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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열차를 놓치다

2018.05.03 05:0205.03

열차를 놓치다

 

 

열차를 놓쳤다. 어쩌면 평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열차였다.

그렇게나 중요한 열차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인지 굉장히 침착해있었다. 이유 따위는 모른다. 그저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영문모를 이유만으로,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생각보다 아쉽지 않았던 걸까. 역시 잘 모르겠다.

열차에 대한 걱정은 뒷전이고, 나는 손이 시려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장갑이라도 끼고 나올걸, 이라고 후회하는 나였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내 손가락 마디를 깊게 베어내고 있었다. 냉기에 난도질당한 나의 손가락들은 고드름처럼 빳빳하게 섰다. 주먹을 쥐려고하면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그럼에도 나는 힘겹게 두 손을 오므려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겨우 천 한개 차이일뿐이라 그다지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바람에 직접 닿지 않는다는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주머니 속에서 두 손이 천천히 녹았다.

추위로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길가에는 며칠전에 내린 눈들이 흙과 매연과 제설제와 뒤섞여 새까만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죽순처럼 아스팔트 바닥에서 곧장 자라난듯했다. 영 기분나쁜 색깔이었다. 나는 바짓단에 그 더러운 것들을 묻히지 않으려 최대한 조심해서 걸었다. 어딜가도 검은 눈 투성이였기에 나는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장애물 피하기보다는 미로 찾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바짓단이 젖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눈이 녹아 군데군데 만들어진 크고 작은 웅덩이들이 자꾸만 발에 밟히었다. 웅덩이의 깊이는 1센치미터도 되지 않아서 겨우 신발 밑창을 적시는 정도였다. 그러나 발을 들어올릴때마다 뒷굽에 묻은 물들이 바짓단에 튀었다. 이미 새까만 점들이 몇개 생겨난걸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며, 그 뒤로는 크게 신경쓰지않고 걸었다.

열차가 떠난 한참 후이지만 나는 그제서야 승강장에 도착했다. 앞뒤로 길게 뻗어 십일자를 그리고있는 두 선로 사이, 그곳이 승강장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벤치 몇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벤치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열차에 탔을 것이다. 지금쯤은 선로를 따라 멀리 가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승강장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오른쪽을 보니 대합실이 있었다. 벽은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었는데 안쪽이 뿌옇게 흐려져있어서 안을 들여다볼수는 없었다. 분명히 대합실이라고 적혀있기는 했지만 기차역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작아보여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기차역이라면 좀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나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을 역에게 그건 쓸데없는 참견이었다. 나는 힘없이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먼 곳에 매점이 하나 있었다. 당연히 주인은 없었고 물건들은 그대로였다. 이 매점 주인도 열차를 타고 떠난걸까. 이 역에 온 것은 처음이 아니었으나 나는 매점 주인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는 이곳에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매점을 등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선로 앞에 섰다. 승강장과 선로 사이에는 꽤 높은 턱이 있었기에 나는 조금 위에서 선로를 내려다보았다. 선로는 구릿빛으로 빛났다. 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열차가 지나간 선로를 바라보고있자니 조금 씁쓸해졌다. 후회라던가 걱정이라던가, 그런 것들은 아니었다. 그저 남겨진 것에 대한 동정심이었다. 앞으로 이 선로가 다시 쓰일 일은 없을 것이다. 열차가 다시 달리지 않는한 말이다.

사실 그 열차가 아주 마지막이라고 공표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말을 얼버무렸고 쏟아지는 문의에 철도회사는 입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하는 작은 희망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 누구도 확신하는 말은 하지 못했다. 책임을 지고싶지 않았을 것이다. 열차를 움직이는 사람들도, 열차에 타려는 사람들도 모두.

