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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이수연 옮김, 황금가지, 2005년 10월



pena (pena12@naver.com)



우연찮게도 3부작으로 완결되는 유명한 장르문학 세 작품의 1부를 한꺼번에 읽었다. 각각 발표된 연도도, 작가의 출신국가도, 배경이 되는 세계와 작품의 특징도 판이하게 달랐지만 명성이 대단한 시리즈라는 것만은 공통적인 작품이었다. 첫 번째는 [황금나침반], 두 번째는 [퍼언 연대기: 드래곤의 비상], 세 번째가 [나이트 워치]였다.

그런데 세 작품 중 나머지 2부와 3부까지 찾아 읽은 것은 워치 시리즈뿐이었다. 다른 두 작품 중 한 작품은 재미나게 읽었지만 그 뒤를 찾아볼 마음이 들지 않았고, 나머지 한 작품은 그걸 다 읽는 것마저 힘들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명성으로는 세 작품이 다 못지않게 대단했다. [황금나침반]은 영화화까지 됐고, 사실 계속 읽지 않다가 영화 때문에 읽기 시작했을 정도로 명성이 높은 작품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취향’이라고 한마디로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야기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황금나침반]과 [드래곤의 비상]이 내 취향에 부합할 구석이 더 많았다. 일단 나는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선호하고, ‘용’은 나왔다 하면 백발백중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결과는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도대체 왜일까?

이 글에서 나는 워치 시리즈를 차근차근 소개하면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내려보고자 한다. 왜, 무슨 이유 때문에 이 작품만이 눈길을 끌고 끝내 책장에 남았는가?


설정과 세계 때문인가?

세 작품 중 워치 시리즈를 뺀 두 작품은 우리 세계와 완전히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이었다. 새로운 생물과 종족이 등장하고, 새로운 물리법칙이 지배하기에 우리가 사는 세계와 상식이 전혀 다르고 그 다름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상황에서 거기에서만 가능한 갈등이 일어나 거기에서만 가능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이야기였다. 또한 그 점이 강점이기도 하다. 오직 인간의 상상력으로만 가능한 다른 세계를 만나고 그 안에 살고 이입하며 다른 존재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한 조건을 바꾸었을 뿐인데 우리 삶의 한 측면이 도드라지면서 이전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에 생각이 닿는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SF나 판타지를 읽으면서 기대할 수 있는, 또한 이 장르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르의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 영화 [나이트 워치](Nochnoy Dozor, 2004)의 한 장면.

워치 시리즈는 우리가 현재 사는 세계가 배경이다. 물론 완전히 같은 세계는 아니다. 세상에는 어스름이라는,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다른 차원이 있으며 그 다른 차원을 볼 수 있고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모든 존재들을 통틀어 ‘다른 존재들’이라고 한다. 이 다른 존재들에는 마녀, 요술사, 흡혈귀, 늑대인간, 변신자 등 온갖 민담과 설화와 신화를 통해 알고 있는 인외의 존재들이 속한다.

워치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설정, ‘경비대’란 무엇일까? 이 다른 존재들은 빛과 어둠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똑같이 마법을 쓰는 다른 존재라도 어둠의 세력에서는 마녀와 주술사라고 하고, 빛의 세력에서는 마법사라고 한다. 물론 뭔가 메커니즘이 다른 것 같지만 거기까지는 몰라도 상관없고. 흡혈귀나 늑대인간은 대체로 어둠의 세력이다. 등장하진 않았던 것 같지만 천사가 나온다면 빛의 세력일 것이다. 이 빛과 어둠의 세력은 자신의 존재를 강화하고 서로의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 더 근본적으로는 다른 존재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그로써 세상을 자기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이끌기 위하여 치열하게 대립한다. 존재는 드러내지 않지만 보통 사람들 중 대단한 이들의 뒤에는 이들 다른 존재들이 있었고, 역사 속의 커다란 사건 중 다른 존재들이 간섭하여 일어난 일도 많다. 이러한 치열한 대립 때문에 오히려 다른 존재들의 근간이 되는 보통 사람들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빛과 어둠의 세력은 휴전하고 위대한 협약을 맺어 지키기로 한다.

