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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밥줄을 지켜라

2012.11.30 23:3411.30

   밥줄을 지켜라



 

 

 

 몹시 배가 고팠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느끼는 단계를 지나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상태를 많은 경우 동물적인 본능의 상태라고 생각하던데, 동물로서 장담하건대 전혀 그렇지 않다. ‘참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의지적인, 다시 말해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단계다. 이 정도로 배가 고프면 이미 참거나 참지 않는다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 어떤 의지도, 심지어는 살아야 한다는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갑자기 눈앞에 연어 머리가 떨어진다고 해도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연어 머리.

 단 한 번 먹은 적이 있었다. 가게에서 연어 머리를 버릴 때 운 좋게 그 앞을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가게 주변을 장악하고 있던 건 노란색과 까만색이 섞인 험상궂은 놈이었다. 뭐, 나도 사람들 기준에서야 험상궂은 놈이겠지만. 나는 그 놈이 나타나기 전에 재빠르게 연어 머리 하나를 입에 물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연어 냄새는 그때 겁을 먹고 연어를 물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종종 후회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맛있는 냄새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연어의 머리통에 이빨이 박히던 감촉을 아직까지 기억했다. 연어는, 다시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맛있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임신을 하기도 하고 발정이 나기도 하던 암컷이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 둘과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 하나가 날 붙들던 그날 전까지는. 봄이었고, 바람이 천천히 불어왔고, 나는 요행히 사료를 내놓는 인간을 다른 놈보다 먼저 만나서 배도 부른 참이었다. 전날엔 비가 내려서 바닥 여기저기의 웅덩이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물을 홀짝이고 나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곳에 사는 놈들은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지 않는다. 인간들 역시 웬만해선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졸다가 번쩍 눈을 떴다. 누군가 영역 안에 들어와 있었다.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고 하자마자 무언가 끈적한 것이 발바닥을 붙들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아서 엉덩이를 들썩이는데, 인간의 손이 꼬리를 붙들었다. 나는 좁은 철망에 갇혀서 울었고, 할퀴었고, 몸부림쳤지만, 인간은 나를 어딘가에 눕히고 꼬리 아래쪽, 그 조심스러운 비밀의 구멍에 차갑고 날카로운 것들을 들이대었다. 갈색 털을 머리 부분에 길게 늘어뜨린 여자는 나를 잡힌 자리에 내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아무 힘도 없이 한참을 그 자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불행은 그날부터였다.

 생식능력을 잃었다고 해서 다른 놈들이 나를 괴롭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 아주 뜨거운 것이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날카롭게 냄새를 맡고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이거나 눈앞에 무엇이든 꿈틀거릴 때 절로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들이 이제 다시는 내게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다른 놈들은 내 기척조차 잘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날 배척하는 것도 아니지만, 더 이상 그들의 일부로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처럼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살 수도 없다. 당연히 나는 끊임없이 배가 고프게 되었다. 내가 과연 나일지, 나는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이제 민첩하지도 생기 넘치지도, 심지어 살아가고 있지도 않은, 고양이다.

 익숙한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인간이 나를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하루에도 수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지만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밥 준다는 생각은 더욱 또렷하게 잡힌다. 코코 브루니를 지나쳐, 몇 개의 노점들과 북새통문고를 지나쳐, 농협 앞, 8번 출구 옆, 이제 인간은 오늘 장사를 접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여자는 남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요 녀석이 또 왔네, 또 왔어. 어쩜 이렇게 문 닫을 시간만 되면 딱 맞춰서 와?”

 신기하기도 하지, 일할 때 오면 챙겨주기도 어려울 텐데.

 일할 때 여자는 정신없이 바쁘고, 여자의 생각들은 대체로 금방 사라진다. 당연하지만 여자는 내가 그녀의 생각을 읽어내고 온다는 걸 알지 못한다. 여자는 남은 핫바를 일회용 그릇에 담아 내 발치에 내려놓았다. 여자의 검은 손과 단단한 손톱이 시야에 훅 들어왔다가 멀어졌다. 여자는 많이 말랐지만, 인간 세계에서 평범한 아줌마로 불릴 수 있는 인상이다. 그래도 여자의 저 마르고 단단한 손은 여자가 그렇게 물렁한 성격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는 다 알고 있다. 여자는 실제로도 물렁한 성격이 아니었다. 나는 핫바를 깨물었다. 냄새를 맡는 감각이 둔해진 이후로, 음식 맛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연어 머리가 다시 떨어진다고 해도 예전처럼 맛있게 먹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내가 잃어버린 걸 인간의 언어로 굳이 말한다면 ‘야성’에 가까울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자 인간의 마음들이 내 속으로 정신없이 밀려 들어왔다. 인간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생식 기능을 마비시키는 수술이라니, 그런 걸 인간 말고 대체 어떤 존재가 떠올릴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이 들리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거라고, 나는 쉽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삶을 유지할 수 있었고, 때문에 나는 점점 내가 고양이인지 알 수가 없다. 인간처럼 사고하지 않기 위해 나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될까?

 여자의 손이 머리 위로 내려온다. 나는 앙칼지게 인간을 향해 성대를 울린다. 하악 소리를 듣고, 여자는 손을 치운다. 자칫하면 가만히 머리를 내맡기고 있을 뻔했다. 예전 같았으면 인간의 마음 따위 들리지 않아도, 거침없이 기척을 느끼고 몸을 피했을 터였다. 나는 이제 최선을 다해야만 고양이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더 비참해지기 전에, 얼른 밥을 다 먹고 자리를 피했다. 쓸쓸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곳에 더 남아서 여자의 손에 머리를 내맡기고 싶었다. 안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분명히 점점 고양이로서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그녀를 등지고 공터 쪽을 향했다. 벤치 위는 대체로 돌바닥보다는 따뜻했다. 예전에 곧 무너질 것 같은 고기집들이 잔뜩 있었을 때는 조금 더 따뜻했었다. 몇몇 마음 좋은 인간들은 나를 위해 양념하지 않은 고깃덩어리를 남겨주기도 했었다. 거리는 털이 다 벗겨져 나간 것처럼 추웠다. 벤치에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그 소녀, 괴물이었다.