점점 마지막이란 시간이 다가오자 철도회사와 사람들 간의 공방도 잦아들었다. 모두 초조해진 것이다. 그들은 오직 열차를 움직이고, 열차에 올라타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렇게나 비난을 받았던 등급제 티켓도 막상 공개되자 그 등급을 막론하고 부리나케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제자리를 찾아갔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우등석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은 일반석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제를 잘 알고있었다. 이 열차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열차를 타고 떠났다. 아니, 열차가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선로 가까이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는 흐림. 하늘은 말못할 불만을 품은양 잔뜩 찌푸린 잿빛얼굴을 하고있었다. 드물지만 간혹 그런 하늘이 있다. 밤도 아닌데 암막커튼을 친 것처럼  어두컴컴한 낮 하늘. 척 보아도 무거워보이는 회색 구름들이 태양을 가리다못해 하늘 전체를 가려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날에는 절대로 외출하고 싶지 않아진다. 왠지 그 아래에 서있다가는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질것만같은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종종 빗방울이었다.

한겨울의 비만큼 맞고 싶지 않은 것은 없다. 물방울은 떨어지지만 대기는 어중간하게 얼어있기때문에 물도 아니고 얼음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흔히들 그걸 진눈깨비라고 부른다.

그걸 맞고 싶지는 않았다. 열차를 놓친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참한 기분이 들지 않았으나, 이 상황에서 진눈깨비까지 맞게 된다면 그야말로 비참한 하루가 완성될 것 같았다.

외투에는 모자도 달려있지 않았다. 비던 진눈깨비던 무언가가 내린다면 그대로 맞게 될 운명이었다. 나는 허전한 마음이 들어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그 때.

똑, 하고 손등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무언가라고 할 것도 없이 그건 빗방울이었다. 나는 손등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를 피할 곳이 필요했다.

단 몇초도 되지않아서 빗방울의 양은 배로 늘어났다. 후두둑, 하고 승강장과 선로 위로 빗물이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간신히 두 손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내 머리 위로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왜 이 역에는 천장이 없는거지, 라며 불평을 해보았으나 답은 뻔했다. 낡고 오래된, 그리고 버려질 역이었기 때문이다.

천장이 없는 버려진 역과 거기서 비를 맞는 남겨진 나. 마치 동의어처럼 나열된 두 존재의 처량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바로 눈에 띄는 것은 매점이었으나 아무래도 비를 피하기에는 대합실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거리도 훨씬 더 가까웠다.

나는 서둘러 대합실로 뛰어갔다.

 

*

 

대합실 문을 열었을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이 역에 나말고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비가 오기 전 대합실을 쳐다봤을때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유리벽은 김이 낀듯 흐려져있었기에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이라도 이토록 조용한 역이라면 적어도 밖으로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사람이 있으면 소리가 나는 법이다. 몸을 움직인다거나 혼잣말을 한다거나 작은 소리라도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대합실은 그렇게나 조용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밖에는 봄비 수준으로 비가 내렸고 내 머리는 뒷통수가 약간 젖어있었다. 나는 빠르게 유리문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문을 닫자 빗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혹시 방음 효과가 있는 걸까. 그래서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았던건가. 여러 생각들이 동시에 떠올랐지만 아무래도 좋아진 나는 이내 생각을 그만두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적당한 자리라고 해봤자 의자는 긴 벤치 하나 뿐이어서 나는 결국 먼저 와있던 사람의 옆에 앉게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 옆에는⋯⋯.

소녀가 한 명 앉아있었다.

