제까지 관찰한 바로는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어른들(주로 나를 결혼시키려는)과 이야기할 때배우자(혹은 그 후보)와의 낭만적인 감정적 유대감에 대해 이야기하면 ‘결혼은 현실이야’라는 답이 돌아오고반대로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 ‘인생의 반려자’ 등으로 대표되는 감정적 결속에 대한 답이 돌아오곤 했다나 스스로 좋은 사람을 찾지 못하고 선이라는 과정에 의존했다는 것이 큰 이유이겠지만이 때문에 나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그 근본적인 이유나 목적이 무엇인지그리고 어째서 주로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무작정 강권하는 것인지 뚜렷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된 채 이제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3.

출항 준비를 하면서 나는 이런 마음 불편한 생각들을 두서없이 하고 있었다.

일 때문에 주중에는 만나기 힘들고 연락도 어렵다고 말하자 B선생은 그럼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날짜와 시간장소를 정하자고 서두르기 시작했다나와 이모가 보는 앞에서 상대방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일요일 저녁으로 약속을 잡은 뒤에 B선생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라이움에서 살아가는 요령과 결혼과 자녀 양육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했다나는 당연히 미혼이고이모는 외국인과 결혼해서 자녀 없이 일반적인 결혼생활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에 B선생은 자신이 이 자리의 유일한 ‘결혼생활 전문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쩐지 흥분한 것 같았다빨리 아이를 낳아야 하니까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좋은 남자가 있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밀어 붙어야 한다고 B선생은 강조했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에 남자와 세 번은 만나봐야 한다고 덧붙였다또한 상대 남자도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장인과 사위가 전공이 같으니 얘기도 잘 통할 것이라고 B선생은 말했다.

엔지니어라는 건 이모의 남편인 독일인 교수님의 이야기다내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침수 사고로 어머니와 함께 사망했다나는 보육시설에서 자랐지만 이모가 신경 써서 돌봐주었고 무엇보다 나처럼 천재지변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그다지 힘들거나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다만 성인이 되고 보니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부모로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게 어떤 삶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게 한 가지 문제라면 문제였다그리고 그 문제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를 세 번 만난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B선생은 나에게 결혼 상대자를 소개시켜 준다면서 나의 가족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혹은 알면서도 나를 이모의 친구 딸이 아니라 친딸로 가장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나.

표층해수 오염도세슘 137 4.62 밀리베크렐.

잠수정의 안내 음성을 듣고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플루토늄 239. 240 킬로그램당 6.82 마이크로베크렐.

잠수함 타고 가다 말고 바닷물에 뛰어들 일은 없겠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물 밑에서 살고 물 속에서 일하니까 사실 내 몸도 이미 정상은 아닐 것이다.

스트론튬 90 1.84 밀리베크렐.

사람들이 어떻게든 물 밖으로 나가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공중으로 도망치는 것 외에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내 입장에서는 도망칠 수도 없다. 어쨌든 잠수정을 몰고 목적지까지 가야만 하는 것이다.

안내 음성은 내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현재 수온 섭씨 8.

꽤 차가운 편이지만 그만하면 보통이다.

수심 47미터속도 22노트.

사실 좀 더 깊이 들어가봤으면 좋겠지만 이건 회사에서 매뉴얼대로 정한 기본 설정이라서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목적지까지 방위나 운항경로도 마찬가지로 매뉴얼에 따라 설정돼 있어서 나는 제대로 맞춰졌는지 확인만 한다.

22노트면 목적지까지 약 50시간 정도축전지 상태를 봐서 중간에 한 번 떠올라 공기를 채워야 할지도 모르고해류 방향이 잘 맞으면 그냥 끝까지 한 번에 갈 수도 있다나는 엔진과 배터리와 연료 등속을 점검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켠다옛날에는 바깥을 보기 위해 잠망경을 썼다는데 지금은 사용이나 관리가 훨씬 편한 디지털 카메라가 잠망경을 완전히 대체해 버렸다다만 물속에 들어가면 잠망경이나 카메라나 쓸모 없기는 마찬가지다.

- Três. (3)

- Dos. (2)

- Um. (1)

- Inna fala número três, partir. (Inna fala 3출발.)

안내 음성과 함께 텅하고 둔중한 충격이 전해진다풍덩도 아니고 첨벙도 아니고 그냥    이다.

- Viagem segura. 안전한 여행을 하십시오.

인사말이 어색한 건 본사 공용어를 억지로 현지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들을 때마다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니까 좀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하여 출발이다나는 카메라에 비친 탁한 물과 흐린 불빛을 바라본다수중 정박항과 그 뒤의 공장 건물에서 비쳐 나온 불빛이 침침한 물 속에서 수백만 갈래로 흩어진다.

나는 그 모습이 새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4.

오염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들어오면 물 속은 무척 평온하게 느껴진다.

나는 헤드폰을 쓰고 소나 화면을 바라본다헤드폰을 통해 여러 가지 익숙한 소리들이 들려온다잠수정 엔진과 스크류가 내는 소리물결이 잠수정 함체에 부딪치는 소리물고기 우는 소리물고기들은 크륵크륵거리기도 하고 딱딱거리거나 끼룩거리기도 한다브라질에 아직 조금 남아 있다는 아마존의 정글 한가운데 앉아 있으면 이런 소리가 들릴까땅 위에 바람 소리와 짐승 소리가 있다면 바다에는 물소리와 물 동물들의 소리가 있다.

다른 배나 잠수함 소리도 물론 들린다스크류나 엔진 돌아가는 소리수심 47미터니까 배하고 부딪칠 걱정은 일단 안 해도 된다그러나 다른 잠수정들을 조심해야 한다해저도시에서 조금만 멀리 나와도 바닷속은 대체로 깜깜하다그리고 잠수함 안에 있으면 어차피 밖이 안 보이니까 소리로 바깥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의 잠수함이 스크류 멈추고 조용히 있으면 모르고 들이받는 수가 있다안전하다고 알려진 항로일수록 북적이기 때문에 자동조종 기능만 믿고 있으면 안 된다무인잠수정으로 운용할 수도 있지만 굳이 회사에서 사람을 잠수정에 태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뜻밖의 사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상품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업용 소형 잠수정으로 로봇을 배달한다다른 것도 여러 가지 배달해봤지만 지금 현재 잠수정에 실은 상품은 가정용 인간형 로봇이다.