 괴물이라고 지칭하는 건 미안하지만, 그렇게 말고는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괴물은 탁자에 턱을 괴고 있다가 날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치마가 팔랑였다. 괴물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밥은 먹었나보네.

 괴물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해 하고 있다. 나는 괴물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많이 못 먹었어, 배고파.”

 그럴 줄 알았어.

 괴물이 가방 안에서 캔을 꺼냈다. 캔을 자주 사지도 못하는 형편에 더 배고픈 고양이를 주는 쪽이 낫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괴물이 주는 캔을 얻어먹을 고양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괴물인 건 조금만 있어도 금방 알 수 있다. 소녀는 괴물이기 때문에 내 고양이 말을 알아듣고 나는 말하지 않아도 소녀의 말을 알아듣는다. 괴물이 언제까지 내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괴물을 처음 만난 건 바로 저쪽 놀이터 근처였다. 홍익대학교 쪽으로 타고 올라가야 하는 놀이터에는 언제나 사람이 미어터질 듯 많았기 때문에 나는 늘 지구대 앞 작은 놀이터 근처에서 쉬곤 했었다. 그날도 여전히 배가 고팠기에, 별 생각 없이 말했다.

 “배고파.”

 그 말에 반응한 게 사람이라는 것에 한 번 놀랐고, 가만 보니 그게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래도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이랍시고 생각이 읽혔다.

 많이 굶었나보다.

 “너, 몸을 버렸어?”

 괴물은 쓸쓸하게 웃으면서 내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이 고양이는 고양이였던 날 경멸하겠지.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면 경멸하지 않을게. 왜 그랬어?”

 마음을 읽혀버린 괴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작은 캔을 하나 꺼냈다. 캔을 보자마자 괴물의 생각이 읽혀졌다. 괴물은 지금도 돈이 없지만 혹시라도 배고픈 고양이를 발견할까봐 늘 가방에 작은 캔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팠어.

 나는 고개를 파묻고 캔 속의 고깃덩어리를 집어삼켰다. 예전 고기가게에서 얻어먹던 고기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몸을 버리고 인간이 된 고양이는 고양이의 영혼을 잃어버린다. 꿈을 꿀 수도 없고, 다시 태어날 수도 없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웬만한 고양이는 영혼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이 괴물을 탓하겠는가. 나는 꼬리를 쳐들고 열심히, 아주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괴물 자신은 아마 전혀 기억을 못 할 것이고, 그래서 굳이 말한 적도 없지만, 나는 이 괴물을 낳았었다. 짝짓기를 할 나이가 되어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던 녀석을, 나는 소리를 지르며 매섭게 떼어냈다. 짝짓기도 하고 새끼도 낳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더니, 언젠가부터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건 쓰레기봉투를 뜯어놓고 닭고기를 물고 도망가던 모습이었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이렇게 괴물이 되어 있었다. 괴물도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나 역시 이 괴물이 내가 낳은 괴물이라고 별달리 애틋한 감정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인간이기보다는 고양이니까. 이렇게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날, 음식을 따로 저장해 놓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괴물의 따뜻한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갔다. 괴물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따뜻하다.

 “나도 그래.”

 괴물이 날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고,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잠이 들었다. 괴물의 담배연기가 바람을 타고 머리 위로 흩어졌다. 괴물은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나는 괴물을 내 뱃속에 품고 있었던 때보다 지금이 더 괴물과 가까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자에게 찾아가는 건, 언제나 여자의 일이 모두 끝난 다음이다. 나는 여전히 고양이였고, 사람을 쫓아다니며 밥을 구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그들이 내게 밥을 줄 뿐이다. 즉, 해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부터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은 밥과는 별로 상관이 없고 그저 지나는 길이었다는 말이다. 아직 첫 손님도 들기 전인 듯했고, 여자는 이제 막 판을 깔아놓고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몇 사람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고, 지나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잠깐 발을 멈추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소리 지르는 그녀에게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아니,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저쪽 옆으로 자리를 옮겨주겠다고요.”

 “전에도 자리 옮기라고 말해놓고 밤에 와서 때려 부쉈잖아요. 칼로 막 찢고 그랬잖아!”

 그녀가 날카롭게 소리를 높였다. 평소에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하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높은 톤의 새된 소리를 낼 수 있었다니.

 “그냥 저쪽으로 자리만 옮기시면 된다니까요.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나는 이 자리에 허가 안 받고 하는 거예요? 허가 다 줬잖아. 허가 받고 하는 거잖아!”

 나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녀가 이 자리에 허가를 받기까지 거쳐 왔던 온갖 삶들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머리 꼭대기가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부산에 사는 그녀의 아들이 분명한 이미지로 내 뇌를 스쳐 지나고 나서,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잠깐 몸의 중심이 흔들려서, 비틀거리다 풀썩 옆으로 넘어졌다. 지나던 연인이 날 바라보았고, 그 연인은 동시에 내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마 날 지나치고 그들은 화제에 나를 올릴 터였다. 

 “여기 위치도 말이죠. 인도 위에다가, 사람들 지나가는 데에 통행 방해도 되고.”

 “통행 방해는 무슨,”

 소리치던 여자가 눈을 돌려 지나는 사람들을 빠르게 훑었다. 잠깐, 화단 위에 웅크리고 앉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야옹이구나.

 “사람들 멀쩡하게 다 잘 지나다니는데, 무슨 통행방해에요. 이 길에서 이 가게 때문에 못 지나다니는 사람 어디 하나라도 있어요?”

 “우리가 구청에서, 전에도 얘기했잖아요. ‘깨끗한 거리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여자가 다시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더럽다는 거야, 뭐야!”

 “아니, 아주머니가 더럽다는 게 아니라. 이게, 그림이 깨끗해보이지가 않잖아요. 사람들이 여기에서 먹고 소스 떨어뜨리고 그럴 텐데…….”

 “사람이 살다보면 다 더러워지기도 하고 그런 거지, 그쪽 집은 그렇게 깨끗할 줄 알아요?”