우리는 '다른 존재'들로서,
두 다른 세력을 섬기노라.
어스름의 세계에서는 '어둠의 부재'와 '빛의 부재'가
서로 다르지 않다.
우리의 투쟁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으나
우리는 위대한 휴전 협약을 체결하노라.
어느 편이든 각자의 법칙에 따라 살고,
어느 편이든 각자의 권위를 가지리라.
우리는 각자 자기 편의 권한과 법을 제한하노라.
우리는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간 경비대를 창립하나니,
빛의 세력이 어둠의 세력을 감찰하기 위함이라.
우리는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간 경비대를 창립하나니,
어둠의 세력이 빛의 세력을 감찰하기 위함이라.
시간이 우리를 결정하리라.

헷갈리면 안 된다. 야간 경비대는 어둠의 세력을 감찰하는 빛의 세력이며, 주간 경비대는 빛의 세력을 감찰하는 어둠의 세력이다.

이 부분이 워치 시리즈의 가장 특별한 설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두 세력의 협약은 생각보다 세세하다. 각 세력은 보통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만한 행위를 등급까지 나눠가면서 세세하게 정리했고, 한 세력이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일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 다른 세력 또한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빛의 세력인 야간 경비대가 마법을 써서 알코올 의존중인 보통 사람의 증상을 고쳐놓는다면, 주간 경비대는 멀쩡한 사람을 뇌물의 마수로 빠뜨리는 등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할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예로 든 것이 조악하고 정확히 어떤 행동이 어느 등급인가가 확실히 나오지는 않지만, 한 선행이 한 악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사실은 선행이라고 한 것, 악행이라고 한 것도 같은 무게를 가진 하나의 행동일 뿐, 선하다 악하다 좋다 나쁘다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체계로 보여준다는 점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이 체계와 무게에 관해서 학교 교육받듯이 다른 존재들이 교육을 받는다는 세심한 설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주간경비대와 야간경비대 사이에는 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어느 한 세력이 다른 존재로서 인간에게 도를 넘은 간섭을 했을 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정하고 상벌을 정하는 재판부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들 또한 ‘다른 존재들’이며,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주간경비대와 야간경비대로 입문한 다음 무언가를 계기로 재판부로 전향한 자들이라고 한다.

굉장히 매력적이고 섬세한 설정과 세계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현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다가올 법한 설정과 세계가 아닐 수 없다. 그냥 다만, 나는 그런 걸 더 선호하는 편은 아니고, 앞서 말했듯이 다른 두 작품은 취향 직격인 소재와 설정이 두 개나 있었고, 워치 시리즈의 설정은 기존에 있던 것들을 짜깁기한 면이 있어서 ‘독창성’이란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는 이 소설 속의 세계와 설정이 세 작품 중 최상위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는, 독특함이든 뭐든 설정이란 면만 가지고 문학작품의 우위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설정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은 모두 헛소리였나? 워치 시리즈가 더 재미있다고 느꼈던 데에 설정과 세계라는 면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는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보면, 또 그렇지는 않다.


▲ 영화 [나이트 워치]의 한 장면.


낯설고 새로운 문화권의 작품이기 때문인가?

[황금나침반]과 [드래곤의 비상]은 영미권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반면 워치 시리즈는 러시아 작품이다. 이제까지 쉽게 접해왔던 영미권 작품이 아니라 생소한 러시아 작품이라는 점이, 러시아라는 나라의 독특한 정서가 이 작품의 손을 들어준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까?