가정용 로봇은 가사 보조용으로 어디서나 많이 쓰긴 하지만 유독 인간형 로봇만은 인기가 좋지 않다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그리고 라이움의 경우 아이들이 로봇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 붙이는 것을 부모들이 대체로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청소용 로봇은 청소기처럼 생겼고 요리용 로봇은 주방용 기기처럼 생겼다정확히 말하자면 가정용 전자기기에 인공지능을 추가하여 어느 정도 스스로 감지하고 판단해서 동작할 수 있는 기능을 덧붙였다고 하는 쪽이 옳다.

그런데 반대로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퇴직한 노년층에서는 인간형 로봇이 인기가 매우 좋다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존재가 옆에서 돌보아 준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노년기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읽은 적이 있다.

인간형 로봇은 비싸다그냥 기계는 대체로 쓰기 편하고 보기 좋게 디자인하면 그만이지만 인간형 로봇은 대충 만들면 그 결과물이 굉장히 소름 끼치기 때문에 실제 가사보조용으로 일상생활에 사용할 수 있으려면 눈에 잘 안 띄는 세세한 부분까지 아주 정교하게 인간을 흉내내야 하므로 거기 들어가는 노력과 정성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지금 배달하는 인간형 로봇들은 그러니까 원가부터 굉장히 비싸고 대량생산이 힘들며 소수의 부유층에만 고정적 수요가 있는 희귀 상품들이다.

이 잠수정에는 그런 인간형 로봇 일곱 대가 실려 있다승무원 선실이 없고 대신 그 공간에 인간형 로봇을 넣은 캡슐이 들어가 있는 구조다목적지에 도착하면 본사에서 개별 고객을 전담하는 담당 직원이 와서 하나씩 직접 가져다가 주문한 고객에게 일일이 개인적으로 배달해준다.

돈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나도 은퇴하는 이모를 위해서 퇴임 선물로 하나쯤 마련해드릴까 생각했지만가격을 알아봤더니 내가 벌어놓은 돈은 물론이고 앞으로 평생 일해서 벌 수 있는 돈보다도 비싸서 즉각 포기했다.

나는 정년까지 일하고 제대로 된 은퇴라는 걸 할 수 있을까이대로 혼자 살다가 나이가 들었을 때는 개인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까혼자 아무리 걱정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고 마음만 무거워진다.

별 탈 없는 계기반의 화면을 들여다보면서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여러 가지 무의미한 소리들에 멍하니 귀를 기울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졸린다.

이 직업의 최대 장점이 혼자 일한다는 것이지만 그 사실은 동시에 최대 단점이기도 하다. 한 번 근무할 때마다  50시간에 걸쳐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버텨야 하고게다가 원칙대로라면 그 50시간 동안 자면 안 된다이틀 혹은 이틀 반 근무에 사흘 휴식 그리고 다시 이틀 혹은 이틀 반에 걸쳐 출발지로 복귀하는 형태라서 근무 끝내고 나면 일단 푹 잘 수는 있다그러나 운항경로심도속도 등 모든 사항이 이미 세팅돼 있고바닷속은 항상 마음이 편하고 약간 멍한 느낌이 드는 잔잔한 소음으로 가득하다그래서 근무하다가 중간에 조금씩 졸아버리는 일도 자주 있다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일을 오래 하는 사람 중에 매뉴얼대로 50시간씩 꼬박 깨어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졸린다잠깐만 잘까…이미 하루가 별 탈 없이 지나갔다항로의 절반은 온 셈이다.

나머지 절반도 별 탈 없이 지나가겠지….

그 때갑자기 헤드폰을 통해서 꽉꽉꽉꽉꽉꽉…하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5.

내가 놀란 데 비해서 소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소나의 분류에 따르면 “알 수 없는 물체”가 160도 방향 200미터 거리에서 잠수정과 비슷한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최첨단 디지털 장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정도는 나도 짐작할 수 있다그나저나 200미터면 상당히 가까운데 이렇게 시끄러운 것들이 어떻게 들키지 않고 접근해서 이렇게 갑자기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걸까대체 뭘까.

새우는 딱딱거리는 소리를 낸다갑각을 부딪쳐서 내는 소리라고 하는데 개체수가 많을 때는 따다다닥하는 소리가 팝콘 튀기는 소리와 비슷하다돌고래는 드륵드륵삐걱삐걱혹은 휘파람 부는 것 같은 여러 가지 소리를 낸다복어는 어린 아이가 음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낸다고래는 삐융삐융 하고 노래를 한다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여러 가지 물 동물들이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낸다물론 바닷속의 모든 생물을 전부 파악해서 그 생물들이 내는 소리를 일일이 다 외우는 건 불가능하니까 소리만 가지고 이 생물의 정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그저 내 느낌에 이 꽉꽉 소리는 아주 많은 개체들이 무리를 지어 내는 소리 같았고어쩐지 굉장히 다급하게 들렸다.

나는 카메라 화면을 켰다어차피 물 속으로 조금만 나오면 사방이 깜깜하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카메라를 켜봤자 별 소용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함미 쪽에 푸르스름한 불빛 같은 게 보였다그러나 카메라를 돌려 그 쪽을 비추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나머지 카메라에 비친 물 속은 그냥 흐릿하고 어두웠다그 사이에 꽉꽉거리는 “알 수 없는 물체”  150미터에서 100미터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서 방향을 바꾸어 150, 140, 130도를 지나 100그리고 90  그러니까 아까는 함미 근처에 있다가 이제는 우현에 바짝 붙어서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스크류 회전속도를 올렸다꼭 도망을 치려는 목적이라기보다 스크류가 빨리 돌면 시끄러우니까 물고기 떼라면 겁을 먹고혹은 기계 소리가 싫어서 알아서 가 버릴 수도 있다.

나의 희망과는 달리 “알 수 없는 물체”는 겁을 먹지도 떠나지도 않았다속도를 맞추어 계속 우현에 붙어서 일정하게 따라온다.