 양복을 입은 남자의 머릿속에 아침을 먹고 그릇을 쌓아놓은 개수대가 스쳐 지났다.

 그거야 그렇지. 다 더럽히면서 사는 거지.

 “아무튼, 저희는 경고했습니다. 강제 집행하기 전에 얼른 차 옮기세요.”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자리를 뜰 때, 나는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늘은 여자에게 밥을 얻어먹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힘든 마음을 걱정해서라기보다는, 힘든 마음을 온전히 듣지 않을 수 없는 나를 걱정해서다.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어김없이 해가 졌고, 나는 천천히 동교동 교회 쪽으로 가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여기저기 주차되어 있는 차 밑에 한두 마리씩 꼭꼭 숨어 있었다. 예전이면 굳이 고개를 돌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몇 마리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도무지 몇 마리가 있는지, 눈을 마주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내 감이 없어진 걸 어찌하겠는가. 오늘은 나도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인간만 조심하면, 차 밑은 안온해서 배가 고파도 잠이 쉽게 왔다. 인간의 마음이 들리게 된 이후에는 조심할 것도 별로 없어졌다. 다른 고양이들의 구역만 과도하게 침범하지 않으면, 누구보다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앞뒤로 눌러놓은 것 같이 생긴 하얀 차가 보였다. 나는 그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차 아래를 들여다보았더니,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가 있었다. 노란 놈인 거 같은데, 어두워서 무늬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구분되지 않았다. 고양이가 밤눈이 어둡다니, 나는 또 한 번 자조했다. 엉금엉금 자리를 잡았다. 곁눈질을 다시 한 번 하고서야, 그가 누군지 깨달았다. 딸, 괴물의 짝이었던 검은 수컷이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잘생긴 얼굴에 한 줄, 심하게 상처가 나 있었다. 가만히 자고 있는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머릿속으로 짧은 생각이 끼어들었다.

 집에 가야지.

 이 차 주인인 인간이 분명했다. 나는 몸을 급하게 일으켰다. 그 사이에 차에서 삑, 소리가 났다. 급하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인간의 생각은 끊임없이 흘러갔다. 집에 가서 씻고 나서 다운받아놓은 영화를 봐야겠다. 천천히 얼굴을 핥아 잠을 깨울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잠을 깨울 정도로 친밀한 사이도 아니긴 했지만. 언제나 나는 그가 딸과 함께 서로 털을 골라주거나 잠들어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그와 단 한 번 말도 섞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에게 달려들어 몸통을 붙들고 차 밖으로 몸을 빼내자, 급하게 잠이 깬 그는 정신없이 내 발톱에 휩쓸려 화단 쪽으로 밀려났다. 장갑? 아, 그때 윤미 씨 태워줬었지.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목덜미를 깨물고 그를 화단 깊숙한 곳으로 밀어냈다. 다른 고양이의 거죽을 물어본 게 언제였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몸부림을 치면서 내 이빨을 떨쳐냈다. 나는 떨려나가면서 화단에 푹 쓰러졌다. 내가 그리 세게 물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는 잠깐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 몸을 곧추세우고 내게 적대감을 표현했다. 곧이라도 내 목을 물어버릴 것 같았다. 이거 돌려준다고 연락 한 번 해볼까. 만약에 나온다고 하면…… 차에 시동이 걸리고, 바퀴가 굴러갔다. 곧 차는 화단에서 멀어져갔다.

 그는 차가 멀어지는 소리를 듣고 하악거리던 걸 멈추고 멍하니 나를 보았다. 푹 쓰러진 나도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그 눈을 응시했다. 

 “어떻게 알았어?”

 “들려서.”

 “발소리?”

 “아니,”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잠깐 말을 멈추었다.

 “아무튼 고마워. 덕분에, 겨우 살았네.”

 그는 살았지만 잠자리는 사라졌고 나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나는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그는 가만히 내 꼬리를 지켜보더니 입을 열었다.

 “배고파? 먹을 거 냄새, 지금도 나는데.”

 “냄새, 잘 못 맡아.”

 그는 코를 찡그리며 날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휑하니 그곳을 떠났다. 나는 아무래도 화단에서 자야 할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흙 위에 몸을 웅크렸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기척에 눈을 떴다. 그가 입에 튀긴 닭 한 조각을 물고 있었다. 닭을 물어뜯으면서 생각했다. 왜 나는 매일 무언가를 먹어야만 하는 걸까. 지금껏 해 본적 없는 낯선 생각이었다.

 “냄새를 못 맡으면 어떻게 살아?”

 “사람 따라서.”

 그는 정말, 정말로 내가 가엾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혼을 잃어버리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람을 따라 다니는 것이었다. 나도 안다는 의미로 꼬리를 쳤다. 귀를 젖히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사람에게 앞발을 내미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가 없다. 우리의 영혼은 한때 신이었고, 우리의 큰 동료들은 인간을 먹고 살았다. 내 영혼은 지금 어디쯤에 가 있을까. 나는 또다시 쓸쓸해졌다. 그날, 그와 나는 화단에서 함께 꼬리를 얽고 잠이 들었다. 다른 고양이의 온기 역시 오랜만이었다.

 그가 일어나기 전에 나는 자리를 떴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어제보다 바람이 덜 불었고, 사람들은 활기차게 걸어 다녔다. 나는 여자가 어제 소리를 치던 자리에 가 보았다. 여자의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못 보던 커다란 화분이 놓여있었고, 어쩔 수 없이 화분 옆에 자리한 여자의 가게는 조금 움츠러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여자의 가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오늘도 물기 없이 까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아직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여자에게 밥을 얻어먹는 시간은 여자의 일이 끝난 다음이었다. 지금 배도 고프지 않은데, 나는 왜 여자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설마, 여자를 위로해주고 싶은 것인가.

 왔구나. 어제도 날 봤었지.

 여자는 어제 내가 화단에 앉아 있던 모습을 자기 시선으로 떠올렸다. 여자는 주섬주섬 소시지를 하나 꺼냈다.

 아직 장사를 시작하지 않아서 이거밖에 없구나. 네가 계속 와 주는 걸 보니, 다른 사람들도 계속 와 주겠지.