소녀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외모를 가지고있었다. 이국적이라고 해야하나, 외국적이라고 해야하나. 어쩌면 이질적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조각상같은 인상을 주었다. 실제로도 그녀는 학교나 공원의 책을 읽는 소녀상처럼 대합실 벤치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했다. 소녀상과의 차이점이라고하면 책을 읽고 있지 않다는 점과, 그녀의 눈이 살포시 감겨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잠을 자고 있는 것 치고는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자세였다. 다리를 알맞게 오므리고, 등을 꼿꼿이 세우고, 두 손은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채 잠을 자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그녀는 더더욱 조각상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아닌 듯한 위화감마저 들었다. 나는 무례한줄 알면서도 찬찬히 그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과연 그녀의 몸에는 조그만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쯤되면 정말 사람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예쁜 소녀의 것이었다. 코와 입은 작았지만 전체적인 이목구비는 뚜렷했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어떤지 알 수 없었으나 적당한 길이의 속눈썹이 하얀 살결을 덮고 있었다. 분명 눈도 굉장히 예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금발이었다. 요즘 세상에 금발이야 놀랍지도 않은 것이지만 그녀의 것은 조금 달랐다. 일반적인 금발이 그 이름처럼 금색을 띄고 있는데 비해 그녀의 머리카락은 옅은 노랑에 가까웠다. 다른 금발들처럼 화려하지않고 수수한, 은은한 파스텔 톤의 금발이었다. 바로 그런 이질감이 그녀의 존재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몇살쯤 될까. 어림잡아 십대 후반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십대 소녀가 부모나 친구도 없이 홀로 기차역 대합실에 남겨져있을리가 없다. 이 보잘것없는 기차역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녀가 열차를 타려했다는 증거였다. 사춘기의 가출이나 일탈일 가능성도 고려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않다면 정황상 그녀는 어엿한 성인 여성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그녀는 남들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외모를 가졌을 뿐이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이 신기함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는 어째서 그녀가 여기에?, 라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분명 그녀가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까지 왔지만 열차도 사람들도 이미 모두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물론 그녀는 잠에 빠져서 아무말이 없었다. 모든 것은 나의 추측에 불과했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믿고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녀도 나와 같다고. 열차를 놓친건 나 혼자만이 아니라고.

그녀를 옆에 두고 나는 가만히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젖은 나의 머리가 다 말라갈 즈음에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빗줄기는 내가 대합실에 들어왔을때보다 거세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잦아들 기미 역시 없어보였다. 비는 앞으로도 지금의 템포로 내릴 예정인듯했다.

나는 불투명한 유리벽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대합실의 벽이 방음이 되는 탓에 밖으로 비가 내리는건 보이지만 빗소리는 거의 들리지않는, 기묘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이렇게보니 비란 결국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일 뿐이구나. 이것이 나의 감상이었다.

그렇게 감상에 젖고 있을때.

“비는 좋아하시나요?”

갑작스레 들린 말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의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나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소리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옆자리의 소녀였다. 이곳에 그녀와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놀란데 이어 황당한 질문까지 겹쳐지자 순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대체 그녀는 언제 깨어났고, 왜 일어나자마자 그런걸 묻는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일단 대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솔직한 답변을 내뱉고 말았다.

“아뇨.”

나는 말하면서 고개를 살짝 저었다. 소녀는 그런 나를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저는 좋아해요.”

“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와중에도 그녀와 나는 서로의 시선을 거두지않고 있었다. 상대방을 관찰하는듯한 시선. 나는 약간의 경계심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은것 같았다. 마치 길가의 고양이라도 발견한듯 흥미롭다는 눈빛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빗소리를 듣고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나지막히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안정적이었다. 들판 위로 봄바람 불어오듯, 부드럽게 대합실의 공기에 울려퍼졌다.

그녀는 낯선 이를 상대하는 것치고는 굉장히 침착해보였다. 어디선가 만난적이 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아마 이런 소녀를 만났더라면 기억하지 못했을리가 없다.

그때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시시한 얘기 밖에 못해서.”

그건 지극히 사람다운 행동이었기에 나는 조금 놀라고말았다. 차가운 대리석 조각상 같은줄 알았던 그녀의 입에서 그런 대사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침울한 얼굴까지 하고있으니 나는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뇨. 그⋯⋯. 시시하지는 않았어요. 비 좋죠. 아니, 이건 제가 비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름 위로의 말을 한다는게 완전히 뒤엉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나는 새삼스레 내가 말주변이 없다는걸 깨닫고 말을 멈추었다. 나는 이런 위로 역할에는 영 어울리지않는 사람이다.

대신에 이런 말은 해줄수 있었다.

“비는, 보고있으면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싫어요. 자꾸만 아래로 내리는게, 나까지 아래로 내려갈것만 같아서, 영 좋은 기분은 아니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 그래도 빗소리는 좋아할지도 모르겠네요. 불규칙적인 리듬을 좋아하는데, 그 리듬과 닮았거든요. 드럼의 하이햇 같은⋯⋯.”

그녀가 나를 보고있다. 아까와는 다른 표정이다. 나는 여전히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하이햇이 뭔지⋯⋯모르시려나.”