대체 뭘까.

나는 다시 헤드폰을 끼었다주파수대를 낮추거나 높여서 음역을 바꿔가며 귀를 기울여 본다그러나 꽉꽉거리는 소리에 가려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기계음이나 회로음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서는 생물이 맞는 것 같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카메라에 다시 푸르스름한 것이 비쳤다나는 얼른 화면을 확대했다그러나 또 순식간에 사라졌다방향을 이리저리 바꿔서 함수에서 문제의 우현함미를 거쳐 좌현 쪽까지 한 바퀴 다 돌아보았지만 카메라에 비친 물 속은 그대로 깜깜할 뿐이다.

그 때 텅하고 우현에 뭔가 충돌했다.

나는 계기반 위로 넘어졌다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다시 쾅하고 충격이 오더니 세 번째로 콰앙하고 부딪쳤을 때 나는 의자에서 미끄러져 좁다란 조종실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일어나려 했을 때 다시 쾅하고 충격이 왔다나는 의자에 던져지다시피 주저앉았다다섯 번째로 충돌했을 때는 의자에서 도로 미끄러져 의자 다리와 계기반 사이에 처박히면서 머리를 어딘가에 세게 부딪쳤다.

한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며 정신이 멍해졌다옆머리의 얼얼한 곳에 손을 갖다 대니 뭐가 잔뜩 묻어 나왔다입술도 찢어졌는지 입 안에 찝찔한 액체가 느껴졌다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떨치기가 힘들었다멍해진 머리와 눈에 아무래도 초점이 돌아오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눈앞에 남자  혹은 인간 남자와 똑같이 생긴 어떤 것이 서 있었다.

 

6.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인간 남자처럼 생긴 것이 손을 내밀며 물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손은 약간 차가웠다.

“공격받은 것 같습니다.

내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조종실 의자에 다시 앉는 모습을 예의 바르게 지켜보며 인간 남자처럼 생긴 것이 이미 나도 아는 얘기를 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방향을 돌려서 어딘가에 상륙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일단 엔진과 스크류부터 정지시켰다소리가 날 만한 장치는 전부 끄고 소나 화면을 확인하며 헤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헤드폰이 옆머리의 찢어진 곳을 스쳐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다쳤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지만 지금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꽉꽉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특기할 만한 소리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물 소리와 가끔 지나가는 물고기 소리뿐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켰다충돌할 때 고장 났는지 우현 쪽 화면이 들어오지 않았다나머지도 그냥 아까처럼 깜깜했다.

소나로 한 번 쓸어 볼까그러나 음향신호를 내보내면 상대방도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상대가 누구이든무엇이든 간에 다시 공격할 의향이 있다면 소리를 듣고 쫓아올 것이다.

인간 남자처럼 생긴 것이 다시 뭔가 말하려 했다.

“또 공격….

나는 손짓으로 말을 막았다.

함미 쪽에 또 푸르스름한 것이 언뜻 보였다그러나 자세히 보려고 하는 순간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사라져 버렸다.

사방이 조용했다소나 화면에도카메라 화면에도 더 이상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인간 남자처럼 생긴 것을 쳐다보았다.

“단순 밀항은 징역 3년이지만 선박 탈취는 최소 15년이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거의 속삭이듯이 말하면서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니까 얌전히 선실로 가서 가만히 있자?

말하면서 나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지금처럼 무기를 간절히 원했던 적이 없다그러나 물론 주변 손 닿을 만한 곳에 무기로 쓸 물건은 없었다애초에 이 잠수정은 밀폐된 철갑 상자 속에 한 사람만 타고 바닷속을 헤엄쳐가도록 만들어진 장치이니 내부에 무기 종류가 비치될 이유가 없다.

사실 무기는 잠수정 안이고 밖이고 하나도 없다군용 잠수함이라면 어뢰를 탑재했겠지만 이 잠수정은 민간 상업용이라 그런 거 없다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이제껏 운항하면서 안팎으로 이렇게까지 무방비하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스쳐가는 동안 인간 남자와 똑같이 생긴 존재는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 밀항자가 아닙니다인간형 로봇 모델 HUMHZ-1238628입니다.

나도 인간 남자처럼 생긴 것을 마주 쳐다보았다.

“네가 정말 로봇이면 캡슐에서는 어떻게 나오고 혼자서 가동은 어떻게 했니?

“충돌이 일어난 시점에서 캡슐 잠금장치 오작동으로 문이 개방되었습니다그리고 개방된 문을 통해 밖으로 넘어지면서 충격에 의해 ES 기능이 가동되었습니다.

자신이 로봇이라고 주장하는 존재가 건조한 말투로 매끄럽게 읊었다인간 남자와 똑같이 생긴 이 존재는 말을 하면서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ES 기능이 뭐야?

Emergency Start, 비상작동 기능입니다운송 과정에서 평형이 어긋난 채로 일정량 이상의 충격을 받을 경우 상품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동으로 부팅되어 본체를 보호합니다.

자신을 로봇이라고 주장하는인간 남자처럼 생긴 존재가 설명했다그리고 덧붙였다.

“생산자와 소비자뿐만 아니라 운송회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저는 대단히 정교한 고가의 최첨단 기기로서 배송 과정에서 파손될 경우 배상 책임은 운송 담당자에게 있습니다.

나는 인간처럼 생긴 존재의 무표정한 얼굴과 깜빡이지 않는 눈을 들여다보았다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럼 다른 애들은 어떡하고 너만 나왔냐?

“다른 로봇들은 모릅니다.

인간 남성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이렇게 말한 뒤에 기억났다는 듯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저는 제 캡슐이 열려서 밖으로 나왔습니다그뿐입니다.

“뒤로 돌아.

내가 손짓했다인간 남자처럼 생긴 존재는 일말의 저항도 반박도 망설임도 없이 즉시 명령에 따랐다.

나는 인간 남자처럼 생긴 물체의 목 뒷부분을 살펴보았다뒷덜미의 머리카락으로 덮인 곳 바로 아래에거의 눈에 띄지 않게 조그만 초록색 돌기가 튀어나와 있었다리셋 버튼이다.