 나는 소시지를 물었다. 그 자리에서 물어뜯으려고 하는데, 다른 인간 하나가 가까이 다가섰다. 농협 옆쪽에서 떡볶이를 파는 키 큰 여자였다. 나는 소시지를 물고 여자의 뒤로 뒷걸음질했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밥을 주니까, 도둑고양이들이 늘어나지.

 “고양이 키워?”

 “아니, 얘가 늘 찾아와.”

 “고양이는 정 줘봤자 소용없어. 은혜도 모르고.”

 “사람을 소용되려고 만나나.”

 “자기도 참, 고양이가 사람이야? ……좀 괜찮아?”

 여자의 쓸쓸한 감정이 갑작스럽게 떠안겨졌다.

 “뭐라더라. 난 통행 방해라서 안 된다더니, 화분은 통행에 지장 없나 봐.”

 여자를 찾아 온 떡볶이 쪽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녀가 떠올리는 이미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가 양복을 입은 남자들과 목청 높여서 싸울 때, 한쪽에서 어떤 사람들이 뭉쳐있었다. 여자를 훔쳐보는 시선들, 오고가는 말들, 저 핫바만 밀어내면 여기까지는 괜찮다고 했어, 일단은 지켜보자고, 또 천막치는 거 지겹잖아, 솔직히 인도 위에 있는 건 쟤네밖에 없잖아, 내버려 둬, 같은 말들이 오고갔고, 기억이 끊겼다. 이번에는 아주 뜨거운 분노와 배신감이 휘몰아쳤다. 나는 여자의 감정변화를 더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차도 뒤쪽으로 걸어내려갔다. 소세지 덕분에 오늘은 밤이 되어도 곧 죽을 것처럼 배가 고프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가자 아주 희미하게 여자의 생각이 읽히다가 멀어져갔다.

 어, 얘가 어디갔지.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여자의 가게 맞은편에 괴물이 일하는 가게가 있다. 괴물은 비어 있는 장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대체로 밝은 색깔의 돌로 만들어졌고 어딘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 사람들은 그 장소들을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지만 고양이들은 어디에 그 장소가 존재하든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장소에는 고양이들이 맡는 독특한 냄새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때때로 예언하는 고양이들이 그곳에 있어야 할 '귀신'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처음에는 귀신들이 밀려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귀신들이 떠나는 건지 밀려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세상 어디에 가도 비어 있는 장소가 있었고, 언제나 비어 있는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았다. 그 장소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들은 점점 있던 장소에서 밀려나곤 했다. 예언하는 고양이들이 말하길 그 장소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깃들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인간들이 그 장소들을 생각하는 걸 읽어내었다. 인간들 말로는 '텅 비어 있다'가 '프랜차이즈'인 모양이었다. 우리들은 그 장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 장소는 영이 깃들 수 없기에 고양이들의 숨통을 죄었다. 괴물은 이제 더 이상 고양이가 아니기에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괴물은 앞치마를 두르고 유리를 닦고 있다. 괴물이 일하는 가게는 가게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다. 나는 통유리 앞에 붙어서 괴물을 지켜보았다. 괴물은 입을 작게 오물거리며 유리를 닦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눈만 살짝 웃어 보인다. 

 나는 괴물이 입을 오물거리는 이유에 대해 알고 있다. 아까부터 머릿속이 온통 괴물의 노랫소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괴물은 바깥쪽 유리를 닦기 위해 문을 열고 나왔다. 이번에는 귀로 명확하게 그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괴물은, 인간이 되면 무엇이 좋으냐는 내 질문에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안 굶는 거랑, 담배?

 그리고 가만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내 머릿속으로 단순한 멜로디가 흘러들어왔다. 괴물의 입가에 웃음기가 어렸다. 멜로디 사이로 괴물의 생각이 스며들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

 나는 괴물의 노래가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노래가 듣기 좋다니, 이건 또 새로운 감각이었다. 유리를 닦던 걸레를 들고 괴물이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투명하게 반들거렸다. 괴물의 상관이 괴물을 불러 세웠다. 상관 앞에 선 괴물의 표정은 읽히지 않지만, 괴물의 생각은 들려왔다.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주의를 들은 괴물은 다시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입을 오물거리는 대신 머릿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나는 여전히 괴물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의 영혼은 한때 신이었고, 우리의 큰 동료들은 인간을 먹고 살았다. 이제 괴물은 서서히 자신의 기억들을 버릴 것이다. 어느 순간 자신이 고양이었던 시절의 모든 기억을 잊게 될 수도 있다. 인간을 따라다니고 인간에게 먹을 걸 구걸하는 걸 넘어서서, 인간이 된 놈들은 가장 끔찍한 타락에 있다. 그들은 이제 인간에게 구속당하는 대신 인간에게 뜯긴다. 무언가 일을 해서 인간에게 가져다바치며, 영원히 인간의 종이 되는 길을 택한다. 인간의 종이 된 동족은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등 뒤에서 누군가 가볍게 기척을 냈다. 그때 그 검은 수컷이었다. 털이 곧추섰다. 그는 짝이었던 괴물을 틀림없이 알아볼 것이었다. 검은 수컷과 눈이 마주쳤을 때 새로운 생각이 내리꽂혔다. 누군가 나와 검은 수컷을 매우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동네에 이렇게 고양이가 많아? 둘 다 진짜 못생겼네.

 검은 수컷은 내게 반가운 몸짓을 보였다. 나는 어설프게 검은 수컷을 반가워하면서도, 계속 가게 안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와 검은 수컷을 불쾌하게 바라보던 가게 주인은 결국 괴물에게 우리를 쫓으라고 명령했다. 괴물은 우울하게 내 쪽을 바라보다 바로 검은 수컷을 알아보았다. 괴물은 주눅이 들어서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안돼, 날 알아볼 거야, 틀림없이 알아볼 거야. 못 가, 저기로는, 못 가.

 쟤는 왜 저렇게 늘 행동이 굼떠?