나의 하찮은 말들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보고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한번 꿈뻑 닫혔다가 열렸다. 그리고 작은 입에서 또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저도 빗소리를 좋아해요. 그게 비를 좋아하는 이유에요.”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빗소리를 좋아한다는건 비를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그럼 저도 비를 좋아하는게 되는건가요?”

“네.”라고 말하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나는 넋이 나간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약간 고개를 기울였다. 나의 시선은 그녀의 턱도 얼굴도 아닌 어중간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피는듯했다. 목을 빼고 내 얼굴을 살펴보는 그녀의 모습은 한마리 작은 새같았다.

“왜 그러세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소리를 좋아하면 그 대상을 좋아한다는 의미인가요? 예를 들어 새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새를 좋아하는거고, 파도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는거고⋯⋯.”

내가 말끝을 흐리니 그녀는 끝말잇기를 하듯 그 말을 마저 주워담았다.

“빗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를 좋아하는거죠.”

그녀의 말이 맞다면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통성명을 안했네요.”

나는 허리를 틀어 그녀가 더욱 잘보이도록 자세를 고쳤다.

“—입니다. 보시다시피, 음⋯⋯. 열차를 놓친 사람이죠.”

이제 그녀의 차례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스트리드에요. 보시는바와 같이⋯⋯.”

나는 팔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의 손바닥에 그녀의 것이 닿았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같은 온기를 기대했으나.

“안드로이드죠.”

놀랍게도 그녀에게는 체온이 없었다.

 

*

 

요즘 세상에 안드로이드가 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몇번째인지도 잊어버린 산업혁명의 탓에 기술은 진보했고 삶은 윤택해졌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다만 한가지 신경쓰이는 점이 있다면 이런 낡은 기차역, 그러니까 이런 후미진 도시에 어째서 안드로이드인 그녀가 있는가였다. 제 아무리 편리한 신기술이 탄생한다해도 퍼뜨리기는 사람 나름이요, 받아들이기도 사람 나름이었다. 안드로이드가 발명된지는 내가 살아온 햇수를 아득히 넘어가지만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이 도시에 실제로 안드로이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제 감상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만⋯⋯.”

내가 말을 흐리자 그녀는 계속해보라는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왠지 신기, 하네요.”

‘신기’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혀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신기, 하다뇨?”

그녀는 눈을 꿈뻑였다.

“안드로이드와 만난건 처음이거든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

“처음이 아니실거에요.”

“네?”라고 나는 조금 바보같은 얼굴을 하고 물었다.

“안드로이드는 겉으로는 사람과 구분이 안가니까요.”

그랬다. 처음 이 대합실에 들어왔을때도 나는 그녀가 사람인줄 알고있었다. 눈을 감고있던 그녀를 살펴보던 와중에도 나는 그녀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방금까지도, 그녀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철석같이 확신하고있었던 것이다.

“분명 어디선가 만나셨을 거에요. 안드로이드들은 곳곳에 살고있거든요.”

“그렇군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사람을 닮았기에 비로소 안드로이드이다. 그들은 사람처럼 생기고, 사람처럼 생활하고, 사람처럼 사고한다. 태어나고 죽는 과정이 다를뿐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영원하지 않다는 점마저 사람과 닮았다.

나는 좀전의 궁금증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스트리드씨는 여기서 무얼하고 지내셨나요.”

“저는 대합실에서⋯⋯.”

“아뇨. 그런 질문이 아니라.”

아무래도 그녀는 ‘여기’란 단어를 이 대합실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듯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강아지처럼 내 손가락 끝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아. 그렇군요.”

그녀는 그제야 나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저는 웨이트리스였어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는 잘 몰랐다.

“한때는 주인이 있었지만, 그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고, 최근까지는 식당에서 서빙 일을 했죠.”

“주인이 있었어요?”

“네.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그녀는 미안한 사람처럼 멋쩍게 웃었다.

“믿어지실지 모르겠지만 안드로이드도 기억을 잊어버리거나 한답니다. 용량에 한계가 있거든요.”

그녀는 내가 믿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어찌되었건 그녀의 말을 믿는다는 표시로 고개를 한번 끄덕여보였다.

“아주 조금 남은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나의 감상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일관되게 무표정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미묘하게 그녀의 감정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 이유를 모른채, 그저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청소⋯⋯를 했던것 같아요.”