눌러 버릴까.

하지만 저 초록색 돌기를 눌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앞으로 가.

내가 말했다.

“일단 상황 종료됐으니 캡슐로 복귀해라내가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모셔다 드릴게.

그리고 나는 로봇이라고 주장하는 물체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본래 의도는 빨리 선실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뜻이었지만 인간형 로봇 모델 HUMHZ-1238628은 그대로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제가 여기 남아서 보조해드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가 말했다.

“잠수정을 공격한 상대의 정체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상대가 다시 공격을 시도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네가 캡슐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그 고가의 최첨단 기기에 상처라도 나면 내가 책임지고 배상해야 돼캡슐을 향해 전진.

“부상당한 상태임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이대로 만약 운송기관이 침몰할 경우에 배상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너 기계 주제에 사람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게 프로그램돼 있냐?

“죄송합니다.

인간형 로봇 모델 HUMHZ-1238628은 즉각 고개를 숙여 무감정하게 사과했다.

“가.

내가 다시 그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인간과 똑같이 생긴 존재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선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선실의 다른 캡슐들은 모두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밀폐되어 있었다중간에 투명한 캡슐 문에 이마를 대고 살짝 기댄 로봇이 보였다함체에 충격이 왔을 때 기울어진 것 같았다똑같이 생긴 로봇들이 눈을 감고 마치 잠든 것처럼 줄지어 서 있는데 그 중간에 하나만 눈을 뜬 채로 캡슐 입구에 이마를 대고 기댄 모습을 보니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캡슐 앞에 서서 인간형 로봇 모델 HUMHZ-1238628이 말했다.

“로봇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이 위험에 처하게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들어가라.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캡슐 안을 가리켰다로봇은 시키는 대로 캡슐 안으로 들어갔지만 내가 개폐장치에 손을 대기 전에 다시 말했다.

“잠수정을 공격한 상대의 정체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상대가 다시 공격을 시도할 위험도 있습니다.

나는 개폐장치 앞에 손바닥을 흔들어 보았다캡슐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나는 캡슐 안으로 살짝 고개를 들이밀고 개폐장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고장입니다.

인간형 로봇 모델 HUMHZ-1238628이 또 다시 내가 이미 아는 얘기를 했다.

“입구가 개방된 상태로 저를 운반하시면 운송 과정에서 또 다시 충격이 가해질 경우 상품이 심하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입 다물어.

로봇이 입을 다물었다나는 캡슐의 개폐장치를 몇 번 더 만져보다가 마침내 물었다.

“구체적으로 날 어떻게 보조할 생각인데?

나는 로봇을 돌아보았다.

“너 가정용이잖아잠수함 운항하는 법 알아?

로봇이 기다렸다는 듯 특유의 기계적이고 건조한 말투로 대답했다.

“말씀대로 저는 가정용입니다그러나 항법계산 등에 필요한 전산 기능과 통신 기능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습니다.

나는 로봇의 무감정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통신 기능어떤 통신?

“전파통신과 위성통신 모두 가능합니다.”

위성통신도 가능하다고?”

.”

비현실적으로 매끈한 얼굴의 깜빡이지 않는 푸른 눈이 무표정하게 나를 마주 쳐다보았다내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는데?”

통신장치는 두뇌회로 속에 탑재되어 있으므로 연락사항을 저에게 말씀하시면 제가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나는 로봇의 푸른 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이걸 믿어야 할까?

전파는 물 속에서 급속도로 소멸되기 때문에 무선 인터넷이나 이동전화 등 전파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통신기기는 물 밑에 있는 잠수함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이 때문에 해저통신에 초단파, 초장파, 레이저까지 이용되었으나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이 지극히 제한적이라 이런 방법은 오래 전에 폐기되었다. 극초단파를 인공위성으로 반사하는 위성통신은 이에 비하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라서, 요즘에는 잠수정이나 해저도시의 경우처럼 물 밑에서 통신할 때 거의 위성통신을 이용한다.

다만 내가 배달하는 로봇은 육상에서 일반 가정용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다. 일반 가정에서 위성통신 기능이 왜 필요하지? 하긴, 인간형 로봇은 워낙 비싼 기계이니 쓸데없는 기능 한두 개쯤 멋으로 탑재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내가 물었다.

“그럼 본사에 연락해서 지금 상황 전달해줄 수 있어?

“예.

로봇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해봐.”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천천히 서투르게 말했다.

Inna fala No. 3, attacked by unknown subject, requesting assistance. 전달해 줘.

로봇은 나를 쳐다보았다왼손을 귀에 가져다 댔다잠시 기다렸다그리고 방금 내가 했던 말을 억양까지 똑같이 그대로 읊었다.

Inna fala No. 3, possible attack by unknown subject, requesting assistance.

그리고 자칭 로봇은 다시 왼손을 귀에 대고 잠시 기다린 뒤에 나를 향해 유창하게 대답했다.

Inna fala No. 3, go on shore and wait for assistance. Repeat, go on shore and wait for assistance.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Inna fala advised. Roger and out.

Roger and out.

자칭 로봇은 귀에서 손을 뗐다나를 쳐다보았다.

“회사에서도 가까운 해안에 상륙해서 구조를 기다릴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 자식은 나도 이미 알아들은 얘기를 자꾸 설명하는 게 모든 인간형 로봇들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걸까그러나 일일이 짜증내봤자 나만 손해다그래서 나는 소리 내어 생각을 정리한다.

“그럼 위로 올라가서 가장 가까운 해안이 어딘지부터 알아보고….

말하다가 나는 갑자기 부상당한 옆머리를 움켜잡았다.

“아윽….

나는 신음했다무릎이 꺾였다.

내가 쓰러지기 전에 자칭 로봇이 나를 붙잡았다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어지러워머리 아파.

내가 속삭였다.

“도와줘….

“응급의약품은 어디 있습니까?

자칭 로봇이 내 옆에 앉아서 몸을 숙이고 물었다내가 대답했다.

“저쪽 벽장 문 뒤에….

“알겠습니다.

자칭 로봇이 일어섰다.