 결국 가게 문이 열렸다. 겁에 질린 괴물은 덜덜 떨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괴물에게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검은 수컷은 내 상태를 보고 의아해하다가, 뒤에서 다가오는 괴물을 발견했다. 곧바로 검은 수컷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검은 수컷은 괴물이 짝이라는 것은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괴물이라는 것만은 알아보았다. 어느 쪽이 더 슬픈 상황인지 잘 모르겠으나, 짝에게 보일 자괴와 연민대신, 그는 단호한 적대감만을 표출했다.

 “긍지도 모르는 녀석.”

 괴물은 검은 수컷의 말을 알아듣고 풀썩 주저앉았다. 검은 수컷은 내게 가볍게 꼬리를 얽었다.

 “나중에 보자.”

 괴물은 심하게 손을 떨면서 내 몸통을 붙잡았다. 나는 저항없이 괴물의 손에 들렸다. 가게 안에서 여전히 가게 주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괴물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외양을 하고 있으면, 굶지 않을 수 있지만 굶지 않기 위한 돈을 얻으려면 인간의 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쫓겨난 인간 종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나는 괴물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괴물은 날 들고 백 걸음 가량 걷고 내려놓았다.

 이쪽 말고, 저쪽으로 가.

 나는 괴물을 향해 다정한 몸짓을 해 보였지만, 괴물은 겁에 질려 보지 못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나는 놀랐다. 괴물은 이제 울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인간 다 됐네.

 어김없이 해가 졌고, 땅 밑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화단 속에 웅크려서 인간들의 시선을 피했다. 인간들의 생각이란 별다를 게 없었다. 이를테면 오늘 화장이 제대로 먹었나, 아까 밥 먹으면서 이에 고춧가루가 끼진 않았겠지, 졸리다, 배고픈데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춥다, 짜증나, 기분 좋아, 저 여자 예쁘다, 대체로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생각들뿐이었다. 숨어있다 보니 쟤한테 밥 줄까, 같은 기분 좋은 생각은 들려오지도 않았다. 내가 숨어 있는 화단 앞에 웬 인간들이 책상 따위를 펴고 무언가 팔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인간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나는 화단을 빠져나왔다.

 가만히 보니 여자의 남편이었다. 여자의 가게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화단 앞 나무에 전등을 설치해주고 있었다. 한 무리의 인간들이 여자와 눈인사를 나누고 신문 같은 걸 팔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의 남편이 달고 있는 불빛을 피해 어슬렁거리며 여자를 훔쳐보았다. 평소에 물건을 팔 때는 아주 단순하던 여자의 머릿속이 매우 복잡했다.

 반죽. 이러다가 혹시 쫓겨나게 될까. 고추. 아이도 대학에 가게 되겠지. 반죽.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나. 튀김. 통장에 모아놓은 돈도 하나도 없는데. 반죽, 아, 아, 튀김.

 여자는 결국 손을 데었다. 여자는 입술을 물고, 참았다. 여자가 고통스러워했고, 덩달아서 나까지 고통스러워졌다.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여자의 손님 하나가 명랑하게 떠들어댔다.

 “자기야, 여기 핫바 진짜 맛있지?”

 괴물은 퇴근하자마자 나를 찾아와 내 옆에 바투 앉았다.

 아까 그 고양이, 아는 고양이야?

 “그래.”

 괴물은 날 들어서 품에 안고 걸어갔다. 괴물의 몸에서 달큰한 냄새가 났다. 나는 괴물과 검은 수컷의 오랜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괴물 역시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괴물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노래를 반복했다. 괴물이 생각으로 부르는 노래와 목으로 부르는 노래는 분명히 차이가 났다. 목으로 부르는 노래 쪽이 역시 훨씬 듣기 좋았다. 거리를 가득히 메웠던 사람들은 새벽이 되자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택시를 타기도 했고, 길바닥에 쓰러지기도 했고, 아까보다 사람들의 생각은 훨씬 더 단순해져 있었다. 졸려, 배고파, 집에 갈래, 추워. 사람들의 생각 위로 괴물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갈비집들이 있던 그 공터까지 걸어가서, 괴물은 벤치에 나를 내려놓았다. 나는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괴물을 보았다. 괴물은 탁자 위로 올라가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새벽공기는 차가웠고, 괴물은 귀까지 새빨개진 채, 하늘을 보았다. 별이 몇 개 반짝였다. 괴물은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였다.

 괴물의 노랫소리는 듣기 좋았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조금 먼 곳에선 누군가가 뱉어놓은 토사물이 가로등 아래에서 조금 반짝거렸다. 괴물은 점점 더 큰 소리로 노래했다. 나는 괴물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괴물의 울음이 격렬해질수록 노랫소리도 커졌다. 괴물의 슬픔이 머리로 전해지는 게 아니라 노래로 전해졌다.

 이 소리는 고양이의 울음이 아니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인간의 울음이었다. 고양이는 이런 방식으로 슬퍼하지 않았고, 이렇게 눈물을 토해내지 않았다. 괴물은 아직 인간의 말로 어떻게 슬픔을 전달해야 할지는 알지 못했지만, 인간의 감정으로 노래했다. 그녀의 손과 발이 그렇듯이, 털이 나지 않은 나약한 낯짝이 그렇듯이, 당연하게도 괴물은 점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괴물과 같은 방식으로 슬픔을 전달받고 있었다. 괴물은 영혼과 허기를 맞바꾼 대가로 다정했던 짝을 잃었다. 그저 배가 고팠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괴물의 절망이, 인간처럼 내 가슴을 때렸다.

 수염과 높이 솟은 귀를 잃어버린 괴물은 노래부르는 자신의 그림자 속에 짝이 숨어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 물론 감각을 잃어버린 나 역시 시야에 그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검은 수컷이 묵묵히 괴물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인간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괴물의 노래는 낭랑하게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밤중에 웬 공연이야?

 목소리 좋다.