“미화원이라도 하셨던건가요?”

여기보다 큰 도시에서는 안드로이드들이 길을 청소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떠올릴 수 있는건, 큰 양옥집이 있었다는 거에요. 마당도 무척이나 넓은⋯⋯.”

나는 머릿속에 으리으리한 서양식 주택을 하나 떠올렸다. 적어도 이 근방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더 먼 지역에서 온게 틀림없었다.

“저는 늘 마루바닥을 닦고 있었어요. 낡은 대걸레를 들고, 매일 아침, 얼룩과 먼지를 찾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고생스러웠던 과거에 대한 슬픔일까. 아니면 흐린 기억에 대한 슬픔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회청색 눈동자가 매말라보였기 때문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았어요. 제가 청소를 하던 곳은 언제나 그늘이 져있었거든요.”

“그 외에 다른 일은 없었나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떠올릴 수 있는건 어두운 마루바닥과 가끔씩 비추던 햇살⋯⋯이 한계에요.”

“아주 오래전 일이셨군요.”

“아주 오래전 일이에요.”

그녀가 몇년의 삶을 살아왔는지는 내가 짐작할게 못되지만,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녀의 나이는 상당할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일들을 그녀는 겪었을 것이다. 또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망각하는 존재라는 것은,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안드로이드의 기억은 인간과 전혀 다르다고 들었어요.”

그녀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어떤 의미나 지식은 절대 잊지않고 기억할 수 있지만, 며칠전 누구와 대화를 했는지, 그 사람의 생김새가 어떠했는지는 금새 잊어버리고 말아요.”

그리고 그녀는 씁쓸하게 이 한마디를 던졌다.

“아마 편리성을 위한 것이겠죠. 안드로이드니까요.”

대합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애도의 현장으로 변했다. 이 침묵은 무엇에 대한 애도일까. 그녀의 죽고 없어진 기억들을 위한 장송곡이 하나 필요할듯 싶었다.

나는 가라앉은 화제를 돌렸다.

“일이 없는 시간에는 무얼하며 지내셨나요?”

그때 나는 아차, 하고 말을 집어삼키려고했지만 이미 말은 밖으로 다 나온 뒤였다. 말이 없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나는 물었다.

“역시 그것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굉장히 아쉬운 일이다. 만일 나라면, 나의 삶에 그 어떤 추억이라도 남아있지 않다면, 나는 금새 삶의 의욕을 잃고 이내 그만두었을 것이다.

기억도 추억도 없는 그녀가 가지는 감정을, 나는 평생 헤아릴 수 없겠지.

“한가지.”

그녀의 말이 적막을 뚫었다.

“네?”

“한가지 기억나는게 있어요.”

나는 안도했다. 그녀에게 일 외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어째서일까. 나는 그녀를 동정하기로 하는 것일까.

그녀는 옛 일을 떠올리는지 고개를 조금 높이 들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악기소리가 들렸어요. 일을 하는 와중에도, 일이 끝난 다음에도.”

“어떤 악기였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악기라는걸 한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거든요.”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멜로디는 어렴풋이 기억이 나요.”

그녀는 내 쪽을 흘겨보았다. 잠시 아래를 쳐다보며 말하기를 주저하는듯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는 없었다. 다―라―라―라―라, 다―라―라―라, 하고 그녀는 음정을 정확히 짚어내어 노래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서 노래는 흥얼거림에 가까웠지만, 비 오는 중의 대합실 안이라 작은 방에서 전축을 틀어놓은듯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맑고 고운 소리였다.

그녀의 노래는 한소절로 끝이 났다. 그 이상은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녀는 노래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큰 두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았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작은 입이 더욱 작게 오므라들어있었다. 부끄러움을 타는 걸까.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그건 아마, 짐노페디라는 곡일거에요.”

내가 말하자 그녀는 두손을 가슴께로 모았다.

“그렇⋯군요.”

그녀는 왠지 기뻐보였다. 나의 제멋대로인 감상이지만 말이다.

착각이 아니라면 좋겠다―그런 생각을 했다.