로봇이 등을 돌렸을 때 나는 재빨리 일어나려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무언가 다시 함체에 충돌했다콰앙하는 충격과 함께 로봇도 나도 한 순간 공중에 붕 떴다가 투명캡슐 문에 처박혔다.

“아… 젠장….

머리를 부여잡고 투덜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보니 바로 코앞에 아까의 그 기울어진 로봇이 있었다. 캡슐의 투명 문에 이마를 기대고 무표정한 얼굴에 반쯤 뜬 눈이 나를 바라본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저런 모습일 것이다다친 곳을 또 부딪쳤을 때의 충격이나 고통보다도, 반쯤 쓰러진 기묘한 자세로 초점 없이 앞을 바라보는 이 로봇의 창백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아야만 했을 때가 훨씬 더 무서웠다.

그러나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물에 빠져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조종실로 달려갔다자칭 인간형 로봇일명 모델 HUMHZ-1238628이 내 뒤를 따랐다.

 

7.

우리는 공격 당하고 있었다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소나의 디지털 화면에는 여전히 상대방의 정체를 알 수 없다고 나와 있었지만 헤드폰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까의 오리가 꽉꽉대는 듯한 소리가 아니라 분명하게 스크류와 엔진이 돌아가는 잠수함 소리였다. 100도 방향약간 뒤로 처졌지만 여전히 우현이다.

그리고 그런 기계음에 섞여서 들려오는 소리가 한 가지 더 있었다처음에는 음파 탐지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그러나 우리가 바로 옆에 있는 걸 알면서 계속 부딪치는데 저렇게 지속적으로 핑을 보낼 리가 없었다.

디디딧딧딧디-, 딧디-딧디---디딧....

무슨 암호인가?

디디딧딧딧디-, 딧디-딧디---디딧딧디-....

계속 듣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모르스 부호다.

그러니까 상대가 뭔가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모르스 부호를 모른다시대가 어느 시대인데모르스 부호 따위는 배운 적 없다.

“무슨 일입니까?

자칭 로봇이 옆에서 물었다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어뢰.

로봇은 푸른 눈을 깜빡이지 않고 아무런 반응 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내가 다시 말했다.

“어뢰야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어.

“이 화면에는 어째서 안 나타납니까?

자칭 로봇이 소나의 디지털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내가 대답했다.

“아까 부딪친 충격으로 소나가 고장 났거나 아니면 저 놈들이 뭔가 특수한 음파교란 장치를 사용한 것 같아애초에 접근해서 부딪칠 때까지 소나에 안 잡혔잖아.

자칭 로봇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우리도 때려야지가만 앉아서 두 동강 날 수는 없어.

내가 말했다말하면서 조종실 의자 뒤로 돌아서 자칭 로봇과 자리를 바꿨다조종실은 원래 승무원 한 명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두 명이 서 있으니 몹시 불편했다.

나는 카메라 화면 옆의 스위치를 켜고 송수화기를 들었다순간 자칭 로봇이 송수화기를 붙잡았다.

“뭘 하시는 겁니까?

계속 무감정하던 얼굴에 살짝 불안한 표정이 나타난 것 같았다내가 설명했다.

“어뢰를 쏘려면 먼저 내 음성으로 승인을 해야 돼.

자칭 로봇은 송수화기를 놓지 않았다내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대로 이유도 없이 공격받고 수장되는 게 좋겠어?

자칭 로봇은 내 얼굴을 잠시 관찰하더니 송수화기를 잡은 손을 놓았다나는 송화기에 대고 말했다.

Socorro. Socorro. Sete graus norte, oito um graus leste.

(구조요청구조요청북위 7도 동경 8-1.)

그리고 나는 서둘러 송수화기를 제 자리에 내려놓았다.

자칭 로봇은 이제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그러나 얼음장 같은 푸른 눈으로 내 동작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그런 식으로 어뢰를 발사하는 게 맞습니까?

그러나 내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정체불명의 상대가 회심의 공격을 감행했다.

이제까지의 충돌을 다 합친 것만큼 충격이 컸다조종실이 넓지 않아서 굴러다니거나 내던져져 날아갈 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대신 나는 계기반과 조타장치 여기저기에 마구 부딪쳤다.

수십 명에게 뭇매를 맞는 것 같았다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그래서 마침내 충격이 멈추고 간신히 눈을 떴을 때눈앞에 상처 하나 없이 서 있는 자칭 로봇의 매끈한 얼굴을 보고 나는 이 자식이 로봇이 아니라 사실은 초능력자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저 빨간 불은 뭡니까?

이번에 로봇은 내게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나는 자칭 로봇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기계실.

“기계실이 어떻게 됐다는 겁니까?

로봇이 다시 물었다내가 힘없이 말했다.

“부양장치가 고장 난 것 같아.

“그럼 침몰하는 겁니까?

나는 로봇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 줘.

로봇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켰다내가 말했다.

“가 보자.

나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앞장섰다.

“그렇게 쉽게 가라앉진 않아.

자칭 로봇은 잠시 망설이다가 나를 따라 나섰다.

 

8.

“너 힘 세냐?

비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기계실로 내려가면서 내가 물었다.

“평균적인 인간에 비하면 강한 편입니다.

자칭 인간형 로봇이 대답했다기계실을 가로질러 가면서 내가 설명했다.

“잠수함은 밸러스트 탱크라는 데다 물을 채우면 가라앉고 그 물을 버리면 떠오르게 돼 있어그런데 바닷속에 들어와 있을 때는 사방이 물이니까밸러스트 탱크 안의 물을 내보낼 때 펌프로 빼내거든.

나는 밸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물 빼는 펌프가 압축공기로 작동을 하는데지금 밖에서 자꾸 부딪치니까 펌프 안의 그 압축공기 막는 부분이 어긋난 것 같아그러니까 공기가 새서 펌프가 작동을 못 하는 거야이대로 두면 이 잠수정, 다시는 물 밖으로 못 나가.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로봇이 조용한 목소리로 무표정하게 물었다나는 밸브 손잡이를 가리켰다.

“이거 붙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려할 수 있겠어?