솔직히 나는 러시아와 그 주위 북방 민족의 문학에 무지하다. 내가 러시아에 대해 아는 것은 레닌이 등장하는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동화 한 편, 툰드라를 배경으로 하는 동화 몇 편과 톨스토이가 쓴 동화 몇 편, 피겨스케이팅과 기계체조와 리듬체조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의 선수들, 독특한 성정으로 인해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몇몇 군주의 행적, 그네들이 서기 천년 가까이 되어서야 선택한 국교, 그보다 훨씬 전부터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을 오랜 신화와 민담 등 단편적인 일화나 겉핥기 지식에 가까운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연환경에 대한 인상도 빼놓을 수 없다. 그 혹독한 동토와 추위. 이렇게나 러시아의 문학과 문화와 역사에 무지하면서도, 혹은 어쩌면 그래서 나는 러시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이감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땅 때문에, 그러나 그 땅 대부분을 차지한 추위 때문에, 냉전시대의 한 축을 이루었던 사회주의 제국 때문에, 그 안에서 이루어낸 체육과 예술 분야의 아름다움 때문에 러시아는 내게 매혹적인 공간이다. 오리엔탈리즘을 무색케 하는 판타지를 품은 공간이다. 세상 모든 나라의 역사가 고유하고 독특한 발자취를 남기고 어느 문화든 어느 민족이든 나름의 색깔로 빛나게 마련이지만 이 나라만큼 극단적이고 끔찍하고 가혹하면서도 아름답고 독특하고 매혹적으로 빛나는 거인도 또 없을 것이다.

이 환상과 인상이 내가 [나이트 워치], [데이 워치], [더스크 워치]로 이어지는 이 러시아산 환상문학을 접했을 때, 접하는 과정에 눈에 끼고 있던 색안경이다. 나는 이 시리즈가 옛날에 소비에트 연방의 종주국이고 지금은 러시아인 나라에서 출간된 환상문학이라는 것을 매우 의식하고 읽었고, 그러한 배경이 이 시리즈에 대한 호감도를 조금이라도 올렸으리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도시와 지하철의 을씨년스러운 모습,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추위에 대한 묘사, 세계 제일의 공산주의 국가이자 냉전의 한 축이었던 국가의 모습이 설정으로 묻어나는 대사와 지문은 이러한 호감과 기대를 가질 만했다는 답과도 같았다.

“인간쓰레기들로 봤겠구먼.”

나는 감정을 실어 말했다.

“아니, 왜? 그 친구는 아주 맘에 들어했어. 그가 말하더군. 진정한 러시아식 음주 문화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이야.”

“그래, 의미가 뭔가?”

“그건 말일세. 아침에 눈을 뜨면 주위의 모든 게 암울한 거야. 하늘도 우중충하고 햇빛도 우중충하고 도시도 우중충하고, 사람들도 우중충하고 생각도 우중충하지. 유일한 탈출구는 또다시 술을 마시는 거지. 그러면 더 나아지는 거야. 그땐 모든 게 색을 되찾는 거지.”
―――[나이트 워치] 하권 229쪽

“왜냐면 말이지, 귀여운 내 아이야. 이 전장에서는 아직 뭔가를 이뤄낼 수 있어서니까. 유럽과 북아메리카는 이미 불모지가 된 상태야. 가능한 모든 걸 다 시도해 봤다고. 지그도 뭔가 일을 진행시키고 있긴 해. 하지만 그들은 이미 꿈나라에 있고, 벌써 잠들어 있어. 반바지 차림에 비디오 카메라를 든 건장한 연금생활자, 이게 바로 복지와 안녕을 이룬 서구야. 실험이란 젊은 국가에서 이루어져야 해. 러시아, 아시아, 아랍 세계, 이게 바로 오늘날 작전 근거지야. 당혹스러운 표정 짓지 마. 나도 너 못지않게 조국을 사랑해! 네 핏줄 속에 흐르는 양보다 많은 피를 나는 조국을 위해 쏟았어. 이해해, 안톤. 전투지는 전 세계라고. 너도 나 못지않게 이 점은 잘 알잖아.”

“어둠과의 전투지 인간들과의 전투가 아냐!”

“그래, 어둠과의 전투야. 하지만 이상적인 사회를 창조한 후에만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어. 사랑과 선함과 정의가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해. …… 우리는 하찮은 어둠의 파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계를 바꾸어야 해. 이게 바로 목표야. 이게 바로 승리를 향한 길이지!”
―――[나이트 워치] 하권 270쪽

그리고 주인공이 듣는 음악이라는 형태로 인용되는 러시아 음악의 가사에 담긴 비극성과 환상성은 러시아의 환상문학으로서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 마지막 향기를 더한다. 주인공 안톤은 자주 음악을 듣고, 신기한 운명의 장난처럼 그의 md 플레이어는 상황에 걸맞은 노래를 골라서 귀에 꽂아넣는다. 이런 환상적인 글과 음악을 만든 자들은 사실 입문하지 않은 다른 존재일 거란 말도 가끔씩 하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MIB에서 유명인이 모두 외계인인 것보다 설득력도 있고.