“아스트리드씨가 들으셨다는 그 악기는 분명, 피아노가 아닐까요. 짐노페디는 피아노로 쓰여진 곡이니까요.”

그녀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그나저나 정말 오래전 일인가 보네요. 요즘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거든요.”

“힘든가요?”

“네. 아주 오래된 악기에요. 어떻게보면 아스트리드씨의 선배라고 할 수도 있죠.”

“저는 악기가 아닌걸요.”

그녀의 미간이 조금 찌푸러든것처럼 보였다.

“아까는 노래도 하셨잖아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람도 하나의 악기라는 말이 있어요.”

나는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좋은 말이네요.”

그녀는 다시 얼굴을 들었다.

“안드로이드인 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만 말이에요.”

아무래도 나는 또다시 그녀를 슬프게 만든것 같았다. 나는 어쩔줄 몰라서 아무 말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때즈음 그녀가 이런 말을 꺼냈다.

“그래도 피아노와 저는 닮은 점이 있네요.”

그녀는 자신의 손끝을 매만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고있다는게⋯⋯.”

그녀의 목소리는 바깥에 내리는 비처럼 아래로,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침착하다 못해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실 저는 열차를 놓친게 아니에요.”

나는 ‘열차’라는 말에 빠르게 반응했다. 한참을 잊고있던 열차의 존재는 그제서야 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그러나 무엇보다, 놓친것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이 굉장히 신경쓰였다.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저는 출발시간 전에 제때 도착했어요. 표도 제대로 있었구요.”

“그러면 왜⋯⋯?”

나의 두 눈은 부자연스럽게 커져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머리를 푹 숙인 그녀의 처량한 옆모습을 향해있었다.

“아무도 절 태워주지 않았어요. 표를 가지고 있다고 아무리 말해봐도 승무원은 제 탑승을 거부했어요. 승무원은 이렇게 말했어요.”

그녀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당신같이 낡은 구형 안드로이드를 태울 자리는 없다⋯⋯. 그럴바에야 사람을 한명 더 태우겠다―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있었다.

“시시한 이야기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죄송해요. 저에게는 이런 시시한 기억밖에 없네요.”

시시하다. 정말 시시하다. 열차고 티켓이고 평생의 마지막이고 뭐고, 전부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중요한걸 뭘까.

나는 답을 알고있었다.

여기 이 초라한 대합실과, 의자에 앉아 슬픈 눈으로 비내리는 바깥을 바라보는 그녀야말로,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

 

 그녀는 표를 구입하는데 웨이트리스로 일해서 벌은 돈을 대부분 썼다고 한다. 표는 상당히 값이 나갔지만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안드로이드는 기본적으로 먹지 않기 때문에, 식비가 나가지 않는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돈이 모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짐을 싸면서 저도 놀랐어요. 짐이라고 할만한게 전혀 없었거든요.”

그녀는 그정도로 물건없는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어딘가에 완전히 고용되어 있었을 적에는 사유물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없었다고한다. 그야 그럴만도하다. 그녀의 남아있는 기억에 따르면 그녀는 꽤나 유복한 가정에 고용되어있었던 듯하고, 그만한 고용처라면 웬만한 의식주는 제공되었을 터였다.

그녀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계속 옆에 놓여있었던 스포츠백. 그녀는 거기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었다.

옷이었다. 그것도 가정부가 입을만한, 큰 저택의 하녀가 입을 것만 같은 옷이었다.

"이 옷은 제 기억에도 없는, 아마 제가 가장 처음 일하던 곳에서 입었던 옷일거에요. 그것마저도 정말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하지만 이 옷을 처음 본 순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어요. 이 옷의 낡은 정도가 제가 살아온 세월과 비슷할거라고 말이에요."

그녀는 옷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녀의 품안에는 레이스가 잔뜩 헤진, 얼룩도 잔뜩 묻은, 그녀의 말대로 어쩌면 그녀와 나이가 같을지도 모르는 옷이 있었다.

"다른 직장의 옷도 아니고, 그 옷을 여태까지 간직하고 있는데 이유라도 있나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역시 첫 직장이라 의미가 남다른건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거에요. 기억도 하지 못하는 수많은 직업들을 거쳐왔어요. 처음이란건 저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죠."