자칭 로봇은 손잡이를 잡았다힘주어 돌려 보았다손잡이는 좀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못 하겠으면 안 해도 돼.

내가 말했다.

“넌 로봇이라 산소호흡을 안 하니까잠수정이 가라앉아서 산소가 다 떨어져도 크게 문제 없겠지바닷물에 빠지면 피부 같은 데가 삭을 지도 모르지만.

자칭 로봇은 잠깐 고개를 들어 표정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그리고 다시 밸브 손잡이에 매달려서 돌리기 시작했다.

“조종실 간다.

내가 건조하게 말했다.

“시계방향으로 완전히 다 풀면 알려줘.

자칭 로봇은 손잡이와 씨름하느라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기계실을 가로질렀다재빨리 기계실 밖으로 빠져 나왔다.

로봇이 돌리고 있는 손잡이는 실제로 배수펌프 밸브다정확히 말하면 배수펌프에 물이 넘칠 때 퍼내는 밸브인데다른 모든 기계장치와 마찬가지로 조종실에서 전자식으로 통제하게 돼 있다고장 나지 않았는데 수동으로 무작정 돌려 봤자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계실 밖에서 문을 닫았다해치 휠을 돌리기 시작했다휠은 무겁고 나는 삭신이 쑤셔 좀처럼 팔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나는 낑낑거리며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돌렸다.

자칭 로봇이 상황을 깨닫고 달려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휠이 거의 다 돌아가 있었다안에서 해치를 결사적으로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휠을 끝까지 돌려 문을 잠그고 안에서 열 수 없도록 비상 잠금장치에 지문을 찍었다.

비상 잠금장치는 기계실이 침수되었을 경우 물이 넘쳐 다른 곳으로 새지 않게 밀봉하기 위한 장치다그러므로 이제 기계실은 완전히 폐쇄되었다나는 서둘러 조종실로 올라갔다.

저 사기꾼이 정말 로봇인 것 같다고 진심으로 믿었던 순간이 있었다. 연기도 그럴싸했지만, 그보다는 로봇인 쪽이 나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로봇은 물건이다. 상대가 사람이면 상황이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한 것이라 나라는 개인의 좋고 싫음에 맞추어 움직여 주지 않는다.

본사에서 사용하는 공식 언어는 포르투갈어다본사가 모잠비크에 있어서 모잠비크에서 쓰는 언어를 공식어로 채용했다. 회사에서 소속 잠수정의 연락을 받을 때는 이쪽에서 영어로 말한다 해도 포르투갈어로 대답한다. 정말로 통신을 주고받았다면 이런 언어 차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므로 저 자칭 인간형 로봇이 위성통신이 가능하다면서 본사에 연락을 해 주겠다고 귀에 손을 대고 나를 흉내내어 영어로 지껄인 퍼포먼스는 생각해보면 참으로 유치한 연극이었다.

진짜 로봇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그러므로 저 거짓말쟁이는 인간이다. 그리고 밀항하는 인간은 범죄자다.

나는 선실의 캡슐 안에 있는 여섯 개의 로봇과 똑같이 생긴 그 비현실적으로 매끈한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몸서리를 쳤다그런 성형수술을 하는 데 쓸 돈이면 충분히 다른 합법적인 교통수단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조종실에 돌아와서 나는 본사에 다시 보고했다.

Inna fala 3호 구조 바람정체 불명의 상대에게 공격 당하고 있다밀항자 발견했으나 기계실에 고립시켰다우현 누수. 파손 위험즉시 구조 바람.

본사 담당자는 아까 보낸 구조요청을 받고 몹시 긴장한 것 같았다.

IF 3국제 해양경찰에 이미 연락했다위치 정보 재확인 바람.

“북위 7도 동경 81수심 약 47미터 잠항 중인데 떠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빨리 구조바람우현….

누수위험하다라고 말하기 전에 꽉꽉 소리를 내던 정체불명의 상대가 있는 힘을 다해서 돌격해 왔다.

 

9.

마지막 격돌의 순간이나 이후의 과정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다만 그 소리는 아직도 꿈에서 가끔 듣곤 한다이나 텅이 아니라 끼드드드드득….

쇠가 갈라지는 소리사방을 둘러싼 물인정사정 없는 바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던 얇은 한 겹 철판이 무너지는 소리다.

물이 덮쳐왔다.

 

사람이 잠수할 수 있는 깊이는 전문적인 잠수부라 해도 40미터 정도가 한계다그 정도만 들어가도 평소 생활하던 공기압력의 네다섯 배 정도 되는 수압을 견뎌야 한다.

현재 잠항심도는 좀 왔다 갔다 하지만 대략 45미터에서 50미터 정도나는 산소통이 없다그리고 잠수부도 아니다.

물론 사방을 뚫고 들어오는 물줄기에 얻어맞으면서 내가 조리 있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차갑고아프고무섭고숨을 쉴 수 없었다.

사실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숨을 쉬고 싶었다.

 

그리고 푸른 것이 나타났다.

 

해양경찰에 진술했을 때도그 뒤에 회사에 보고했을 때도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지금까지도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아니실제 내 눈으로 뭘 보기는 본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잠수정이 옆으로 기울었고지속적으로 충격을 받은 우현이 드디어 갈라졌다안에 있는 내 입장에서는 벽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벽이 되었으며 오른쪽 벽이 천장이 되었고그 천장이 찢어졌다물이 뿜어져 들어와서 조종실을 채웠다나는 물에 뒤덮여 얻어맞고 시달리고 숨이 막혀 컥컥거리면서 기울어지고 무너진 우현을 향해 휩쓸려 올라갔다그리고 함체의 갈라진 틈 사이로 푸른 것을 보았다.

 

투명하게 빛나는 푸른 것이 하늘을 향해 길게 손을 뻗었다칼날처럼 가늘고 날카롭게 휘어진 은빛 초승달을 움켜쥐고 그대로 끌어내려 바닷물을 베었다달의 은빛 날이 지나간 자리에서 바다는 어두운 회갈색 천이 잘리듯이 그렇게 갈라졌다.