우연은 내게 무엇을 던져줄 것인가?
모든 것은 이후에 결정되리니, 뭇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소중한 손님.
나는 어둠 속에 서 있으니, 뭇사람들에게 나는 그림자일 뿐이며,
또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라네.

나는 그룹 피크닉을 열렬히 좋아한다. 피크닉의 보컬 슈클랴르스키의 '다른 존재' 소속 여부를 검증해 보았을지 궁금한데? 해볼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럴 필요 없었을 수도. 노래나 부르게 놔두는 게 더 좋겠지.

나는 박자에 맞춰 춤추지 않네, 나는 모든 일을 다른 식으로 했다네,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다네.
오늘 나는 내리지 못한 비,
피워지지 못한 꽃을 닮아 있네.
나, 나, 나, 나는 보이지 않는 자.
나, 나, 나, 나는 보이지 않는 자.
우리 얼굴은 연기처럼, 우리 얼굴은 연기처럼.
아무도 우리가 승리할 것을 모르리라.
―――[나이트 워치] 상권 233~234쪽

이제 혹독한 동토와 대륙의 스케일만 갖추고 있다면 이 워치 시리즈는 내 환상 속의 이상적인 러시아 환상문학일 터인데,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이것이 대륙의 스케일! …… 이 아니잖아?

일단 러시아 소설 하면 그 대륙 넓이만큼이나 장대한 스케일을 떠올리게 되고, 그것이 특징이자 장점이자 위대한 점이거늘 워치 시리즈의 이야기는 많이 소소하다. 한글 책으로 두 권, 원서로 한 권짜리로 완결된다는 것부터 좀 짧다고 생각했지만, 시리즈라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펼치고 보니 이건 또 뭔가. 그 짧은 한 권도 통짜 이야기가 아니라 3편의 중편으로 나뉘어 있던 것이다. 중편끼리 서로 연결되며 마지막 세 번째 중편은 앞의 두 이야기를 포석으로 결론을 내리는 대단원이지만, 아무래도 호흡이 뚝뚝 끊어지며 스케일이 작은 건 어쩔 수 없다.

주인공인 안톤 고로제츠키는 이제 막 인턴사원 시절을 벗어나 처음으로 필드에 나온 야간경비대 말단이다. 찬란한 힘을 나타내며 다른 존재로 각성한 천재소년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그만큼 또 많은 것을 깨달아서 세월의 흔적만큼 더 매력적인 고렙 캐릭터도 아니다. 유쾌한 성격이나 비장한 배경 같은 무기도 없다. 그야말로 평범한 캐릭터이다. 차라리 안톤이 첫 임무에서 쫓아다닌 흡혈귀에게 희생당할 뻔한 소년 예고르나 머리 위에 커다란 저주 기둥을 달고 있는 젊은 미녀 스베틀라나가 안톤보다는 주인공의 아우라와 포스를 풍긴다. 스베틀라나의 저주 기둥이 모스크바는 물론 전 세계를 삼킬 만한 시한폭탄임이 밝혀졌을 때 속속 도착하던 야간경비대의 수많은 요원들은 물론이고, 안톤에게 치프가 붙여준 파트너이자 과거의 잘못 때문에 그냥 올빼미도 아니고 박제 올빼미에 갇혀 있는 올가가 더 주인공으로서 매력적일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안톤이 아니라 예고르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안톤은,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빛과 어둠 중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아기 같은 영기를 가진 소년 예고르에게 다른 존재들과 어스름과 대협약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나온 캐릭터일 거라고 생각했다.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설에서 예고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조금 나오기 때문에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확실히 주인공은 안톤이었다.


▲ 영화 [나이트 워치]의 한 장면.