나는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것에 대해 기분이 상했다.

"정말 단순한 이유에요. 방을 정리하다 옷도 얼마 들어있지 않은 옷장에서 이 옷을 발견하고, 혹시 다른 도시에서도 가정부나 웨이트리스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가져온거에요."

그녀는 옷을 더욱 깊게 끌어안았다.

"아스트리드씨 나름의 희망인거네요."

내가 말했다. 그녀의 끌어안은 옷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이렇게 낡은 희망일줄은 몰랐지만요."

나는 그렇게 슬픈 말을 듣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나는 대체 그녀의 어디에 끌리고 있는 걸까. 청아한 목소리? 상냥한 말씨? 보기드문 옅은 금발? 혹은 신비로운 회청색의 눈동자?

그 어느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빗소리를 좋아하기때문에 비를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나의 경우에는 달랐다. 빗소리는 비의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언행과 외견이 어떻든 그것들은 그녀의 결과일 뿐이었다. 그녀의 과정은 좀 더 복잡하고, 멜랑콜리한, 그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거기서 나는 발견한 것이다. 그녀의 우울이 어디로 가는지.

그 회청색의 망령은 여기 이 대합실을 떠돌고 있었다. 하염없이 비를 동경했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내릴 수 없었다. 애초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늘에 오르지 못한 물은 그저 웅덩이가 되어 언제까지고 고여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옷장에 잠들어있던 유니폼처럼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약간 목이 메어 잘 발음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말을 계속했다.

“낡았더라도, 옷을 버리진 않으셨잖아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인채 말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조금 더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보지는 않았다.

"저는 모든걸 버리고왔거든요."

나는 손을 펼쳐 빈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이 가방에 들어있는 것도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지, 아스트리드씨처럼 어떤 의미가 있다거나, 의도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손을 오므렸다. 손바닥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듯이 자연스럽게 주먹을 쥐었다.

"아스트리드씨에 비하면 제가 살아온 날들은 겨우 이십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그것도 대부분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세월들이죠. 그런데도 막상 짐을 챙기려고보니 딱히 가져갈게 없더군요. 분명 추억이라던가, 그런게 있는 물건들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에요. 그 흔한 가족사진 하나 없으니."

나는 말을 마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들은 어디계시나요?"

그녀가 물었다. 굉장히 오랜만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떠났어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아까 지나간 열차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는 알고있었다.

"아뇨. 오늘 놓친 열차를 말하는게 아니에요. 훨씬 더 전의 열차를 타고 떠났죠. 며칠전이었는지 날짜를 세는게 의미 없을 정도로 오래전의 일이에요. 나는 한참전에 버려졌어요. 그러고보니 버려졌다는 말도 좀 어울리지 않네요. 거기에는 제 의지도 있었으니까요."

거의 나의 의지였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선택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기로 고집한건 나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말리지 않았다. 모두 나에게는 미련이 없다는 듯이 떠나갔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보고싶지 않아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유리벽을 바라보았다. 흐릿한 유리에는 내 옆모습이 옅게 비추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나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시선을 떨구었다. 시선은 아래로, 비처럼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그리고 물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계속 거기에 머물렀다.

"나는 입석이었어요."

제멋대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일반석 티켓을 산 아스트리드씨와는 다르게, 저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죠. 그렇게 나태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어느새, 친구들도 가족들도 모두 떠나가고 저만 남아있더군요. 모두 절 이상하게 생각했죠. 왜 하루라도 더 빨리 열차를 타지 않느냐고. 게다가 젊은 사람이 그러고있으니, 이상하게 보는건 어쩌면 당연해요. 하지만 저는 고민에 빠져있었어요. 과연 열차를 타는게 옳은걸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열차를 섣불리 올라타도 좋은 것일까. 그저 모두가 열차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언제, 어디서 내리게 될지도 모르는데?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약간 화가 난듯했다. 마치 화를 내듯이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들 진작에 떠나가고 마지막 열차가 왔을때, 그러니까 오늘, 저는 결심한 거에요. 이번에는 반드시 타자고. 모두가 있는 그곳으로 가자고. 저도 버틸 수가 없었거든요.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의 저는 한없이 약해지고 있는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사람들이 사라지는 이곳에서 고독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작았던 빗소리가 커졌다. 빗방울은 유리벽을 더욱 세차게 두드려 대었다.