그리고 푸른 것은 뜯어지고 부서져 만신창이가 된 잠수정을 집어 들어 가느다랗게 반짝이는 은빛 달이 뽑혀나간 밤 하늘의 바다처럼 드넓은 어둠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여전히 잠수정 안에 있었다.

잠수정은 어느 해저도시의 수면 밖으로 튀어나온 철탑 위에 얹혀 있었다그곳이 침수 전 스리랑카였고 현재는 인도양 락샤디브 해저도시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간신히 잠수정 바깥으로 나왔을 때수면을 가득 채우며 모여든 해양경찰과 구조대 선박들 뒤쪽 먼 곳에서나는 어디부터 하늘이고 어디까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먹물 같은 밤을 배경으로 거대한 반원을 그리며 깊은 물 속 어딘가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푸른 것의 반짝이는 비늘을 분명히 보았다.

 

10.

이후의 한 달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참으로 환상적이었다.

망가진 잠수정과 함께 모잠비크로 실려가서 나는 우선 병원에 3주 동안 갇혀 있었다. 그렇게 휘둘리고 얻어맞고 깡통 속의 짤짤이처럼 함부로 흔들린 데 비하면 상처는 기적적으로 경미한 편이라서 주로 타박상과 열상이 많았다첫 충돌 때 넘어져 옆머리가 찢어진 것과 왼쪽 발목의 인대가 손상된 것이 가장 심각한 부상이었다. 바닷물과 직접 접촉을 한 것은 물론이고 엄청나게 들이마셨기 때문에 병원에서 방사능 피폭 가능성에 대한 검사도 하기는 했는데 이 역시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 상태가 비교적 괜찮았기 때문에 경찰이 찾아왔다그 뒤로는 회사의 법무과에서 찾아왔다양쪽에서 함께 찾아오기도 했다병실에서 한꺼번에 마주치면 경찰도 회사 사람들도 어쩐지 무척이나 어색해 했다.

모든 사건은 논리적으로 해명할 방법이 있다아니 모든 사건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번 사건은경찰의 말을 듣고 보니까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로봇이라고 주장했던 남자는 내 생각대로 해저도시 출신의 사기꾼이었다합법적인 방식으로 라이움에 올라가 살거나 일해서 돈을 모아 육지에 정착하기보다는 남의 돈을 빌려서 땅 좋고 햇볕 좋은 곳으로 도망치는 쪽이 훨씬 빠르고 영리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해저도시에는 그런 큰돈을 빌려줄 부자가 많지 않다. 애초에 남한테 빌려줄 돈이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이 사기꾼은 사채를 썼다. 그리고 그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는 흔히 그렇듯 폭력 조직에 속해 있었다. 

돈을 빌린 사기꾼은 이제 신원을 감추고 빨리 외국으로 나가야 하니까 가짜 여권을 마련하러 다녔다. 그런데 사채업자와 위조여권 업자는 또 언제나 그렇듯이 같은 폭력조직에 알음알음 연결되는 사이였다. 그리하여 사기꾼이 큰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상태에서 가짜 여권을 구하러 다닌다는 소식이 폭력 조직의 귀에 들어갔다. 폭력 조직에서는 당연히 사기꾼을 압박했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다급해진 사기꾼은 서둘러 모습을 바꾸고 도망쳤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운 나쁘게도 내가 말려들게 된다.

나중에 경찰 조사와 회사 자체 내사에서 드러난 바사기꾼이 원래 접촉한 사람은 잠수정의 정비사였다성형을 해서 외모를 바꾼 사기꾼에게 돈을 받고 잠수정에 몰래 태워준 사람도 정비사였고밀폐된 로봇 캡슐에 공기가 통할 수 있게 일부러 캡슐 개폐장치를 고장 낸 것도 정비사였다이 정비사는 밀항이 성공하여 사기꾼이 햇볕 좋고 땅 좋은 모잠비크에 무사히 잠입할 수 있도록 자기와 친한 항해사를 섭외해 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실제로 다른 항해사 한 명을 설득하는 데까진 성공했다.

여기서 정비사가 간과한 한 가지는 이렇게 직원들이 돈 받고 밀항시켜주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회사에서 잠수정을 무작위로 배정한다는 사실이었다정비사는 항해사를 끌어들일 때 이 무작위 배정도 알아서 요령껏 건너뛰어 주려니 하고 바랐지만 이 항해사는 로봇으로 변장한 사기꾼이 자기 친구도 아니고 그까짓 돈 몇 푼에 회사에서 의심받을 짓을 꼭 해야 할 동기부여가 별로 강하지 않았던 관계로 다른 잠수정이 배정되자 그냥 타고 나가 버렸다그렇게 해서 밀항자가 숨어 있는 3호기가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떨어진 것이다.

이런 사실이 완전히 밝혀지기까지 2주가 걸렸다. 2주밖에 안 걸린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사건의 공범인 정비사는 그 뒤로 회사에 출근을 안 해서 조그만 소동이 벌어졌는데 며칠 후에 자기 집에서 술에 취해 헤롱거리는 상태로 발견되었다이 때 경찰에서 정식으로 체포하기 전에 회사에서 먼저 들이닥쳤기 때문에 나중에 잡음이 좀 있었다고 한다.

한편 사기꾼은 부서진 잠수정의 침수된 기계실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에는 의식이 없었는데 사흘쯤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마침내 깨어나서 자백을 했다내 입장에서는 천운이었다.

잠수정을 부순 범인은 나의 믿음 혹은 환각과는 달리 정체불명의 푸른 것이 아니었다사기꾼에게 돈을 떼 먹힌 폭력조직에서 쫓아왔을 뿐이다범죄조직이다 보니까 보유한 잠수정도 본래의 장점을 십분 살려서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게 잠항하고 스크류나 엔진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접근할 때면 소리 흔적을 왜곡하는 장치를 사용했다바닷속에서 난데없이 오리가 우는 듯한 꽉꽉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왜 하필 오리 소리였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범죄조직의 일차 목적은 사기꾼을 잡는 것이었고 이차적인 목적은 잠수정에 실린 고가의 인간형 로봇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폭력조직 입장에서 사기꾼은 죽어버려도 별 상관이 없지만 로봇은 망가지면 팔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 내 쪽에 살살 겁을 주려고 했다내가 탄 3호기 잠수정을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지로 가도록 방향을 돌리거나 아니면 수면 위로 뜨게 한 다음에 직접 쳐들어와서 점거하고 값나가는 상품을 약탈할 생각이었다.