여기에 더해, 아무리 러시아 작품이라지만 이야기가 모스크바 밖으로 나가지를 않는다. 보통 사람들 중에서 다른 존재로서 입문하지 않고도 다른 존재를 알아보는 특이한 사람도 모스크바에서 나타나고, 거대한 마력을 지닌 유물이 원래 어느 곳에 있었든 간에 그것이 쓰이는 곳은 모스크바이다. 특히 첫 권인 나이트워치는 말 그대로 모스크바 경비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씀씀이나 마음가짐 또한 어찌나 좀스럽고 지질지질한지, 위대한 빛의 투사라고 불리는 자들의 뒤에 자리한 생활고가 주제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판 스파이디처럼 온갖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자기 유니폼을 자기가 바느질할 정도로 가난한 건 아니지만, 오히려 정말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시민적인 생활 수준을 보여줘서 더 현실적이다. 적이 마법 써서 좋은 차 타고 다닐 때 전철 타고 md 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출근하는 주인공, 이거 정말 현실적으로 궁상맞지 않은가? 내 취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반지의 제왕으로 장르문학을 시작해서 고아하고 고상하고 귀족적이고 영국적인 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취향인 데다, 예쁜 것을 좋아하고, 유치하게 화려한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압도적으로 화려한 것이나 강렬한 것을 좋아하고, 지질지질 세상 사는 이야기가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단 문학에 정을 못 붙이는 사람이다. 허구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봐야 하느냐면서.

그래도 결론은 맨 앞에 말했다시피 이 책만이 내 맘에 들어와 다음 권의 독서를 불렀다. 도대체 나는 이 작품의 무엇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인물이 마음에 드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마음에 든다. 그러나 성격이 매력적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성격이거나 그래서가 아니다. 이 작품의 인물들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층에 있다.

일단 주인공은 이미 말했다시피 지질지질하고 좀스럽고 심지어 재능조차 그다지 없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처음의 인상이고, 오랜 세월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대한 상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이다. ‘다른 존재’이자 악을 감시하기로 맹세한 빛의 기사가 사실 평범하기만 할 리는 없었다. 주인공 안톤의 무기이자 힘은 한결같은 고민이다. 언제나 어떤 길이 더 옳은가, 힘들더라도 가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그러한 고민은 후배 야간 경비대에게 하는 다음의 말에서 가장 잘 요약된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경계는 어디에 있으며, 검은 마녀들의 주술회에 다니는 마녀와 나의 차이는 뭐지? 나는 왜 이런 질문들을 하는 걸까?”

“넌 항상 질문하게 될 거야. 처음에는 소리 내서 질문하고 다음에는 마음속으로 묻게 될 거야. 이건 절대 없어지지 않아. 네가 만약 고통스러운 물음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했다면 잘못 선택한 거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어.”

“알아. 그러니까 참아.”

“평생을?”

“그래. 네 삶은 아주 오래될 거야. 하지만 어쨌든 결코 익숙해지지는 않을 거야. 매번 네가 내딛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얼마나 올바른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야.”
―――[나이트 워치] 상권, 353쪽

앞서 나온 두 세력의 협약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고통스러운 물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경비대의 운명을 말하는 안톤의 말을 되새겨보자. 안톤이 지질지질하고 지지부진한 것은 못나서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안톤은 [나이트 워치]에서는 몰라도 [데이 워치]와 [더스크 워치]를 거치면서 점점 성장한다. 더 강해지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더 많은 운명을 손에 쥔다. 그래도 안톤이 갑자기 힘을 마구 쓰거나 하지는 않는다. 안톤은 끝까지, 몹시도 고민하고 몹시도 머뭇거리며 아주 작은 일에 흔들린다. 그리고 그 아주 작은 고민으로 아주 큰 일을 해결한다. 여기에서는 첫 권 때문에 다음 권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공정하게 [나이트 워치]만 생각해보자.