"그런데도 저는 나태한 습관을 버리지를 못해서, 이렇게 열차를 놓치고 말았어요. 나태했던건 생활이 아니라 생각이었던거죠. 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식사를 거른채 집을 뛰쳐나오고, 역까지 뛰어오는 와중에도 그 고민을 놓을 수 없었어요."

요란해진 빗소리에 머리가 조금 아파왔다.

"과연 열차에 나를 맡겨도 괜찮은걸까, 라는."

나를 집요하게 괴롭혀온 의문. 그리고 열차가 남아있지 않은 지금도 나는 그 의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열차를 놓친뒤에도 내가 침착할 수 있었던건 바로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열차를 타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열차를 타는데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에.

두통이 밀려왔다.

"―씨는.”

그녀의 입에서 나의 이름이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건가요?”

순간 그녀의 질문이 나의 의문을 밀어내고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좀처럼 잦아들것같지 않았던 의문이 그제서야 머리 한 켠으로 밀려났다.

나는 한치고 고민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생각해둔게 아무것도 없네요.”

“후회하시나요?”

그녀가 말했다. “네?”라며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열차를 일찍 타지못한걸 후회하세요?”

“⋯⋯아뇨.”

대답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게 내 본심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역에 제때 도착해서 열차를 탔더래도 저는 중간에 내렸을거에요.”

나는 작은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진실된 웃음이었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는게 무서워서. 원치 않는 곳으로 가는게 무서워서, 말이죠.”

“그렇다면.”

내가 말을 끝내자 곧바로 그녀가 따라붙어왔다.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여전히 따뜻한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정해서,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거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전과 변함이 없었다. 변함없이 적당한 힘이 들어가있는 목소리였다. 그걸 두고, 확신에 찬 목소리라고 하던가.

나는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약간의 놀람과 두근거림이 교차하면서 나의 머릿속을 마구 헝크려놓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회청색 눈동자가 좀 더 청색에 가까워졌다.

“저랑 같이 떠나지 않으실래요?”

그것이, 그녀가 내게 한 말.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단번에 대답할 수 없었지만, 대신에 유리 밖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나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바깥으로 옮겼다.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

 

아마도 여행은 길어질 것이다. 더이상 이 도시에는 이동수단이 없었기에 걸어서 가야한다는 점은 둘째치고, 그녀의 걸음에 맞추어 걸으려면 발걸음을 늦추는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들어주겠다는 짐을, 그녀는 굳이 자신이 끝까지 들고갈거라면서 마다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는 안드로이드라서 어쩌면 나보다 훨씬 완력이 뛰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먼 길을 걸어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합실에서부터 우리의 대화는 빗소리와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뒤로도 대화의 주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찌되도 좋을, 언젠가는 아무래도 좋아질, 그런 이야기들 뿐이었다.

우리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취직 경험이 풍부한 그녀와 달리 나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려고 했으나, 역시나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녀는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상관없다며, 앞으로의 직업 따위는 상관없다며, 오히려 물어본 내 쪽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혹시 먼저 일자리를 구한다면 나를 가정부로 고용해줄 수는 없냐며 나는 농담을 던졌지만, 그녀는 진지하게 받아들인것인지 잠시동안 고민하는 눈치였다. 내가 농담이었다는 말을 덧붙이자 그제야 그녀는 뒤늦게 깨닫고는, 안드로이드는 농담에 둔감하다며 자책했다. 그런 그녀가 딱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가정부가 가정부를 고용하다니, 좀 이상하네요.”라며 그녀가 웃었던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기에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즐거워하고있다는 것만은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그것으로 나는 만족했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걷고 있는 길도, 어디로 향하는지 알 길 없이 마구잡이였지만 열차처럼 덜컹거리는 일 없이 잔잔하게 흘러갔다. 길가에는 빗물이 고여 생긴 물웅덩이들이 있었다. 그것들도 내일이면 금새 말라 사라질 것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먼 길을 함께 걸었다. 어쩌면 평생의 처음일지도 모르는 먼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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