여기에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통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범죄조직은 자신들 소유의 인공위성까지 갖추지는 못했고, 범죄조직이니까 합법적인 정규 통신체계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정 필요하면 해킹을 해서 연락망을 훔치거나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사전 준비 없이 무작정 사기꾼을 쫓아서 일단 잠수정을 타고 바다 속으로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이 단순무식한 행동대원들은 해킹이고 나발이고 외부와 연락이 전면 차단되어 잠수정에 고립되었다. 그리하여 급한 김에 모르스 부호라도 두드려 보려고 했으나 상대 잠수정의 항해사  는 그러니까 나다  에게 깨끗이 무시당했고그러저러한 사유로 열 받은 김에 계속 들이받다가 결국 이런 사단이 나고야 만 것이다.

이 멍청한 범죄조직의 꽉꽉이 잠수정은 락샤디브 해저도시에 상당한 민폐를 끼치며 침몰했다타고 있던 세 명 중 한 명만 살아남았다그 한 명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디지털 장치에는 기록이 남는 법이다범죄조직의 침몰한 잠수함과 그 안에 들어 있는 항해기록 전부 해양경찰에서 인양해서 압수했고증거를 들이대자 살아남은 한 명도 결국 범죄 사실을 시인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회사에 피해보상을 할 책임을 면했다망가진 로봇들의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셈이었다.

 

모든 정황이 밝혀진 뒤에도 달을 휘둘러 바다를 갈랐던 푸른 것에 대해서만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았다.

 

11.

병원에서 3주를 보내고 퇴원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이모의 간절한 염원에 따라 선을 보고야 말았다전체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이모가 바야흐로 일주일 뒤에 퇴직해서 먼 곳으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선 보는 자리에 주선자 B선생이 따라와서 저녁까지 같이 먹었다상대 남자가 자기 남편의 후배라서 그렇게 친하다는 B선생은 별로 친하게 느끼지 않는 나에게 “거사를 함께 할 사이”라서 그런지 “여동생 같다”고 말하며 오바를 했다그리고 B선생은 저녁 식사 내내 선보는 남자와 나를 양 옆에 앉혀놓고 라이움에서 자신의 삶과 근본적으로 여성이 지탱해야만 하는 결혼생활의 피로와 희생과 무심한 남편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시시콜콜 늘어놓았다이야기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남이 선 보는 자리에 눌러앉아 자기 인생을 귀감으로 삼으라는 가르침을 주려는 것은 주선자로서 결코 적절한 태도가 아니었다결국 B선생이 마침내 가고 나서 형식적으로 남자와 둘이 커피를 마시기는 했는데 나는 이미 B선생에 대한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있었고 남자는 남자대로 일하다 말고 나와서 피곤에 절어 있었기 때문에 대화는 그다지 원활하지 못했다집에 와서 봤더니 화장이 전부 번져 있었지만 새삼스레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셋이서 선을 보는 그 이상한 자리에서 나는 B선생이 이야기하는 목소리와 잘 모르는 남자의 얼굴 위로 끼드드드드득... 하고 쇠가 뜯어지던 소리를 듣고 달을 휘둘러 바다를 가르던 푸른 존재의 반투명하게 빛나던 비늘을 보곤 했다.

숨이 멎을 정도로 무서웠지만그만큼 강렬하게 그리웠다.

이틀 뒤에 나는 다시 바다로 나왔다.

 

12.

- Três.

- Dos.

- Um.

- Inna fala número seis, partir.

안내 음성과 함께 텅하고 둔중한 충격이 전해진다.

- Viagem segura. 안전한 여행을 하십시오.

그리고 바다가 사방을 감싼다.

잠수정이 막 정박항을 떠나 물에 진입할 때, 엔진이 아직 제 힘을 내지 못하고 함체를 휩싸는 바닷물의 품에 고분고분 안기는 순간, 배가 가볍게 흔들린다바다가 잠수정에게 인사를 청하는 것 같다.

처음 입사해서 교육받을 때 잠수정의 이름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Inna fala  또 다른 파도나는 그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를 태운 잠수정은 또 다른 파도를 찾아또 다른 파도에 실려 미지의 물속을 가로지르며 헤엄쳐 간다.

익숙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잠수정을 둘러싼 바다와그 바다 위의 하늘과그 하늘에 떠있는 허공의 성 라이움과....

... 라이움에 사는 그 누구도 평생 보지 못했을검은 바다를 자르던 은빛 달을 생각한다.

 

라이움에서 내려다보면 아마 바다 표면의 파도가 보일 것이다공중에서 파도를 내려다볼 수는 있지만 느낄 수는 없다.

물 속에서는 그 흔들림이 보이지 않지만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수면 아래로 이 정도 깊이 들어와 있으면 표면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물을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저 위쪽의 삶, 바다 표면을 내려다보는 삶을 꿈꾼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파도에 실려 높이 떠오르기도 하고 깊이 가라앉기도 하면서 매일매일 해를 보고달을 보고산들바람을 즐기고 비바람에 시달리고그렇게 살아간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것은 결코 알지 못한다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라고 말할 때 사실 인간은 자기 자신이라는 한 개인에게 주어진 특정한 인생이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유일하고 가능한 단 한 가지 삶의 방식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표출하는 것이다.

 

물 속은 조용하다하늘도 구름도 빛도 보이지 않고 바람도 느껴지지 않는다주위를 둘러싼 것은 오직 물과 어둠그 치명적인 검은 물의 무심한 아름다움그리고 물 바깥에서 해와 달과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혹은 상상밖에 할 수 없는 종류의 생물들이다그런 생물들이 또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는 여러 가지 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은 조그맣고 외롭고 가난하고 때로 무섭게 격렬한 삶이다이 삶은 평온하고 고요하고 황폐하고 사납고그리고 아름답다.

나에게는 그것이 인생이다. 내 삶도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과 똑같다단지 다를 뿐이다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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