같지도 않은 고민으로 고뇌만 하다가 행동을 하지 않는 인물은 솔직히 짜증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그 고민의 결과로 아주 작지만 결정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은 맘에 들었다. 고민에 고민만 거듭할 때에는 몰랐으되, 그가 한 결정이 하나의 선을 이루며 세 권의 책을 거쳐 마침내 어딘가에 도달하는 것을 기꺼이 보고 싶을 정도로, 그가 고민 끝에 한 행동이 맘에 들었다. 어쩌면 안톤이 처음부터 좌절에 부딪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안톤이 좌절에 부딪친 게 이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었고 헤쳐나가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뒤에서 조근조근 알려주는 선배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안톤은 오랜 세월 동안 갈등을 겪고 어스름과 인간세상 사이에 걸쳐 야간경비대이자 빛의 기사로 살아가기로 결정한 다른 존재들의 집단에 속해 있다. 이 집단은 평범했던 인간이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정통해있고, 그 과정을 시험하고 보조하고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다.

스베틀라나는 아직 정보 안전보장 과정을 밟지않았다. 이 과정은 학습 과정 3개월이 지나야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정보 안보 과정은 더 일찍 진행될 필요가 있지만, 각각의 '다른 존재'를 위해 개별적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스베틀라나가 이 시련 과정을 통과한 후에야 그녀는 침묵하고 말하는 법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이는 가장 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학습 과정이다. 처음에는 특정 순차에 맞게 철저히 정해진 양의 정보를 그냥 주기 시작한다. 들은 바의 일부는 진실이며 다른 일부는 거짓이다. 그러고는 뭔가는 공개적으로 서슴없이 말해 주고, 무언가는 엄청난 비밀이라면서 알려주며, 또 다른 무언가는 그저 '우연히' 알게 하거나 엿듣거나 엿보게 한다.

그러면 알게 된 모든 것이 고통과 공포를 주며 속에서 떠돌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내며 바깥으로 터져 나오려 하며 지금 당장 비합리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는 '다른 존재'의 삶에는 전혀 소용없는 별별 헛소리들을 말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시련과 학습은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기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어찌됐든 이는 학습이지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에게는 그가 극복해 낼 수 있는 정도의 높이만 주어진다. 온 힘을 동원하여 가시 돋친 철사로 엮어 만든 장애물에 찢겨나간 살점과 핏자국을 남기고 넘을 수 있는 그 정도만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하거나 그냥 호감 있게 생각하는 이가 이 과정을 거칠 때엔 당신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나갈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을 포착할 것이며 당신 친구가 과정 내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을지 짐작해 보려 할 것이다. 어떠한 진실을? 어떠한 거짓을?

그리고 과정을 거치고 있는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주위 세계에 대해서, 자신의 부모와 친구에 대해서 무엇을 알게 될까?

그러면 끔찍스럽고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생길 것이다. 돕고 싶은 충동, 뭔가를 설명하고 암시하고 슬쩍 말하고 싶은 충동이.

단 이 과정을 이미 거친 이라면 그 누구도 이런 충동에 항복하지 않는다. 왜냐면 바로 이 점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언제 말해도 되고 말할 필요가 있는지 자신의 고통을 통해 깨달아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모든 것을 말해도 되고 말할 필요도 있다. 다만 올바른 시간 선택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은 거짓보다 못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이트 워치] 상권 332~334쪽

처음엔 이런 애착이 모두에게 발생한다. 필시 일종의 보호 반응이 아닐까 한다.
주위의 세상이 무너지고 이전의 공포와 두려움이 없어질 때 그 자리를 아직 불명확하고 흐릿한 다른 것들이 대신하게 된다. 모두가 이전의 삶에서 염원하였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던 무언가를 실현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누구는 레스토랑에서 맘껏 즐겨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값비싼 자동차를 사며, 누군가는 명품으로 빼입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경비대에서 백만장자가 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도 강하던 욕구 자체가 시들해지고 과거 속으로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영원히.
―――[나이트 워치] 상권 338~339쪽

이러한 일관성과 행동은 개성과는 다른 층의 인물 성격이고, 이것이 작품 전체의 본질과 연관된 경비대 시리즈만의 특징이었다. 야간경비대를 뜻하는 나이트워치, 주간경비대이자 우리 통념상으로는 악의 편을 뜻하는 데이워치, 경비대가 아닌 그 중간에 있는 자들을 뜻하는 더스크워치는 아주 큰 세계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경비대를 이루는 ‘다른 존재들’, 그리고 그들에게 비치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 권의 책 속에서 안톤은 성장하고,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에 안톤의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치고, 모스크바에서 좀처럼 나가질 않던 배경도 드디어 다른 지방, 다른 나라, 세계까지 확장된다. 배경만이 아니라 안톤이 알고 있는 세계의 진실 또한 확장되어 어스름의 다른 차원, 인간과 ‘다른 존재’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 알게 된다.