 움직이는 생각들 사이로 홀연히 춤을 추던 괴물의 노래는, 천천히 허공에 내려앉았다. 괴물은 멜로디를 타고 공중을 날듯이, 어딘가 어둠 속을 걸어갔다. 멀리서 괴물의 노래를 듣던 인간들도 제각기 흩어졌고, 내가 벤치에 웅크리고 앉자 숨어 있던 검은 수컷이 튀어나왔다. 화단에서, 골목에서, 벤치 아래에서, 고양이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괴물의 노래를 훔쳐 듣고 있었다. 검은 수컷은 고양이들을 둘러보고는 내게 꼬리를 들어보였다. 그들은 검은 수컷의 동료인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들에게 꼬리를 들어보였다. 회색 털에 흰 털이 고르지 않게 섞인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암고양이였다.

 "나는 여기서 십 년 살았어."

 이 고양이가 이 구역을 책임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모여 있는 고양이들은 그녀를 제외하면 대체로 내 자식뻘이거나 그보다 어려 보였다. 아주 젊은 고양이들이었다. 그녀의 후계자들일 터였다.

 "나는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그쯤 살았어."

 떠돌이는 나약한 고양이라는 증거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관용 있는 자세로 날 받아들이겠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이 동네에도 최근엔 '비어 있는 장소'들이 많이 생겨서 살기가 편치는 않아. 그래도 이곳에서 살아가겠다면 환영하지. 하지만 저 놈을 구해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냄새를 잘 맡는 모양인데 왜 떠돌이로 살아가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전혀 맡지 못해."

 회색 털의 고양이는 의아하다는 듯 몸을 움츠리며 내게 물었다.

 "저 괴물이랑 친해?"

 괴물의 노래를 듣고는 있었으나, 이들 모두 그녀가 괴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친하다고 말하면 공격받을 것인가. 나는 찬찬히 고양이들의 태도를 살펴보다가 무슨 일이 있다면 검은 수컷이 날 지켜줄 거라고 근거도 없이 믿어버렸다.

 "내 딸이야."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릉대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튀어 다녔다.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인간의 생각이 들려."

 검은 수컷이 털을 쭈뼛이 세웠다.

 "그게 무슨 말이야?"

 "냄새를 못 맡아도 인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지금껏 살 수 있었다는 거지."

 털이 많이 빠진 암컷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인간이랑 살 때도 그러던 녀석이 있었어. 인간이 뭘 원하는지 다 알고 있던 그 녀석이 인간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간식을 얻어먹곤 했었지. 그가 능력에 대해 말해줬을 때 나는 그 능력이 너무 부러웠어."

 털이 많이 빠진 암컷은 검은 수컷의 새 짝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괴물의 정체를 말해줄까 하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부러워 할 것 없어."

 나는 수술을 받던 순간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 했다. 아이를 싣던 작은 주머니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함께 빠져나가버린 민첩하던 몸놀림과 날카롭던 후각에 대해서. 내게 남은 둔한 귓바퀴와 쓸모없는 수염에 대해서. 그리고 고양이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 끊임없이 들려오는 인간의 생각들에 대해서. 괴물이 느낀 인간적 절망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유일하게 알아들은 것은, 내가 끔찍하게도 인간처럼 사고하는 고양이라는 것이었다. 검은 수컷이 송곳니를 핥으며 말했다.

 "스스로 영혼을 버리진 않았잖아. 그걸로 됐어."

 "하지만 난 이미 고양이가 아닐지도 몰라."

 "그렇다고 괴물이 되려는 건 아니잖아."

 "인간의 마음이 들린다는 건 이미 괴물이라는 신호일 수도 있지."

 회색 털의 고양이가 내게로 다가와 엉덩이를 들이대더니 꼬리를 들어 올렸다. 나는 내 눈 앞에 갑자기 펼쳐진 은밀한 광경에 당황했다. 나는 그가 당연히 암컷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암컷이 아니었다. 음낭이 제거된 수컷이었다. 나는 그의 꼬리 밑동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한 때 신이었고,"

 "우리의 큰 동족들은,"

 "인간을 먹고 살았지."

 고양이들은 조금씩 다른 눈과 다른 냄새와 다른 털빛깔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내일 아침이면 벌써 이들을 다 잊을 수도 있었다. 내 눈은 서로 다른 광채를 구분할 만큼 밝지 못했고, 내 코는 이들 모두가 같은 냄새를 가진 것만 같았다. 나는 이 반 괴물, 반 고양이인 고양이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사는 게 구차하다고 죽을 수는 없는 고양이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영혼까지 팔아 살아남을 만큼 타락하지는 않은 비참한 존재들이었다. 노란 눈들은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아홉 번 다시 태어나도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었다. 누군가 허공을 향해 울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가 맴돌았다. 괴물은 노래만 부르고 떠났지만 괴물이 떠난 자리에 모여든 고양이들은 내가 경고하기 직전까지 절박하게 울부짖었다.

 아, 씨발, 이 동네 고양이들이 다 정신이 나갔나.

 "조용히 해!"

 고양이들이 울음을 그치자마자 공터 옆 건물에서 작은 돌덩이가 하나 날아들었다. 돌덩이는 우리 중 누구도 맞히지 못하고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우리는 비참하게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내가 여자를 다시 찾아갔을 때, 여자는 하얀 티셔츠 위로 근육이 불거져 나온 건장한 남자들 앞에 혼자 서 있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고양이로 살아갈 무렵, 나는 결코 개와는 싸우지 않았다. 아무리 큰 개라도 개는 나를 앞에 두면 커다랗게 겁먹은 눈을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네 다리를 휘저으면서 큰 소리로 짖어대곤 했다. 내가 어느 쪽으로 몸을 움직여도 겁을 먹은 개의 반응 속도는 느렸다. 나는 당장이라도 개의 목을 물어 숨을 끊어놓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개는 겁을 먹고 있었고, 겁을 먹은 생물은 너무 약했다. 아무리 큰 소리로 짖어대도 그 바보 같은 것은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여자는 꼭 개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겁먹은 개처럼 짖고 있었다.

 "쳐 봐, 어디 한 번 쳐 봐!"

 왼쪽에 서 있던 남자가 웃었다.

 미친년.

