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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만이 깔린 붉은 땅. 뒤에는 황량한 산만 육중하게 앉았다. 인기척은 어디에도 없다. 생명이 없는 듯한 땅에도 비는 내린다. 그건 제대로 된 비가 아니다. 밤새 바위에 맺혀있던 이슬이 번지는 듯, 희미하게 땅거죽의 먼지만을 적시는 비다. 짙게 끼어있는 안개다. 그래도 충분히 공기는 축축하고, 벌레는 기어 나온다. 쥐도 밖으로 나와 메마른 살갗을 습기에 비빈다. 조그만 쥐의 움직임에도 부스스 일어나던 먼지는 물기를 머금고 서로 끈끈하게 엉켰다. 비가 내리면, 산에서는 지렁이들이 기어 나와 몸을 적신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렇게 나올, 지렁이가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양팔을 붙들려 걸어갔습니다. 재판은 끝났고, 판결은 내려졌지요. 장식 하나 없이 희디흰 복도에는 발소리가 여럿 울렸습니다. 감방에서 재판을 기다리며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살이 빠졌던 모양인지 가늘어진 손가락에서 반지가 금방이라도 헐렁헐렁 돌아다녔어요. 머리핀, 귀고리, 목걸이, 팔찌- 붙들렸을 때 나는 모든 장식을 빼앗겼습니다. 여경찰이 몸수색을 끝냈고, 감옥에 들어가기 직전 여간수가 몸을 재차 뒤졌습니다. 머리를 고정시키고 있던 가느다란 실핀을 빼내고 여간수는 득의양양하게 웃었지요. 그녀는 반지를 빼내려고 손을 잡았다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당신은 후안무치의 창녀라던데.”


  그녀는 내 손을 들어올려 반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화려한 반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산에서 보석은 장신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 산에서 보석은 장신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매끈하게 다듬은 철사에 구리를 입히고 석 줄을 얽어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있던 장신구 중에서 유일하게 그가 만들어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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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피아에서 전자책 <50년 전의 연인>으로 출간하면서 삭제되었습니다. 출간되면서 제목이 '사랑의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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