단지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이것이 결정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다른 두 시리즈의 주인공은 정말 이와 달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다 주인공이 여자였고, 고난이 연이어 닥쳐오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어울리게도 순발력이 좋고 영리했다. 좋게만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다른 면까지 합쳐서 말하자면 다른 두 작품의 주인공은 영리하지만 현명하지 않고, 순발력이 좋지만 즉흥적이고 일관성이 없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어떤 짓이든 서슴지 않을 법한 인물들로, 사실상 주인공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 않다면 악당이라고 보일 법도 하다. 어쩌면 뒤의 권에서 이 주인공들도 성장할지 모른다.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면 이 주인공 속에 숨어있는 씨앗이 피어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래야 하기 때문에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더 나쁘게는, 성장시켰지만 머리만 커졌을 뿐, 힘만 강해졌을 뿐 정말 깨달은 것이 있거나 현명해지거나 변화하진 않았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두 작품 내내 주인공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해결하고 자신 안에 원칙을 세우려 하기보다는 닥쳐오는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가서 내 목숨을 구하고 내가 궁금한 수수께끼를 푸는가에 치중하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설사 내 목숨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고 해도, 그 행동의 결과로 세상을 구했다고 해도, 그 수수께끼를 푼 발상이 정말로 획기적이고 혁명적이었다고 해도 그 인물에 공감하거나 이입하거나 인간으로서 바라보게 되질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나는 지난 겨울 고층 건물 지붕에서 어떻게 마녀 알리사가 자신의 개입권을 활용했는지를 갑자기 떠올렸다. 아주 약한 개입권이었다. 그녀는 다만 내가 진실을 말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진실이 소년 예고르를 어둠의 편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왜 이런 식으로 되어가는 것일까?

왜 빛이 거짓을 사용하며, 어둠은 진실을 사용하는 것인가? 왜 우리의 진실은 무력하며 우리의 거짓은 효력을 발휘하는가? 왜 어둠은 악을 창조하기 위해 진실만을 사용해서도 훌륭히 일을 해결하는가? 악은 누구의 본성인가? 인간의 본성인가, 우리의 본성인가?  
―――[나이트 워치] 하권 288~289쪽

우리의 힘은 대부분 빌려오는 것이다.

어둠의 기사들은 타인의 고통 속에서 힘을 뽑아낸다. 힘을 얻는 데 있어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용이하다. 인간들에게 꼭 아픔을 유발할 필요도 없다. 그저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쪽 저쪽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빨대로 칵테일을 빨듯이 타인의 고통을 뽑아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행동은 가능하다. 약간 다른 식이긴 해도 말이다. 우리는 인간들이 유쾌하고 그들이 행복할 때 힘을 얻어낼 수 있다. 단, 어둠에게는 접근 가능하지만 우리에게는 실질적으로 금지된 한 가지 작은 과정이 있다. 행복과 불행은 인간의 감정이라는 하나의 선상에 양 극단이 전혀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밝은 슬픔과 적의에 찬 기쁨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존재들'이 감각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주어진 두 개의 평형적 과정이자 두 개의 동등한 힘의 흐름이다.

어둠의 주술사가 타인의 고통을 마실 때, 그 고통은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빛의 마법사가 타인의 기쁨을 취할 때, 그 기쁨은 녹아들어간다.

우리는 아무 때고 힘을 모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드물게 이것을 행하도록 스스로를 허락한다.
―――[나이트 워치] 하권 332~333쪽

캐릭터로서의 개성이 중요한 작품들은 사실 아니었다. 세계와 이야기가 괜찮다면 좋았다. 그리고 다른 두 작품도, 그러니까 세 작품 모두 앞서 계속 말했다시피 독특한 세계와 박진감 넘치는 사건이 있었고, 사실상 사건은 경비대 시리즈가 더 규모도 작고 묘사도 없고 호흡도 짧았다. 그러니까, 그런데도, 다른 두 작품에 없는 것이 무엇인가가 처음에는 인물에서 드러났지만, 인물 이야기를 하면서 이어진 생각은 그것이 인물만의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다. 세계와 이야기 속에 든 본질이 인물로 드러난 것뿐. 사실 소설의 어느 요소가 따로 떼어놓고 각각 평가하거나 그렇게나 많이 다르겠는가.