 그는 성큼성큼 여자 쪽으로 다가섰다. 악다구니를 쓰던 여자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어깨를 움츠렸다. 남자는 그 커다란 팔을 들어, 여자를 치는 대신 여자의 노점 한쪽을 쳤다. 한쪽 다리가 무너졌고, 여자의 마음이 같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커다란 소리에 나도 모르게 적의를 내뿜었다. 노점 한쪽을 완전히 무너뜨린 남자는 짐승처럼 적의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꼼짝도 않고 날 똑바로 응시했다.

 기름, 기름.

 여자는 쟁여두었던 경유통을 번쩍 들어 머리 위에 부었다.

 아이고, 저걸 어떡해.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다른 노점상들이 나와서 여자의 가게가 부서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는 가스라이터를 휘두르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고래고래 소리쳤다.

 저거 저대로 둬도 되나?

 설마 진짜로 죽지는 않겠지.

 죽든지 말든지 알 게 뭐야.

 솔직히 저기만 인도 위에 있는 건 사실이잖아.

 미친년, 춤을 춰라, 춤을 춰.

 저 가게만 나가면 다 보장해 준다고 했잖아. 어쩔 수 없지.

 안됐긴 하지만 하나 죽고 우리 다 살면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저 용역 놈들이 옛날에 우리 가게도 다 엎어버리려고 했었는데, 다시 봐도 아주 소름이 돋네.

 저걸 어떻게 해, 저걸, 아이고, 저러다 사람 죽겠네.

 근육질에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터벅터벅, 기름을 뒤집어쓰고 가스라이터를 든 여자를 지나쳐서 여자의 가게를 향했다. 소리를 지르던 여자는 목청을 닫은 채 멍하니 부서지는 가게를 지켜보았다. 여자가 집에서 해 온 반죽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고, 잘 정리해 온 꼬치들이 아스팔트를 뒤덮었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서 몸서리를 쳤다. 갑자기 몸이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여자는 새파란 물속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여자와 함께 푸른 물속에 잠겼다. 그 와중에도 처음 여자의 가게를 부수었던 그 남자는 나를 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용역들이 여자의 가게를 다 망가뜨리고 새벽에 다시 올 때까지 깨끗이 치워 놓으라며 여자에게 으름장을 놓을 때까지 여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계속 새파란 물속을 떠올렸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부산에 살 때 여자는 스킨스쿠버 강사였다. 여자는 빠르게 물속을 헤엄쳤고, 걱정 없이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나는 여자와 함께 물고기처럼 발을 유연하게 흔들었다.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울었다. 눈에서 흐르는 게 진물이 아니었다. 붉은 색도 아니었고, 눈 아래에서 뭉치지도 않았다. 맑은 눈물이 똑똑, 앞발에 떨어졌다. 분명하게 깨달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고양이가 아니었다. 

 용역들이 모두 가버리고, 여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진 가게를 챙겼다. 완전히 우그러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다 야무지게 모았고, 버려야 할 것들은 버렸다. 모든 노점상들이 기겁하는 가운데, 여자는 기름과 눈물을 키친타월로 닦았다.

 절대로 이대로는 못 가.

 여자의 파란 물이 새하얀 햇빛으로 바뀌었다. 나는 갑자기 눈이 부셨다. 대충 가게를 수리한 여자가 엎어진 반죽을 내려다보았다.

 반죽 버린 건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어쩌나.

 나는 반죽 앞으로 다가섰다. 여자는 나를 알아보았고, 나는 반죽에 혀를 가져다 댔다. 여자에게는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며칠이 걸리더라도 이 반죽을 다 먹어버릴 기세였다. 여자는 기름이 묻은 손을 대충 닦아낸 후 내 머리 위에 얹었고,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여자는 내 털이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쓰다듬지 않은 나는, 내 털의 부드러움을 여자 손에 남은 기름의 끈적함과 함께 느꼈다. 내 영혼도 반죽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열두 시가 지나자 하나둘 씩 고양이들이 여기저기에 몸을 숨기고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노점 바로 옆 화단에 앉아 있었다. 수염에 남은 힘을 모두 모아서 어디에 고양이들이 있는지 짐작해보았다. 몇 군데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회색털 고양이와 검은 수컷 짝꿍이 내 곁에 바투 앉았다.

 "고마워. 내 밥줄일 뿐인데."

 "거기 영기가 많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있었어. 그러니까 네게 밥을 줬겠지."

 검은 수컷이 목 안쪽을 울려서 조금 큰 소리로 울었다. 젊고 싱싱한 목소리였다.

 이 거리를 지나치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갈 때쯤 그 남자들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단단한 쇠몽둥이까지 몇 개씩 든 채로 찾아왔다. 여자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여자의 남편은 남자들이 찾아오자마자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완고하게 머리를 닫으려고 노력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들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이젠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생각은 뇌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걸 어쩌지.

 "이보십시오, 구청 직원들한테 낮에 직접 와서 말하라고 하십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여자의 남편은 보도블록 위로 나동그라졌다. 그들은 아까보다 훨씬 거칠게 여자의 작은 가게를 부숴 나갔다. 검은 수컷의 엉덩이가 흔들거렸다. 회색 털이 검은 수컷에게 눈짓을 했다. 검은 수컷은 낮은 소리로 웅웅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있는 힘껏 그들의 생각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다. 용역들의 짧은 생각들, 노점상 부부의 짧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치고 다니는데, 그 가운데 불쑥 괴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물, 나는 고개를 들었다.

 괴물은 저도 모르게 검은 수컷을 느끼고 있었다. 괴물에게 지금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 존재를 잊어가는 중이었다. 괴물에게는 검은 수컷에 대한 간절한 감정이야말로 지금까지 완전히 인간의 길로 내닫지 못한 하나의 끈이었다. 나는 괴물의 마음을 읽어내면서도 이걸 이제야 이해했다. 수염을 잃어버린 괴물은 단지 간절한 마음 하나로 검은 수컷의 자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웅웅거리는 수많은 동족들의 외침을, 아직 괴물은 읽어낼 수 있었다.