독자 길들이기는 기본이지

처음에 경비대 시리즈를 읽을 때에는, 특히 첫 권까지 읽었을 때에는 이 작가가 베스트셀러를 이미 여러 권 낸 작가였다는 점을 믿기가 어려웠다. 기본적인 시점도 안 지켜지고, 주저리주저리 주인공이 말은 많고, 사건은 뭔가 힘이 빠져있고, 잘생기고 멋지고 잘난 우리편 따위 없고, 없으면 저쪽 편이라도 멋지기만 하면 사랑해주련만 적은 빼도 박도 못할 악마 형상이고…… 그리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했다시피 주인공도 찌질하고! 도대체 장르는 둘째치고 대중소설을 쓰는 작가가 맞는 것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세 번째 더스크워치를 읽을 때쯤에야, 시점이고 문장이고를 다 떠나서 이 작가가 독자를 배려하며 서서히 길들여갈 줄 아는 대중소설가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어슐러 르귄이 [글쓰기의 항해술]에서 정보 부수기라고 표현한 것, 즉 어색하지 않게 설정상의 정보를 조금씩 조금씩 독자에게 노출시킴으로써 그 안의 세계에 익숙하게 만드는 기법을 내내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독자에게 노출한 정보를 단서로 하여 결론의 반전을 이끌어낸다. 추리소설만이 단서와 복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소설이든 뒤를 궁금하게 하고 끝을 궁금하게 만드는 요소가 수수께끼다 보니 이러한 정보 노출과 전달이 잘된 소설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생긴다. 또 하나, 주인공이 알아가는 정보는 곧 독자의 것이고, 주인공이 성장하며 더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독자 또한 책 속의 세계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데, 그것 또한 속도와 완급을 조절해야만 독자가 질리거나 튕겨나오거나 지루해지지 않을 수 있다. 한창 읽을 때에는 알기 어렵다. 읽다가 알았다면 이미 잘 쓴 글이 아니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아, 잘 썼다, 아, 정말 잘 썼다 하고 감탄하게 되는 글만이 아니라, 글 속의 이야기 외에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글도 정말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 영화 [나이트 워치]의 한 장면.


취존중으로 끝나는 이야기만은 아니길

언뜻 내 취향이어야 할 이야기들을 제치고 내 취향이 아닌 이야기를 계속 읽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는 아주 개인적인 의문에서 이 글은 출발했다. 그런데 취향이 아닌 줄 알았던 글을 분석해보다 보니 개인의 취향만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렇지 않다면 좋겠다.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 내가 그랬듯이 가슴에 와닿는 작품일 수 있다고, 좋은 작품은 취향을 넘어설 수 있다고 추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눈에 취향이 아닌 작품을 읽다가 자신의 더 근본적인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들도 인생과 같아서 한입만 맛보고는 모르는 법이다.
댓글 2
  • No Profile
    아스 12.02.25 00:05 댓글 수정 삭제
    이 시리즈도 정말 좋아하지만, 리뷰 마지막 부분이 정말 좋군요.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가연 12.02.26 15:43 댓글 수정 삭제
    나이트 워치, 처음 읽었을 땐 참 산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러시아 소설을 많이 보지 못한 지라 등장인물 이름을 구분하는 것도 큰일이었고...;;
    데이 워치를 보려다가 나이트 워치부터 다시 봤는데, 다시 보니 정말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처음엔 왜 그렇게 지루하게 읽었나 의아할 정도. 가끔 그런 책이 있는 것 같아요. 다시 보면 처음과 감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문제는 다시 읽는 일이 잘 없다는 것... ^^;
    이 리뷰를 보며 더스크 워치를 마침내 주문했습니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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