 괴물은 바스러지는 노점상을 지나쳐 옆 도로에 주르륵 줄을 서 있는 노점상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 대부분은 묵묵히 자신의 가게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

 그만. 저것들은 인간이지 고양이가 아니야. 같은 종이라거나 같은 위치에 있다고 서로 돕지 않아. 괴물은 끝내 입으로 뱉어내고야 말았다.

 "어떻게,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수가 있어요!"

 조그맣게, 저걸 어떻게 해, 만 반복하고 있던 떡볶이 아주머니의 마음에서 꽝 소리가 울렸다.

 "야, 이 나쁜 놈들아!"

 "냅두라니까 그러네, 이 아주머니가. 저쪽만 없어지면 우리 다 괜찮다니까."

 아주머니는 발을 굴렀다.

 "언제 그런 적이 있었어, 언제! 재작년에도 저쪽 하나만 없앤다고 했지만, 결국엔 천막 쳤잖아. 천막 치고서도 몇 번씩 저 놈들한테 뜯겼잖아. 언제 그랬어!"

 "아, 글쎄, 그때는 우리 다 비슷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그냥 둬요."

 떡볶이 아주머니의 마음에선 계속 대포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떡볶이 아주머니는 그 대포알이 터지는 리듬에 맞춰서 자신을 말리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쥐어버렸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어디까지가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말소리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여자는 내게 튀긴 반죽을 잘라내 주던 검은 손으로 부서지는 가게를 꼭 붙들고 있었다. 아까 날 바라보던 그 놈이 쇠몽둥이를 여자의 손을 향해 치켜들었다. 나는 그놈의 허벅지를 향해 뛰어들었다. 여기저기에서 고양이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고양이들이 싸움판에 뛰어들자 비명이 더 높아졌다.

 "뭐야, 이건!"

 어떤 놈들은 굴하지 않고 가게를 부수기도 하고 어떤 놈들은 몽둥이를 휘휘 돌리며 고양이를 내리찍으려 들기도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놈이 몽둥이를 내리찍는 순간, 나는 놈의 손목을 거칠게 할퀴었다. 놈은 몽둥이를 떨어뜨리고 손을 붙들었다. 손톱에 놈의 살점이 조금 묻어나 있었다. 놈은 내 몸을 붙들어 내 갈비뼈를 부술 생각이었다. 나는 놈의 생각을 읽고 기분이 좋아졌다. 어쨌든 나는 아직 고양이었고, 놈보다는 몸이 빨랐다. 나는 오히려 놈의 손을 피해서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놈은 옆구리를 깨문 내 몸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아까 할퀸 놈의 손목에서 피가 흘러서 내 배로 흘러내렸다. 놈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치켜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넘어지거나 도망가는 용역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핫바 꼬치들을 집어들고 무슨 창이라도 되는 것마냥 휘두르고 있었다. 괴물 소녀는 떡볶이 아주머니와 함께 다른 노점상들에게 계속 항의하고 있었다. 뚝, 온몸의 뼈들이 몸 안으로 오그라붙었다. 나는 있는 힘껏, 놈의 옆구리를 물어뜯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날 내던졌다.

 나는 보도블럭에 뺨을 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감았다 떴다.

 괴물의 운동화는 빨간색이었고, 끈이 더러웠다. 괴물은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대신 노래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노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물가물하게 빛이 멀어져갔다. 아직 여덟 개의 목숨이 남아 있었다. 아직 내 영혼이 허락한다면, 다음 생에도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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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기담2012, 텍스툰Textoon 10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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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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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냥 12.12.01 01:32 댓글 수정 삭제
    이 글 참 좋아요. 고양이도 좋아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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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na 12.12.01 01:37 댓글 수정 삭제
    위의 덧글에 완전 동의해요 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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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망재 12.12.01 11:38 댓글 수정 삭제
    이 글 다시 보니 정말 좋아요. 고양이의 시각이라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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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달 12.12.01 11:43 댓글 수정 삭제
    역시 멋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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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2.12.03 11:41 댓글 수정 삭제
    @미로냥 고양이는 위대합니다옹.

    @pena 역시 이쪽 세계 사람들은 애묘인이 많다고 정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옹.

    @해망재 냐옹!

    @가는달 고맙습니다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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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12.12.05 02:50 댓글 수정 삭제
    밑줄 긋고 싶은 데가 여기저기 있네요.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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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2.12.05 11:55 댓글 수정 삭제
    @배명훈 문장이 아름다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게 늘 걱정이었는데, 감사합니다옹. =^ㅅ^=

    한 번 고양이 흉내를 내기 시작하니까 멈출 수가 없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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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니 12.12.12 00:16 댓글 수정 삭제
    무릎위에 고양이 한마리를 모셔놓고 같이 읽었어요. 고롱대는 이 아이도 아마 같이 읽었을 겁니다!

    잘 봤어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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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2.12.12 15:51 댓글 수정 삭제
    @도망니 늘 감사합니댜옹 :) 무릎 위 친구도 쓱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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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니 12.12.31 23:10 댓글 수정 삭제
    앤윈님의 소설엔 언제나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땅과, 고개를 돌려 마주한 사람들과, 활자로 이루어낸 희망과, 굳은 살 아래 야들한 피부, 같은 것이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새 작품을 볼 때면, 오랜 시간 적어온 성인 여성의 일기 다음 장을 넘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서, 언제나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자전적인 소설이, 가장 인간적이라는 이 장르에서 누구보다 매력적이게 성공하는 쾌감도 느끼곤 했습니다. 물론 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요.


    문득 북마크를 보다, 2012년의 마지막 날에 소회같은 것이라도 남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에 댓글 적어봅니다.

    앤윈님도 살아갈테고, 저도 살아갈테지요.

    밝아오는 2013년도 이거 공짜로 봐도 되는건가? 하는 마음으로
    관음증환자처럼 새 작품을 기다리겠습니다.

    언젠간, 제 널널한 책장에 앤윈님의 이름이 적힌 책 한권이 있어도 괜찮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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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3.01.15 15:39 댓글 수정 삭제
    너무 감사한 평이라 어떻게 댓글을 달아야 할 지 알 수 없어서 며칠을 망설이다가 댓글을 달아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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